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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감사내공필수]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 좀 가르쳐주세요-^^-
dltn**** 조회수 6,088 작성일2005.08.29

안녕하세여......

 

저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주요인물이 궁금해서.....^^

 

좀 가르쳐주세요------

 

조선인물, 일본, 명나라, 조정 측     등등..........   말이지요.

 

그럼 많이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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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tj****
지존
사회, 도덕 21위, 한국사, 과학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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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레의 지식™   2005년 8월 30일 [04]번째 답변입니다

더 자세한 지식은 [메일]. [쪽지], [블로그]로 질문주세요.

 

보트를레의 지식 ™입니다.

 

 

주요인물들

이순신(김명민)(1545 ~ 1598 / 7세-54세)
자는 여해.
옥골선풍의 외모에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중반까지 협객으로 팔도를 주유한다.
장안의 협객, 팔도야인들과 교유하며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와 맞서기도 하고
조무래기 탐관오리들을 응징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에 끝없이 절망한다.
출사 후,
녹둔도 전투의 패전으로 무관으로서의 자질을 끝없이 의심받고
지나치게 강직한 성품은 때로 동료들의 표적이 되기도 하지만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임진, 정유 두 왜란을 통해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는 조선 최고의 지장(智將)으로 자리매김한다.

원균(최재성)(1540 ~ 1597 / 12세-58세)
자는 평중.
직선적인 성품에 선 굵은 불도저형 인물이다.
여진과의 싸움에서 메가톤급 괴력을 발휘하여
종성부사 시절, 육진의 수호신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한다.
당대 최고의 무장인 신립과 이일의 신망을 얻어
무관으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걷는다.
이순신과는 건천동 시절 유년을 함께 보냈으며,
필생의 라이벌로서 왜란이 발발하자 극단적으로 대립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이순신의 사람됨과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순신이 최고의 지장(智將)이었다면 그는 당대 최고의 맹장(猛將)이었다.

유성룡(이재룡)(1542 ~ 1607 / 10세-50대까지)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나이 여덟에 공맹의 이치를 깨달은 명철한 두뇌의 수재형의 인물.
이황의 학맥을 이어받은 거유이자, 전란 조정을 이끈 명재상이다.
유년시절 이순신과 건천동에서 함께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이순신 평생의 지음이 된다.


선조(최철호)(1552 ~ 1608 / 16세-40대까지)
등극과 함께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든 문치주의자다.
이황을 스승의 예로 대하며, 중종, 인종, 명종 조에 복지부동하고 있었던
사림들을 현실정치에 과감히 등용하는 개혁군주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상 그의 목표는 애민 이전에 강건한 왕권의 구축이었다.
붕당의 모순을 해결해 가는 과정과 임란을 거치며 개혁성향은 점차 퇴색해 간다.
임란 시, 도성을 버리고 평양, 의주로 몽진해 가야 했던 비운의 제왕.
이순신이 전라도를 중심으로 선정을 베풀고 민심을 크게 얻자
권좌를 위협받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 느끼며, 끝없이 이순신을 경계한다.

임천수(김규철)(17세-)
아산시절 청소년기를 이순신과 함께 보낸 절친한 지기.
아비가 소금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려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이순신과 함께 상경하게 되어 허도주 상단의 짐방(짐꾼)생활을 하게 된다.
원래 선량했던 성품을 지닌 자였으나
허도주 상단에서 소금을 둘러싼 정재계 비리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가장 절친했던 지기 이순신을 배신하기에 이른다.
결국 돈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샤일록 같은 냉혈한으로 변해간다.

<!--img src="http://img.kbs.co.kr/cms/drama/leesoonshin/about/cast/../../images/cast_32.gif" align="left">남궁두(조경환)(1525년-?/50대-)
서산대사의 도반이자, 토정 이지함과 호형호제하고,
전우치와 교유한 바 있는 정체불명의 인물.
조선 최고의 검객이자, 강궁이지만 재주를 숨기고
곤양에서 자기 굽는 사기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워낙 실없는 소리를 해 대며 농을 즐기는 성품이라
아무도 그의 뛰어난 무공을 짐작하는 이가 없다.
청년기 방황하고 있는 이순신을 강하게 후려쳐 스승이 되는 인물이다.

방진(김동현)(생몰연대 미상/40세-)
이순신의 장인이자 스승.
보성군수를 지낸바 있는 당대 최고의 강궁으로
무관 양성소인 등룡정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중
상단 짐방으로 있는 이순신에게 ‘무관’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딸 연화의 생명을 구해 준 것을 인연으로 이순신을 사위로 삼게 된다.
방연화(최유정)(생몰연대 미상 / 10대 후반-50대)
이순신의 처. 활달한 성품의 지혜로운 여인이다.
평생 한직으로 떠도는 남편에게 지청구 한마디 하지 않는 속 깊은 여인.
젊은 날, 남편의 정인이자 사매인 미진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기도 하지만
내색치 않고 안으로 삭힐 줄 아는 넉넉함도 지녔다.
전란 시 아들의 죽음을 목도하고서도
삼도 수군을 이끌고 있는 남편의 심사를 어지럽힐까를 먼저 염려하여
기별을 하지 않는 여장부이기도 하다.

박미진(김규리)(18세-)
남궁두의 양녀. 윤원형의 모함으로 역도로 몰린 가문의 딸이다.
눈앞에서 죽어간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내며, 무공을 닦는다.
이순신과 사형, 사매하는 사이지만 속으론 연정을 품는다.
가문이 신원되고, 한때 이순신의 여인네가 될 꿈으로 달뜨지만
마을을 침범한 왜구와 싸우다 포로가 된다.
사무라이에게 능욕당해 초희를 낳고 한 많은 삶을 마감한다.

박초희(김규리)(16세-)
왜 사무라이와 미진 사이에서 난 딸로 반쪽짜리 조선인.
왜인에게도 조선인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비운의 여인.
대마도 시절, 천주학에 귀의하여 마음의 위로를 받고
교우였던 조선인 사화동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사화동이 조선으로 끌려와 참형을 당하고
임신한 몸으로 동행했던 초희는 일가친척들로부터도 냉대를 받는다.
결국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 줄을 놓아
핏덩이 아이를 제 손으로 죽여 버리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
존속 살해범으로 정읍현 감영으로 끌려온 그녀는 이순신에 의해 구명,
좌수영의 “잔다르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순신의 마지막 여인.

<!--B>무옥(20세-)
여진족의 추장, 니탕개의 배다른 동생.
말타기와 단검 던지기의 명수.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산중에서 원균에 의해 구명된다.
이 운명적인 만남의 잔영이 뇌리 속에 오랫동안 남아있으나
그가 적진의 장수라는 데 끝없이 절망한다.
그를 죽이러 진중으로 잠입하지만
용맹한 그의 성품에 끌려 원균의 여인이 된다.
한호(박동빈)(1543 ~ 1605)
호는 석봉.
글씨 한 자 한 자에 예술혼을 담아 써내려가는 당대 명필로
명나라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있다.
관직에 관심을 두지 않는 호방한 성격으로
도성 최고의 시기(詩妓) 청향에게는 깍듯한 스승 대접을 받는다.
일찍이 국제 정세에 눈을 떠 전쟁이 일어나기 전
왜인들이 제작한 지도 <동방도>를 입수. 전쟁의 기운을 감지하고
이를 유성룡에게 건네는 등 재야지식인으로서의 제몫을 톡톡히 해내는 인물이다.
임란 시, 유성룡의 부탁으로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는 국서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는... 가슴에 불을 지닌 인물이다.

청향(전예서)(20세-)
빼어난 자색과 시심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기녀.
시를 읊을 때마다 석봉 한호의 붓끝을 움직인 도성 최고의 시기(詩妓)이다.
전란 시 한호와 함께 몽진하는 조정을 따라 피난을 떠난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수청을 들기도 한 그녀지만
이여송이 제멋대로 조선인들을 능멸하자 그에 맞서기도 한 당찬 여인네.
후일 통제영으로 흘러들게 된 그녀는 젊은 장수 이영남과
기약 없는 사랑을 나누게 된다.

<!--img src="http://img.kbs.co.kr/cms/drama/leesoonshin/about/cast/../../images/cast_39.gif" align="left"> 허도주(최주봉)(50대 초반)
상단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장사꾼.
짐방으로 시작해 부상대고가 된 인물.
모든 사고가 철저히 이해득실을 따져 움직이는 타산적인 인물이다.
척신 윤원형과 승전색 주태문과 손잡고 혈세를 빼돌려 부당이득을 취하는 등
정경유착의 전형이다.
윤원형의 실각과 죽음으로 상단이 몰락하게 되지만,
끝없이 남해안 변방과 육진을 떠돌며 밀무역을 해 다시 재기한다.
그러나 전란의 조짐을 미리 감지한 심복 임천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다.
천무직(이한위)(24세-)
허도주 상단의 짐방으로
이순신과 임천수가 아산을 떠나 한양에 올라와 처음 인연을 맺는 인물이다
후일 임천수 상단의 이인자가 된다.




홍이(안연홍)
한 번 본 것은 지형지물이건 사람이건 그대로 그려내는
그림에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스파이.
눈을 속이며 조선 팔도를 종이에 담아내기 위해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하는 천수, 무직이와 동행을 자처하고 있다.




날발(이한갈)(7세-30세 전반)
과묵한 성품. 그늘진 얼굴을 가진 이순신의 호위무사.
어린 시절 아비와 어미를 각각 탐관오리와 왜구의 손에 잃고
그만이 이순신에 의해 간신히 구명되고
후일 조선과 조선백성을 지키려는 이순신의 호위무사를 자처한다.



<!--B>월인(아역, 20대 초반-)
서산대사의 마지막 제자로 맹장 원균의 책사가 되는 인물.
임란이 발발하자, 용인전투에 승병을 이끌고 참전한다.
천문을 읽어, 용인전투의 패전을 예언하고
금산에서 조헌과 조우, 결사항전하려 했으나
조헌과 영규의 권유로 원균에게 가 그의 책사가 된다.
칠천량 패전을 예언, 출전을 극구 만류한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이 참혹하게 패배하자
죽어간 군졸들의 영혼을 달래고자
불타는 전선으로 걸어 들어가 최후를 맞는다.

최중화(40세-)
허준과 동문수학한 의원이었으나
허준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관직을 버리고 팔도를 주유하며
본초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남궁두와 조우, 양생술을 익히기도 한다.
이순신과는 정읍현에서 인연을 맺고,
박초희의 치료와 탈출을 돕는데 일조하게 되는 인물이다.
전란 시 전국을 누비며 부상병들을 치료하다가,
정작 본인이 문둥병에 걸리고 만다.
돌림병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여 그 결과를 허준에게 넘겨준다.

이정(박철호)(30대 후반)
이순신의 부친.
부친 이백록이 정암 조광조와 함께 사약을 받고 가문이 몰락한 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
평생 세상에서 돌아앉아 낚싯대에 의지해 살아간다.
변씨(정애리)(30세-70세)
이순신의 모친. 어질고 현숙하며 생활력 강한 여인이다.
남편 이정의 무능으로 생활고의 어려운 부분을 메우기 위해 삯일도 마다치 않지만
남편에게 단 한 번도 지청구를 하지 않는 속 깊은 여인.
아들 넷을 가난하지만 반듯하게 키워냈다.
임란 시 백의종군하는 아들을 만나러 오다가
결국 만나지 못한 채 안타까움 속에서 눈을 감는 비운의 여인이다.

이완(안홍진)(19세-)
이순신의 형 희신의 넷째 아들.
임란시 이순신과 함께 참전,
마지막 전투에서 숙부의 임종을 지킨다.




이면(1577 ~ 1597 / 14세-20세)
이순신의 셋째 아들.
‘이순신 가족을 몰살하라’는 와키자카의 밀명을 받고
아산으로 침투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소은우(손종범)(24세-)
섬세하고 심약한 성품.
남궁두의 가마터에서 자기를 굽는 사기장.
미진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차마 밝히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
왜구가 마을을 습격하자 그들의 괴력에 눌려 가마 속으로 숨어
결국 미진을 왜구에 손에 잡혀가게 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임란 시 처자식을 왜구의 손에 잃고,
부산포 왜관으로 잡혀가 감시 속에서 사발을 굽게 되는 조선의 사기장.
이순신의 간자가 되어 부산포에 잠입한 초희의 탈출을 돕다가 죽어간다.
왕실인물들

광해군(이준)(1575년- / 17세-)
공빈 김씨의 차자로 임해군의 동복 동생이다.
임란 발발과 함께 세자로 책봉되며,
후일 북방외교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개혁군주가 된다.
형형한 눈빛을 가진 카리스마가 강한 인물.
만인지상의 원대한 꿈을 꾸지만,
그 마음을 숨긴 채 오랜 시간 잠룡하기도 한다.
유성룡을 존경하며 허균과는 마음을 나눈 지기.
전란기간 중, 분조를 이끌며 조선의 현실을 직시,
백성을 지킬 강성한 힘을 갖춘 군왕이 될 것을 꿈꾼다.
선조의 밀명을 받고 하삼도로 내려가
독전을 하기 위해 이순신과 조우하기도 한다.

신성군(? ~ 1592 / 12세-)
인빈 김씨의 장남으로, 선조가 가장 아꼈던 완자이자 신립의 사위.
전란만 아니었다면 세자로 책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인물.
전란시 의주에서 절명한다.

윤환시(기주봉)(50대 후반)
주태문의 후계자. 대전 내관
선조의 최측근으로 심성이 음흉한 인물.
수하에 있는 내관들을 간자로 활용,
선조의 비밀 정보원으로 활약한다.



<!--B>주태문(50대 후반)
내시부 승전색(왕명출납을 담당하던 내관)
대군시절부터 명종을 보필해 총애를 한몸에 받던 인물.
명종의 후광을 등에 없고, 각종 비리와 전횡을 일삼는다.
도주 허태만과 결탁, 부정을 저질러 이순신을 곤경에 빠뜨리게 되는 인물
후일 선조가 등극하자 파출된다.
윤환시의 양부.
의인왕후 박씨(1555 ~ 1600)
선조의 정비로 후사가 없어 일찍 어미를 여읜 광해군을 아끼는 인물이다.

인빈김씨(김미라)(30대-)
신성군의 모후이자, 선조의 후궁.

일본 측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이효정)(豊臣秀吉, 1536 ~ 1598)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가도입명을 주장하며 조선침략을 자행한 인물.
급하고 잔혹한 성품의 전쟁귀신.
열등감 덩어리로 무모한 승부욕의 소유자.
주군 노부나가를 배신, 대권을 거머쥔다.
1585년 관백으로 취임, 태정대신이 되며
1588년 취락제에서 다이묘들의 충성을 서약받고,
조선침략의 뜻을 노골화한다.
조선을 사랑했던 차 선생, 센노리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선 통신사를 맞아 오만불손한 국서를 보낸다.
결국 가장 사랑했던 가신 센노리큐를 할복 시키고,
전국의 다이묘들을 집결시켜 조선을 침공한다.
임란 시 몸소 조선에 올 꿈을 꿔 대 전선 고쇼마루를 건조하기도 하나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이순신으로 인해 발이 묶여,
단 한번도 조선 땅을 밟지 못한 채 정유년, 사망하고 만다.

가토 기요마사(이정용)(加藤淸正, 1562 ~ 1611)
임란 시 30대 초반의 맹장(猛將)
침략과 동시에 일사천리로 함경도까지 진격,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았으며,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 히데요시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2차 진주성 싸움을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고니시 유키나가와는 끊임없이 쟁공하는 사이다.
이순신의 연전연승으로 보급로가 차단되자
이순신에 대한 적개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다.
사명당과 강화회담을 하기도 했던 그는
사기장 등의 조선 장인들을 가장 많이 잡아갔던 인물이다.

고니시 유키나가(정승호)(小西行長, 1558 ~ 1600)
사까이 출신으로 약재무역상의 아들.
가등청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온건한 인물로 천주교 신자다.
당시 대조선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대마도주 소오 요시도시(宗義智)의 장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의 야욕을 감지,
히데요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가신, 이시다 미쓰나리를 움직여
전쟁을 막고자 하나 실패했다.
임란 시 제 1군의 장수로 18,700명의 지휘관이 되어 참전.
부산진성과 다대포진성을 함락시키고,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고
단호히 천명하고 죽기로 싸우던 동래부사 송상현마저 꺾고 북상,
가장 먼저 도성에 입성한 전공을 세운 자다.
그러나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
명예회복을 위해 행주산성을 4만 대군으로 공격하나 실패하여 퇴각,
웅천 남산에 왜성을 축성하고 조선군과 대치했다.
정유재란 시 다시 참전하나 노량해전에서 대패하여
수치심을 안고 본국으로 도망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김명수)(脇坂安治, 1554 ~)
냉철하고 끈질긴 성격의 전형적인 사무라이.
18세에 히데요시의 눈에 들어 가신이 된다.
10대 후반 다완을 확보하라는 히데요시의 밀명을 받고,
조선으로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던 그는 곤양에서 이순신과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첫 대결에서 이순신이 날린 철전이 얼굴에 스쳐
흉물스러운 상처를 갖게 된 그는 이순신에게 깊은 원한을 품어 필생의 라이벌이 된다.
포로로 끌고 갔던 박미진에게 연정을 품었던 그는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는 그녀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임란 시, 스모도성의 성주로서 참전하게 된다.
용인전투에서 1500명의 기병으로 6만의 조선군을 대파한 후
히데요시의 이순신 제거작전인 한산해전에 긴급 투입된다.
그러나 연합작전을 펴라는 명령을 어기고 독자적으로 출전,
학익진 진법을 구사하며 맞선 이순신에 의해 다시 한 번 참패의 고배를 마신다.
이후 이순신을 암살을 기도, 자객을 보내기도 하는 등
끝없이 이순신의 목숨을 노린다.
명량, 노량해전에서 대패,
이순신에게 패배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할복해버린다.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1535 ~ 1619)
가고시마의 영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만오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전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귀환하면서
대규모 조선 도공들을 납치하여 일본으로 끌고 갔다.

소오 요시도시(황준원)(宗義智, 1568 ~ 1615)
대마도주.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다.
조선무역을 독점하고 있었기에 조선어에 능통했다.
임란 발발 5년 전 히데요시로 부터
"조선왕이 일본으로 건너와 영토를 바치고 항복하게 주선하라"는 명자
조선 측에 히데요시의 속셈을 전하였다.
조일전쟁의 발발과 일본 측의 승리가
오히려 대마도 경제에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
끝까지 전쟁을 막고자 동분서주한다.

사화동(최당석)(30대-)
진주사람으로 관리들의 학정을 이기지 못하고 왜국으로 귀화한 이다.
종의지의 측근으로 조선으로 드나들던 상단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종의지의 인도로 천주교에 귀의하고,
교우였던 박초희와 마음을 나눠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통신사 문제로 왜와 조선이 줄다리기를 할 무렵,
선조의 요구에 따라 조선에 보내져 참형을 당한다.

세스페데스(40대-)
대마도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했던 포르투갈 신부.
임란시 고니시 유키나카를 따라 종군,
부상병을 돌보는 한 편, 천주교 포교에 힘쓴다.

센노리큐(정욱)(千利休, 1521 ~ 1591 / 50대-)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차선생.
바람 없는 수면처럼 고요하고 맑은 성품을 지닌 이.
천하제일의 차인(茶人)으로
조선의 거유, 이황의 저술들을 아껴 읽었던 이다.
조선 막사발의 질박함에서 차도의 마음을 찾아 그 형식을 체계화한 이다.
조선의 문화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어, 끝없이 조선을 동경했던 인물.
반전 평화주의자로, 히데요시에게 야욕을 접을 것을 강권하다 실패,
할복으로 삶을 마감한다.

쇼타이(김종결)(承兌, 생몰연대 미상 / 40대-)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 기거했던
교토 취락제의 승려.
희데요시의 바둑상대이자, 책사.
승려신분으로 전쟁을 부축인 이율배반적 인물.
센노리쿠와 가장 강하게 갈등하게 되는 인물이다.


겐소(이경영)(玄蘇, 생몰연대 미상 / 40대-)
대마도의 승려.
요시도시(종의지)와 고니시(소서행장)가 믿는 승려,
도요토미의 국서를 위조해준다.
종의지와 함께 사신으로 파견되어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명나라 측 인물

심유경(沈惟敬, ? ~ 1597 / 30대- )
임란 당시 명나라의 사신.
세 치 혀끝으로 동양 삼국을 뒤흔든 국제 사기꾼.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의 개인사자 자격으로 조선 조정을 능멸하고
일본과의 강화협상에 나서는 등 당시 조선 외교의 빈틈을 노려 사기행각을 벌인다.
1592년 조승훈(祖承訓)이 이끄는 명나라 원군(援軍)의 유격(遊擊) 장군으로 참전한다.
평양에서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강화회담을 가졌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히데요시를 만났으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귀국, 매국노로 몰려 처형당한다.

이여송(李如松, ? ~ 1598 / 40대 후반-)
중국 명(明)나라의 무장. 포악하고 거친 성품.
임란 시 제2차 원군으로 4만대군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와,
1593년 1월 평양성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일본군을 격파한다.
공을 부풀리기 위해 조선 백성을 도륙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던 잔인한 인간.
조선의 장수와 대신들에게 발길질도 서슴지 않았던 광폭한 인물로,
전공에 미친 점령군 사령관.
벽제관싸움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에 패한 후
평양성을 거점으로 화의교섭 위주의 소극적인 활동을 하다가 그 해 말 철군한다.

진린(김하균)(陳璘, 생몰연대 미상 / 40대 후반-)
1597년 정유재란 시 명나라의 원군.
어왜도총관 전군도독부 도독으로서 수병 5천을 거느리고 참전,
이순신과 더불어 전공을 세웠다.
노량해전 직전 고니시와 비밀 협상을 맺어 일본의 연락병의 도주를 돕기도 한다.
전공과 작전을 두고 이순신과 갈등을 빚지만 언제나 이순신의 양보를 얻어낸다.
참전 중 이순신의 치밀함과 인격에 차츰 감화되어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 세 번이나 쓰러지면서 통곡했던 인물이다.

유정(손호균)(劉綎, ? ~ 1619)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 원병 5천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매수당해 적극적인 공격을 펼치지 않아
이순신과 조선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인물이다.

이외는 kbs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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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지식인 참조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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