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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장화,홍련보신분들 꼭좀.....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8,714 작성일2003.06.18
장화,홍련 연화를 어제보았는데여

이해가 잘안되네여

언니가 미쳐버려서 환상으로 동생이 보인건지.....

암튼 칭구랑 이케저케 얘기해봤느데 도통 모르겠어여

이해가 잘가신분들 설명좀......

그리고 그 목이 비틀어진 여자는 누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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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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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유니아빠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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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영화 대부분 언니(수미)의 허구로 진행됩니다...

동생을 지켜주지못한 죄책감에 정신병원에 갈지경이되는거죠....

다른분의 엄청난 영화평을 올려드리죠...한번 읽어보시면 도움될겁니다..

^^



출처 : www.cyworld.com/jayhyoon 윤준한 님의 장화,홍련 리뷰입니다.


영화 장화.홍련을 본 후에 이상한 버릇이 한 가지 생기게 되었다. 원래 사람을 심하게 신뢰한다거나 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을 본 이후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고 할 정도로 모든 것을 불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불신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을 단순히 믿지 못하겠다. 저 사람은 나를 속일지도 모른다. 등등의 것과는 다른 불신이다. 과연 내 눈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을 믿어야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과연 내 앞에 존재하는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따위인 것 같다. 사실은 그런 '따위'라고는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주는가? 아쉽게도 그런 진지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내게 생긴 이상한 버릇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이 영화가 불편한 것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영화를 보는 중간에 생기던 모든 의문들이 열쇠가 들어맞아 문이 열리듯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의 그 장면은? 혹은 더 그 전의 그 장면은? 그렇다면 맨 앞의 장면은?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이런 개인적인 불편함으로 인해 영화를 폄하한다거나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장화,홍련"은 호러물에 익숙치 않은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잘 만들어낸 호러영화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폄하를 하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고 이 영화에 대해 조금 오버하는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아직도 나 자신은 영화를 보고서 다른 부분들이 아닌 줄거리를 퍼즐처럼 짜맞추는 데 머리를 써야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 조금 과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지금 영화를 조각퍼즐처럼 맞추느라 그 외에 평소 영화를 볼 때 주목했던 부분들을 아예 저 밑바닥으로 던져버린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후의 이야기들도 "장화,홍련"이라는 퍼즐의 조각들을 제대로 배열하는 데 거의 대부분을 할애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이 많은 사람들이 그리도 저주스럽게 여기는 스포일러로 가득차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네21의 기사처럼 이 영화를 접하게 될 때 미리 줄거리를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 변할 상황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말 자체가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쏟아질 개인적인 비난들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히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핵심적인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데 아주 치명적인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데 대해 양해를 얻으려는 것이다.

1. "장화,홍련"은 공간이 주는 공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많은 영화 관련 미디어들을 통해 다들 알고 있었겠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과연 그 스산한 느낌의 집에서 어떤 일이 있어났었나?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것이다. "과연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

영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넓은 방에서 시작을 한다. 관객은 잠시 후에 그 곳이 정신과 의사의 진료실이라는 것을 알게된다.(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이다. 세상 어느 정신과 병원도 그런 구조의 진료실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다. 물론 공포 영화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에는 정말 훌륭한 실내 구조이지만,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정신과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 넓디 넓은 진료실에 수미와 의사는 전체 공간을 아주 작게 분할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구석에 가까운 자리만을 사용한다. 여기서 아주 작게 분할한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 커다란 집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인 정말 작은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넓은 진료실의 일부에 불과한 작은 책상 앞에서 의사는 수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게 말해주겠니?"

서울에서 오랜 병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수미와 수연 자매. 그들을 맞이하는 건 언제나 그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자애로운 엄마가 아니라, 너무나 과장되게 그들을 반기는 푼수끼 많아 보이는 새엄마이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했듯 새엄마를 대하는 자매의 태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그리고 자매가 온 뒤로 이상하리 만치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 기이한 일들 중 첫번째가 수미의 벽장에 걸려있는 옷들이다. 단 두 종류의 옷이 수십 벌 걸려있다. 이 것은 아마도 감독이 관객들에게 주는 노골적인 암시일 것이라 생각된다. "옷장"을 주목하라는...

카메라는 영화의 90퍼센트 가까운 부분을 집 안의 풍경들을 담는다. 첫 장면과 수미와 수연이 도착하는 장면 그리고 수미와 수연 자매가 집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선착장으로 놀러가는 장면과 수미가 죽은 엄마의 물건들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 선규와 선규의 처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나오는 병원 장면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미가 집을 뛰쳐 나가는 장면이 배경이 집이 아닌 장면의 전부이다. 결국 영화는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계속적으로 관객에게 궁금증을 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는 상당히 심하게 성공을 한다. 결국 관객의 상상력을 집이라는 공간으로 한정시킴으로 해서 관객에게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 시키고 있으며 집이라는 공간에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킴으로 인해서 집이 아닌 장소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하여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반전을 더 극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자매의 아버지인 무현은 자신의 동생인 수연을 수연의 방 옷장에 가둔 계모인 은주의 악행을 자신에게 고발하려 하는 수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제 더 이상 옷장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니..." 그렇다. 김지운 감독은 이 대사를 통해 정말 손바닥만한 장소인 옷장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을 옷장에 집중시키며 그러는 동안 김지운 감독은 옷장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 척 하면서 자신은 또 다른 그 것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반전을 노린다. 옷장 안에 대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기가 결국 중요한 것은 옷장안이 문제가 아니라, 옷장 자체가 문제였음을 보여줄 준비를 찬찬히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옷장 안이건 옷장에 의한 어떤 것이건 간에 스산한 집이라는 공간을 설정해 놓은 것도 모자라 감독은 그 집에서도 가장 작다고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과 공포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수미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건 혹은 앞으로 알아야할 사실이건 간에 이 옷장에 대한 공포를 영화 내내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2. '원죄의식' 그 끊이지 않는 압박

영화 "장화,홍련"의 모티브가 되는 장화,홍련 설화의 전체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잠시 장화,홍련 설화의 줄거리를 요약해보도록 하자.

"평안도 철산 지방에 배무룡이란 좌수가 있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없다가 부인이 늦게서야 딸 형제를 낳았다. 장화와 홍련 자매는 자랄수록 재모가 뛰어나고 효행이 특출했다. 그러나 부인인 장씨는 병을 얻어 일찍 죽게 된다.
배좌수는 부득이 허씨를 후실로 맞는다. 허씨는 추할 뿐 아니라 심성이 사나웠다. 허씨는 자기의 소생이 생긴 뒤 전실의 딸들을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장화가 정혼을 함에 혼수를 많이 준비하라는 좌수의 말에 재물이 축날 것이 아까워 장화를 죽이기로 흉계를 꾸민다. 허씨는 큰 쥐를 잡아죽여 껍질을 벗긴 후 장화의 이불에 넣어, 장화가 부정을 저질러 낙태했다고 속여 아들 장쇠로 하여금 연못 속에 빠뜨려 죽인다. 그 순간 범이 나타나 장쇠의 두 귀와 한 팔과 한 다리를 잘라가 장쇠는 병신이 된다. 이에 계모 허씨는 홍련까지 학대하고 죽으려고 한다. 홍련은 꿈에 장화가 나타 현몽하여 억울하게 죽었음을 알려 그 사실을 알았다. 견디다 못한 홍련도 장화가 죽은 못을 찾아가 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그로부터 그 못에서는 주야로 곡성이 들렸으며, 원사한 두 자매가 원정을 호소하려고 부사에게 가면 부사는 놀라서 죽었다. 이런 변고로 그곳에 부사로 오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정동우란 사람이 자원하여 부사로 부임하였다. 도임 초야에 장화와 홍련의 원귀가 나타나 원사하게 된 사유를 소상하게 아뢰었다. 부사는 계모 허씨를 철저히 문초하여 죄상을 밝힌 다음 처형하였다. 그리고 못에 가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를 세워 혼령을 위로하였다. 이후 부사는 승직하였다.
한편 배좌수는 다시 부인을 맞아 죽은 두 딸의 현신인 쌍둥이를 낳았다. 자매는 자라서 평양의 거부 이연호의 아들 쌍둥이 윤필, 윤석과 결혼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다."

영화 "장화,홍련"은 사실상 그 이전에 다섯 편이나 만들어졌다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영화가 설화와 일치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설화의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 것은 자매 중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인해 더 큰 불행을 가져 오게 되었다는 점을 정확히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성립한다면, 수미와 수연중 누군가는 벌써 희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것이 계모인 은주의 짓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행복한 일일 것이다. 어설픈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함이라면 "계모형(繼母型) 가정비극" 이상의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매중 한 사람의 희생에 두 사람이 얽혀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얽혀있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냥 밝혀두는 편이 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훨씬 편할 것 같다. 이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자매중 동생인 수연은 죽어있는 상태였다. 처음엔 그냥 공간을 소재로한 그리고 가족의 잔혹극일 것이라고만 생각하던 관객은 영화가 삼분의 이쯤 진행된 시점에서 아버지 무현의 입을 통하여 수연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나서는 어떤 방식으로 수연이 죽었을 것인가?에 대해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이건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계모와 전처의 자식이라는 도식적인 비극의 구조에 의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두 사람 다 수연의 죽음과 관계가 있으며 동시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양방향으로의 서로간의 동질화라는 과정이 진행되게 되는 것이다. 이 동질화 과정을 양방향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는 사실상 수미가 은주를 동일화하는 측면이 훨씬 더 강하다.-물론 이 영화에서 수미가 자신을 은주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장화와 홍련의 설화에서 언니를 지키지 못한 동생이 좌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듯이, 동생을 지키지 못한 수미가 역시 수연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계모 은주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과정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과 같은 자책과 자학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영화 전반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수미의 계모에 대한 동일화라면 결국 이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모든 기묘한 이야기들과 텍스트의 난해함 역시 수미의 원죄의식에서 비롯된 자학과 자책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결국 이 꽤나 잘 만들어진 공포 영화는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고 그런 공포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가며 인간이 파괴되어가는 가를 그린 것이 아니라 죄의식, 더 나아가서는 원죄의식이 한 가족을 어떻게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과연 은주는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이 부분이 영화에 있어서 가장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인 것은 틀림이 없다. 여기서 이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영화에 나오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가 될만한 대사와 상황들을 열거해보기로 한다.

1) "너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직 다 안 나았구나?"라고 하는 은주의 대사.

2) "수연이는 이미 죽었잖아"

3) "수미야 너 다시는 장롱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잖아...."

4) 수미와 수연과 은주의 생리가 시작하는 날이 모두 같은 점

5) 선규 내외를 식사에 초대하고 혼자서 분위기 업되어 떠드는 은주, 그러나 은주가 말했던 모든 어린 시절의 기억들에 대해 전부 부정하는 선규

6) 수미와 수연이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 은주와 같은 침대에서 자려다가 자신의 서재로 들어와 잠이드는 무현

7) 무현의 속옷을 서로 챙기는 신경전을 벌이는 은주와 수미

그 외에 몇 장면들이 상당히 중요한 암시를 하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일단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처음부터 그 집에 은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미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이는 은주는 자신과 은주를 동일시하는 수미의 환영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연에 대한 은주의 가혹행위들은 어떤 방식으로 설명되어야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당연히 이 지점에서 "장화,홍련"이라는 영화의 균열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영화의 시작 80분과 95분이 되면서 주어지는 두 가지의 반전들이 오히려 이 영화를 결정적으로 불편한 영화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고딕 호러 무비를 표방하고 영화의 세트와 각종 장치들에 엄청난 투자와 디테일한 묘사에 힘을 쏟은 것이 너무나도 확연히 보여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간-계모와 수미-의 갈등에서 비춰지는 이미지의 전달에 너무나도 큰 성공을 보여줬던 이 영화가 반전을 제시하면서 갑자기 힘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보여주는 전에 그 집에서 일어났던 그 무시무시할줄 알았던 그 사건이 하나씩 보여지는 과정의 무덤덤함은 도를 지나쳐 과연 이 영화가 공포영화가 맞았나?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줄 알았던 그 사건들에 대해 그냥 그저 "그 땐 그랬지"정도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 심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관객도 상당수에 이르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불쾌함은 반전이 일어나고 그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밝혀지면서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리는 그 나약한 스토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4. 그 외의 문제점(들)

영화를 보게 되면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이지만, 이 영화는 결국은 하나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암투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병들고 아무런 힘도 없는 수미와 수연의 생모와 은주의 관계가 그렇고 그리고 은주와 수미와 수연 자매의 관계가 그렇다. 이 네 명의 여자들과 그리고 비극의 현장을 경험했던 은주의 동생인 선규의 처 이 사람들의 눈에만 귀신이 나타나고 온갖 기괴한 현상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모두와 동시에 가족이라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매의 아버지인 무현만이 집안의 모든 공포와 기괴한 일로부터 홀로 냉철할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바로 냉철한 듯 보이지만 우유부단한 자매의 아버지 무현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 병약한 아내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집에 직장 동료인 은주를 들이는 것이 바로 무현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도 그리고 그에게 공포스럽거나 기괴한 일도 생기질 않는다. 사실은 이 영화를 가장 불쾌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바로 이 것이었다. 이런 측면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요 근래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의 역할 내지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어있거나 사실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분히 역설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들이다. 하지만, 이 여자들이 한 남자를 매개로 서로 물고 뜯고 난리를 치는 동안 모든 원인을 제공한 아버지(남자)는 뒷짐을 지고 자신의 무기력함에 기반한 방관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여성들이 지나치게 설치게 되면 집엔 결국 비극만이 초래된다는 것을 보여주려한 것이 아니라 할 지라도 완성된 영화는 그런 측면을 떠올릴 수 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누군가 이야기했듯, 올 한국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인의 추억"과 맞장을 뜰만한 영화일 것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영화의 힘을 앗아가버리는 그 두 번의 반전은 이 영화가 결코 "살인의 추억"을 능가할 상업영화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200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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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목이 비틀어져서 공중에 떠다니는 여자는 수연 수미의 친엄마입니다

후반에 나오죠 친엄마가 비관해서 장롱에 목을 메달고 자살을 하죠

그걸 수연이가 보고 오열하다가 장롱이 넘어져서 수연이도 죽고맙니다

수연이는 그때 언니 도와줘 하고 외치죠

그때 다른쪽에서 수미와 새엄마가될사람이랑 다툼이 생기죠

수미가 자신에 일에 신경끄라고 새엄마에게 말합니다

그에 격분한 새엄마는 수연이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미 말대로 그들의일에

신경을끄죠 그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일에 대해서 반드시 후회할거라고..

암튼 그래서 수연과 친엄마는 죽죠

그걸 알게된 수미는 자신때문에 수연이 죽었다는걸 알고 정신이상이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수연이 자기옆에있다고 착각하게되는거죠

다중인격이라 할까요 없는 수연을 자신이 만들어 내는거죠

영화에서 보여준거는 수연의 정신에 보이는걸 보여준거죠

한마디로 반전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장화횽련 글쎄요 그다지 추천할만한 영화는 아니더군요

200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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