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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김원웅 의원이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왜 자꾸 비판하죠?
비공개 조회수 22,215 작성일2007.06.20

 

 

김원웅 의원이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를 왜 자꾸 비판하죠?

 

이번에 대통령에 나오는 김원웅 의원 있잖아요.

 

독립군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

 

이라고 하면서 많이 나오신던데...

 

저번에 경의선 남북철도 연결식에서는 한복을 입고 나오시기도 하고 하신 분이요.

 

정치인 가운데 한복입고 나오시는 분이 흔치가 않아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더랍니다.

 

 

 

 

근데 박근혜 후보를 왜 자꾸 비난하죠?

 

둘이 무슨 그럴만한 사정이라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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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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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s2****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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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합니다.

김원웅 의원이야 양친부모님이 모두다 독입운동가 출신이시고, 박근혜는 아시다시피 친일 박정희의 딸이잖아요.

200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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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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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3****
고수
한국사, 정당, 사회단체, 정부기관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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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웅의원은 전에 고제정구의원 김홍신 이런분들이랑 신한국당(지금의 한나라당)출신입니다.

신한국당에 입당하게된이유는 오래전에 김대중 전대통령이 대통령선거출마를 목적으로 민주당을 분당시켜서 국민회의 라구하는 신당을 창당합니다.

그때 국민회를에 합류하지않고 남아있던 몇명의 민주당 출신이 목소리를 크게낼수있는방법은 원내에 힘을가진 정당에 들어가는방법외엔 없는것같다 이런판단을하고 신한국당에 입당합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어울릴수가 없는 이민자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바뀌던 시점에 탈당을합니다.

탈당을했던사람들은 김홍신 김원웅 이부영 김부겸 이영춘 이렇게 다섯명이었는데요.

이들을 그당시에는 독수리오형제 그렇게 말했던적도 있습니다.

이 다섯사람은 한나라당의 변신,변화를 발하고 그렇게 할작정으로 입당을했는데 그들은 탈당해서 이민온주제에 입닫고 조용히나 있지 말이많아 그런식으로 항상 압력을넣고 힘을믿었습니다.

그런 힘있는 부류중의 한사람이 박근혜 입니다.

그들의 부류에 의해 강제탈당 했고 지금에 이릅니다.

그런사람들에게 좋은소리를 할수있을까요?그런사람이라면 정치안하지요.성인군자가 시궁창 정치판에 들어갈이유가없잖아요!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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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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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al****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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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항일 독립투사의 후손이 친일파 후손을 비판 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아시다 시피 박정희 대통령의 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만주국으로 가서 일본 앞잡이로 활동했었던 친일파이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바로 친일파의 후손이랍니다.

 

그래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친일파 청산에 비협조적이고 오히려 친일파세력을 옹호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김원웅 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주석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끄시던 중국 중경에서 태어나셨답니다.

 

김원웅 의원의 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활동하시던 분들이십니다.

 

한 마디로 김원웅 의원님은 독립군의 후손이시죠.

 

그래서 일제의 잔재인 국민학교 라는 명칭을 초등학교 로 바꾸시기도 하고 친일파 후손들의 땅찾기를 막기 위한 법률 제정,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 등등을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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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 참가한 김원웅 의원
뉴시스 | 기사입력 2007-04-2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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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 참가한 김원웅 의원

【서울=뉴시스】

25일 오후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758차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유동일기자 eddie@newsis.com

 

 

"김원웅과 박근혜"가 대선 막판에 맞붙는다?


독립군 아들과 친일파 장교의 딸과의 맞붙는 민족대전
범여권 최초 경선출마 선언한 김원웅 '파괴력 연구'
 
 

범여권 대통령 후보군의 한사람인 김원웅 통일 외교 통상위원회 위원장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3선의원인 김원웅 위원장은 지난 3월 7일 범여권 대선후보중에서 처음으로 후보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잠룡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이름 봄 먼저 기지개를 켠 것이다.


 

측근에 따르면 김원웅은 2~3년전부터 당권보다는 대권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맡게된 배경도 결국 평화통일과 외교력에 의해 국가의 미래비전이 창출될 수밖에 없겠다는 나름대로의 계산 이 있었다는 것.

 

민족진영 적자 자리매김


▲김원웅 의원     ⓒ김상문 기자

 

김원웅의 대선 출마 선언문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의 노선의 일단이 배어 나온다. ‘선진평화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대목에서 김구와 김대중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 노선을 이어받아 ‘민족진영’의 적자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원웅이 최근 ‘바보야, 평화가 답이야(It's the Peace, Stupid!!)’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평화대장정에 나선 것도 그같은 선진평화강국‘의 미래구상과 맥이 닿아있다. 

 

김원웅이 어찌보면 케케묵어 보이는 ‘평화’라는 담론을 끄집어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올해 대선의 화두가 무엇으로 결정될 것이냐는 내부 논의 과정에서 김원웅의 최대 장점인 민족문제와 통일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평화담론을 대선 막바지까지 끝가지 밀고 나가자는 전략.

 

올해의 대선 화두가 경제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김원웅 쪽이나 다른 대선 캠프에서도 ‘평화가 경제’라는 주장이 일었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가 ‘평화가 경제’라고 하면 결국 경제에 방점이 찍히고 그렇다면 경제전문가 후보의 경쟁력이라는 논리에 말릴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됐다는 얘기. ‘평화가 답이야’라는 슬로건이 그래서 나왔다.

 

김원웅은 지난 4월 1일 대전 산내 형무소터와 임실 학살지를 방문한데 이어 14일과 15일 연이어 강화 민간인 학살 위령제와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현장을 방문했다. 다른 의원들이  한미 FTA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도 통외통위 위원장으로서 상임위 일정을 전부 소화해내고 주말과 휴일을 활용, 전국을 누비고 있는 것.


 

분단의 고통의 현장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곳에서 이념과 분단의 역사적 진실을 알고 치유함으로써 자랑스럽고 당당한 미래를 후손과 세계에 내놓을 수 있다는 생각.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뿐 아니라 남한 내부의 이념과 정치적 갈등의 근원인 분단문제로 인한 근본적 원인진단과 해결이 먼저라는 것.

 

호응도 높다. 4~5년 전부터 한국전쟁전후 미군과 국군 경찰 등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피해를 배상하자는 법안을 제기하는 등 피해지역주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온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평화대장정을 다니게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오래 전의 법안 마련 노력들이 뒷배경이 되었다.

 

 

부모 모두 독립운동가 출신

 

김원웅 위원장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분단의 고통을 치유하고 역사적 과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시간을 가지기 전에 진실 규명이 먼저 있어야 한다. 진실 규명을 통한 화해가 진정한 미래의 출발점이다”고 말한다.

 

김위원장의 이 같은 역사인식의 밑바탕에는 중학교 1학년 때의 어린 시절의 아픔이 배어 있다. 김원웅 위원장의 부모는 두분 모두 독립군 출신이다. 비밀첩보원출신의 독립군으로 만난 두 분은 김구 선생의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됐고 김원웅은 1944년 임시정부가 있던 사천성 중경에서 태어났다. 독립이 되고 고향 대전으로 돌아왔지만 친일 세력이 득세하는 바람에 어려운 시절이 계속됐다.

 

김원웅은 중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부친의 친구들끼리 밤새도록 술 마시면서 통곡하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아버지세대들의 한탄의 소리는 오래도록 김원웅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과거사 청산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김원웅 부친의 친구분들은 그날 선배가 임종하는 가족들에게 “앞으로 우리가문에서는 다시는 독립 운동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된다. 앞으로 친일 하는 사람, 친미 하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돌아와 술을 마시면서 통곡을 했다는 것.

 

그 말을 들었던 아버지 세대 친구들이 통곡하는 소리를 어린 나이에도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 친일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독립운동가 유공자들을 탄압하던 세태에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가족과 후배들에게 침묵하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셨던 것.

 

그래서 김원웅은 어린 나이였지만 친일세력이 청산되지 않으면,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실을 깨듣는다.

 

김원웅은 노무현 대통령과 나름대로 같은 코드의 길을 살아온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많다. 해방이후 친일파의 득세에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던 독립군 아들로서의 탄압의 과거를 거쳐 이제는 정치와 시대정신을 바꾼 힘있는 정치세력이 된 것이, 여전히 거대한 기득권 세력과 싸워야 하는 것을 정치생명을 걸고 투쟁하는 노무현과 비슷하다.

 

거대 보수언론과 여전히 투쟁하고 있고 과거사법을 만드는데 앞장서면서 보수언론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것도 노무현과 같은 길인 것이다.  

 

고졸로 인권변호사로 자신의 정치브랜드와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시대정신을 만들면서 소수세력으로 정권을 획득했지만 여전히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독립군적 스타일이 닮았다.

 

 

원칙과 소신의 정치 지향

 

김원웅은 1990년 3당 야합으로 생긴 민주자유당으로의 합류를 거부하고 이른바 ‘꼬마 민주당’을 창당하기도 했고, 1996년 총선에서는 ‘야권분열 반대’와 ‘지역주의 극복’을 주창하며 노무현 현 대통령,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유인태·원혜영 열린우리당 의원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하기도 했다. 노무현과 같은 코드의 정치적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김원웅의 정체성이 민족에 방점이 찍히는 것은 어찌 보면 태생적이다. 김구의 중매로 부모 두분이 만나게 된 운명이 그를 정치생명을 걸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1995년 교육법 개정으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일이나 이완용 후손의 ’친일파 재산 찾기 소송‘에 격분해 ‘민족반역자 재산 몰수법’을 추진하는 등 민족 문제에 천착해 온 일 등은 그의 정치의 길의 좌표를 읽는 코드다. 일본에 건너가 있던 북관대첩비를 환수해 북한에 돌려준 일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원웅의 대선 후보로서의 행보에 힘이 실리는 근거가 다름 아닌 지역성. 김원웅 본인은 3김 지역주의 정치의 혜택을 한번도 받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충청권의 중진의원이라는 지역적인 이유가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이해찬 총리와 정운찬 총장이 부각되는 이유도,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지지율이 상승하는 이유도 충청권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15대의 DJP 연합과 16대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이 충청권표를 의식했기 때문인 것은 정설인 것이다.

 

후발 “틈새를 공략하라”

 

정치적 계보가 없고 나름대로 독립군적 정치행보를 해온 김원웅은 정치세력화가 어려운 게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오히려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한 범여권 후보를 결정하도록 돼있는 룰이 김원웅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김원웅은 막판 스퍼트가 강점이다. 다른 후보군들이 오랫동안 캠프를 운영해온 데다 조직과 돈에서 넘쳐나지만 중반레이스쯤 돌 때 되면 피로증후군을 내게되고 이 때쯤 마지막 힘을 발휘하겠다는 복안이다.

 

시민사회세력과의 연대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일운동과 문화재환수 등을 통해 민족진영과 통일운동진영, 개혁시민운동진영과의 유대감도 탄탄하다. 개혁당원들 중의 일부가 아직도 김원웅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어 힘을 얻을 경우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정치 컨설팅사 관계자는 “과거 이회창 후보가 충청권 출신이라는 지역적 장점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득표로는 연결되지 않았다”며 “정운찬 전 총장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 연고가 없어 충청주민들이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다. 지지율이 오르던 정 전총장의 3불발언이 중산층이하의 서민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것도 정운찬 충청권 후보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충청출신의 이해찬 전 총리가 남북미중의 4자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잠룡으로서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고 유시민, 김혁규 김두관 한명숙 전 총리등 친노그룹도 잠재적 경쟁자로 등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천정배 정동영 김근태 등의 후보군도 범여권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경쟁 대상이다.

 

외곽에서는 손학규 정운찬 문국현 박원순 등도 포진하고 있다. 그러나 김원웅 위원장이 이들을 물리치고 나면 오히려 경쟁은 쉬워질 수 있을 것으로 캠프는 내다보고 있다. 이명박의 낙마가 예상되면 박근혜와 한판 겨뤄볼 만하다는 게 캠프의 판단이다.

 

친일파 장교의 딸과 민족 독립군 진영의 아들이 맞붙는 민족대전이 결국 과거의 역사청산을 넘어 미래를 가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로 자리매김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진영대 진영싸움이 명확해지고 미래와의 싸움이냐 과거와의 싸움이냐를 누가 더 정확히 규정하느냐에 승패가 갈린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미래 구상 정책연구 몰두

 

김위원장이 지난 연말부터 구체적 대선 일정에 들어간 상태에서 시급한 것은 정책과 비전을 위한 비전팀을 꾸리는 것. 김위원장은 최근 정책비전팀의 일환으로 다물운동본부를 조직하고 있다.

 

정책비전을 창출할 전문가 그룹을 영입할 생각도 병행하고 있다. 김위원장은 최근 15년정도의 국가미래 성장동력과 평화안정을 추구할 국가기구로 국가미래전략청이나 미래전략위원회를 구상하고 있다. 장기적 비전과 철학을 담고 정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구포럼형태의 다물운동본부와 다물정책연구소도 창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련기사:시작--><!--//관련기사:끝-->

2007.07.12.

  • 출처

    검색해서 짜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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