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이마트 등 노동자 5000여명 조사, 55%가 의자 지급 받지 못해
70% 허리·손목·어깨 '근골격계질환' 겪지만…산재보험은 절반만

창고형 마트 계산대. 계산원 뒤로 카트가 지나다니기 때문에 의자를 놓고 휴식을 취할 공간이 부족하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롯데마트지부
창고형 마트 계산대. 계산원 뒤로 카트가 지나다니기 때문에 의자를 놓고 휴식을 취할 공간이 부족하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롯데마트지부


톱데일리 이서영 기자 = #롯데의 창고형 마트 빅마켓에서 피자 커팅을 하는 최송자(54)씨는 주말이면 몰려드는 손님에 정신이 없다. 5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 씨에게 주어진 의자는 없다. 다리가 너무 아파 잠깐 쉬고 싶을 때면 그릇을 수거한다고 핑계로 화장실을 향한다. 잠시 변기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계산대로 복귀한다.


지난 2009년 마트 계산원들의 휴식 보장을 위해 의자를 지급하도록 했지만 이는 눈에 보이는 불편함을 숨기기 위한 단편적 조치에 불과하다. 의자를 지급하느냐 마느냐로 대책을 논하기엔 마트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훨씬 고된 수준이다.


26일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과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마트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마트 노동자 근골격계질환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개의 대형마트 노동자 5600명에게 설문지를 배포해 5117명이 응답했다. 5000명이 넘는 대규모의 마트노동자의 실태 연구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트 노동자 평균나이는 50.4세로 대부분 고연령층에 속한다. 그나마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던 계산원은 98.2%가 의자를 받았을 뿐, 전체로 보면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10명 중 6명은 휴식을 위한 의자도 없다.


계산원에게 지급된 의자도 형식적이다. 계산원 21.1%는 "앉을 수 있지만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앉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 작업대 밑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이 협소해 쉴 수 없는 점이 휴식을 취하기 부족함을 보여준다.


최근 점포수를 늘리고 있는 창고형 대형 마트 일부는 고객 편의를 이유로 계산대 앞뒤로 카트가 지나다니 게 계산대가 설치돼 있다. 따라서 계산원 의자를 놓을 공간조차 없다.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마트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롯데의 창고형 마트 '빅마켓'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최송자(54)씨가 업무를 통해 얻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롯데마트지부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마트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롯데의 창고형 마트 '빅마켓'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최송자(54)씨가 업무를 통해 얻은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 노동조합 롯데마트지부


창고형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며 목디스크 초기 증상과 팔꿈치 바깥쪽 통증과 염증인 테니스엘보 진단을 받은 최 씨는 "우리는 구조가 앉아서 계산할 수가 없다"며 "카트 2개가 앞뒤로 지나가는 공간에서 영수증을 출력해서 고객한테 줘야하기에 절대 앉아서 계산할 수 없는 환경이다"고 했다.


이마트 성수점 홍현애(54)씨는 "물티슈를 진열하는데, 20kg가량 되는 박스를 주말에는 7~8박스씩 3번씩 옮기고 진열해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저리고 붓는다"고 했다. 노동 강도가 높지만 고객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매장 안쪽 근무 직원은 80%가 의자 없이 일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 규칙 제 80조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춰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자율규정일 뿐이다 보니 잘 지켜지지 않고 하루 평균 6.5시간을 서서 일하는 마트 노동자는 손목, 어깨, 허리 등의 근골격계질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마트 노동자 약 70%가 근골격계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적 있다.


업무를 통해 얻은 근골격계질환으로 마트에서 산업재해보험을 경험한 비율은 37%, 질환 경험자 절반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지 않는 이유는 '증상이 미약해서'(39%)가 가장 컸지만 '내 업무량이 동료에게 넘어가 동료에 대한 미안함'도 24%나 됐다. 이마트 성수점은 4명이서 일하던 파트 2곳을 최근 2명으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한 노동자는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기도 했다.


정준모 마트산업노동조합 교선국장은"사업주가 셀프계산대는 확대해도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며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 자본과 이익보다 노동자 건강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인식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