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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조선 1대왕~27대왕 업적 3가지, 출생(몇년동안 지위), 원래 이름 알려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8,423 작성일2015.06.05

제목 그대로 입니다.

조선 1대왕 부터 27대왕 까지

제일 중요한 업적 3가지와 출생(몇년동안 지위 ex] 어떤 왕이 1958년~1966년 까지 지위하다), 원래 이름 좀 알려주세요 제발 내공 100 드립니다 오늘 안으로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어진은 얼굴이 잘 보이는 것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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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현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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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단(이성계) [太祖, 1335~1408] 조선 제1대 왕(재위 1392∼1398). 우군도통사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정종 이경(이방과) [定宗, 1357~1419] 조선 제2대 왕(재위 1398~1400). 제2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왕위에 올랐으며, 재임 2년 후 보위를 이방원에게 양위하였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태종 이방원 [太宗, 1367~1422]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아버지 이성계 휘하에서 구세력 제거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세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정도전 등을 살해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즉위 후 의정부, 삼군도총제부를 설치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최고의 법사(法司)인 의금부도 설치하였다

세종 이도 [世宗, 1397.4.10(음)/5.15(양)~1450.2.17]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젊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으며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게 했다.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고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등 정치·경제·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았다.

문종 이향 [文宗, 1414~1452] 조선 제5대 왕(재위 1450∼1452). 년간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다.《동국병감》,《고려사》등이 편찬되었다. 병제를 정비하여 3군의 12사를 5사로 줄였고 병력을 증대시켰다.

단종 이홍위 [端宗, 1441~1457]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죽음을 당하였다.

세조 이유 [世祖, 1417~1468]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1453년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좌의정 정분 등을 유배시켰다. 즉위 후 왕권강화, 중앙집권체제 확립, 직전법 실시(국가재정 확충), 진관체제 실시, 야인(여진족) 소탕 등의 업적을 이루었다.

예종 이황 [睿宗, 1450~1469] 조선 제8대 왕(재위 1468∼1469)으로 재위 13개월만에 죽었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여 둔전의 민경(民耕)을 허락하였다.

성종 이혈 [成宗, 1457~1494] 조선 제9대 왕(재위 1469∼1494). 세종·세조의 치적을 기반으로 문화정책을 폈다. 숭유억불 정책을 철저히 시행했고 《경국대전》과 이를 보충한 《대전속록》을 간행했다.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는 성종 때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산군 이융 [燕山君, 1476~1506] 조선 제10대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중종 이역 [中宗, 1488~1544] 조선 제11대 왕(재위 1506∼1544). 연산군 시대의 폐정을 개혁하였으며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중용, 왕도정치를 시도하였으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혁방법이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 기묘사화를 일으켜 신진사류를 숙청하였다. 이후 신사무옥, 삼포왜란 등으로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였다.

인종 이호 [仁宗, 1515~1545] 조선 제12대 왕(재위 1544~1545). 기묘사화로 폐지되었던 현량과를 부활하고 기묘사화 때의 희생자 조광조 등을 원통함을 풀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병약하여 포부를 못 편채 30세에 죽었다.

명종 이환 [明宗, 1534~1567] 조선 제13대 왕(재위 1545∼1567). 중종의 둘째 적자이자 인종의 아우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다.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문정왕후 사후, 선정을 펼치려 노력하였다.

선조 이연(초명 이균) [宣祖, 1552~1608] 조선 제14대 왕(재위 1567∼1608). 처음에는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쇄신에 노력했고 여러 전적을 간행해 유학을 장려했다. 그러나 치열한 당쟁 속에 정치기강이 무너져 치정의 방향을 잡지 못했고 두 차례의 야인침입과 임진왜란을 당했다.

광해군 이혼 [光海君, 1575~1641] 조선의 제15대 왕(재위 1608~1623). 임진왜란 기간 동안 국가안위를 위해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후 대북파의 지지를 얻어 왕이 되었다. 즉위 후 당쟁의 폐해를 억제하려 하였으나 대북파에게 책동되었으며 인조반정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서적편찬, 사고정비,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명, 후금과 양면외교정책을 행했다.

인조 이종 [仁祖, 1595~1649]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정책을 썼다.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방위와 연해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었다.

효종 이호 [孝宗, 1619~1659] 조선 제17대 왕(재위 1649∼1659).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의 8년간 볼모생활 중 그 설욕에 뜻을 두어,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하여 군제개편, 군사훈련강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현종 이현 [顯宗, 1641~1674] 조선 제18대 왕(재위 1659∼1674). 효종의 아들이다. 효종의 상례시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에 서인의 기년설(1년설)을 채택하고,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자 2차 복상문제에서 남인의 기년제를 채택, 재위 중 남인과 서인의 당쟁이 계속되어 국력이 쇠퇴해졌다.

숙종 이순 [肅宗, 1661~1720] 조선 제19대 왕.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사업을 추진해 완결을 보았다. 주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해 상평통보를 주조,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했다. 영토회복운동을 전개했고 금위영을 추가로 설치하여 5영체제를 완결했다.

경종 이윤 [景宗, 1688~1724] 조선 제20대 왕(재위 1720∼1724). 재위 동안은 당쟁의 절정기였다. 이복동생인 세제(영조)가 노론의 지지로 대리청정하다가, 소론의 지지로 다시 친정했다. 김창집 등 노론 4대신을 사사, 노론을 모두 숙청한 신임사화가 있었다.

영조 이금 [英祖, 1694~1776] 조선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탕평정책을 시행하여 붕당의 대립을 완화하였고 여러 차례 사치풍조 금단의 조치를 내렸다. 《농가집성》을 보급하고 균역법을 시행하였으며 청계천을 준설하고 신문고를 설치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조 [正祖, 1752~1800] 조선 제22대 왕(재위 1776~1800). 과거제도 개선을 위해 대과는 규장각을 통해 국왕이 직접 관장하여 많은 과폐를 없앴다. 전제개혁에도 뜻을 두어 조선 초기의 직전법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규장각 제도를 일신하여 왕정수행의 중심기구로 삼았다.

순조 이공 [純祖, 1790~1834] 조선 제23대 왕(재위 1800~1834). 김조순 및 외가인물들의 권력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다. 암행어사 파견,《만기요람》편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 친위관료 육성 등의 방식으로 국정을 파악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다.

헌종 이환 [憲宗, 1827~1849] 조선시대의 제24대왕(재위 1834∼1849). 8세에 즉위하여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많은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고 천주교인의 적발방법으로 오가작통법을 적용하였다. 친정 이후에도 삼정의 문란과 국정의 혼란으로 민생고가 가중되었다.

철종 이변(초명 이원범) [哲宗, 1831~1863] 조선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이듬해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문란이 극에 달했다.

고종 이형(초명 이명복,이재황) [高宗, 1852~1919.1.21] 조선 제26대 왕(재위 1863∼1907).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간섭을 겪었다. 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다.

순종 이척 [純宗, 1874~1926.4.25] 조선 제27대 왕(재위 1907~1910)이자 최후의 왕. 한일신협약 체결에 따라 일본인의 한국관리 임용을 허용하여 국정은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황태자가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을 허가했다.

201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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