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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울릉도,독도 거문도 어민들의 삶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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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부 정병훈

2019년 08월 13일

일본이 우리땅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한 게 1905년인데요.

영남대 독도연구소가
그 훨씬 이전부터
거문도 어민들이 대규모 선단을 꾸려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했다는
수 많은 자료들을 찾아냈습니다.

TBC 대구 정병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본이 1905년 독도를 편입하고
실효적 지배 증거라고 내놓는 게
1930년대 강치를 사냥하는 사진들입니다.

영남대 독도연구소가
우리나라는 훨씬 그 이전부터
전라도 지역인 거문도 어민들까지
울릉도와 독도에서 어로활동을 했다는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냈습니다.

안용복이 일본을 항의방문한
1693년 울릉도에서 거문도 어선이 조업했고,
2차 도일 때는 순천의 승려 5명이
동행한 게 일본과 조선의 기록에 나옵니다.

1882년 이규원의 울릉도 감찰일기에도
당시 만난 140명의 조선사람 중
82.1%인 115명이 거문도와 초도를 비롯한
전라도 사람이었습니다.

거문도 지방 어민들이
여름철 20여 척의 선단을 이뤄
울릉도와 독도에서 미역 등을 채취하고
돌아갔다는 기록도 있고,
1890년에는 거문도 사람 오성일이
울릉도 도감에 임명되기까지 합니다.

거문도에 배로 3-4일이면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박지영/독도연구소 연구교수]
"거문도와 초도에 살고있는 주민들이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가서 미역과 전복 그리고 독도에 사는 강치까지 잡아서 다시 거문도로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울릉도 나무로 선박을 건조하고
거문도의 집을 짓는데도 사용했으며
독도에서 잡은 강치의 기름을
에우기름이라고 부르고
호롱불 연료로 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거문도뱃노래에도 울릉도가 등장할 정도입니다.

거문도뱃노래 중에서
"울릉도로 나는 간다. 에헤라 솔비야~"

거문도인 김병순 옹의 기록 중에도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것이 210페이지나 되는 등 1905년 이전 우리 어민들의 활동영역에서
울릉도 독도의 존재를 밝히는 자료는 넘칩니다.

[최재목 영남대 독도연구소장]
"생업에 도움이 된다면 우리 영토 어디든 갈 수 있었다는 것이 답사를 통해 여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독도와 울릉도는 우리 한국인들의 생할문화의 터전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증명됐습니다."

울릉도의 지명인 통구미와 대풍감이
거문도와 관련있고, 독도의 보찰바위 이름도 거북손의 호남 방언에서 유래하는 등
최소한 1800년 이후 울릉도와 독도는
전라도 어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tbc 정병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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