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실존주의와 인본주의가 우리 삶의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4,254 작성일2007.03.15

제목 그대로 실존주의와 인본주의가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간단히 설명좀 부탁드려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hand****
고수
철학, 심리철학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우선 질문 자체가 구체적으로 더 논점이 거론될 필요가 있습니다.

윗분께서 상당히 거친 표현으로 말씀을 적어 놓으셨습니다만, 질문 자체에 오류가 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설명을 해 보도록 하죠.

우선 질문의 맹점을 꼽아 보겠습니다.

 

1. 실존주의와 인본주의를 독립적으로, 즉 각각의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설명을 요하고 있는 것인가?

2. 실존주의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현존재(각각의 개별적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

 

질문을 이런 식으로 분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은 여러가지로 논쟁이 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2번과 같은 질문은 질문 자체가 이미 틀린 것입니다. 물음이란 것은 물어서 답할 수 있는 것과, 이미 물음 자체가 틀린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실존주의 논쟁에서 입장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사르트르와 카뮈의 논쟁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존주의에 관한 원론적인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분량이 굉장히 길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급될 수 있는 부분에 있어서만 실존주의에 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2차대전 이후로 세계는 인간의 업화와 인간성의 황폐화와 같은 윤리적 문제들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은 실존주의적인 입장들과 관련시켜서 대중들은 점점 실존주의를 대중적으로 통속화시키게 됩니다. 엄연히 실존주의는 학술적으로 거론될 만한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실존주의에 관해 막연한 이해로 통속화해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귀부인이 무언가 일이 틀어져서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에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하면서 "아.... 나는 실존주의자가 되어버린 모양이군."이라는 말을 무심결에 내 뱉을 정도로 실존주의는 대중에게 통속적이고 비관적인 사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실존주의에 대한 왜곡을 바로 잡고, 실존하는 현존재의 지향성에 대해 다르게 접근한 사람이 바로 전후의 장 폴 사르트르입니다. "존재와 무"와 같은 저서는 굉장히 실존주의의 원론적인 고독한 현존재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전후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변증법적 이성비판"과 같은 경우에는 문제를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사르트르 실존주의에 관한 입장을 알아봐야 합니다.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실존주의에 있어서 휴머니즘과 별개일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게 됩니다. 이것은 상당히 많은 비판이 있었던 부분입니다. 특히 나빌르와의 토론은 한계를 많이 드러낸 뉘앙스를 보였지요.

사르트르는 기본적으로 실존하는 현존재의 지향성(앙가주망)의 주체성을 강조했습니다. 실존하는 현존재는 본질적 규정이 될 수 없으며, 인간 그 이전에 이미 "나"인 현존재이고, 따라서 실존하는 현존재는 자유롭고, 언제나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며 이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미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입장과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만, 이것을 바라보는 입장은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상당히 기존 실존주의적 입장과 차이가 있습니다.

즉 사르트르가 휴머니즘을 주창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현존재의 선택에 대한 주체성 때문입니다. 즉 "나"라는 현존재는 언제나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에 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이므로 그 자체로 주체적이라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즉 주체적인 나 자신은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서 언제나 자율적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미 인간의 주체성에 대해 존엄함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즉 자유롭고 주체적인 실존주의는 그 자체로 휴머니즘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주체적인 결단은 인류애적이라고 보았습니다.

모든 선택의 문제는 결국 인류의 문제로 앙가제 : Engagerb(지향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내리는 결단은 언제나 주체적으로 인류애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즉 현존재는 스스로 독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호주관"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각각의 결단에는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으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휴머니즘적인 행동으로 지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가 대중에게 왜곡되서 통속화되고 있는 현실에 비판을 가하고 실존주의가 엄연히 "학술적으로" 연구되고 거론되어야 할 사상이라는 입장을 밝히게 됩니다.

 

더이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르트르의 "혁명적"인 인류로서의 앙가주망과 카뮈의 "반항인"으로서의 고독한 현사실적 실존주의와의 입장에 대해서는 스스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입장만 설명을 해 놓습니다.

2007.03.15.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