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기획 이진숙 대표 “일제 경찰 출신 독립운동가 황옥을 알리게 돼 보람”

글·사진 이명희 기자
이진숙 영화사 하얼빈 대표는 “실화를 영화화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건과 공간”이라며 “앞으로 알려지지 않은 여성 항일운동가들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숙 영화사 하얼빈 대표는 “실화를 영화화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건과 공간”이라며 “앞으로 알려지지 않은 여성 항일운동가들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채산(이병헌)은 의열단을 조직한 약산 김원봉에서 ‘산’을, 이정출(송강호)은 바를 ‘정’(正) 나갈 ‘출’(出) 즉, ‘바름이 나갔다 돌아온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입니다. 연계순(한지민)은 기녀 출신으로 독립군 자금을 대줬던 현계옥의 ‘계’에 동정심이 가는 ‘순’을 붙여서 지었지요.”

지난 7일 서울 삼청동 인근에서 만난 영화 <밀정>의 기획자이자 공동제작자인 영화사 하얼빈의 이진숙 대표(48)는 “<밀정>의 시나리오를 쓴 이지민 작가가 수년 전부터 성명학에 빠져 공부를 했던 터라 작명에 공을 들였다”면서 “실명 대신 가명을 쓴 게 오히려 관객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영화 속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공유)의 10년 지기 조회령(신성록)은 원래 구회령이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이름을 따서 구회령으로 정했는데, 어느날 할머니 한 분이 저를 만나러 오셨어요. 밀정으로 오인 받아서 만주에서 돌아가신 자신의 할아버지의 죽음을 규명하고 계신 분인데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신 거예요. 교직에서 은퇴한 후 지금은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고 계신 그분의 할아버님 성이 구씨였지요. 그래서 조회령으로 바꿨습니다.”

지난 주말 관객수 745만명을 돌파한 영화 <밀정>은 일제강점기 경찰 신분으로 의열단에 가담했던 실존 인물 ‘황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황옥은 상업영화 두 편을 연거푸 실패하면서 영화를 포기했던 이 대표를 다시 영화로 끌어들였다.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1994년이다. 당시 프랜차이즈 비디오 대여점 ‘영화마을’을 운영하면서 본사 기획업무를 병행했던 그는 비디오 대여점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영화마을 가맹점 주인들을 주주로 참여시킨 영화사를 차렸다.

“비디오용으로 처음 제작한 영화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였는데 대박이 난 거예요. 그 후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여섯개의 시선> 등을 프로듀싱했습니다. 처음 제작한 영화가 잘되자 ‘영화가 어려운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업영화도 제작했지요.”

하지만 이 대표는 2005년 제작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 이어 <요가학원>이 흥행참패는 물론 평단의 호된 비판을 받으면서 영화를 접었다. ‘실패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2014년 다시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중국으로 떠났다. 그는 “중국의 공안, 북한의 보위부, 한국의 국정원 등이 공존하는 중국 단둥(丹東)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며 “단둥을 수십차례 드나들면서 <밀정>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의열단에 관한 자료조사를 하던 중 1923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알게 됐지요. 황옥이 밀정이었는지, 독립운동가였는지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코드로 읽혔습니다.”

이 대표는 “의열단원이었던 유자명 선생은 ‘김원봉이 황옥은 의열단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했고,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에서는 ‘김원봉이 황옥은 일제 경찰이 맞다’고 했다”면서 “사학자 황용건씨의 ‘황옥의 양면성 연구’라는 논문을 읽고 ‘황옥이 의열단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영화 기획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막상 영화를 시작하려니 막막했던 그는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자인 이지민 작가를 끌어들였다. “이 작가에게 ‘돈은 없는데 나 믿고 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단번에 하겠다고 하더군요. 원래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해가 있는 작가여서 시나리오 초고가 6개월 만에 완성됐지요.” 그는 “영화사 하얼빈을 차리고 공동제작자를 찾아 나섰고, 시나리오를 본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의 최재원 대표가 하루 만에 제작 결정을 내리면서 영화 <밀정>이 세상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영화 <암살>이 김원봉을, <밀정>이 황옥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서 “황옥의 집안에 독립운동가가 6명이나 배출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황옥의 직계 손자로 민주화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서울대 82학번 황정하씨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요즘 재일조선인들의 국가 없는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할매꽃2>를 촬영 중인 이 대표는 “틈나는 대로 항일운동을 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의 발자취를 좇고 있다”면서 “약산은 1923년의 <밀정>과 1933년의 <암살> 이후에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궁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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