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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해원옹주...조선 황실에 대해서 질문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4,303 작성일2012.03.11

 

안녕하세요 요즘 역사에 한창 빠져있는 중학생입니다

 

저번에 티비를 보니까, 해원옹준가 뭔가 하는 할머니가 국가소송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끊임없이 입헌군주제 제도를 실천하고 있다고 인터넷기사에서 봤구요...

 

순간 머리가 아주 혼란스러워졌습니다,,ㅡㅡ

 

조선의 마지막 황족은 덕혜옹주가 아니었나요?? 또한 그 자식은 일본피가 섞였구요...

 

덕혜옹주 자식이라는 사람은 자살했다고 들었는데..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저도 불확실)

 

암튼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서 죽고 황족의 피는 끊겼다는 것 같은데... 왠갑자기 이해원이라는 정체불명의 할머니가 나타나서...;;;;;;

 

만약 해원옹주가 진짜 황족이라면 이씨황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그 자식들이 계속 대를 이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요

 

황족이 충분히 많은데 왜 사람들은 진작 일본이나 영국 같은 나라처럼 입헌 군주제를 실천하지 않았나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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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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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광무태황제(1852-1919)

 

명성태황후 민씨(1851-1895)

--  원자 (1871~71. 4일 만에 사망.)

-- 대한제국 2대황제 순종융희효황제 이척 (1874~1926)

  = 순명효황후 민씨(1872-1904, 無子)

  =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 無子)

-- 왕자 (1875-75. 14일 만에 사망.)

-- 왕자 이태 (1878-78. 105일 만에 사망.)

-- 공주 (1873~73. 222일 만에 사망.)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

-- 영친왕 이은 (1897~1970)

  = 이방자(1901-1989)

     ①이진(1921~22)

     ②이구(1931~2005)

 

영보당 귀인 이씨(1843-?)

-- 완친왕 이선 (1868~80)

 

귀인 장씨

-- 의친왕 이강 (1877~1955)

  = 정실 덕인당 김씨(1880-1964, 無子)

  = 부실 수관당 정씨

     ①이건(1909~91) = 마쓰다이라 요시코

  = 부실 수인당 김씨

     ②흥친왕 이우(1912~45) = 박찬주

        -이청(1936- )

        -이종(1940-1960?)

     ⑤이택(수길, 1918~82)

        -이한주

        -이호

     ⑥이곤(명길, 1920-1984)

        -이준

  =부실 수현당 정씨

     ③이방(홍길, 1914~51)

  = 부실 수덕당 이씨

     1.이영(해완, 1915~81)

    2.이진(해원, 1919~ . 황실대표로 추대)

  = 부실 수완당 김씨

     3.이찬(해춘, 1920~)

  = 부실 수길당 박씨

     4.이숙(해숙, 1920-사망)

  = 부실 조병숙

     ④이창(창길, 1915-사망)

        -이일주

        -이석주

  = 부실 송씨  

     ⑦이광(형길, 1921~52)

  = 부실 수경당 김씨

     ⑧계동궁 이현(경길, 1922~96)

  = 부실 김금덕 

     5.이공(해경, 1930~)

  = 부실 전씨

     ⑨이종(1936~72)

        -이혜원(이원. 이구왕자의 황사손으로 입적)

        -이성곤

  = 부실 함씨

     ⑩이갑(충길, 1938~)

        -이상협

        -이상우

  = 부실 홍경순

     ⑪이석(영길, 1940~. 노래하는 왕자)

     ⑬이정(정길, 1947~)

     7.이용(해란, 1944~)

     8.이현(해련, 1950~)

        -이종훈 외 2녀

  = 부실 김혜수

     ⑫이환(정길, 1944~ )

        -이성준

     6.이장(희자, 1940~ )

     9.이민(1953~)

 

광화당 귀인 이씨(1887-1970)

-- 이육 (1906~08)

 

보현당 귀인 정씨

-- 이우

 

내안당 귀인 이씨 

-- 옹주 (요절)

-- 옹주 (요절)

 

복녕당 귀인 양씨(1882-1929)

-- 덕혜옹주 (1912~89)

  = 소우 다케유키

     ①종정혜(1932~?)

 

삼축당 상궁 김옥기(1890~1972)

 

정화당 김씨(1871-?)

 

상궁 서씨

 

상궁 김충연

 

상궁 염씨?

-- 옹주 문용(1900~87)?

 

 

 

고종황제의 후손을 정리한 계보입니다.

 

 

 

마지막 황제 순종은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그의 후계자는 고종의 막내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 동생인 영친왕 이은입니다.

 

영친왕은 1907년 황태자로 책봉 된 뒤 이토 히로부미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유학(명목의 볼모)을 떠났고, 1926년 순종이 붕어 하자 일제로부터 조선 이왕의 칭호를 하사 받았습니다.

 

 

현재 살아있는 고종의 직계 후손은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후손이 유일합니다.

 

셋째아들인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왕자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 사손으로 입적 된것 역시 의친왕의 손자입니다.

 

의친왕은 정실인 덕인당 김씨로부터는 자손을 보지 못했고, 14명의 부실들로 부터 총 13남 9녀를 얻었습니다.

 

유명한 노래하는 왕자 이석 역시 의친왕의 친아들 입니다.

 

 

말씀하신 덕혜옹주는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일본인 대마도주 종무지백작과 혼인 사이에 종정혜를 두었으나 일찍 사망하였습니다.

 

덕혜옹주는 정신병원에서 사망한 것이 아닌 덕수궁 낙선재에서 거처하다 그곳에서 사망합니다.

 

 

근래 기사에 나온 이해원씨는 의친왕의 둘째딸로 정확히 말하자면 옹주는 아닙니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 왕실이 황실이 그 시기가 짧아 황실법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한제국이 13년 만에 종결됨으로서 그 후에 태어난 황손(덕혜옹주 포함)들 역시 제대로 황족에 편입되어 작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의친왕의 차녀인 이해원씨 역시 일제강점기에 친왕의 딸(정확힌 서녀)로 태어났으나 황족으로서 작위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즉, 옹주로서 품계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사에서 그저 황족으로서 왕의 서녀이니 편의상 옹주로 호칭 하였을 뿐 진짜 옹주는 아닙니다.

 

 

만일 조선왕실이 다시 계승된다면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후보자는 이 의친왕계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다음 순위는 철종의 형제들의 후손입니다.

 

철종 본인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으나 그 형제들의 후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남연군계 입니다.

 

흥선대원군이 남연군의 넷째 아들인데 그 형제들의 후손 역시 지금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남연군계가 고종황제와 더 가까움에도 철종계보다 뒤처진 이유는 남연군계에 친일을 한 왕족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친일 왕족은 배제 해야 겠죠.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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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ri
달신
올림픽 8위, 진로, 진학 7위, 초등, 중학교 진학 1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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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덕혜옹주가 조선 혹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옹주라고 하지만

 

이것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왜냐면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이 망한 이후 즉,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덕혜옹주의 딸인 소 마사에는 산에 자살하러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떠났습니다(그래서 타살논란)

 

 

 

덕혜옹주는 고종과 후궁사이세서 태어났고

 

이해원씨는 고종의 다섯번째 아들인 의친왕의 딸입니다

 

덕혜옹주가 황실의 마지막 후손은 아닙니다

 

이 외에도 많은 황실 후손들이 존재합니다

 

 

이구 씨는 영친왕의 아들로써 2005년에 사망하였는데

 

황실 직계후손으로

 

우크라니아계 미국인 줄리아 머독 여사와 결혼했으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황실로부터 이혼 압박을 받으며 좋은 결혼생활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아이없이 이혼하고 이구씨는 사망합니다

 

물론 이구씨는 그 전에 의친왕의 9남 아들이었던 이원씨를 양자로 받아들였지만

 

대한민국 현행법상 양자는 후손으로 인정되지 않아 논란이 있습니다

 

이원씨는 대한제국 황실 수장으로써 종묘제례나 각종 왕실행사에서 왕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것들은 위키피디아를 이용해 보시면 될것 같고

 

 

사실 황실을 계승하기 위한 단체들이 여럿있는데

 

그중에서 전주이씨대종악원이 가장 크고 정통성이 있습니다

 

사실 이해원씨를 여황으로 추대한 것은 다른 민간단체입니다

 

전주이씨는 이런 민간단체들의 행위가 절대 정통성있다고 보지 않고

 

특히나 황실을 복원하겠다는 것은 시대적착오이며 황실의 후손들이 해야할 일은

 

황실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대한민국이 건국되던 초기에 황실복원여론이 있긴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는 황실사람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까봐 두려워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황실후손들이 미국이나 일본등에 남아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남은 황실 후손들을 최대한 불러모아

 

창덕궁 낙선재에 살도록 해주고 그들을 지원해주었는데

 

입헌군주제는 아니었습니다 엄연한 대통령제국가였고

 

그냥 그들은 황실후손으로써 대우를 받은것, 그뿐이었습니다

 

따라서 1960~70년대까지 영친왕의 가족들과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등이 모여 살았습니다

 

 

 

 

 

드라마나 소설들의 영향으로 황실을 복원해야한다는 여론이 생기긴 했지만

 

황실이 없어진지 100년이 지난 이시점에서

 

황실을 복원하는 것은 당연히 시대적착오고 이고

 

전주이씨 대종악원의 말처럼 황실의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는 생각합니다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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