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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영훈 교수의 식민지근대화론은 메이지유신을 어케설명합니까?[내공100]
비공개 조회수 12,122 작성일2017.07.11

이영훈 교수는 완전한 농노제 사회에. .상업제도의 미빌달. 신분사회 .폐쇠적인 왕조국가인 조선이 대체무슨 수로 전근대적인 자본주의.근대국가로 발돋음할수있는 요수가있겠냐고 하면서 



자본주의 맹아론을 박살냈는데


그럼 일본은 뭐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봉건국가 비근대국가 아니였냐요 ?


하지만 천황칙령으로 한번에 근대화가 됐잖아?? 게다가 그러면서도 봉건적 유지제도가 여전히 남아있었지.



그런 일본도 봉건적 요소가 완전박살나고 완전한 현대저거 자본주의 국가가 된건  2차대전이후


에 일아닙니까? .............



그때 당시에 중요한 근대화는  자본과와 노동자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근대적 인프라와 근대화된 군대가 아니였나요? 이것에 꼭 마르크스 레닌주의적인  자본주의-공산주의적 요소에 정면부합되는건 아니지않나요? 




중국의 양무운동도 마찬가지아닌가요? 


청나라는 뭐 양무운동 이전에 뭐 왕조국가. 봉건국가아니엿나요 ?


실질적으로 중국(대만포함)도 진정한 근대화가 이루어진건 2차대전이후에 일인데?


2차대전이후 극히 낙후된 지역이나. 신정종교국가가 아니고서야 19세기적 전근대적인 제도를 탈피하지못한 나라가 뭐 있나요?



조선도 굳이 비 식민지 상태였어도 메이지유신이나 중국의 양무운동에 영향을 받거나 외세의 간섭으로 개항하면서


그러다 2차대전을 겪으면서 6070년대에 비로서 현대적 의미의 자본주의 국가에 얼마든지 도달할수있는거 아닙니까?


어차피 625때 일제가 만들어논거 다 개박살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현대국가는 625이후 


한국민들손으로 만들어놓은거아닌가요?




게다가  식민지근대화론이 정녕 정당하면    그럼 영프독의 식민지를 겪었는데도 재대로 현대화도 안된 아프리카 국가들은 어케설명할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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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 777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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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일본의 에도막부가 서양의 개항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쿠로후네 사건으로 조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한 막부가 왕정복고 운동 세력에 무너지고 1867년 일본 천황의 중심 국가로 복고된 사건을
말하죠 이시기는 메이지 연호가 시작된 1868년
일본은 정치,경제,사회,를 완전 서구식으로 바꿔
놓은 개혁으로 당시 시대상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서양에 문화를 일찍 도입하여 근대화를 시작합니다.

사실 조선 식민지 근대화론은 부정할순 없죠 당시 조선은 일제감정기 억압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속에서 근대적인 자본주의의 생산 방식 사회적 기술 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이에 적응해가는 모습이 주목할만한 경험적 축적이 되고 해방이후에도 고도 성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그 견해지만 일제감정기가 제국주의에 수탈과 착취 대해서는 그 역시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자본주의적 개혁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 었음을 현재에도 인정하지만 다른 학계에서는 일제 식민지 발전이 배제된 왜곡 과정을 지적하기도 하죠

일제감정기에 근대 문물이 유입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한 한반도는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기본적인 주장은
'자본주의 맹화론' 은 허상이며 직접적인 근대 문물
유입 시기는 실질적으로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한국
이 근대화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고 물론 본래
일제의 의도는 아니지만 "법률,건축,산업,기술,문화, 경제 등이 일제감정기에 도입된 것은 사실이고 이때 억지로라도 도입된 근대화 시스탬은 실증적으로 부정할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제감정기를 정당화 할수도 없고 주로 이영훈은 해방 이루 90년대 국내 에서 사회경제사학계와 민족주의 사학계를 비판 하는것으로 시작되어 주로 식민지 근대화론일지라도 정치,사법,문화,기술 보다는 자신의 전문분야인 경제 사를 기존에 연구 이론을 제기했었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일제감정기를 결코
정당화 하거나 인정하는것은 아닙니다. 단지 분명 한것은 일제의 관계없이 현재 대한민국이
경재적으로 전통 사회부터 산업사회까지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일제통치에 주권 강탈 노동력 및 자원
수탈 착취 사회와 경재 구조에 왜곡 인적자원이 저해했음 을 인정하면서도 근대문물이 인식되어 독립 이후에 도 한국 경제 발전에는 폭넓은 영향력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좋은 답변이었으면 감사합니다. (^ - ^)

201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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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
근대 이전에는 일본도 한국도 중국도 거의 중세시대의 수준에 머물러있는 봉건 왕조였습니다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서양의 압력을 받자,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을 통해 근대 국가로 발전했죠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귀족들과 왕들이 전통 사회를 유지하고 싶어하며 개혁을 하는데에 소극적이었죠.



예를 들어 양무운동이라고 했는데, 중국의 양무운동은 군사 기술에만 치우친 부분적인 근대화 운동으로

결국 역사책에도 실패한 근대화 운동이라고 평가되어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과는 차원이 다르죠



조선 왕조가 전체적으로 봉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것보다도 더 큰 문제점은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왕과 양반들이 서구식 근대화 개혁을 하는데에 마음 내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하는 집단들이 기존의 막부 (쇼군)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 적극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죠.






지금이 21세기인데 아직도 지구상에 과거의 조선시대처럼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쇄국)

그래서 여권발급도 안되고, 활과 화살을 쏘며 유교경전을 외우고 노예를 부리는 국가가 있다고 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


어쨌든 조선도 개항이후로 여러가지 개혁을 시도는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 시대에 뒤쳐진

후진국가가 되어버렸죠. 그래서 일본한테 병합당했죠




일본 사람들이 들어온 이후로 여러가지 것을 바꾸었습니다. 신분제도의 철폐, 공자 맹자가 아니라

근대적인 서양의 학문 (수학, 경제 등...)을 가르치는 학교를 건설 (경성제국대학 - 서울대의 전신)

사유재산권의 인정. 거주 이전의 자유. 그리고 사람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일본의 투자자들이 한국에 철도나 공장등을 건설했죠



그래서 한국의 근대화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근대와 현대라는 시대가 이어지는만큼, 이때 일제시대에 남긴 영향들이 현대의 한국에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유럽에 의해 '근대'라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좋든 싫든간에 유럽 사람들이 문호를 개방시키고 구시대의 왕조를 멸망시키면서 전통 사회가

해체되고 유럽에서 새롭게 생겨난 가치관, 인프라, 사상등이 들어오면서 근대가 시작되었죠.



북한과 한국이 같은 일본의 식민지, 심지어 같은 민족이었는데도 지금 경제 수준이 전혀 다른것처럼

단순히 과거 수백년전에 누구 식민지였다고 잘산다 못산다 말하는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21세기에는 과거의 조선처럼 중세시대로 살아가고 있는 나라들은 없다는거죠



자본주의 맹아론이 더 말이 안되고 단지 애국심에 근거한 학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조선 후기에 영국처럼 산업혁명이 갑자기 일어나서 스스로

근대화가 되었을까요?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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