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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선27대 왕 나이 모두 알려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6,125 작성일2017.04.18

조선27대왕 나이모두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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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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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사망나이로 적을게요

태조 72세
정종 62세
태종 54세
세종 52세
문종 37세
단종 16세
세조 50세
예종 19세
성종 37세
연산군 29세
중종 56세
인종 30세
명종 33세
선조 55세
광해군 66세
인조 53세
효종 39세
현종 33세
숙종 58세
경종 35세
영조 81세
정조 47세
순조 44세
헌종 21세
철종 32세
고종 68세
순종 53세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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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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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 #강사 #복지관 한국사 12위, 한컴오피스 36위, MS워드 29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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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단(이성계) [太祖, 1335~1408] 조선 제1대 왕(재위 1392∼1398). 우군도통사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정종 이경(이방과) [定宗, 1357~1419] 조선 제2대 왕(재위 1398~1400). 제2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왕위에 올랐으며, 재임 2년 후 보위를 이방원에게 양위하였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태종 이방원 [太宗, 1367~1422]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아버지 이성계 휘하에서 구세력 제거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세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정도전 등을 살해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즉위 후 의정부,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최고의 법사(法司)인 의금부도 설치하였다

세종 이도 [世宗, 1397.4.10(음)/5.15(양)~1450.2.17]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게 했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문종 이향 [文宗, 1414~1452] 조선 제5대 왕(재위 1450∼1452). 년간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다.《동국병감》,《고려사》등이 편찬되었다. 병제를 정비하여 3군의 12사를 5사로 줄였고 병력을 증대시켰다.

단종 이홍위 [端宗, 1441~1457]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죽음을 당하였다.

세조 이유 [世祖, 1417~1468]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1453년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좌의정 정분 등을 유배시켰다. 즉위 후 왕권강화, 중앙집권체제 확립, 직전법 실시(국가재정 확충), 진관체제 실시, 야인(여진족) 소탕 등의 업적을 이루었다.

예종 이황 [睿宗, 1450~1469] 조선 제8대 왕(재위 1468∼1469)으로 재위 13개월만에 죽었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여 둔전의 민경(民耕)을 허락하였다.

성종 이혈 [成宗, 1457~1494] 조선 제9대 왕(재위 1469∼1494). 세종·세조의 치적을 기반으로 문화정책을 폈다. 숭유억불 정책을 철저히 시행했고 《경국대전》과 이를 보충한 《대전속록》을 간행했다.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는 성종 때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산군 이융 [燕山君, 1476~1506] 조선 제10대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중종 이역 [中宗, 1488~1544] 조선 제11대 왕(재위 1506∼1544). 연산군 시대의 폐정을 개혁하였으며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중용, 왕도정치를 시도하였으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혁방법이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진사류를 숙청하였다. 이후 신사무옥, 삼포왜란 등으로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였다.

인종 이호 [仁宗, 1515~1545] 조선 제12대 왕(재위 1544~1545). 기묘사화로 폐지되었던 현량과를 부활하고 기묘사화 때의 희생자 조광조 등을 원통함을 풀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병약하여 포부를 못 편채 30세에 죽었다.

명종 이환 [明宗, 1534~1567] 조선 제13대 왕(재위 1545∼1567). 중종의 둘째 적자이자 인종의 아우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문정왕후 사후, 선정을 펼치려 노력하였다.

선조 이연(초명 이균) [宣祖, 1552~1608] 조선 제14대 왕(재위 1567∼1608). 처음에는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쇄신에 노력했고 여러 전적을 간행해 유학을 장려했다. 그러나 치열한 당쟁 속에 정치기강이 무너져 치정의 방향을 잡지 못했고 두 차례의 야인침입과 임진왜란을 당했다.

광해군 이혼 [光海君, 1575~1641] 조선의 제15대 왕(재위 1608~1623). 임진왜란 기간 동안 국가안위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후 대북파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되었다. 즉위 후 당쟁의 폐해를 억제하려 하였으나 대북파에게 책동되었으며 인조반정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서적편찬, 사고정비,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명, 후금과 양면외교정책을 행했다.

인조 이종 [仁祖, 1595~1649]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정책을 썼다.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방위와 연해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었다.

효종 이호 [孝宗, 1619~1659] 조선 제17대 왕(재위 1649∼1659).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의 8년간 볼모생활 중 그 설욕에 뜻을 두어,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하여 군제개편, 군사훈련강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현종 이현 [顯宗, 1641~1674] 조선 제18대 왕(재위 1659∼1674). 효종의 아들이다. 효종의 상례시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에 서인의 기년설(1년설)을 채택하고,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자 2차 복상문제에서 남인의 기년제를 채택, 재위 중 남인과 서인의 당쟁이 계속되어 국력이 쇠퇴해졌다.

숙종 이순 [肅宗, 1661~1720] 조선 제19대 왕.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사업을 추진해 완결을 보았다. 주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해 상평통보를 주조,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했다. 영토회복운동을 전개했고 금위영을 추가로 설치하여 5영체제를 완결했다.

경종 이윤 [景宗, 1688~1724] 조선 제20대 왕(재위 1720∼1724). 재위 동안은 당쟁의 절정기였다. 이복동생인 세제(영조)가 노론의 지지로 대리청정하다가, 소론의 지지로 다시 친정했다. 김창집 등 노론 4대신을 사사, 노론을 모두 숙청한 신임사화가 있었다.

영조 이금 [英祖, 1694~1776] 조선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탕평정책을 시행하여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였고 여러 차례 사치풍조 금단의 조치를 내렸다. 《농가집성》을 보급하고 균역법을 시행하였으며 청계천을 준설하고 신문고를 설치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조 [正祖, 1752~1800] 조선 제22대 왕(재위 1776~1800). 과거제도 개선을 위해 대과는 규장각을 통해 국왕이 직접 관장하여 많은 과폐를 없앴다. 전제개혁에도 뜻을 두어 조선 초기의 직전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규장각 제도를 일신하여 왕정수행의 중심기구로 삼았다.

순조 이공 [純祖, 1790~1834] 조선 제23대 왕(재위 1800~1834). 김조순 및 외가인물들의 권력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다. 암행어사 파견,《만기요람》편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 친위관료 육성 등의 방식으로 국정을 파악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다.

헌종 이환 [憲宗, 1827~1849] 조선시대의 제24대왕(재위 1834∼1849). 8세에 즉위하여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많은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고 천주교인의 적발방법으로 오가작통법을 적용하였다. 친정 이후에도 삼정의 문란과 국정의 혼란으로 민생고가 가중되었다.

철종 이변(초명 이원범) [哲宗, 1831~1863] 조선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이듬해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문란이 극에 달했다.

고종 이형(초명 이명복,이재황) [高宗, 1852~1919.1.21] 조선 제26대 왕(재위 1863∼1907).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간섭을 겪었다. 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다.

순종 이척 [純宗, 1874~1926.4.25] 조선 제27대 왕(재위 1907~1910)이자 최후의 왕. 한일신협약 체결에 따라 일본인의 한국관리 임용을 허용하여 국정은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황태자가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을 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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