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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리나라의 특산물과 전통산업
삼호냉난방 조회수 204,121 작성일2008.04.28
우리나라의 특산물과 전통산업에 대란 것 좀 담변해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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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특산물

 

인천,경기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강화군화문석, 화방석, 꽃삼합
 
옹진군(북도)김, 굴, 포도
 
         (송림)농어, 굴
 
         (백령)홍어, 까나리액젖, 전복, 해삼, 농어
 
         (대청)홍어, 농어, 꽃게, 흑염소
 
         (덕적)굴, 꽃게, 버섯, 더덕
 
         (자월)굴, 꽃게, 포도
 
         (영흥)바지락, 고추, 포도, 꽃게
 
가평군쌀, 사과, 배, 포도, 잣, 느타리버서, 표고버섯, 두릅, 고로쇠 수액, 옻한우, 옻돼지
 
고양시쌀, 선인장
 
과천시화훼 단지가조성되어 있어, 꽃재배가 이루어지며 축산업도 많이 행해진다.
 
군포시쌀, 닭, 멸치, 잣, 꿀, 잡곡, 마늘, 고추, 고구마, 더덕, ?감, 배, 사과, 메론
 
김포시쌀, 찹쌀보리, 포도, 배, 복숭아, 느타리버섯, 딸기, 오이, 토마토, 상추, 쌈채소, 부추, 화훼, 시설무, 배추
 
남양주시나전칠기
 
동두천시동양버섯, 호접란, 상추, 돼지, 시클라멘
 
부천시복숭아, 포도 등의 과수 및채소, 화훼 재배
 
성남시사과, 포도 등의과일, 한우, 젖소, 돼지, 닭 등
 
시흥시포도, 미나리, 쌀, 상추, 토마토, 오이, 쑥갓, 화훼
 
수원시불휘, 수원갈비
 
안성시안성 유기, 안성마춤 포도, 안성마춤 쌀, 안성마춤 인삼, 안성마춤 배, 안성마춤 한우
 
양주시회암솔잎부추, 백석부추, 한 바이오 임꺽정 쌀, 양주 배
 
양평군강상김치, 강상 병산리 쌀, 강상오이, 강상 팽이, 강상 표고, 강하 동충하초, 강하 부추, 강하 오메쌀, 강하 표고, 게군 배, 개군 신령, 개군 오리쌀, 개군 한우, 서종 꿀, 서종 달뫼골, 서종 산더덕, 서종 잣, 서종표고, 서종 한우, 양서 고추, 양서 느타리, 양서 배포도, 양평 상추, 양평한과, 양평 해오름, 옥천 느타리, 옥천분재, 옥천 영지, 용문 수진원, 용문 광어원, 용문 장골식품, 용문산 은행, 용문 풀향기나라, 용문양조장, 용문 푸른작목반, 단월 소리산, 단월 장승, 단월 가마솥 칡청, 양동 계정씀바귀, 양동 부추, 양동 거파니고추, 청운특산품토종꿀, 청운과수, 청운 수박, 양평임산업, 지제 수곡 느타리, 지제 옥현득화, 청운둥글래
 
여주군도자기, 여주쌀, 고구마, 땅콩, 금싸라기참외, 표고버섯, 여주배
 
연천군연천율무, 전통메주, 토종벌꿀, 양봉, 산김치, 연천쌀, 연천병배, 병포도, 중면서리태, 연천만두, 연천밤호박, O2 오이, 막걸리, 석공예, 인삼, 버섯, 오이, 참기름
 
오산시유신쥬얼리, 이화다이아몬드
 
용인시버섯, 쌀, 수산, 화훼, 축산, 체험농장, 과수, 채소, 가공식품
 
이천시도자기, 이천쌀, 게걸무, 산수유
 
의왕시우렁각시쌀, 월암부추, 청계산 벌꿀, 의왕버섯, 의왕청정채소
 
의정부시송산배, 떡갈비, 의정부찌게
 
파주시쌀, 잡곡, 청과류, 인삼, 홍삼, 양봉제품, 장류제품, 임진강참개, 만수어즙, 축산물, 화훼류, 건강식품
 
평택시쌀, 배, 화훼, 오이, 애호박, 붕어액즙, 열대어, 자라
 
포천시포천막걸리
 
하남시하남상추, 하남부추, 화훼
 
화성시꿀참외, 느타리버섯, 한과, 허브, 알타리무, 한우고기, 육계닭, 계란, 화성참굴, 화성마른김, 화성바지락, 화성불낙지
 


 

강원도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춘천시옥가공제품, 춘천잣, 상황버섯, 아가리쿠스버섯, 동충하초
강릉시초당두부, 곶감, 오징어, 황태, 토종꿀
원주시누에가루, 문막쌀, 원주버섯, 정지뜰 고추장, 조염밤고구마, 치악산배, 치악산복숭아, 치악산오곡밥, 치악산콘송이버섯, 치악산황골엿, 황둔찐빵
속초시여름의오징어와겨울의 명태, 그밖에 가리.양미리.도루묵.미역.꽁치.멸치 등
동해시동해다시마, 오징어, 명란, 창란젓갈, 동해버섯, 동해포도, 홍화씨, 벌꿀, 기념품
삼척시장뇌, 환선벌꿀, 돌미역, 왕마늘, 삼베, 자주감자, 오곡영양쌀, 고원포도, 가시오가피, 산양유
태백시스릭 화장품, 감자식초, 인진쑥, 느타리버섯, 김치, 산나물, 약초음료
고성군명태, 오징어, 꽁치, 미역, 치커리
양구군쌀, 콩, 팥, 제분, 기름, 가공식품, 건강식품, 조롱박공예, 방짜공예
양양군양양한우, 연어, 낙산배, 국화, 백합, 송이버섯, 영지버섯, 장뇌, 표고버섯, 벼, 한과, 가공식품
영월군인진쑥, 청결고추가루, 고추장, 영월참기름, 영월더덕, 청결미, 영월사과, 그린채소, 잡곡, 꿀, 칡국수, 버섯, 묵, 한우, 메주, 생광석, 목공예품, 영월칡술, 칡논말, 참나무백탄, 전통장류
인제군송이, 인진쑥, 치커리, 황태, 목공예, 석공예
정선군황기, 쥐눈이콩장류, 전통토종메주, 생열귀제품, 냉동찰옥수수, 석공예품, 정선아라리자연향, 장뇌, 토종꿀
철원군철원 오대쌀, 삼지구입초, 현무암 공예품, 동동주, 철원풍미육, 철원청정육
평창군감자술, 고랭지김치, 느타리버섯, 대관령감자, 대관령황태, 두메산골토종잡곡, 맥향, 루티나, 메주, 장, 부침가루, 국수, 산더덕, 산머루, 오대산화훼, 옥수수엿, 찰옥수수, 찰토마토, 평창고랭지양파, 평창태양초고추, 평창한우, 해피 700고랭지약초, 해피 700콘, 허브, 가시오가피, 펴창송이, 된장, 고추장, 차콜과립, 선비의향, 갑순이김치, 시골집 김치
홍천군백삼, 인삼야채죽, 옥선주, 산양유, 옥수수찐빵, 장류, 홍천강 기름
화천군잣, 밤, 버섯, 약초
횡성군횡성한우, 횡성더덕, 안흥찐빵, 쌀, 포도, 복수박, 참기름, 들기름, 건고추, 감자, 죽, 선식, 솔입신송액기스, 옹기독 전통장류, 생식, 토마토, 양송이, 하향주, 꿀, 더덕란, 태극오이


 

대전,충남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대전시유성배, 대전포도, 쌀, 버섯 및 약용작물, 화훼, 과수, 채소, 쌀, 특작
금산군인삼, 약초, 농산품, 공산품
계룡시계룡산 물엿, 치킨양념소스, 팽이버섯, 기타, 바둑판, 음료
공주시쌀, 배, 사과, 딸기, 포도, 오이, 수박, 방울토마토, 풋고추, 청경채류, 밤, 표고/느타리 버섯, 화훼, 메주, 백일주, 자기, 누에가루
논산시논산딸기, 강경맛갈젓, 황산벌특미, 찹쌀보리, 연산대추, 명품고구마, 사잔추천 상품, 사과
당진군꽈리풋고추, 느타리버섯, 쪽파, 오이, 방울토마토, 화훼, 당진사과, 당진배, 포도, 딸기, 달래, 감자, 표고버섯, 육묘
부여군팽이버섯, 콩나물, 미니장미, 무, 배추, 양송이, 아가리쿠스버섯, 가지, 딸기, 한우, 흑염소, 돼지, 닭, 알, 백마강수박, 가공식품, 공예품, 표고버섯, 밤, 땅두릅, 취나물
보령시머드, 남포벼루, 웅천석재, 쌀, 포도, 토마토, 양송이버섯, 표고버섯, 땅두릅, 딸기, 김치, 사과, 배, 산채류, 서양란, 고내미 전통장, 은행 한과, 버섯, 한우, 은행, 토종닭, 동충하초, 전복, 까나리액젓, 꽃게, 쭈꾸미, 키조개, 천북 굴, 대하 맛김
서천군한산세모시, 한산소곡주, 자하젓, 공작선, 도토리묵, 갈꽃비, 서천쌀, 꽃새우, 죽염장, 서천단감, 까나리액젓, 서천김, 꽃게장, 아가리쿠스버섯
연기군복숭아, 배, 포도, 오이, 버섯, 까투리네
예산군예산사과, 황금쌀, 사과쨈, 통조림, 한과, 꽈리고추, 팽이버섯, 쪽파, 토마토, 오이, 수박, 예산전통옹기, 삽다리더덕, 느타리버섯, 예산애호박
천안시거봉포도, 들깨, 선인장, 수신메론, 율무, 개구리참외, 청풍명월, 신고배, 오이, 참께, 느타리버섯, 한우, 달걀, 돼지, 광덕표고버섯, 두릅, 영지버섯, 표고버섯, 밤, 호두
청양군구기자, 고추, 방울토마토, 멜론, 참게,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밤, 취나물, 사과, 난, 오이, 배
태안군육쪽마늘, 안면도 고추, 느타리 버섯, 까나리 액젖, 해선 김, 송화소금, 해옥
홍성군울토마토, 달팽이 가공식품, 사슴/염소중탕, 토속된장/간장, 한우/돼지고기, 버섯/더덕, 청정계란, 사과/배, 관천토굴새우젓, 광천재래김, 오이, 꽈리고추/쪽파, 딸기, 난, 전통옹기, 당면/냉면, 대하, 쌀, 복수박, 굴


 

충청북도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단양군마늘, 고추, 사과, 수박, 약대추, 약초, 느타리버섯, 영지버섯, 산채취나물, 토종꿀, 오곡밥, 감자, 소백산신선주, 방곡도자기, 단양자석벼루, 공예, 소백산약초롱
청주시뻘국산 고구마, 오근장 감자, 청주 양반진미, 직지 쌀, 대파, 쪽파, 부추, 엽채류, 방울토마토, 딸기, 청정오이, 화훼, 포도, 배, 복숭아, 청주사과, 느타리버섯, 청주표고버섯, 상황버섯
충주시충주사과, 밤, 복숭아, 채소, 축??수산, 송이버섯, 충주쌀, 맥반석
제천시황기, 당귀, 제천약초, 홍화, 상황버섯, 사과, 복숭아, 제천얼음딸기, 곡류, 건고추, 제천생강
청원군배, 딸기, 방울토마토, 치커리, 땅콩, 영지버섯, 옻나무
보은군황금곳간 쌀, 사직 밤 고구마, 화인골 곶감, 방울토마토, 느타리버섯, 속리산 고추, 속리산벌꿀, 한우, 달걀, 영지버섯, 더덕, 가공품
옥천군포도, 묘목, 복숭아, 느타리, 영지, 부추, 마, 인삼, 포도원액
영동군감, 곶감, 표고, 호두, 밤, 마늘 포도, 배, 사과, 메론, 수박, 벌꿀, 복숭아, 인삼, 감식초, 포도주, 오징어, 채소, 가공식품, 고로쇠수액
음성군음성청결고추, 사과, 된장, 배, 복숭아, 수박, 쌀, 참외, 포도
진천군쌀, 장미, 관상어, 거봉포도, 사과, 배, 덕산꿀수박, 고추, 오이, 호박, 사슴, 느타리버섯, 작두콩, 천마, 두릅, 황토우렁이, 가공식품, 공예품
증평군새로미쌀, 인삼, 질흙소담미, 한과, 대명한차, 홍삼 청국장분말
괴산군고추, 인삼, 고냉지배추, 괴산꺽정이, 올갱이, 쌍곡송이버섯




<!-- 특산물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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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군산시가물치, 나물, 고추장, 새우, 냉동대하, 멸치액젓, 된장, 고추장, 게장, 장아찌, 찹쌀, 보리쌀
고창군복분자주, 고창수박, 풍천장어, 작설차, 무우, 땅콩, 고창배, 재래식 김, 황토쌀, 해풍고추, 참기름, 염전, 고수자기, 나침반, 세곡도예, 선운자기, 동곡자기, 예림공방, 고창자수
무주군포도, 사과, 고추, 느타리버섯, 마늘, 무주배, 복숭아, 토마토, 복수박, 무 ? 배추, 머루주, 호두, 오미자, 찰옥수수, 표고버섯, 한과, 쌀, 벌꿀, 미숫가루, 한약재
부안군쌀, 젓갈, 김, 죽염, 천일염, 쌀, 새우, 된장, 누에, 도자기, 버섯, 감자, 멸치, 녹용
장수군사과, 배, 태양초고추, 인삼, 오미자, 가시오가피, 고사리, 표고/느타리 버섯, 취나물/참나물, 화훼, 애기시래기, 무우말랭이, 고로쇠약수, 한우, 돼지, 흑보, 꿀, 고추장, 공예
전주시합죽선, 이강주
정읍시쌀, 사과, 배, 수박, 감참외, 포도, 백합, 느타리버섯, 곶감, 잡곡,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아가리쿠스, 한우, 공예품
임실군쌀, 우리밀, 고추, 포도, 배, 복숭아, 오이, 토마토, 목기류, 석기류, 한지류 땅두릅, 느타리버섯, 장미, 생약, 양란, 표고버섯, 삼베, 동충하초, 밤, 한우, 돼지, 빙어, 잉어, 붕어, 자라, 쏘가리, 한봉
김제시신풍장고, 팔봉도예, 금산필방, 송순주, 금산목우촌, 심포백합, 금산감식초, 팽이버섯, 화훼, 파프리카, 김제배, 포도, 광활감자, 광활딸기, 용지양계단지
진안군마늘, 고추, 더덕, 토종흑염소, 진안돼지,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씨없는 곶감, 진안배, 마이산표고버섯, 뿌리공예, 손내옹기, 도자기, 가공식품
순창군순창고추장, 한과, 오이, 매실, 느타리버섯, 감식초, 배, 동외정과, 한봉꿀, 김치, 단호박, 고추, 순창쌀, 상추, 딸기, 밤, 우렁눈쌀, 민물참게장, 토하젓, 복분자술, 포도, 동계오석가공, 순찬전통삼베, 순창전통자수
남원시쌀, 배, 딸기, 사과, 포도, 복숭아, 버섯, 감자,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화훼, 상추, 잣, 김치, 한봉, 한약재, 오미자즙, 솔잎즙, 한과, 된장, 간장, 감식초, 지리산약술, 춘향주, 고로쇠약수, 목기, 담뱃대, 부채, 상, 식도, 한지, 무공해 질그릇, 춘향골한우, 춘향골돼지, 춘향골계란, 춘향골꿀
완주군감, 대추, 포도, 배, 딸기, 수박, 생강, 표고
익산시쌀, 배, 토마토, 황토배기고구마, 황토농원사과, 미륵참외, 황토우, 석공예


 

광주,전남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광주광역시춘설차, 참빗, 수박, 탱화
목포시생활자기, 젓갈류, 건어물, 생성회, 홍어, 김, 세발낙지
여수시돌산갓김치, 양념젓갈, 해용엑기스, 쌀식초/초란, 건어물세트, 여수단감, 유자, 오이, 화훼, 방울토마토, 쑥, 멸치
순천시쌀, 단감, 배, 복숭아, 매실, 오이, 고추, 고들빼기, 미나리, 가지, 딸기, 느타리버섯, 한봉, 택사
나주시쌀, 배, 멜론, 방울토마토, 단감, 포도, 고추, 피망, 오이, 애호박, 참외, 딸기, 밤고구마, 황토무, 돌미나리, 취나물,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잡곡, 서양란
광양시장도, 궁시, 광양죽필, 고로쇠, 밤, 매실, 작설차, 고로쇠 된장 간장
담양군쌀, 죽엽청주, 동충하초, 죽제품, 염장죽순, 죽향딸기, 죽향방울토마토, 죽향멜론, 죽향단감, 죽향비가림포도, 용면한봉, 담양한과, 창평쌀엿, 추성주, 대잎술, 전통장류, 수세미가공
곡성군사과, 배, 대추, 칠봉파시, 참게장, 토하젓, 부각, 한과, 공예품
구례군노고단향수, 고로쇠약수, 작설차, 토종꿀, 은어, 구례오이, 단감, 우리밀, 나물, 장류, 배, 방울토마토, 송이버섯, 산수유, 죽도, 밤, 부채, 죽염, 현미쌀눈, 한과, 칡즙, 청산녹수
고흥군토마토, 방울토마토, 느타리버섯, 오이, 고흥마늘, 배, 단감, 참다래, 쌀, 유자
보성군녹차, 고막, 쪽파, 어성초, 방울토마토, 배, 딸기, 참다래, 오이,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조성수정미, 녹우, 녹돈, 만평쌀, 풋고추, 녹차막걸리, 보성녹차김치, 쌀, 삼베
화순군복숭아, 방울토마토, 배, 느타리버섯, 단감, 꿀참외, 누에, 포도, 더덕, 파프리카, 표고버섯, 마포, 화순복청, 고로쇠약수,인진쑥즙, 불미나리즙, 동충하초, 가시오가피, 도자기, 전통가구, 지물공예
장흥군배, 단감, 유자, 참다래, 매실, 딸기, 오이,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쌀, 국화, 카네이션, 느타리버섯
강진군쌀, 찰옥수수, 딸기, 오이,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배, 단감, 유자, 느타리/표고/영지버섯, 아가리쿠스, 팽이버섯, 장미, 국화, 강진맥우, 특성, 고막, 바지락, 낙지, 토하젓
해남군참다래, 배추, 벌꿀, 버섯, 장미, 단감, 백합, 파프리카, 녹차, 김
영암군쌀, 고구마, 무, 수박, 무화과, 풋고추, 오이, 애호박, 토마토, 파프리카, 배, 단감, 대봉, 한우, 돼지, 흑염소
무안군황토양파, 황토마늘, 밤고구마, 단감, 볏집새끼줄
함평군쌀, 잡곡, 메주, 한우, 돼지 오리, 사슴, 버섯닭, 배추, 고추, 마늘, 양파, 방울토마토, 오이, 느타리버섯, 신선초, 알로에, 새송이버섯, 팽이버섯, 배, 단감, 사과, 딸기, 메론, 포도, 공산
영광군영광굴비, 쌀, 고추, 보리, 홍화씨, 새우, 백합, 젓갈, 공예품, 화훼, 포도, 딸기, 파프리카, 토마토
장성군단감, 사과, 포도, 배, 메론, 복숭아, 방울토마토, 딸기, 오이, 수박, 참외, 국화, 화훼, 버섯, 공예품
완도군김, 미역, 다시마, 톳, 굴, 멸치, 전복, 건어물, 삼지구엽주, 완도유자, 명사배, 방울토마토, 사슴, 흑염소
진도군구기자, 홍주, 돌미역/돌김, 검정약쌀/약찹쌀, 멸치, 대파, 월동배추, 유자, 고추
신안군쌀, 시금치, 입해배, 유자, 포도, 참다래, 흑산홍어, 낙지, 미역, 새우젓, 대하, 우럭, 톳, 돔, 멸치, 전어, 꽃게, 젓갈류, 전복, 굴/석화, 신안돌김, 오징어, 가리비, 민어, 다시마, 송어, 병어, 보리새우, 백합, 흑산도멸치액젓, 돼지, 한우, 화훼


 

대구,경북 
<!-- 특산물 시작 -->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경산시대추, 포도, 복숭아, 참외, 자두, 깻잎, 묘목
경주시두산명주, 서라벌 향수, 넥타이, 교동법주, 황남빵, 감포멸치젓, 감포미역, 안강찰토마토, 산내더덕, 감포전복
구미시금랑한지공예, 선산약주, 무을공방, 죽향, 흙빛도방, 옛멋
김천시도, 자두, 양파, 감자, 참외, 방울토마토, 배, 팽이버섯, 재래식 메주, 지례돼지, 과하주, 김천징장, 모필장
문경시활성탄 돼지고기, 환, 호산춘, 포도, 칡즙, 청려장, 청국장, 짚공예품, 전통한지, 오이지, 약돌돼지, 쌍샘배, 수석, 산초고추, 빙어, 분재, 버섯류, 문경한우, 문경한과, 문경사과, 문경곶감, 된장, 동로고추, 도자기, 꿀, 곡류, 감식초
상주시곶감, 쌀, 꿀배, 포도, 사과, 오이, 청정채소, 팽이버섯, 문장대산채, 인삼, 약용버섯, 문장대더덕, 홍화씨, 벌꿀, 순한우, 누에가루, 환, 동충하초, 청화산액상차, 한울과일즙, 우리밀가루, 밀국수, 삼미단무지, 감식초, 정통명주, 민속공예품
안동시한우, 사과, 참외, 쌀, 소주, 고추, 하회탈, 안동포, 풍산한지, 딸기, 포도, 빙어, 단호박, 영지버섯, 산약, 간고등어, 풍산김치, 전통장류, 상황버섯, 느타리버섯, 장뇌삼
영주시풍기인삼, 영주사과, 영주한우, 풍기인견, 마.하수오, 소백산오정주, 단산포도, 선비촌한과, 전통메주, 소백산카란
영천시도, 사과, 복숭아, 배, 토마토, 오이, 화훼, 두레한우, 토종돼지, 포도식초, 전통식품, 뽕잎차, 누에, 마늘식초, 포도즙, 전통찹쌀유과, 김치, 전통목공예, 전통신라토기
포항시과메기, 피데기오징어, 부추, 약전참기름, 영지차, 케일과립, 표고버섯, 포항해맞이빵
고령군옥미, 우곡수박, 쌍림딸기, 개진감자, 덕곡쌀, 가야 그린포크, 상황버섯, 다산 향부자
군위군군위사과, 군위흑진주포도, 군위황금배, 팔공산 청정오이, 수출장미, 마늘
봉화군봉화송이, 사과, 대추, 고추, 복수박, 청량산재산수박, 딸기, 쌀, 한약, 화훼, 전통유기, 닭실한과, 봉화선주, 소천엿술, 산머루주, 디딜방아고추가루, 봉화벌꿀, 장
성주군성주참외, 성주수박, 한방사과, 한방배, 포동포크, 참외초롱, 태호, 벌꿀, 고추장, 식초, 인진, 홍화환, 호박즙, 흑염소
영덕군영덕대게, 영덕복숭아, 송이버섯, 오천옹기, 오십천은어
영양군영양고추, 더덕, 사과, 참배, 복숭아, 포도, 무, 배추, 버섯, 일천궁, 잡곡, 담배, 한우, 산나물, 일월산 산머루, 영양천마, 영양송이, 고로쇠수액, 자연산 상황버섯, 분재 및 야생화 분경, 메주, 된장, 간장, 민속주
예천군건조누에분말, 고구마, 고추, 금당꿀, 금싸라기 참외, 누에동충하초, 느타리버섯, 땅콩, 마늘, 명품쌀, 배, 사과, 상황버섯, 양난, 영지버섯, 옹골진잡곡, 쪽파, 참기름, 참우, 토마토, 표고버섯, 학가산메주, 호도, 백반쌀
울릉군오징어, 호박엿, 산나물, 울릉약소, 돌미역, 돌김
울진군무농약 새슴쌀, 울진송이, 울진대게, 고포미역, 온정게르마늄쌀, 취나물, 복수박, 오징어, 은멸치, 참문어, 골뱅이, 잡곡, 삼베, 목공예품
의성군마늘, 사과, 고추, 쌀, 홍화, 포도, 작약, 느타리버섯
청도군복숭아, 반시, 미나리, 풍각토종고추, 청도버섯, 딸기, 대추
청송군꿀사과, 세척고추, 청결고추가루, 청송콩나라, 약대추, 꿀배, 포도, 수경채소, 오이, 곰취나물, 주왕산한우, 벌꿀, 토종꿀, 상황버섯,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가공식품, 꽃돌, 한지, 옹기, 목공예, 허브,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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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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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마산시가고파고향쌀, 국화주, 몽고간장, 국화, 파프리카, 마산호접란, 버섯, 마산참다래, 마산토마토, 내서 단감, 장미
김해시진영단감
거제시쌀, 오이, 피망, 토마토, 방울토마토, 메론, 오렌지, 단감, 배, 포도, 파인애플,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팽이버섯, 상황버섯, 새송이버섯, 두릅, 양파, 마늘, 고로쇠수액, 맹종죽순, 대나무수액, 알로애, 오가피, 복분자
사천시단감, 배, 토마토, 포도, 참다래, 정동황차, 감성돔, 노래미, 전어, 개불, 죽방멸치, 멸치, 건어포류, 화어, 공예품
양산시양산박, 선옥죽차, 참도투돼지, 동면버섯, 청정콩나물, 이파랑청정채소, 원동매실
진주시오이, 딸기, 피망, 호박, 파프리카, 꽈리고추, 가지, 메론, 수박, 토마토, 깻잎, 진주고추, 단감, 배, 밤, 매실, 복숭아, 귤, 상황버섯, 새송이버섯, 마, 우엉, 호접란, 대마무숯, 도라지, 공예품, 진주실크
창원시단감
통영시나전칠기, 진주
거창군포도, 수박, 거창버섯, 자연생밤, 호박, 딸기, 양파, 사과, 고랭지 채소, 쌀, 화훼, 돼지, 한우, 공예품
고성군건봉다시마장, 청정짐장골콩나물, 가마솥옛공방, 팽이버섯, 산머루주, 산우리흑돼지, 팽이버섯젓갈, 고성오대미
밀양시쌀, 들깻잎, 풋고추, 선불홍고추, 딸기,사과, 대추, 단감, 포도, 미나리, 맥문동, 돼지, 새송이버섯, 표고버섯, 밤, 국화, 난, 은어, 한천, 가공품
산청군상황버섯, 꿀, 녹차, 홍차
의령군참외, ?미나리, 취나물, 팽이버섯, 새송이버섯, 느타리버섯, 양파, 단옥수수, 게르마늄쌀, 문양수박, 수박, 오이, 방울토마토, 쥬키니호박, 가지, 딸기, 파프리카, 밤호박, 양상추, 단감, 밤, 흑염소, 토종꿀, 아카시아꿀, 돼지고기, 칡한우, 재래닭, 슈퍼활력란, 관상조류, 한지, 도자기, 칠보공예
창녕군송이버섯
하동군화개녹차, 재첩, 사양도에서 재배되는만지배
함안군파수곶감과 군북면의 월촌수박
함양군민속주, 반찬류
합천군배, 사과, 단감, 수박, 참외, 딸기, 방울토마토, 고추, 호박, 오이, 가지, 밤호박,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 버섯류, 가공품, 공정육묘장, 황토한우, 토종돼지, 쌀, 화훼, 빙어, 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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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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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제주시감귤, 건옥돔, 갈치, 돼지, 표고버섯, 산호, 오분자기, 꿀, 파인애플, 토마토 참다래, 유자차, 금귤차 오미자차, 젓갈, 향수, 공예
서귀포시감귤, 한라봉, 청견, 망고, 차, 버섯, 더덕, 수산물
북제주군한라산 소주, 꿩엿, 벌꿀, 제주산 청정 건어물, 여성초 꿀차, 두부, 선인장차, 도야지, 오미자차, 술
남제주군한라봉, 감귤, 포도, 참다래, 고등어, 방어, 옥돔, 자리돔, 갈치


<!---*** 글

 

전통건축(傳統建築)의 양식(樣式)과 유래(由來)를 찾아서 - 건축사 金東柱(기장문화원이사)

기장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머니 젖무덤같이 둥그스럼하고 복스런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동쪽은 푸른 바다로 트여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산해진미가 가득한 축복된 땅이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곳은 초가집이 많았다.

초가집의 형태는 산의 자태를 그대로 쏙 빼닮아 자연과 어우러져 순응하는 기장 사람들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정자를 지을 때도 산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풍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겉만 번지르하고 돈으로 치장하여 자기는 그 속에 갇히어 자기 건물을 보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집을 짓는 현대인과는 지혜의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이곳 기장은 옛날부터 문화재급에 버금가는 건축물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삼란(임진왜란, 병자호란, 6.25동란)을 당하면서 소실 또는 멸실된 건축물도 많겠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약간의 식견(識見)이 필요한데 본인의 힘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지루한 감이 있을지 몰라 전문적인 용어는 꼭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겠다.

우리나라 전통목조건축물(傳統木造建築物)에는 세가지 양식(樣式)이 있는데 ㉠주심포(柱心包)식 건축물 ㉡다포(多包)식 건축물 ㉢익공(翼工)식 건축물이 있다.

주심포(柱心包)식 건축은 삼국시대에서 고려때까지의 건축양식이다. 공포(건물의 멋을 내기 위해 처마밑에 뛰어 나온 구조물)가 기둥 상부에만 돌출되어 있고 기둥과 기둥사이에는 없다. 기둥은 배흐림식으로 기둥 가운데가 상·하보다 4寸가량 굵어 볼록하게 보인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봉정사·극락전(경북 안동군 서후면)12세기경에 지어진 건물로 우리나라 목조건물로는 최고 오래된 건물이다. 99년 3월 19일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하회마을과 이곳을 특별 방문한 적이 있다. 국보 15호.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 : 경북 영풍군 부석면) 13세기경에 지어진 건물로 봉정사·극락전보다 시대가 떻어지는 것이 완연한데도 졸래 日本人들은 이 건물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오래된 건물이라고 우긴 적이 있다. 국보 18호.

수덕사·대웅전(修德寺 大雄殿 : 충남 예산군 덕산면)은 1308년에 지어진 건물로 국보 49호이다.

다포(多包)식 건축은 고려말 원(元)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건축양식(建築樣式)으로 조선시대에는 크게 유행되었다. 다포식 건물은 주심포심 건축에서 기둥 상부에만 공표를 짜올리던 방법과는 달리 기둥에는 물론,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짜올리던 방식이다. 기둥은 민흘림식으로 기둥의 상·중·하 모두의 굵기가 같다. 지금 현존하는 궁궐, 사찰의 대부분이 이 방식이다. 이 방식은 매우 화려하게 보이므로 현재까지도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익공(翼工)식 건축은 주로 궁궐이나 사찰의 부속건물에 쓰여진 방식으로 이 양식에 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된다.

건축양식(建築樣式)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짚어 보았으니 전통목조건축물(傳統木造建築物)을 보면 정확히는 몰라도 어느 시대의 건축물인가는 알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그럼 기장군 내에서 알려진 전통건축물에 눈을 돌려 그 유래(由來)에 관하여 더듬어 보자.

기장향교(機長鄕校), 장안사 대웅전(長安寺 大雄殿), 의열사(義烈寺), 소호정, 군관청(軍官廳),관미헌(觀美軒)등이 있는데 이중 장안사 대웅전은 기둥이 사리나무로 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뒷문은 1년중 하지(夏至)이외에는 햇볕 한번 들지 않는 영구음영(永久陰影)으로 건축학회에 비상한 관심을 끈 적도 있다. 장안사 뒷편에 있는 척반암(擲盤庵)은 장안사의 명성에 가려 무관심할 경우가 많은데 이 사찰도 그냥 지나칠 건물이 아니므로 척반암과 원효대사가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지 그 유래(由來)를 소개하겠다. 신라로 하여금 삼국을 통합하여 이 땅에 최초로 통일민족국가를 성취하여 겨레의 기개(氣槪)를 드높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뒤편에 있는 불광사(佛光山)기슭의 한 작은 암자에서 주석하던 원효가 어느날 멀리 중국 종남산 운제사(雲際寺:척판암 안내문에는 태화사로 적혀 있음) 큰 도량에 모여 있는 일천여의 대중을 구제하는 이른바 척반구중(擲盤救衆)하는 행을 통해 해동사문의 도력(道力)을 중원 땅에 과시하였다. 통일시대 민족의 긍지를 자부하는 일대사건이었다. 이 설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엮어져 있다. 기장땅 자그마한 암자에 주석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도안(道眼)으로 바라보니 당나라 서울인 장안(長安 : 지금의 西安)의 안산이 되는 종남산 운제사에 거주하는 천명대중이 급작히 큰 변을 당하게 되어 있음을 직관하여 그 대중을 구출할 방편을 곰곰히 생각하였다. 마침 다과상(茶菓床)을 받고 있다가 그 다과상(소반)을 들러 서쪽을 향하여 공중으로 날리었다. 그 때에 종남산 운제사에 공양주(供養主)스님이 밖에 나와보니 절 대문 앞 공중에 소반 하나가 둥둥 떠 있는데 땅에 떨어질 듯 하다가 다시 뒤로 떠오르곤 하였다. 공양주스님은 하도 기이하여 큰 방에서 사시공양(巳時供養 : 오전 10시경의 식사)하던 대중에게 큰소리로 " 아, 저거 보시오.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하고 외치니 마침 공양이 끝난 천명대중은 다 나와서 기이한 모습을 바라보며 소란을 떨고 있을 그 때에 큰방 대들보가 와지끈 부러지며 집이 오싹 주저 앉았다.

어느듯 소반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소반을 들어 보니 소반 뒷면에 해동원효척반구중(海東元曉擲盤球衆)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해동은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통일되어 나라의 융성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러한 때에 당나라 1천여 대중은 머리숙여 해동·원효를 향해 우러러 예배하였다. "우리의 스승은 당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동에 있다. 거룩하  원효대성을 찾아 뵈올지어다."이렇게 발원한 천명대중은 수륙(水陸) 수만리, 저 해동의 나라 신라에 이르는 이들 천명의 스님은 지금의 양산땅인 내원사 골짜기로 안내되었다. 원효대사께서는 그들이 찾아 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천명을 수용하기엔 장소가 협소한 척판암쪽보다는 그곳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었는지 미리 판자로 절을 지어 놓고 음식을 준비하여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었다. 참으로 모든 일에 거리낌없는 각덕(覺德)에 그들은 갚이 감복하여 오체투지(五體投地 : 머리, 양팔, 양무릎을 땅에 닿아 절하는 불교식 예법)로 백배사례하며 제자될 것을 간청하여 선서하였다. 그 당시 판자로 지은 절은 멀리서 손님이 왔다는 뜻으로 내원사(來遠寺)라 불리웠다는데 지금은 세월리 흘러서인지 도솔천·내원궁(內院宮 : 부처님께서 전생에 계셨던 궁전이름)의 이름을 따서 개명(改名)을 한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는 내원사(內院寺)로 불리우고 있다. 그리고 내원사 뒷산에는 화엄경을 강설하여 천명의 청문자(聽聞者)가 모두 도(道)를 깨쳐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천성산(天聖山)이라 하고 설법하신 동산벌판을 「화엄벌」이라고 불렀다. 처음 소반을 던진 기장의 암자는 척반암(擲盤庵)이라 하고, 뒤에 척판암(擲板庵)으로 부르고 있다.

→출처 : http://www.gijangcc.or.kr/paper/news01/html/article04.htm

★유달리 많았던 정자문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그리고 수려한 경관이 보이는 곳에는 어디나 그림 같은 정자가 있다.

비록 인공의 구조물이긴 해도 오랜 세월 대자연에 동화되어 시간의 자취가 역력한 채 의연하게 서 있는 정자는 처음 대해도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우리 나라는 일찍부터 정자문화가 발달해 왔다.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을 닮으려는 정자는 휴식공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시인묵객들이 모여들어 한담을 나누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으니 우리 나라 시가문학의 산실로서의 구실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우리 나라의 누정, 즉 누각과 정자의 수가 무려 885 개나 되었다고 하니, 이로써 정자는 이 땅에 살았던 선인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정자에 얽힌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다. 예천에 있는 용두정(龍頭亭)은 정자를 짓기 위하여 와룡산 기슭을 파자 갑자기 피가 솟아나와 용의 머리를 잘못 찍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자리에 더욱 정성들여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 유래가 전해 오고 있다. 정자가 서 있는 곳에는 으레 이처럼 재미있는 설화가 있어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는데, 특히 애국충정과 연관된 설화가 많아 우리 선조들의 정자관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북 진안에 있는 충목정(忠木亭)은 경술국치로 나라의 국권이 상실되자 이를 통탄하고 임금을 그리며 북향하여 쓰러진 괴목이 3 년이 지나서 되살아나므로 나무의 충정을 상기시키고자 나무 밑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또 시흥의 고송정(枯松亭)은 마하산정의 바위 위에서 영월의 단종을 바라보며 김충주라는 사람이 흘린 눈물에 나무가 고사하므로 그 충정을 기려 정자를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고, 정읍의 군자정(君子亭)은 황폐화된 연당을 손보고 그 곳에 정자를 지으니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자를 세우는 데는 위치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혼자여도 무료하지 않게 자연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언덕이라든가, 사철 푸른 소나무가 강물 소리에 기상을 더해 가는 강변, 또는 지나가다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경치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정자가 들어섰다.

강이나 계곡에 있는 정자는 강계연변형(江溪沿邊形)이라 하여 계곡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백사장의 광활함이나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세워졌다.

또 연못에 세운 정자는 지변형(地邊形)이라 하여 자연적인 못이나 인공적인 연못의 중앙 또는 한쪽 가에 세워 물과 주변의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였으며, 산마루나 언덕에 세운 산정형(山頂形)은 주위의 숲과 조화를 이룬 곳에 배치되어 때로는 망루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자는 그림 속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자연의 절경을 그림으로 옮긴 동양화에는 거의 빼놓지 않고 정자가 그려져 있다. 수십 길이나 되는 바위 위, 혹은 바닷가나 강가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등장하여 화가들에게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자는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지어진 것도 정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바닷가에 세워진 정자가 많다. 정자는 자연의 암반이나 초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대들보를 쓰지 않고 귀접이 천장을 하거나 네 귀의 추녀가 정상에 오는 구조법을 사용한다.

정자는 원래 오두막집이나 그와 비슷한 건축물에서 발전한 것이어서 비록 기와를 이은 지붕이긴 하나 네 귀를 날카롭게 하지 않고 둥글림으로써 모나지 않은 한국인의 심성을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자에는 거기에 걸맞는 시구를 새긴 주련을 기둥에 달거나 정자의 성격을 표현하는 현판을 달기도 하였는데 현판의 둘레를 당초문이나 초각 등으로 새겨 치장하기도 하였으며, 단청으로 건물의 멋스러움을 더하기도 하였다.

정자는 현대에 와서도 맥을 잃지 않고 옛 모습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 건축물의 상징인 아파트 단지나 공원과 위락시설에도 정자가 들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배우려 한 옛 선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정자는 이제 비록 시간의 변천에 따라 많이 사라지거나 훼손되어 그 옛날의 풍광을 잃고 있으나 자연을 닮으려 한 선인들의 소박한 자취와 함께 유구한 세월을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www.culturefactory.co.kr/wwwboard/bbs.cgi?db=culture1&mode=read&num=62&page=2&ftype=6&fval=&backdepth=1

★한국인의 선, 곡선미학

첫째, 단아하고 세련된 선

나이키 심볼마크와 코카콜라 병. 각각 날렵함과 부드러움을 대표하는 20 세기의 곡선이다. 그러나 1 천 4 백여전 고구려 고분벽화의 청룡 백호 몸통에 나이키의 선(線)이 있고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면, 코카콜라 병의 곡선보다 더 부드럽고 더 매혹적인 곡선이 12 세기 고려청자(청자참외모양병)에 살아 있다면….

강서대묘 청룡벽화와 강서중묘 백호벽화(북한 남포시 소재)는 청룡 백호의 힘찬 비상을 예리하게 포착, 날렵하고 세련된 몸통 선에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을 잘 담아낸 걸작이다.

청자참외모양병(국보 94 호)은 곡선과 곡선의 만남을 통해 고려인들의 빼어난 미감을 잘 구현해낸 명품이다. 그 선은 단아하면서도 세련되고 한번 더 들여다보면 우아하고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청자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초월한다.

이것이 한국의 선이다. 한국의 선의 미학은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청동 잔무늬거울(국보 141 호)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잔무늬거울은 과감하면서도 탁월한 창의성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직선과 원이 섬세하게 어우러진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미는 다름아닌 추상의 미, 기하학의 미, 현대적 감각의 미다.

쉽게 만날 수 있는 한옥 문창살은 직선과 직선의 만남을 통해 은근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별다른 꾸밈을 가하지 않고도 저 딱딱한 직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옛 장인들의 손맵시. 문창살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여인네의 저고리는 전체적으로 곡선의 미를 보여주는 가운데 직선이 절묘하게 파고들어가 새로운 미를 창출해낸 경우.

가슴과 소매로 타고 올라가는 곡선, 목을 휘감아 내려오는 곡선에 아무 거침없이 쭉 뻗은 옷고름의 직선이 상쾌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충남 부여의 백제 정림사지 5 층석탑(국보 9 호)은 선의 정적(靜的)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대표작. 이것은 한국의 탑 중 가장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석탑.

각 층 옥개석(지붕돌)의 직선은 네 모퉁이 끝에서 살짝 올라가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연출하고 동시에 묘한 긴장을 이끌어낸다. 네 귀퉁이의 끝 점은 위 아래층 옥개석 끝 점과 허공에서 이어지면서 인간의 눈에 가장 편안한 직선을 만들어낸다.

미술사학자들은 이것을 백제의 미라고 말한다. 한국의 선이 어디 이뿐이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본인들이 말해버린 ‘애수(哀愁)의 곡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엄숙해야 할 때는 엄숙한 선을, 당당해야 할 때는 당당한 선을, 상쾌해야 하거나 편안해야 할 때는 상쾌하고 편안한 선을 적재적소에 구사하며 그에 맞는 새로운 선을 창출했다는 사실. 이것이 우리 선의 미학이다.

둘째, 무지개 다리의 매력

무지개 모양의 문, 홍예문(虹霓門). 무지개 모양의 다리, 홍예교(虹霓橋). 숭례문(국보1호), 흥인지문(보물1호), 광화문의 석축(石築)엔 홍예문이 있고 불국사 백운교나 창덕궁 금천교는 다름아닌 홍예교다.

이같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홍예’. ‘아치’라는 외래어로 더 익숙한 이 홍예가 우리 전통 석조건축에서 ‘약방의 감초’격이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

그 비밀은 완벽할 정도의 견고함과 빼어난 아름다움에 있다.

홍예는 좌우에서 돌을 쌓아 올라가다 맨 위 가운데에 마지막 돌, 즉 이맛돌(키 스톤·Key Stone)을 끼워 넣음으로써 완성된다.

이 이맛돌만 빠져나가지 않으면 홍예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건물이나 성벽이 무너져도 홍예는 건재하다.

놀라운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홍예에선 돌과 돌 사이에 모르타르와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 엄밀히 말하면 돌이 허공에 떠있는 셈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봉건 미술공예실장(한국건축사)의 설명. “길쭉한 돌은 세워서 기둥으로 사용하면 강하다. 그러나 돌을 수평으로 눕혀 다리의 상판(上板)으로 사용하면 약하다. 휘어지거나 부러질 위험이 크다. 이것이 돌의 특성이다.

우리의 홍예는 이같은 돌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해 만든 것이다. 홍예는 또한 위에서 가하는 힘을 좌우로 분산시키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홍예를 고도로 발달한 건축구조라 부른다.”

건축재료가 별로 발달하지 않아 주로 돌을 사용해야 했던 그 옛날, 선인들은 돌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완벽한 건축물을 만들었던 것이다. 홍예의 멋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고풍스럽고 깔끔한 무지개 모양이 연출하는 빼어난 아름다움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홍예의 매력이다.

‘과학성과 미학의 조화’라는 특성 때문인지 홍예는 현대 건축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건축의 홍예는 콘크리트 등으로 무지개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돌을 붙인 것이 대부분.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홍예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건축가 서현씨는 우리의 홍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홍예는 허공을 가로지르기 위한 숱한 연습의 결과다. 이 홍예가 없었다면 한국 건축물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다. 숭례문도 광화문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을 것이다.”

셋째, 처마 곡선의 미학

날아갈 듯 상쾌하고 유려한 기와지붕의 처마 곡선. 처마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비밀은 서까래를 이중으로 처리한 겹처마에 있다. 겹처마는 길쭉한 서까래의 끝부분 위에 짧은 덧서까래를 얹어 만든, 이중 서까래 처마를 말한다.

덧서까래는 처마 끝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낸다. 처마선의 아름다움은 벽체로부터 서까래가 시원스럽게 빠져나오는데서 비롯한다. 거기에 다시 덧서까래를 올렸으니 그 선의 날렵함이야…. 덧서까래는 허공에 떠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부연(浮椽)이라 한다.

덧서까래의 매력은 건물 네귀 모퉁이의 추녀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들 귀서까래는 부챗살인양 벽체 밖으로 쫙 펼쳐지면서 처마 끝을 힘껏 들어올린다. 부드러우면서도 날렵하고 청초하면서도 장중한, 그 거침 없음과 세련됨…. 처마선의 백미라 하기에 충분하다. 귀서까래는 모양이 부채를 닮아 선자연(扇子椽)이라고도 한다.

모퉁이 추녀 부분의 서까래를 벽체 가운데 쪽보다 훨씬 길게 빼내고 훨씬 높이 들어올린 것은 멋도 멋이지만 사람들의 착시(錯視)를 막기 위한 절묘한 장치다. 추녀 귀서까래의 길이나 높이를 가운데 부분과 같게 할 경우, 중앙에서 보면 추녀부분은 밑으로 처지고 길이가 짧아 보여 그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 모퉁이를 보호하는 효과도 있다. 길게 해야 모서리 사방에서 들이치는 빗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덧서까래를 받쳐주는 긴 받침목도 한몫 한다. 모퉁이쪽 추녀선이 올라가게 하기 위해 일부러 휘어진 받침목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붕의 무게로 인해, 자연스레 받침목 가운데가 살짝 내려 앉는다. 이것은 부작용이 아니다. 윤장섭 전서울대교수(건축사)는 “이같은 자연적인 요소나 다소간의 우연적 요소가 오히려 처마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고 설명한다.

서까래 하나를 올리면서도 자연의 특성, 우연의 측면까지 끌어안았던 우리 전통건축. 처마선을 무애(無碍)의 경지라고 일컫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출처 : http://www.culturefactory.co.kr/wwwboard/bbs.cgi?db=culture1&mode=read&num=48&page=2&ftype=6&fval=&backdepth=1

★옹기문화

간장, 된장, 김치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시루는 물론 굴뚝, 촛병, 등잔, 기와, 장군 등으로도 사용된 생활용품 옹기는,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다. 옹기가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발효 식품으로 표현되는 우리 음식에 대한 기록으로 옹기의 사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옹기란「질그릇」과「오지 그릇」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그릇이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든 후 잿물을 바르지 않은 채 6 백 ~ 7 백 도로 구워낸 것이다. 오지 그릇은 질그릇에 오지 잿물을 발라 1 천 2 백 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반지르르한 그릇이다. 우리가 흔히 김장독과 장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옹기는 값이 싸고 튼튼해 생활 구석구석에서 이용되었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옹기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옹기를 살펴보면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옹기를 활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간장, 된장, 김치, 물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시루는 물론 굴뚝, 촛병, 등잔, 기와, 소줏고리, 주전자, 장군 등 옹기 생활용품으로 쓰여져 왔다. 이와 같은 옹기의 또 다른 장점은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발효 음식과 함께 한 옹기의 역사

옹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긴 세월 동안 일반 서민들의 삶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우리의 식생활과 생업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끈질기게 살아남아 왔다.

삼국시대 이후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토기는 점차 단단하고 가벼운 토기로 만들어졌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와 같은 새로운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한 것은 옹기였다.

지금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이 과거의 유물로만 남고, 그 전통과 제작 방법은 거의 단절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임진왜란의 결과로 나타난 조선 요장(窯場)의 황폐화와 도공의 납치,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조선백자 말살 정책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우리의 독특한 음식 문화 덕택이다. 발효 식품 위주의 우리 음식 문화에서 옹기는 저장고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옹기의 특징은 바로 그 '저장력'에 있다.'곰삭은 맛'으로 표현되는 우리나라 음식은 대부분이 발효 식품이다. 그 음식을 저장하는 그릇은 음식의 발효를 도와주는 것이어야 했다. 찰흙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옹기의 안과 밖으로 공기를 통하게 해서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랫동안 보존해 준다. 된장, 간장, 김치, 젓갈 같은 발효 음식의 저장 그릇으로 옹기가 많이 사용되어 온 것도 이러한 옹기의 특성 때문이다.

쌀이나 보리, 씨앗 등도 옹기에 넣어 두면 다음 해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옹기를 가마 안에 넣고 구울 때, 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검댕이 옹기의 안과 밖을 휘감으면서 방부성 물질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문헌상 옹기에 대한 기록은 1834 년 간행된 서유구의《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옹(甕)은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토기 그릇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주로 곡주와 장류를 담아 두기 위해 사용된 단지의 한 종류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삼국사기》,《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등과 같은 그 이전의 문헌에서도 옹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장류나 술, 곡식 등의 중요한 저장고로 이미 옹기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옹기의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옹기의 모습은 풍속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집안 한 켠에 커다란 독과 항아리, 단지가 가지런히 서있는 장독대가 있고, 들판에는 새참을 즐기는 농부들 주변으로 널려있는 그릇과 술병 등이 있다.

그것으로 옹기의 형태와 흐름을 찾아 볼 수 있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과 특성

옹기는 자연으로부터 최소한의 흙, 물, 불, 바람을 빌려와 만든 그릇이다. 흙으로 그릇의 모양을 빚고 부엽토와 재, 물을 섞어 만든 잿물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흙치기, 흙깎기, 옹기 밑바닥 만들기, 태림 내리기, 태림 앉히기, 말리기, 유약 만들기, 유약 바르기, 가마에 불때기, 가마 식히기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옹기는 야산에서 채취한 찰흙, 부엽토, 재를 섞어 만든 잿물을 입혀 구워낸다. 때문에 우리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

옹기는 서민을 위한 그릇이다. 장독대, 부엌, 곳간 등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에서부터 민간 신앙용, 민간 악기 등 집안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또한 지역적인 기후와 자연 환경에 따라,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천, 경기, 강원, 충청 등 중부 지역의 옹기는 그 모양이 길고 배의 폭이 좁다. 날렵한 항아리 모양을 기본으로 하여 입과 밑 지름의 크기가 비슷하다.

전라도 지역은 대체적으로 원형에 가깝다. 달덩이 항아리로도 불리며, 경상도 옹기보다 어깨가 좁고 배 부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표면의 색은 진한 갈색이 많다.

간혹 연홍색, 진홍색 빛깔을 띄기도 한다. 경상도 지역의 옹기는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 어깨 부위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입지름과 밑지름이 좁은 편이다. 색은 연한 갈색에 가깝다.

제주도는 토질의 특성상 옹기가 발달되지 못했다. 철분이 많아 찰흙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옹기는 주둥이와 바닥이 좁고 배가 약간 불룩하다. 반면에 날씨가 추운 북부 지역 옹기는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입이 크다. 잿물의 빛깔도 연하고 부드럽다.

생활 속의 옹기로 거듭나는 옹기 문화

주거 환경의 변화와 산업 발달은 옹기를 차츰 우리 생활에서 사라지게 했다.

약토잿물 대신 광명단(광택이 잘 나고 색이 좋으며 낮은 온도에서도 용융이 잘 된다.

덕분에 연료비가 적게 들지만, 그릇의 상태가 나빠지고 인체에 해롭다)을 사용한 질 떨어진 옹기가 판매되기도 했고, 가볍고 실용적인 스테인리스 용기와 합성 수지 용기가 옹기의 자리를 대신했다.

최근엔 김치 전용 냉장고까지 생겨났다. 옹기의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다행이 최근 들어 사라져 가는 전통 옹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생기고 있다. 다시 우리 생활속의 용기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다.

실용성을 살린 옹기를 제작하고, 그것을 생활 속으로 다시 끌어올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테리어 분야에서의 옹기 활용은 그러한 흐름의 일부이다. 깨진 옹기 조각을 활용한 지붕, 테이블과 의자, 촛대, 벽걸이 장식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은 이 흐름에 새로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글은《생활 속의 옹기》(옹기 민속 박물관),《장광옹기》(동아갤러리),《샘이 깊은 물》(뿌리깊은 나무)등의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출처 : http://www.culturefactory.co.kr/wwwboard/bbs.cgi?db=culture1&mode=read&num=22&page=4&ftype=6&fval=&backdepth=1

★한국의 도자기

인류가 처음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대략 일만년전에서 육천년전 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7-8천년 전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 하기 시작 하였다.
초기의 세계는 1,100도씨 이내의 화도에서 번조되는 도기, 석기를 만들어 사용 하였으나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베트남 정도 밖에 없었으며 특히 우리나라와 중국은 그 조형이 독창적이고 양질의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9세기 전반 신라시대 중국과의 활발한 무역을 통하여 청자 제조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토기 문화권을 벗어나 자기 문화권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후 통일신라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한 청자는 12세기 고려시대로 접어들어 발전하여 당시 중국에서 "고려청자의 비색은 천하제일" 이라고 할만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만의 독창적인 자기를 생산하게 되었다. 당시 귀족 중심의 불교국가인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은 청자는 그 화려함과 세련됨으로 많은 걸작을 남기고 고려시대 후기를 정점으로 점차 사라져 가게 된다.

세계 도자기사의 발전을 보면 토기에서 도기/석기로, 도기/석기에서 청자로, 청자에서 백자로 발전 되었다. 청자에서 백자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초, 고려말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 라는 매우 특징 있고 우수한 도자기가 제작되는 과정을 갖는다.
이 독특한 분청사기는 16세기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통하여 일본에 전파됨으로써 일본의 자기 발전의 시점이 되었다.
당시 일본은 자기를 생산할 수 없는, 도기를 사용하는 수준이었으나 일본인들이 도자기 전쟁이라고 일컬을 만큼 많은 한국의 도공을 일본으로 끌고가 그들로 하여금 도자기를 생산케 하여 비로소 자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중 하나인 "이삼평"은 지금도 일본인들이 그를 도조라고 한다.
당시 그 한일 전쟁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전국의 가마가 파괴되고 많은 도공들이 일본에 끌려감으로써 분청사기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후 17세기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백의민족인 조선은 순결, 순수, 겸손을 상징하는 순백색의 백자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후 백자는 조선시대 선비층들의 높은 기호에 힘입어 아름다운 순백색의 자기에서 다양한 문양과 대담한 변형을 이뤄 회화적이면서 유머와 위트가 깃든 화사한 세련미를 갖춘 공예 예술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도자기는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그 질이 맑고 독특하며 그 모습은 건강하면서도 발랄하다.
한국의 도공들은 깊은 산속에서 항상 자연과 순응하여 생활하며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위주로 번잡한 기교와 다양한 색채를 표현하는 것 보다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단순한 색조와 대범한 조형에서 그 아름다움을 찾아 우리만의 독창적인 훌륭한 도자기 예술을 이루어 냈다.

→출처 : http://www.koreafolkart.com/frame1.htm

★화문석(花紋席) - 김종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위원, 전 한양대박물관장)

화문석(花紋席)이란 글자 그대로 깔고 앉는 자리에다 그림의 문양을 놓아 만든 아름다운 발이나 돗자리를 말한다.

본래 돗자리란 구들방이나 흙바닥에 깔고 생활하는 자리를 말하는 것으로, 가마니 짜듯이 가마니틀에다 짜는 것을 돗자리라고 하며, 돗자리의 원래 뜻은 한자의 ‘자리 석(席)’에서 유래되었다. 화문석은 고드랫돌을 이용해 하나하나 엮어가는 것을 말한다. 「주례(周禮)」에 의하면 문무백관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는데, 처음에는 대로 만든 자리에 계급을 표시하는 백(白)·흑(黑)·녹(綠) 등의 채색으로 물감을 들여 사용했으나 차츰 수를 놓거나 화문을 그려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점점 발달하여 완초(莞草)나 갈대 등의 돗자리로 발전, 화문석이 생긴 것이다.

초기의 돗자리는, 우리나라의 생활이 그러했듯이 초경식물이나 곡물재료(穀物材料)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초경식물로 만든 것에는 돗자리·대자리·싸리자리 등이 있고, 곡물재료로서는 볏집·보리집·밀집으로 멍석, 가마니 등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오랜 생활을 통해 각기 용도는 다르나 ‘왕골[ 莞草]’이 돗자리를 만드는 데 훌륭한 재료임이 입증되었고, 아름다운 공예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 고급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화문석은 우리나라 특유의 생활필수품으로 발전하게 되어 실내장식을 한다든지 부유층의 안방에 없어서는 안될 사치품으로까지 발전했다. 특히 여름에는 왕골 껍질의 질감 때문에 대자리와 함께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한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데 중요한 생활용품이 되었다.

왕골은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고, 또 잘 자라는 식물이어서 어디에 가나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마루방이나 온돌방 또는 토방 등 주거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돗자리를 사용하지만, 왕골 화문석은 온돌방이나 마루바닥에 까는 고급품이다.

동양문화권에서는 완초 공예를 육공(六工)으로 나눈다. 육공이란 여섯 가지의 공예를 말하는데, 금(金:금속으로 만든 모든 공예품)·목(木:나무로 만든 공예품)·토(土:흙으로 만든 모든 공예품)·석(石:돌로 만든 모든 공예품)·초(草:풀 종류로 만든 모든 공예품)·수(獸:가죽으로 만든 모든 공예품) 등이다. 화문석은 바로 초공예의 하나로, 우리나라 고대 전통공예미술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중추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화문석의 역사는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매우 오래되었다. 인류는 본래 동굴생활이나 지하 토굴생활을 했으므로 흙바닥에 ‘까는’ 것이 필요했다. 이때 생각나는 것이 나무껍질이나 대로 엮은 대발, 싸리로 엮은 싸리발 등이다. 그러나 차츰 부드럽고 보기가 좋은 완초나 갈대 등으로 바꾸어 깔았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차츰 발달해 완초공예가 시작되었으며, 인류의 문화인 석기문화와 함께 발달했다.
화문석에 관한 기록은 매우 많다. 우선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직관조>에는 ‘석전(席典)’으로 불리던 부서가 기록돼 있는데, ‘석전’은 바로 돗자리를 만드는 부서였다. 또 같은 책에 육두품(六頭品) 이하의 벼슬아치도 수레 앞에 휘장을 할 수 있었는데, 가마 앞에 ‘완석(莞席)’을 드리웠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에서의 ‘완석’은 화문석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완석은 널리 알려져 인삼과 더불어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요나라에 보내는 특산품에도 용무늬를 한 화문석인 ‘용수초지석(龍鬚草地席)’이 들어있었으며, 송나라 사람들도 고려의 화문석을 매우 귀중하게 소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의 화문석은 등메로 만든 화문석을 말하며, 등메와 화문석은 제작기법도 다르고 사용되는 재료도 다르다.

북송시대 송나라에서 고려에 사신으로 온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친 것은 땅에 까는데, 매우 부드러워 접거나 굽혀도 상하지 않는다. 검고 흰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 테가 둘렸다. 더구나 침상에 까는 자리는 매우 우수하여 놀랍기만 하다’ 라고 극구 찬양을 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화문석은 전국적으로 그 수요가 늘어 「통문관지(通文館志)」에 의하면, 중국에 동지사가 한 번 갈 때 화문석을 무려 124장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 손님에게도 많은 양을 선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용수초지석’이라는 이름은 왕골이 용의 수염처럼 생긴 데서 비롯된 이름이며, ‘오채용문석’은 다섯 가지 색으로 짠 용무늬 꽃자리이고, ‘오조용문석’은 다섯 개의 발톱이 달린 용무늬 꽃자리라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매우 우수한 특산품이어서 왕실에서 사용되었거나 중국에 보내는 진상품으로 사용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의 하류지역으로 습기가 많고 갯벌이 많아서, 뻘에서 잘 크는 증풀(일명 조리풀이라고도 함)과 왕골이 잘 자란다. 강화도의 왕골은 길이가 길고 부드러워서 돗자리나 화문석을 짜는 소재로서는 전국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1932년에 발간된 「강도지(江都誌)」의 공산품조 완석(莞席)부에는 ‘그 물품에는 화문(花紋)·흑문 (黑紋)·무문(無紋) 등이 있고 상도리(上道里)·양오리(陽五里)·당산리(堂山里) 등지에서 많이 생산된다. 옛날에는 진상품이었다’ 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화문석이 강화도에서 많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8·15 광복 이후, 왕골공예는 매우 활발해져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수요의 급증으로 생산이 고조되기 시작하자 생산자 및 정부의 노력으로 왕골공예품 장려정책을 펴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산업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후 산업발전에 의한 생활환경 변화와 화학수지 제품 즉, 비닐장판·비닐 발·비닐 돗자리 등의 범람으로 왕골제품은 비닐제품 수요에 밀려나 1970대년부터 수출이나 국내 수요가 점차 위축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 재기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놓여있으나, 최근 각 부분의 전승공예 부활 추세에 힘입어 약간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출처 : http://www.lg.co.kr/h_lg/tree/199808/s_0812.html

★목칠공예

목공예는 나무를 이용하여 물건을 만드는 기예(技藝) 및 그 제품의 총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각종 건물과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목공예는 크고 대목(大木)과 소목(小木)으로 구분되는데 대목은 건물을 짓는 것을 말하고 소목이란 건축물의 내부장식이나 가재도구를 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소목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는데 나무를 조각하는 조각공예와 가재도구 등의 생활용구를 제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재도구에는 안방의 삼층장·버선장(애기장), 사랑방의 의걸이장·책장·사방탁자·문갑 그리고 부엌가구인 찬장·뒤주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목공예의 특징은 칠기의 발달을 꼽을 수 있는데 칠기는 서양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동양 특유의 공예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칠기는 옻나무에서 채취된 수지(樹脂)인 칠 혹은 옻칠을 나무로 된 제기나 용기 등에 칠한 물건들의 총칭으로서 그 역사는 비교적 오래 되었습니다. 칠기는 중국 은대(殷代)부터 나타나기 시작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 후반부터 칠기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경상남도 의창 다호리 유적에서 대량의 칠기가 발견되어 적어도 원삼국시대부터는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시대에 이르면 신라에 칠전(漆典)이라는 칠기를 다루는 관청이 있었고 안압지에서 다양한 칠기가 발견되어 칠기공예는 더욱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 순수한 정제칠만 사용한 경우는 줄어들고 나전칠기(螺鈿漆器)가 매우 발전하게 되고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나전칠기가 목칠공예의 주류를 이루게 되 것으로 판단됩니다.

→출처 : http://www.heasong.co.kr/contents/info/serve7.asp

★금속공예 개요

1. 개요
금속공예란 금속을 이용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도구나 기계, 무기 또는 장식품을 만드는 것이다. 금속의 발견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처음에는 생산활동에 꼭 필요한 도구 즉 농기구와 사냥도구와 전쟁 무기, 특권계급의 장신구, 제사의식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차츰 제련기술과 가공기술을 공유하게 되면서 일반인들의 생활도구를 제작하게 된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은 자연 상태에 있던 금이나 동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금은 아름다운 광택과 가공의 용이성, 희소성, 쉽게 변질되지 않는 특성으로 즐겨 사용하게 된다. 금속공예 기술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이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금속공예품은 문물의 전파경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동이나 철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을 것이나 철은 부식이 심하여 남아 있는 유물이 별로 없고 남아 있더라도 그 형태를 알 수 없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금, 은제품을 비롯하여 금동 또는 청동제품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금속공예라 하면 생활도구보다는 장식성과 공예성이 뛰어난 귀금속공예를 말한다.

우리나라 금속공예는 BC 1000년경 청동기시대가 도래하고 철기문화가 대중화되면서 AD 4-5세기 이후 찬란한 금속공예기술을 꽃피우게 된다. 지배 이데올로기와 생산력에 따라 섬세함과 규모, 즐겨 표현한 문양, 공예품의 종류 등이 다르지만, 생활용구에서 무기, 장신구, 종교제례 의구 등 생활 전반에 나타난다. 고구려, 백제의 유물은 희소해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기 쉽지 않지만 고신라는 왕실을 중심으로 한 금관을 비롯한 장식품, 통일신라시대는 범종과 사리장치가 제작되었다. 귀족국가라 할 정도로 귀족사회가 팽창되었던 고려시대는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다양한 소공예품이 제작되었는데, 향완. 동경. 금고. 금동탑. 그리고 금속활자 등이 있다. 조선시대는 왕실 수요를 제외하고는 공예기술이 위축되는 시기로 문방사우와 생활의기 중심으로 한 단순한 공예품이 제작된다. 특히, 목공예가 발달하여 목가구에 장식하는 다양한 문양을 한 장석 등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그리고 불상이나 범종같이 막대한 자금과 노동력,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금속공예는 정부나 왕실 또는 재력을 갖춘 세력가들에 의해서 완성된다.

2. 금속공예 재료
금속공예의 주재료는 5금이라 불리는 금, 은, 구리, 철, 아연과 주석이 일찍부터 발견되어 사용되었고, 주석이나 아연 또는 납은 합금을 만드는데 이용되었다.
· 금 : 고대에는 사금(砂金)이 주로 채취되어 사용되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 많은 공예품이 만들어져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금에 은을 합금하여 청금, 호박금 등의 합금을 만든다. 순도 100%를 24K로 나타내어 금의 함유량을 나타내고 있다. 즉 22K라 하면 금의 함유량은 =91.7% 이다.
· 은 : 금 다음으로 귀한 금속으로 많이 이용되었고, 금이나 구리와 합금하여 사용하였다.
· 동 : 은 다음으로 열전도와 전성, 연성이 좋아 가장 대중적인 금속이다. 특히 착색과 도금 및 표면처리가 용이해서 공예품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을 황동이라 하고, 구리와 주석의 합금을 청동이라 하는데 구리 단독으로보다는 아연과 주석을 공예품의 성격에 따라 적절히 합금하여 이용하였다. 가장 많은 공예품을 남기고 있는 금속이다.

3. 가공기법
가. 성형기법 : 주조와 단금기법이 있다.
· 주조기법(鑄造技法) : 채굴한 금속을 녹여 원하는 모양의 본을 만들어 즉 주형에 부어 냉각시켜 제작하는 방법이다. 주로 범종과 불상을 조성하는데 이용되었다. 주조기법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금속의 성질을 잘 알아야함은 물론이고 가마기술의 발달이 선행되어야 한다. 틀에는 흙을 이용한 흙틀, 불상이난 범종제작에 주로 사용된 납형(蠟型 : 밀납을 이용하는 것으로 안 틀에 있던 밀납이 녹아 흘러내리는 까닭에 실납법(失蠟法)이라고도 한다.), 석제 틀, 안틀 끼우기 등이 있다. 주로 석제를 사용하였으며 석제에서도 활석을 이용한 용범(鎔范)이 대부분이다.
· 단금기법(鍛金技法) : 금속의 퍼짐성을 이용하는 기법이다. 금속판을 적당한 온도로 달구어 망치로 두드려서 늘린 다음 철판, 망치, 끌, 톱 등을 이용하여 구부리거나 두드려 입체적으로 늘려서 기물을 제작하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앞뒤에서 두드려 만드는 추기기법과 금속판을 오리고 붙여서 만드는 판금기법, 틀에 올려놓고 두드려서 만드는 압출불도 단금기법에 속한다.

나. 조금기법(彫金技法) : 주조나 단금기법에 의하여 성형된 공예품을 그 표면에 원하는 문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선조기법(線彫技法)과 어자문기법(漁子文技法), 상감기법(象嵌技法) 등이 있다.
· 선조기법 : 날카로운 정을 이용하여 선 또는 점으로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이다. 선의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기법으로 세분하는데, 가장 삼국시대 공예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초보적인 기법으로 연속적인 점으로 나타내는 점선조기법 등이 있다.
· 어자문기법 : 이집트 지방에서 시작되어 페르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기법으로 연주문(連珠文), 환문(丸文), 원문(圓文) 등으로 불린다. 어자문 끌을 이용하여 금속표면 위에서 아래로 두드려 누르면 작은 원이 찍히는데 이것을 연속하여 찍으면 마치 물고기 알처럼 보인다 하여 어자문이라 부른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여 고려시대까지 이어져오다가 조선시대에 없어졌다가 18세기 이후 다시 나타나는 기법이다.
· 상감기법 : 고신라시대부터 보이는 상감기법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다양하게 나타난다. 상감기법도 어자문기법과 함께 서역에서 전해진 기법이다. 성형이된 물건 표면에 구멍을 뚫거나 선 또는 면을 파서 다른 금속을 삽입하거나 진흙처럼 처리한 금속을 메워넣고 열을 가하여 완성하는 기법이다. 주로 금과 은을 사용하였다.
· 누금세공기법 : 이 기법도 서역에서 전래한 기법으로 금 미립자에 높은 열을 가하여 금판에 붙여서 표면을 구슬모양으로 장식하는 기법으로 통일신라 공예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출처 : http://www.culturekr.com/gumsok/image/me0.htm

★석조미술

장수왕 3년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능과 함께 국내성 동쪽 언덕(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세운 사면비석이다. 비석은 이수 없이 대석과 비신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석은 길이 3.35m. 너비 2.75m이고 비신은 너비 1.35m. 높이 6.39m에 이르는 동양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비신의 4면에는 44행 1,775자를 10에서 15cm 정도의 크기로 음각하였는데, 글씨의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모눈종이처럼 칸을 나누어 놓았다. 이 비석은 조형적 아름다움은 없으나 고구려사 및 동아시아교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비석이다.

그리고 광개토왕비는 고구려의 멸망과 만주의 상실로 잊혀져 있다가 조선 세종조에 편찬된 용비어천가에 등장한다. 그 후 비석은 1880년경 청나라 농부에 의해서 재발견되어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다. 자연풍화에 의한 마모와 1882년 경 만주를 정탐 여행중이던 일본군 중위 사까와 카게노부에 의한 악의적인 비문의 변조. 무분별한 탁본. 보호관리 잘못으로 훼손이 많이 되어 과학적인 보호대책이 시급하다. 능비가 발견되어 한.중.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고구려사나 동아시아 교섭사 연구보다는 일본측이 식민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비문을 조작. 오독하여 "일본이 369년 가야를 정복하고 200여년 동안 지배하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함으로 그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주로 이루어 지고있다.

→출처 : http://www.culturekr.com/mh_4/image/bi3.htm

★한국의 공예 (工藝)

한국 공예의 흐름

우리 민족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등 역사 이전의 시대를 거리는 동안에도 문화 발달의 정도는 보잘것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생활 환경과 신앙에 바탕을 두면서 온갖 기술을 동원하였고, 때로는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여 왔다. 특히 청동기시대에는,우리의 선인들은 다른 어느 지역에서의 작품보다도 월등히 우수한 금속제품을 제작하였고 새로운 재료의 개발과 그들 자신의 지혜의 발달은 날이 갈수록 가속화하였으니, 4∼5세기 동안에 걸친 청동기시대에 이룩한 비상한 발달은 철기시대를 거쳐 고분시대((古墳時代)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청동 하나만을 공예품 재료로 사용하던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제련(製鍊)기술의 발달에 따라금·은·동·철 등을 사용하게 되었고, 장신구에는 유리·수정 및 각종 옥이 곁들여 사용되며 음각(陰刻) , 양각(陽角)은 물론 투각(透刻)의 기법을 구사할 뿐 아니라 이물질을 기표((器表)에 감입(嵌入)하거나 비단벌레의 겉날개를 붙이는 특이한 장식기법을 발전시켰다. 또한 용도에 따라 기능을 살렸음은 물론 형태나 비례의 조화는 세련된 심미안(審美眼)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느니, 삼국시대에는 이미 각국이 독특한 성격을 발휘하면서 상당히 높은 경지에 까지 도달하였음을 각종 유물을 통하여 분명히 볼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의 금속공예 작품은,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서는 삼국시대에 발단(發端)하였던 장신구에 비하여 오히려 불교관계 유물에서 뛰어난 발전을 이룬 듯하다. 신라의 불교는 삼국시대의 초창기를 지나 통일시대에 이르러 독자적인 경지에 도달하였고,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 각종의 공작물도 이 시대에 눈부신 발전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황룡사동종(黃龍寺銅鐘)」·「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新種)」같은 거종(巨鐘)을 주조하는가 하면, 탑 속에 시납(施納)하는 갖가지 형태의 금·금동·은·유리 등의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는 실로 이 시대는 물론 우리나라 금속공예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의 발달은 공예작품의 종류와 사용되는 재료의 다양화를 가져오는데, 이는 생활의 향상과 다양화에서 우는 필연적 결과이다.<청동기 시대>, <철기시대>라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는 물론 모든 인류가 그들의 생활필수품의 재료로 최초로 채택하였고, 또 줄곧 이용한 물질이 곧 흙이었으니, 흙은 지역이나 시대에 관계없이 가장 긴요하게 사용된 재료이다. 흙은 시대를 따라 문화 발달의 척도인 양 다방면으로 이용되었는데. 가장 광범하게 상용한 종류가 용기(容器)로서 석기시대의 무문토기(無文土器)부터 시작하여,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시유자기(施釉磁器)에 이르기까지 그 기본 재료는 흙이었다.

삼국시대에는 흙을 이용한 토기, 즉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용기의 제작이 본격화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건조물에 사용되는 와전(瓦塼)의 제작이 성행하였다. 와전의 성용(盛用)은 건축의 발달을 대변하는 것이니, 암키와·수키와·암막새·수막새·서까래기와·부고기와· 치미(?尾) 등의 기와, 방형전(方形塼)·상형전(箱形塼) 등 심국시대에 제작,사용하던 와전의 형태나 그 위에 장식된 각종 문양은 당시의 문화의 발달상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용기의 발달은 한층 전전하여 기표(器表)에 유약(釉藥)을 사용하게 되고, 와전(瓦塼)은 종류가 더욱 다양해질 뿐 아니라 형태나 문양에서 정교하고 세련됨이 최고도에 달한다. 이와 같은 문화의 향상, 기술의 축적, 심미안(審美眼)의 발달 등은 연륜과 함께 전전되어 드디어 고려시대의 청자(靑磁), 조선시대의 백자(白磁)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이 외에도 우리 선조들은 각종 재료를 구사하였는데, 재류 선택의 주안점은 용도에 알맞아야 하였으므로 목재·피혁·지직(紙織)등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왔다. 그 중에서도 목재의 사용은 내구력이 적은 까닭으로 해서 고대의 목공품은 매우 희귀하나, 18세기 이후의 제품은 상당수 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인들의 생활태도나 환경에 대한 적응이 자연스럽게 나타나 있어 여유 있고 윤기 있는 생활, 다시 말하면 자연을 즐기고 자연에 순응히고 자년과 함께 생활하려는 태도가 엿보여, 이것이 또한 우리 목공예품의 하나의 특장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한 우리나라 공예품 가운데서 몇가지를 좀더 자세히 관찰하기로 한다.


목칠공예(木漆工藝)

목칠공예품은 재료의 취약성 때문에 현존 예 대부분 고려시대이후의 것이다. 고려 이전의 예로는 무령왕릉에서 목제「두침(頭枕)」(국보164호)과「족좌」(국보165호), 그리고 「목조(木鳥)」등이 출토되었으나, 금속제 장신구에 비하면 매우 빈약하고 경주의 신라시대 고분에서 칠기 파편들이 출토되지만, 모두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손이 심한 것들뿐이다. 이에 비하면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국내에 5개, 외국에 10개 정도가 있어 그 수법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대개 염주합(念珠盒)·경상(經箱)) 등 불교와 관계되는 것이다.

고려시대 직제(職制)에 소목장(小木匠)·칠장(漆匠)·나전장((螺鈿匠) 등이 있었음을 보면 전문적인 분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니, 현존하는 영세한 작품을 통해서도 우수한기법을 볼 수 있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칠기라고 하면 조개껍질·대모(玳瑁)· 금속 등을 상감하고 칠을 입히는 수법이지만, 때로는 표면에 그대로 붙이고 칠로 고정 시키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흑칠나전포류수금문향상((黑漆螺鈿蒲柳水禽紋香箱)」이나 일본 덕천미술관의「흑칠나전국당초문경함(黑漆螺鈿菊唐草紋經函)」은 그 수법이 서로 약간 다르기는 하나, 모두 뛰어난 걸작들이라고 하겠다.

조선시대에도 칠기 또는 나전칠기가 계속 제작되었으나 수법은 고려시대 작품에 미치지 못하고, 문양도 4군자 쌍학 포도 모란 등 문인 취미에 맞게 또는 길상의 뜻으로 시문하는 예가 많아진다. 그보다도 조선시대 목공품은 일반 가구에서 가장 뚜렸한 특징을 발휘하였으니, 문갑·탁자· 반닫이· 장· 소반 등 일반생활에 사용되는 가구가 생산되었다. 그런 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꾸미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솔직하고 담담하게 제작하여, 한국적인 미를 표현하였던 목공들의 기본적인 태도를 볼 수 있다.

나뭇결이나 자연의 나무무늬를 살리면서 만드는 심정, 또는 귀에 숨겨져 부이지 않는 곳에도 값싼 재목을 쓰거나 소홀히 다룬 점이 없음은, 요사이 만드는 기구와는 전혀 다르다. 조선시대에서는 나전 외에 화각장(華角張)의 목공품이 유행하였다. 조선조 관제(官制)에도 화각장(和角張) 있었음을 입증한다. 화각은 양질의 쇠뿔을 얇게 켠 다음 백·적·황·녹 등의 색으로 문양을 그리고, 그것을 나무로 만든 물건 표면에 붙이는 것이다. 역시 토착적인 미술작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 안동(河回)에 전하는 탈은 한국인의 얼굴을 가장 토착적인 감각과 수법으로 이살맞게 표현한 것이어서, 고려시대 목공품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목공가구(木工家具)

서설(序說) 한국 목공가구의 조형특징은 첫째로 한국 주택양식이 갖는 특이한 환경이 낳아 준 것이다. 한국주택이 지니는 비교적 좁고 낮은 질소(質素)한 온돌방과 여기에 부속된 대청과 주방 등 제한된 공간 속에서의 평좌생활(平坐生活)은, 자연히 가구와 장식물에 이르기까지 중국이나 서구주택의 의자생활 공간과는 매우 다른 규격과 형식차를 낳게 했다. 둘째는 4계절의 챠가 매우 분명하고 한서(寒暑)의 차가 많은 한국의 풍토에 순응하면서 길러진 고지식한 민족의 성정(性情)과 꾸밈새 적은 표현애(表現愛)가 너그럽고 억지가 없는 소직(素直)한 조형기질로 나타난 것이다.

즉 꾸밈새나 잔재주가 적고 은근한 정감이 스며 있으며 순직하고 성실 간소한 기능미(機能)美)를 으뜸으로 삼게 된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목공가구에 표현된 그 적정한 비례와 간명하고도 조촐한 면분할(面分割)이 독창적인 조형은 한국미술 전체의 흐름 속에서도 이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질서가 잡형있다. 더욱이 조선시대 문방가구(文房家具)의 공간구성과 면분할에 나타난 기능과 조형의 조화는, 모두 실내 의장(意匠) 전반에 걸쳐서 계획된 것으로서 하나의 한국적인 미의 질서라고 할 만하다. 특히 사방)탁자(四方卓子)와 문갑류((文匣類)들이 보여주는 간명한 공간구성과 쾌적한 면의 분할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상과 같은 조형미를 뒷받침해 주는 한국 주는 한국 목공예의 감추어진 공정은, 이음새와 짜임새와 짜임새 등 보이지않는 구조의 신실성(信實性)과 그 창의가 뒷받침하고 있다.

즉, 재질과 역학적인 부위에 따라서 구조적인 면과 의장적인 면을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있으며, 접착제와 못은 불가피한 부위에만 사용될 뿐 맞짜임·연귀짜임·턱짜임 사개짜임 등 매우 합리적인 결구가 외면 또는 내외 2중으로 견실하게 이루어져 있다. 한국 목공가구가 지니는 또 다른 특장(特長)의 하나는 적재적소주의((適材適所主義)로 매우 다양한 수종을 골라서 쓴 점이다. 말하자면 한국은 4계절이 분명하해서 자라는 수종도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재질이 각기 다르고, 또 그 색감과 목리문도 종류가 많아서 이것을 매우재치있게 목공가구 의장에 동용하고 있다. 소나무·전나무·잣나무·향나무·밤나무·배나무·호도나무·대추나무·감나무·먹감나무·자작나무·피나무·느티나무·오동나무·대나무 등이 목공가구에 쓰여진 주요한 수종이다. 이들 중에서 힘이 실리는 골재로 흔히 쓰이는것은 야무지고 탄력이 있는 소나무·잣나무·대추나무·배나무·호도나무·자작나무·느티나무 등이고, 널로[板材〕 쓰이는 것은 오동나무가 가장 많았으며, 잣나무 소나무 느티나무〔槻木〕 등도 잘 쓰이는 재목이다.

한국 목공가구에 있어서 거의 불문율로 지켜진 것은 골재고 판재고 간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손숩고 값싼 재목을 숨겨 쓰지 않은 점이다. 특히 눈에 띄는 표면에 눈가림으로 얇게 켜서 붙이는 화장재(化粧材)는 특별한 경우,즉 휘가사나 근재(根材) 등 휘귀재질 또는 죽장과 같은 특이공법이 아니고는 천박한 것으로 여겨 왔으므로, 조선 말기 이후의 것을 제하고는 그 예가 매우 드물다. 목공가구의 구조 보강과 기능적인 필요에 따라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금속 장식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백동·놋쇠·구리 등 동석계(銅錫系) 금속과, 시우쇠 무쇠 등 철계(鐵系) 금속이 많이 쓰여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즐겨서쓴 금속은 놋쇠와 철이었으며, 특히 거명쇠라고 불리는 들기름 그을음 처리를 한 검은 시우장식은 오동·소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문방가구와 귀목반닫이·오동장 등의 장식으로 매우 품위있는 있는 조화를 이루어 왔다.

이것은 조선시대 목공가구 장식의 한 특색이기도 하다.이들 장식은 경접·돌쩌귀·들쇠고리·자물쇠 등 기능적인것과, 국수물림·새발장식·감잡이·앞바탕·귀장식 등 보강구조를 지닌 등 두 계열이 있으며, 이 두 계열의 그 의장이 모두 장식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 장식성 의장에 나타난 한국적 인 장점은 너무나 정제된 권위에 넘치는 중국 목공가구와는 대조적이다. 말하자면 한국 장식은 소박한 맛과 순정적인 맛이 돋보이며, 특히 거멍쇠장식류의 자연스럽고 조촐한 의장은 그 바탕 재질과 더불어 한국적 취향이 짙다.

대체로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문방가구와 장롱 등 내실(內室) 목공가구류는 그 양식적인 면으로 보아서 17세기 무렵까지는 그 양감과 제식(制式)에 중국 명조양식(明朝樣式)의 여운이 짙었으며, 일부 고려시애 이래의 고격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무렵부터는 순화된 조선적인 고유양식으로 정착화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이 시대의 미술과 문학 전반에도 드러난 현상이었다.


사랑방가구

동양의 학문과 예술이 자라난 온상으로서, 그리고 동양적인 깊은 사색과 명상의 샘터로서 동양인들의 문방생활(文房生活)이 지니는 의의는 자못 크다. 중국에서는 이미 중세기에 있어서 이러한 서재(書齋)의 의장과 속기 없는 환경조성을 위한 문방청완(文房淸玩)의 기풍이 틀 잡혔고, 그 실제와 이상을 밝힌 『산가청사((山家淸事)』〈임홍(林洪)〉·『 부훤야록』 〈권초(權樵)〉『동천청록(洞天靑綠)』〈조희곡(趙希?)〉·『원천매보(苑村梅譜)』〈범성대(范成大)〉와 같은 귀한 저작들이 연이어 나왔다.송대(宋代)의 이러한 기풍을 이어 발전시킨 명대(明代) 중국인들의 문방 취미는 한층 세련과 폭넓은 보급을 가져왔다. 따라서, 이에관한 『고반여사(考槃餘事)』〈도륭(屠隆)〉·『격고요론(格古要論)』〈조소(曺昭)〉·『준생팔전(遵生八?)』〈고염(高?)〉·『병사』〈원중랑〉같은 저서들이 연이어 나오게 되었다.

명 시대의 이러한 중국 문방생활의 세련과 유행은 당시 새 문화건설 의욕에 차 있던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문방생활을 적지 않게 자극했으리라고 짐작된다. 물론 고려시대 이래로 내려오는 문방취미의 전통이 있었으나 명나라로부터 불어오는 이러한 새 풍조 때문에 조서시대 문방취미와 그 의장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서재용 가구들의 예를 보면 서안(書案:冊床)·향상(香床)·문갑(文匣)·탁자(卓子)·책탁자(冊卓子)·책장(冊欌) 등의 일부에 명대 문방가구양식의 여운으로 생각되는 의장요소가 적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 문방가구는 그 규격이나 표현양식에 있어서 명나라 것과 대별되는 이질적인 두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다.

첫째, 중국인들의 의자생활과 한국인들의 온돌방 평좌생활에서 오는 가구의 규격과 형식차, 둘재, 중국미술이 지닌 오랜 전통에서 오는 권위와 존대와 기교로 이루어진 정력적인 표현애에 대조되는 단순하고 질소하며 순정적인 한국미술감각의 차이이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조선시대의 문방가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생산되었고, 또 짙은 민족양식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조선시대 후반기에 이루어진 한국주택건축의 세련과 때를 같이해서 일어난 문방(文房)의 세련과 사랑방 취미의 유행이 큰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선시대 서재용 문방가구의 특색은 꾸밈새 없는 단순한 의장과 질소하면서도 성실한 구조에 그 대본(大本)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식 없는 단순한 의장과 견실한 구조미는 근대적인 공예미와도 상통되는 아름다움으로서 개개의 조선시대 목공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적정한 비례와 간결한 직선적인 구성미(構成美)는 유례가 없을 만큼 새롭다. 〈일점 속기가 없는 방〉, 이것은 문방미학에 있어서는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말이다. 문방은 언제나 밝고 조용하고 정갈해야 하며 그다지 넓을 것도 호사스러울 것도 없는 담담한 분위기를 위하여는 문방가구들이 간결한 질서를 잡아 주어야만 된다. 창 밑으로는 길찍한 문갑 한 쌍이 놓이고 간결한 사방탁자 한둘, 그리고 간격을 두고 책장·책탁자 들을 보기좋게 둘러놓고 기름하고 소박한 서안(書案)과 연상(硯床)과 다탁(茶卓)이 하나쯤 있으면 서재의 목공가구는 구태여 더 탐낼 것이 없어진다. 따지고 보면, 조선시대 문방가구로서 가장 멋진 것은 탁자류의 의장이다.

2층, 3층,4층, 때로는 그 이상 다층(多層)으로 돈 이 탁자류는 넓지 않은 한국 사랑방이나 서재의 공간을 적절하게 살려내는 가구이며, 책을 쌓기 위한 책탁자와 문방애완품(文房愛玩品)을 장식하는 감상용 진열탁자의 종류로 분류된다. 이러한 용도에 따르는 기능과 질서를 위하여서 탁자의 구조는 그 비례의 아름다움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비례의 아름다움에서 풍기는 미의 질서는 거의 실내 전반의 조형질서를 주름잡는다고 할 수 있다. 장식용 사방탁자의 두 종류로 분류된다. 이러한 용도에 따르는 기능과 질서를 위하여서 탁자의 구조는 그 비례의 아름다움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비례의 아름다움에서 풍기는 미의 질서는 거의 실내 전반의 조형질서를 주름잡는다고 할 수 있다.

장식용 사방탁자의 경우는 전부 골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고 때로는 아래 한 층만을 둘러막거나 중간 한 층을 둘러막아서 조그만 장 구실을 하도록 된 것이 있으나 언제나 각층 비례의 적정은 항상 그 탁자들이 지니는 조형의 성패를 판가름해 주고 있다. 이 조선시대 탁자류의 공간미는 거의 독보적인 조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아직도 새로운 근대적인 입체감각과 질소 간명한 감각이 높이 평가된다. 이러한 탁자류의 공간적 아름다움에 배설(配設)되는 문방가구 중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문갑류이다. 이 문갑은 탁자류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기능 위주의 가구로서 문방주인공이 필요한 지향류(紙香類), 그 밖에 소품들을 넣어두는 서랍이 마련되어 있다. 때로는 이들 서랍이나 선반을 두껍닫이로 감추어 주는 의장도 있으며, 그 반대로 이것들을 노출시켜서 그 비례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마련한 것도 있다. 문갑은 한국의 평좌생활(平坐生活)에 알맞은 책상높이를 기준으로 하고, 대개는 한 쌍을 나란히 놓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문갑은 문방주인공의 좌우(座右)에 있어서 늘 주인공의 손이 갈뿐더러 문갑의 긴개판 위에는 필통·지통·연적·수석(壽石)등을 늘어놓는 진열대의 구실도 하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문방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그다지 넓고 큰 방은 없다. 따라서 많은 가구가 놓이면 번잡스럽고 답답해져서 속기가 물드는 것이다. 문갑 한두 쌍과 탁자류 몇 개에 늘 필요한 책이나 서화를 넣어 둘 책장이 한둘, 그리고 서안과 연상이 적당한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책장들은 서재 안에 자리잡은 어느 가구보다도 소직(素直)하고 장식이 없는 것이 숭상된다. 따라서, 번잡스러운 백동 장식이나 조각이 들어가기보다는 조촐한 목리문(木理紋)을 길들이고 경첩이나 장식은 모두 무쇠로 만든 것을 최소한 장식한 것이 격이 높다. 흔히 중국 책장류의 의장은 하부 쪽으로 장의 넓이를 약간 넓혀서 안정감이나 권위적인 조형감을 낸 것이 많으나, 한국의 이러한 입체적 가구의 표현은 늘 단순하고 정직한 설계이며, 가식이나 작위적인 의도가 없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들 조선시대의 책장류는 옹이가 없는 송재(松材) 또는 오동재(吾東材)나 목리(木理)가 있는 잡목들을 쓴 것이 격이 있으며 때로는 4면을 모두 한지(韓紙)로 바른 지장(紙欌)으로 된 것도 있다. 이상, 탁자·문갑·책장 등 서재의 벽 둘레에 놓이는 가구들 사이에 벽면 공간을 장식하는 벽걸이 가구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비이다. 이 고비라는 것은 납작한 목조 벽걸이의 측면에 문서나 편지를 꽂을 수 있도록 칸막이를 한 것으로서, 실내벽면 공간의 적소를 잘 포착해서 걸어 놓으면 입체적인 탁자류와 책장 사이의 공간에 점정(點睛)하는 포치(布置)의 묘를 발휘할 수 있는 가구이다. 문방의 벽 둘레에 놓이는 몇 가지 목공가구들을 놓고 나면 다음은 실내의 방바닥 공간을 메우는 책상·향상·연상 등 얕은 목공가구들이 놓여진다. 책상은 문방 평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가구로서 조그마하고 얕은 것이 그 특색이다.

경우에 따라서 서랍이 한두 개 또는 선반이 하나쯤 마련된 조그마한 책상은 서안이라고도 불리어지는 것으로서 책 한두 권을 펴 놓으면 족한 것이다. 대개는 양측에 판족(板足)을 붙이고 거기에 간소한 풍혈(風穴) 하나씩이 둘려 있는 정도의 소박한 장식으로 족한 것이며,서랍의 고달이 장식은 고작해야 백동이나 무쇠로 된 작은 고리나 달개지쇠 하나씩이 장식될 뿐이다. 조선시대 문방책상이 크고 높지 안은 것은 방이 과히 크지 않다는 것과,또 평좌생활의 이편(利便)이 계산된 것으로서 소반만한 크기를 넘는 것은 흔하지 않다. 향상(香床)은 책상을 닮은 것으로서 문방에 자기가 즐기는 향을 피우기에 족한 조촐한 것이며, 연상(硯床)은 일상필기와 한묵(翰墨)에 쓰이는 벼루와 벅. 붓을 놓고 쓰는 가구이다. 이 연상의 하반부는 4주(四主)만 세워서 공간을 이룬 작품이 보편적인 것이며, 상반부는 두껑이 하나 또 두 짝으로 덮이어 벼룻물을 마르지 않게 하고 먼지를 막는 구실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빈번하게 쓰이고 또 견고해야 되는 까닭에, 치밀한 이재(梨材)나 시재(枾材) 또는 잡목 등이 많이 쓰여진다.


안방가구

장(欌)과 농(籠)은 주로 의류를 넣어 두는 안방가구로서 부인들의 방치레에는 가장 비중이 큰 조도품(調度品)이다. 따라서, 장롱은 신부들이 시집올 때 친정에서 가지고 오는 가장 눈에 띄는 혼인조도품(婚姻調度品)의 하나였고, 또 시가에서 주는 예물로서도 매우 정성어린 것일 경우가 많았다. 대개 과거의 여유 있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나이 들기 전에 미리 장롱감이 될 좋은 재목들을 택해서 여러 해를 앞서서 치목(治木)해 두었었다. 이렇게 주의깊게 마련된 좋은 재료를 가지고 그 집안 단골 공장으로 하여금 정성들여 만들게 한 작품일수록, 각기 그 어버이의 취향과 그 잡안 가도(家道)가 잘 반영되어 있어서 조선시대 장롱의 좋은 전통을 걽는 데, 매우 좋은 밑거름이 되어 준 것이다. 서울은 물론 시골의 시중에는 장전(欌廛)이 있어서 일반서민의 수요를 채워 주었고, 또 왕가나 관수(官需)를 위하여는 서울에 도공장(都工匠). 지방에 외공장(外工匠) 등의 관장(官匠)을 두어 필요한 목공품을 만들었었다.

그러나 높은 교양과 세련된 안목을 지닌 지식인들이 손이 맞는 사장(私匠)들을 시켜서 만든 작품들의 순수한 경지를 따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좋은 장롱들이 서울을 중심해서 많이 생산되었던 것은, 지금 그 주요한 요품들이 서울 시내의 구가(舊家)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짐작이 된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개성(開城)에 특색있는 좋은 장롱들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개성 사람들의 안정된 경제력 위에 고려시대 이래의 목공예의 전통이 뿌리를 잘 내렸던 까닭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장롱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의 장롱이 차지하는 물질적, 정신적 의의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선 한국의 장롱은 그 주택의 구조양식 때문에 가구로서 지닌 효용성이 특이하고도 높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국 부인들이 장롱에 쏟는 정애는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물질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欌)이라 함은 내실에 놓여지는 것을 가리킨 것으로서, 2층 또는 3층을 하나로 이어서 만들어진 것과 독립된 단층장 종류를 의미한다. 그 층수에 따라서 머릿장〔單層〕·2층장· 3층장으로도 불리고, 또 그 용도와 구조에 따라서 의걸이장·실장〔絲欌〕버선장·이불장·솜장등 특수장 종류로 분류되기도 한다. 머릿장과 2층, 3층 장들은 장롱 종류 중에서도 가장 주되는 것으로서 저고리·치마 등 부인들의 웃옷을 비롯해서 주요한 의복 종류를 넣어 두는 그릇이다.

의걸이장은 장 정면에 있는 큰 두짝 문을 열면 높은 곳에 횃대가 가로질러 있어서 두루마기 종류나 긴 옷을 걸어 두게 마련되어 있으며, 이것은 마치 요사이 양식(洋式)으로 된 양복장과 흡사한 내부장치가 되어 있다. 의걸이장도 외관의장에 따라 만살의걸이, 평의걸이 또는 지장의걸이로 나뉘인다. 만살의걸이라 함은 두 문짝을 마치 미닫이 창살처럼 살창으로 만들고 창살을 사(紗)나 색종이로 바른 것을 의미하며, 평의걸이는 살창이 없는 단순한 의장을 의미한다. 또, 지장의걸이는 사랑방이나 서재에서도 쓰이는 것이며, 의장이 매우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상품(上品)으로 친다. 실장은 수실과 바느질실 등을 넣어 두는 조그마한 장으로서, 버선장과 함께 대개 2층으로 된 아기자기한 귀여운 장이며, 조선시대의 실내의장에 순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작품들이다. 이불장은 금침과 베개들을 겹겹이 쌓아두는 장으로서 대게 2층으로 된 것이 많다. 이 이불장과 솜장은 대개 안방에 놓여지지는 않으며, 둘째 방이나 셋째 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 탁자장이라는 것이 있어 어느 한 층의 공간을 애완물이나 장식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데, 이러한 장은 폭과 두께가 좁고 높아서 방의 어느 한구석에 놓으면 사방탁자와 작은 장을 겸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또, 이들 장에 붙은 장식무늬에 따라서 원앙새삼층장·나비삼층장 등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장의 주요 의장 재료에 따라서 지장(紙欌)·비단장·수장(繡欌)·삿자리장·죽장(竹欌)·자개장·주칠장(朱漆欌)·화류장(樺榴欌) 등으로 분류된다. 일반 속어에서는〈장롱〉이라는 한 단어로써 장과 농을 그대로 얼버무려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장과 농는 원래 분별해야 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즉, 농(籠)이라 함은 한 층 한 층 따로 된 같은 크기의 것을 2층 또는 3층으로 포개 놓도록 설계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포개 놓고 보면 장처럼 보이지만, 농에는 대개 상층 상변에 개판(蓋板 : 몸체보다 약간 넓게 지붕 씌워진 것)이 없는 것이 다르며, 특별히 개판이 있는 농일 경우에는 따로〈개판농〉이라고 불린다.

농의 종류는 농·수농·칠롱·자개장롱·죽롱(竹籠)· 함롱·실롱·버선롱 등이 있고, 종류별 기법 재료는 장부(欌部)에서 해설한 바와 같으나, 대개 장의 경우보다 규모가 작고 농다리를 따로 만들어서 받쳐 놓도록 되어 있다. 다만 함농(函籠)이라 하는 종류는 농처럼 문짝이 정면에 달려 있지 않으며, 뚜껑을 일반 함처럼 위로 젖혀 열게 되어 있다. 따라서, 농짝만한 크기의 발이 없는 함을 2중 또는 3중으로 포개어 놓게 마련된 것을 함농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함농 종류는 오동재(吾東材)로 만든 것에 간결한 백동 장식을 붙인 것이많으며, 포개어 놓고 보면 정면에는 각 층마다 둥근 앞바탕 장식에 비녀 자물쇠를 걸어놓고 거기에 5색 비단 매듭술이 달린 열쇠를 걸어 두으로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오동재의 목리문(木理紋)을 배경으로 해서 매우 조화된 아름다움을 보이게 마련이다. 이 밖에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농 종류 중에는 나전칠기로 된 것이 적지 않다.

특히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호상(好尙)하던 주칠나전롱(朱漆螺鈿籠)은 일반적인 보급은 없었지만 가작(佳作)이 남겨져 있다. 대체로 내실용 장롱은 문방가구나 사랑방가구에 비해 보면 희박하긴 하지만 약간의 색채들이 도입되어 있는 절이 다르다. 이것은 부녀자들의 거실로서, 그리고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방으로서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색채의 도입마저 매우 국한된 부분과 경우에 한정되어 있음은 주의할 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금색(金色)이 나는 주석장식 보다는 은색(銀色)이 나는 백동장식을 격이 있는 것으로 치며, 백동보다는 거멀장식이 더 어울리는 환경이 우리 가정에는 있는데, 이러한 특색들이 우리 목공예의 아름다움을 성격짓는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장롱의 금속장식 도안도 살펴보면 복잡한 것일수록 중국목공예 장식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고, 간소한 것일수록 한국적인 멋이 풍기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본연의 체질이다. 말하자면, 장롱에 흔히 쓰이는 경첩도 칠보(七寶)경첩·박쥐경첩·제비초리경첩·평나비경첩·돋을나비경첩·줄완자경첩·호패경첩·도인경첩·망두경첩·약과경첩 등 종류가 많지만, 백동으로 된 약과경첩·동그래경첩· 호패경첩 같은 단순 간결한 것이 소박한 한국 장롱에 가장 잘 어울린다. 나전칠기 같은 비교적 화사스럽고 다양한 도안이 들어 있는 바탕에도 역시 이들 단순한 경첩이 잘 들어맞는 것은 오히려 신기로울 지경이다.

장롱에 흔히 쓰이는 앞바탕 장식의 종류는 둥근앞바탕·팔괘(八卦) 앞바탕 8봉(八奉)앞탕·칠보앞바탕·나비앞바탕·네모앞바탕 박쥐앞바탕 등이 있고, 자물쇠의 종류는 비녀자물쇠·옆트기자물쇠·붕어자물쇠·안꽂이 나비자물쇠·용자물쇠·선자물쇠·초롱자물쇠· 약과자물쇠 등이 쓰인다 조선시대 장롱에 가장 흔하게 쓰인 목재는 비교적 조직이 치밀한 배나무· 감나무·호두나무 괴목나무 등이 뼈대로 쓰이고, 소나무, 오동나무 같은 목리(木理)가 좋고 부드러운 재료들은 판재(板材)로 쓰인 경우가 많으며, 이 소나무나 오동나무로 된 장롱은 그 고담(枯淡)한 맛이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보통 거멍쇠장식이 여기에 잘 어울린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밖에도 안방가구는 장롱 외에 함(函) 종류와 궤(櫃) 종류가 있다. 조선시대의 궤 종류에서도 중후한 맛과 견고·성실한 의장으로 한국적인 독특한 조형양식을 보여 주는 것은 반닫이들이다. 특히 거멍쇠장식의 구도와 듬직한 형태로서 인기다 높은 것은 크고 작은 강화(江華)반닫이·개성(開城)반닫이 들이 두드러지며, 박천(博川)궤를 비롯한 평안도 반닫이·경상도 반닫이·전라도 반닫이 등은 약간 기법이 거친 듯하나 쑹쑹이로 불리는 박천거멍쇠장식 등 토속적인 취향이 매우 짙다. 이러한 반닫이들은 19세기 것에 가작이 많으며, 개화 후로는〈수장궤〉라 해서 주석장식이나 백동장식이 수다스럽게 장식된 반닫이들이 유행했으나, 이로써 한국 반닫이의 높은 격조는 매우 속화(俗化)된 느낌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나전칠기(螺鈿漆器)

지금까지 알려진 고대한국의 칠공예품(漆工藝品)으로서 가장 오래된 예는 1946년 경주 호우총(壺?塚)에서 발굴한「목심칠가면(木心漆假面)」이다. 이 칠가면은 목심 위에 옻칠을 한 방상씨(方相氏)이며, 두 눈알은 유리로 만들어 박았고 그 눈은 황금으로 테를 두르고 있다. 부릅뜬 두 눈과 얼굴주름이 험상스러우며, 머리에는 두 뿔자리가 남아 있고, 이맛전에는 철테를 두른 다음 황금으로 점채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후 1973년 경주 황남동 천마총(天馬塚)에서 나온 목심과 협저(夾紵)로 된 채화칠이배(彩畵漆耳杯) 등, 1974년 황남대총(皇南大塚)에서 나온 칠공예품 등 일련의 칠공예품은 모두삼국시대 신라 칠공예의 양상을 전해 주는 유물이다. 천마총에서 나온 칠공예품은 백화피심(白樺皮心) 위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유채(油彩)로 그림을 그린 「기마인물도채화판(騎馬人物圖彩畵板)」·모자차양(帽子遮陽) 등이 있으며, 특히 칠완(漆椀)·이배(耳杯)·조형배(鳥形杯)등 음품(飮品)들이 주의를 끌고 있다.

이들 칠기는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칠기들보다 솜씨가 거칠지만, 마치 중국 장사고분에서 출토된 한대칠기(漢代漆器)들이 보여 주는 색상, 특히 주칠 (朱漆)을 닮았고 테두리도 같은 감각이며, 장식도안도 그 거친 맛이 비슷하다. 이들 칠기의 내면에는 모두 주칠을 하고 외면에는 흑칠(黑漆)을 한 점은 중국고대 칠기들과 같으나, 흑칠 위에 주칠로 그린 도문(圖紋)은 이질적인 요소들로 주목되고 있다. 즉, 고구려 고분벽화, 특히 통구(通溝) 무용총(舞踊塚)에서 볼 수 있는, 마치 불상 광배(光背)를 연상케 해주는 삼각형·당초문트림은, 거의 같은 도문(圖紋)이어서 이들 칠기들이 고구려적인 그러한 문화바탕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삼국시대 칠공예품들이 보여준 기법은 그 기명제식(器皿制式)과 더불어 중국 한·6조시대((漢·六朝時代)의 칠공양식의 짙은 여운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 시대에도 마땅히 우리 목칠가구(木漆家具)가 자리잡혀 있었음직한 일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칠공예품은 현재 분명한 예는 없으나, 『삼국사기』에 칠전(漆典)이라고 일컫는 관서명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관영의 칠공품제작소가 있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전칠기 가구가 이미 통일신라에 있었는지의 여부를 분명히할 수 있는 유물은 없다. 그러나 근래에 신라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당풍(唐風)의 「보상화문 평탈나전경감(寶相華紋平脫螺鈿鏡鑑)」이 민간에 있는 예로 보면 중국 당대의 나전칠공품이 이미 신라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나전칠기의 기법은 중국 당대 나전(唐代螺鈿)의 예와 일본 나라시대(奈 時代)의 나전의 예로 보아서 통일신라에는 이미 나전기법이 있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후 중국에서는 송대(宋代)이래로 나전기법이 쇠퇴했고 고려에서는 오히려 나전기법이 한층 세련되어서, 11세기 무렵으로부터 이미 고려 독자적인 세련미를 보인 나전칠기들이 만들어져 왔다. 인종 원년(1123)에 고려에 사신을 왔던 서긍(徐兢)이 1123년 당시의 고려나전의 발달 양상을 전하여 주는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으로 보면, 그 시대 고려청자의 놀라운 세련미와 나란히 나전 또한 청자에 대등한 세련미가 이루어졌으리라고 짐작된다.

이러한 목칠나전(木漆螺鈿)의 정품(精品)들이 그 당시 숙련된 공장(工匠)들에 의하여 분업적으로 양산되고 있었음은, 『고려사』식화지(食貨志)에 나오는 중상서(中尙署)에 관한 기록으로써 능히 알 수 있다. 이 중상서는 『고려사』백관지(百官志)에 보면 이미 목종조(穆宗朝 : 998∼1009)에 있었던 관영 공예품제작소였으며, 이것은 고려말까지 존속된 듯하다. 이 중상서에는 화업(畵業)·소목장(小木匠)·위장(韋匠)·칠장(漆匠)·마장(磨匠)·나전장(螺鈿匠) 등 칠공들이 직책이 나뉘어져 있었으며, 『고려대장경』의 간행에 따라서 그 경책(經冊)을 수장하기 위한 나전경상(螺鈿經箱)의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고려 원종13(1272)년에는 전함도감(鈿函都監)을 둔 기록도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고려나전의 명품은〈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이 전함조성도감에서 양산했던 경상류들 이다.

그 중에서 주요한 것을 들어보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흑칠나전포류수금문향상(黑漆螺鈿蒲柳水禽紋香籍)」·「흑칠나전국당초문합자(黑漆螺鈿菊唐草紋盒子)」·흑칠나전국당초문소호(黑漆螺鈿菊唐草紋小壺)·「흑칠나전국당초문봉자(黑漆螺鈿菊唐草紋棒子)」, 일본 덕천미술관에 있는 「흑칠나전국당초문경함(黑漆螺鈿菊唐草紋經函)」, 일본 당마사에 있는 「흑칠나전대대모장염주거(黑漆螺鈿?瑁裝念珠?)」, 일본 계춘원(桂春院)에 소장되어 있는 「흑칠나전대모합자(黑柒螺鈿玳瑁盒子)」,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흑칠국문나전경상(黑漆菊紋螺鈿經箱)」영국 대영박물관에 있는 「흑칠국당초문나전경상(黑漆菊唐草紋螺鈿經箱)」(삽도80), 독일 쾰른 동양미술관에 있는 「흑칠국당초문나전상자(黑漆菊唐草紋螺鈿箱子)」(삽도81),화란 암스테르담의 동양미술관에 있는「흑칠당초문나전경상(黑漆唐草紋螺鈿經箱)」등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 명고옥(名古屋) 덕친미술관에 보관된 「흑칠국당초문나전경상」은 보존 상태가 가장 좋고, 또 나전경상의 전형적양식을 갖추고 있는 가장 뛰어난 유물이다.

이 경상이 보인 각부의 적정한 비례와 국당초문으로 전면을 메운 정연한 의장, 그리고 정밀한 공기(工技)를 살펴보면 중세기의 동양나전 중에서 고려나전이 가장 세련되었다고 하는 연유를 알 수 있게 되다. 국당초문을 나전경상 전면에 장식하는 장식하는 것은 그 시대 경상의 정형이었던 모양으로, 암스테르담 동양미술관 소장 경상,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 경상들이 모두 같은 의장이다. 이들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 가장 고격(高格)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흑칠나전포류수금문향상(黑漆螺鈿蒲柳水禽紋香箱 )」은 12세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이 상자의 4면에 거의 회화적으로 다루어진 포류수금문나전의 기법이 세련됨은 나전공예품으로서는 이례적이다. 11세기에는 고려의 조정이 외국에 나전칠기를 예물로 보낼 만큼 자신있는 작품을 생산했었고, 또 고려시대 현존 유물들이 실증하듯이 11, 12세기 무렵의 고려 나전기술은 그 절정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나전의장(螺鈿意匠)의 발달은 아마도 고려 청자상감기법 개발에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전과 청자상감 사이에 문양의 교류가 있었을 것임은 앞서 쓴 바와 같다. 고려시대에 있어서 이와 같은 나전칠기의 발달은 아마도 그 바탕이 통일신라시대의 나전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말하자면 멀리 당의 나전기법과 그 양식에서 자극된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바탕을 고려가 일직부터 이어받아 한층 국풍화(國風化)시켜서 우리가 오늘날 고려나전에서 볼 수 있는 분명한 민족양식으로 정착화 시켰던 것이라고 맏어진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나전공예는 고려왕조의 쇠운과 발맞추어서 13세기 후반기부터는 고려청자가 다다른 운명에 발맞추어 저조화를 거듭했으며, 고려의 모든 공예가 그러했듯이 나전 또한 그 의장과 기법이 해이해지면서 그 성글고 거친 조선시대 초기 나전의장으로 일대전회(一代轉回)를 보였다. 지금, 조선시대 초기 작품으로 확인되는 나전칠기의 뚜렷한 유물은 없다.

대체로 조선시대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의 나전의장은 고려시대 이래의 계승연장이었으며 다만 무늬의 정제성(整齊性)을 잃었고, 또 공기(工技)가 거칠고 성긴 맛에 그 특색이 있다고 생각된다. 비교적 오랜 조선시대의 나전에는 나패분(螺貝粉)이나 우골분(牛骨粉)을 칠에 섞어서 바른 것이 많은 한편, 꼬아서 만든 동선(銅線)을 계선(界線)으로 박는 예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나전문양은 정연한 대칭이 흐트러져서 매우 자연스러운 구도로 다루게 되었으며, 고려시대에도 청자 무늬가 반영되었듯이 조선시대 청화백자(靑華白磁)에 나오는 매죽(梅竹)·화조(花鳥) 무늬 등이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귀족호상(貴族好尙)에 영합하던 고려공예의 우아 정치한 맛은 점진적으로 신선한 민중적 취향으로 기울어지는 자취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짙어졌으며, 대범하고도 거친 표현의 회화적 무늬가 한층 자리를 잡아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경과를 정리해 보면 조선시대의 나전칠기는 대체로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해서 고찰할 수 있다. 즉, 조선시대 초기인 15, 16세기의 나전의장은 연당초문(蓮塘草紋)·보상화문(寶相華紋)·쌍봉문(雙鳳紋)·쌍룡문(雙龍紋) 등 고려시대의 도안이 조략화(粗略化)되고 성글어지면서 아울러 표현이 대형화된다. 중기인 17,18세기에는 전기의 도안구성 구조가 기울어져 가면서 점차로 매죽 ·화조 등 해체된 그림 의장이 가세되었으며. 이 시대 청화백자 도문과 공통적으로 순정적인 표현이 많아진다. 말기에 들어선 19세기에는 나전기법에 끊음질이 성행하게 되었고, 따라서 문양보다 자연묘사가 흔해지는 한편 십장생(十長生)과 산수점경(山水點景)을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한 것이 생겨난다. 그리고 특히 매죽, 화조문 들을 익살과 동심적으로 표현하는 기풍이 갑자기 늘어나서 색다른 치기(稚氣)의 아름다움으로서 조선시대 나전의장이 지니는 하나의 매력을 형성하게 된다.


화각장공예(華角張工藝)

나전공예와 더불어 동양공예사에서 이채로운 것은 화각장공예(華角張工藝)이다. 지금 이러한 한국 화각장공예의 기원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으나 이미 고대로부터 전승해 온 풍토색 짙은 한국의 특색있는 공예의장으로서 주목을 끌기에 족하다. 한국의 공예, 특히 목칠공예가 지니는 담소(淡素)한 색채호상(色彩好尙)과는 동떨어지게 유독 화각공예만이 매우 밝고도 순정적인 고운 색채를 받아들이고 있음은 하나의 이례로서 주의를 끌게 된다. 지금 남겨진 조선시대 화각장공예의 유품들을 살펴보면 거의 부녀자의 신변 잡품과 소품가구들이며, 이것은 아마도 고대로부터의 자수(刺繡)와 더불어 부녀자들의 호상에 영합해서 개발된 풍토색 짙은 민속공예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실패·베갯모·아기농·버선장·실함 등에 나타난 도안이 자수도안(刺繡圖案)에서 전화된 듯 싶은 것이 많은 점으로도 짐작이 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화각베갯모의 의장 중에는 거의 잣베갯모나 수베갯모의 도안을 그대로 전용한 예가 많다. 말하자면 한국민족은 중간색이나 백색에 대한 집념이 강하면서도 부녀자들의 생활공간을 위해서는 대담하게 그 균형을 깨뜨렸음일 보여주고 있다. 이 화각장의 역사가 이미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은, 일본 정창원(正倉院) 유물 중에 한국의 화각장 자〔針尺〕가 있다는 말도 있음으로 보아 짐작을 할 수는있으나, 그것을 확인할 수 없고 지금 국내에는 그처럼 오랜 유물은 알려진 것이 없다.

지금 남아 있는 화각장공예품은 18세기를 넘어서는 오랜 것은 거의 없으며, 18세기 유물도 매우 드물다. 이것은 화각장공예가 한서(寒暑)와 건습(乾濕)의 차가 매우 심한 한국 기후 속에서 오래 보존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나전칠기의 경우 와 같다. 그뿐만 아니라 화각장공예 특히 소품들은 그 품목부터가 소모품류에 드는것이었으므로, 자연 소모성향이 높아서 대개 버려졌던 까닭도 있다고 믿어진다. 대략 19세기 작품으로 보여지는 화각장공예의 의장도문(意匠圖紋)을 살펴보면, 일반 공예품에 가장 흔하게 쓰여진 십장생무늬가 화각에서도 가장 흔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용봉(龍鳳)·기린(麒麟)·봉황(鳳凰)·사군자(四君子)·화조(花鳥) 등이 그 버금을 이루고 있다. 화각장공예품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해서 모두 그 예를 들기 어려울 정도이며, 침선(針線道具)도구로서는 반짇고리·자· 실패·침통 등이 있고, 가구소품으로는 아기3층장·버선장·실농 등이 있으며, 함 종류로는 예물함·실함이 있고, 화장도구로서는 경대·얼레·빗· 참빗이 있으며, 그 밖에 붓두껍·벼루집·필통·부챗살·장도칼 등이 있다.

이러한 화각장에 쓰이는 쇠뿔은 투명도가 높고 그 질이 거세지 않은 한우(韓牛)의 것이 적격으로, 한국 화각장공예의 오랜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금세기 초두 무렵에 끈질기게 시도된 때가 있었다. 즉, 이완용(李完用) 등이 주동이 되어 이왕가 미술품제작소(李王家美術品製作所)라는 것을 세우고 각종 전승공예 기능자들을 모아서 공예품 생산고 그 기능의 전승을 꾀한 것이 그것이었다. 이 제작소가 서 있는 동안 다른 공예품도 그러했지만, 화각장공예작품은 조선시대 것과 다름없는 가작들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오늘날 고미술품상에서 거래되는 화각장공예품 중에는 그것들이 조선시대의 것으로 통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죽공가구(竹工家具)

죽공예(竹工藝)의 발달은 일본과 중국에도 있었으나, 한국 죽공예 또한 죽재(竹材)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충분히 살려서, 그 가능한 창의(創意)를 기울인 공예작품들이 많다. 죽공에품의 종류는 거의 목공예로 이룰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있으나, 그 재료의 기법에 따라서 낙죽(烙竹)·염죽(染竹)·할죽(割竹)· 첩죽(貼竹) 등 여러 종류로 나뉘어 진다. 〈낙죽〉은 죽판 위에 인두로써 농담(農談)과 강약(强弱)이 있게 지져서 목공가구 등에 장식한 재료이며. 〈염죽〉은 자색(姿色)등 몇 가지 품위 있는 색으로 죽판을 물들이거나 얼룩지게 해서 묵공품 표면에 붙여서 쓴다.염죽법은 재래식 비법에 따르는 것이어서 공개되지 않았으나 호남지방에서는 지금도 성행하고 있다.

〈할죽〉은 죽재를 가늘고 둥글게 재어 내는 것을 일앨는다. 이 기술은 아마도 한국 사람이 최고라 할 만큼 능숙해서 때로는 1mm도 못 된는 직경의 가는 죽재를 대나무 길이대로 7,8m까지도 고르게 빼낼 수 있으며 이것은 발과 갓죽립(竹笠)〈사립〉등 세밀한 세공에 쓰여진다. 〈첩죽〉은 죽재의 표면을 얇게 벗겨 내어 목공가구나 합죽선(合竹扇) 같은 소품(小品) 위에 접착제로써 붙여서 쓰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죽지(竹紙)〉라고 할 만큼 둬게 죽재를 벗겨 낸 후에 이것을 발라서 쓰는 경우와 도톰하게 저며 낸 죽판을 죽문갑(竹文匣)·죽탁자(粥卓子)·죽연상(竹硯箱) 등 아취 있는 가구의 표면에 장식하기도 했다.

-이상은 ‘국보’시리즈14권(웅진출판주식회사) 中 제5권 공예편에서 발췌했습니다.

→출처 : http://my.dreamwiz.com/jspch/jspch3/STUDY/STUDY6.HTM

 

네이버 지식 IN  내용을 찿아 ....

 

20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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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1. 농산물 : 제주도 한라봉과 감귤, 청견오렌지 세미놀, 노지감귤과 파인애플, 용과 탐라향이있다. 아떼모아라는 과일도 역시 제주도에서 재배되고 있다.

2.수산물 :  은갈치, 그리고 옥돔과 돌미역 진공고등어가 유명하다.

3.축산물 :  제주도 조랑말고기와 뼈가 유명하고 제주도흑돼지도 전국적으로 생고기중 최고라고 불린다. 제주도 똥돼지라고도 한다.

4.임산물 :  한라산에서 자라는 더덕과 도라지와 두룹이 유명하다. 한라산산채라고 한다.

5.국화 : 국화베개와 국화차류가 유명하다.

6.돌하르방 : 돌하르방도 유명하여 기념품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제주도에는 돌도 유명해서 석조각품이나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다.

 

여주

여주쌀, 대신면 땅콩, 고구마, 도자기, 그외에 표고버섯, 여주배, 참외등이 있다.

 

경기도

가평군 - 사과, 꿀, 식혜, 잣
강화군 - 화문석, 순무, 인삼
고양시 - 장미, 선인장, 분재
과천시 - 화훼, 분재, 과일
광명시 - 자동차
광주시 - 남한산성소주, 토마토, 왕실도자기
구리시 - 먹골배, 무우말랭이
군포시 - 방짜유기
김포시 - 김포배, 김포쌀, 포도, 폐백음식
남양주시 - 먹골배, 장뇌삼
동두천시 - 적상추
수원시 - 용지대월, 수원갈비
시흥시 - 미나리, 쭈꾸미
안산시 - 대부포도
안성시 - 쌀, 포도, 인삼, 안성배, 한우
안양시 - 옥미주
양주시 - 부추, 밤
양평군 - 팽이버섯, 표고버섯, 산채나물, 한우, 안성유기, 안성포도
여주군 - 여주쌀, 땅콩, 금싸라기참외, 도자기, 표고버섯, 고구마
용인시 - 오이, 장류, 옥로주, 닭고기 가공류, 자라, 용인민속쌀 백옥', 청둥오리쌀, 백암순대
연천군 - 율무, 백학참외, 느타리버섯, 쌀, 임진강북상참기름,병배
의왕시 - 분재
의정부시 - 송산배, 떡갈비, 부대찌개
이천시 - 이천쌀, 복숭아, 백합, 돼지고기
파주시 - 전통한과, 미숫가루, 참게
평택시 - 평택쌀, 평택배, 평택오이, 평택애호박, 평택화훼
포천시 - 일동막걸리, 버섯스낵, 느타리버섯, 인삼가공류, 이동갈비
하남시 - 부추, 화훼
화성시 - 김치, 알타리무, 순우리밀국수, 백세주, 대하

 

부산

소금(천일염)-청정해역의 맑은 바닷물을 원료로 사용하여 생산한 신안군 천일염은
세균 활동 억제작용이 월등하여 김치, 된장을 장기간 보관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물러짐 방지효과)
새우젓-싱싱한 돗대기 새우의 유일한 산란지인 신안 임자도의 전장포 근해
에서 6월에 잡은 품질 좋은 새우를 곧바로 천일염으로 담구어 
저온 숙성시켜 맛과 향이 뛰어나며 핵산이 함유된 순수한 자연식품임
다시마-서남해안의 청정해역에서 채취하여 자연해풍으로 건조한 다시마는
맛과 빛깔이 뛰어나며 칼슘과 철분이 많은 자연식품임

대구

-분지에 위치한 대구는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고, 토질이 사질토양인데다, 일조량이 풍부하여 색깔과 맛, 품질이 좋은 사과를 재배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 외에 딸기, 참외, 감식초 등이 있다.

 

울릉도

1.오징어 : 울릉도의 근해바다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깊고 푸르며 물이 아주 맑다. 울릉도의 오징어는 울릉도 근해에서저녁에 출어하여 잡아서 새벽에 맑은 물에 씻어 바람과 햇볕에 말린 것으로써 맛이달고 고소하다. 
2.호박엿 : 울릉도 호박엿은 섬의 개척사와 함께 그 맥을 이어오면서 오늘날까지 명물로써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울릉도 호박엿이 유명한 이유는 울릉도에서 생산되는 호박이 다른 지역보다 당분등이 월등히 많이 함유되어 호박엿의 맛과 달기가 다른 엿과는 비교가 단될 정도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3.각종 산나물 : 울릉도 산채는 해발 300m 이상 고지대에서 채취한 것으로 산채 생육에 가장 이상적인 토양과 기후조건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머금고 겨울철 눈속에서부터 자라는 향긋하고 상큼한 맛을 내는 무공해 산채로서 위장병, 현기증 치료와 암예방에 효과가 있다. 산채종류로는 미역취, 부지갱이, 삼나물, 고비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산업은 농사와 굴뚝 산업이라 일컬어지는  일차 제조산업입니다

 

농사는 점점  빈약해지고있으며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70%정도이든것이 이제는 30%도 되지 않으며 더군다나  나이가 많이드신 고령자들만이 종사를 하고있는 형편이어서 매우 인력낭리 심각하다

 

젊은사람들은 보다 낳은 일자리를 찾아서 도회지로 나가고 남은사람들만이 농사에 종사하다보니 생산력은 떨어지고 생산력이 떨어지니꺼 경쟁력이 떨어지고 외국농산물은 무작정 수입되고 그래서 더욷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실정입니다

 

 

일차제조산업역시  우리나라가 전자산업과  자동차등 중공업산업으로 발돋음하면서  국둑산업인 제조산업은 사양길에 들어서서  외국으로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인건비는 비싸고 공장지을 땅은 적고 땅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경쟁을 할수가 없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이 많이 도산하기도하묘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해가소 있는 실정입니다

 

200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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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길긴하지만,...그래두 ㄳ

도움이돼시기를바랍니다 몇번보심될꺼에용

시·도청을 찾아서

우리 시·도청은 어디에 있을까?
  ① 도청, 시청, 군청 등은 우리 지역의 살림을 맡아 보는 곳이다.
  ② 내가 살고 있는 도에는 몇 개의 시와 몇 개의 군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③ 내가 살고 있는 시나 군의 주위에는 어떤 시·군 등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시·도청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① 시·도 의회에서는 시·도 전체의 살림살이를 확인·감독하고, 주민의 요구 사
      항을 들어 준다.
  ② 시·도청에서는 시·도의 살림살이를 직접 맡아서 하며, 살기 좋은 시·도를 만
      들기 위한 여러 가지 복지 사업을 한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 하는 일
  ① 지역 주민 생활의 불편을 해결해 줍니다.
  ②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종합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합니다.
  ③ 도로, 주택, 상·하수도 건설 등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합니
      다.
  ④ 지역 문화를 가꾸고 발전시킵니다.

시·도 의회의 구성을 알아봅시다.
  ① 각 선거구에서 당선된 의원들로 구성된다.
  ② 본 회의 : 본회의 구성원은 해당 연도의 지방 자치 단체 선거구에서 선출된
      모든 의원이다.
  ③ 상임 위원회 : 의장이 조례에 규정된 상임 위원회의 위원수대로 적당한 의원
      을 추천하고, 본회의 의결을 거쳐 상임 위원회 위원이 된다.

시·도 의회에서 주민들을 위하여 하는 일
  ① 주민의 대표로서 시·도의 예산을 심의하고, 법을 만들어 시·도청에서 주민을
      위해 올바르게 일하도록 의논하고 감독한다.
  ② 지방의 고유한 사무를 처리한다.
  ③ 중앙 정부에서 지방 의회로 나누어 준 일을 처리한다.
  ④ 지방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이나, 지방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한
      다.

 

지역의 대표 뽑기

모의 선거를 통하여 선거의 절차를 알아봅시다.

   

  ① 각 모둠은 우리 시의 문제를 조사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토의하여 선거 공
      약을 정한다. 선거 홍보 벽보와 팜플릿을 작성하고 연설문도 만든다.
  ② 각 모둠의 후보는 선거 관리 위원들의 감독 아래 선거 연설을 한다. 이 때,
      다른 후보를 헐뜯는 말을 하지 않고 선거 공약을 내세운다.
  ③ 교실에 투표소를 마련하고 비밀 선거에 의해 투표를 실시한다. 선거 관리
      위원의 입회 아래 개표를 마치고, 당선자를 발표한다.

민주주의 선거 4가지 원칙을 알아봅시다.
  ① 보통 선거 : 일정한 기준에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투표에 참가할 수 있다.
  ② 평등 선거 :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은 누구나 1표씩의 투표를 할 수 있다.
  ③ 비밀 선거 : 투표를 한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도록 투표 내용은 비밀로 한다.
  ④ 직접 선거 : 투표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하고 만약, 직접 할 수 없으면 기권이
      된다.

 

지방 의회 견학

지방 의회 견학 계획을 세워 봅시다.
  ① 견학 날짜
  ② 견학할 장소
  ③ 알아볼 내용
      · 의회의 구성
      · 의원의 수
      · 의회에서 하는 일
      · 회의하는 내용

지방 의회가 하는 일을 조사하여 봅시다.
  ① 주민의 의견을 듣는다.
  ② 지역의 기관들과 협의회를 개최한다.
  ③ 지역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다.
  ④ 사업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심의한다.

 

우리 시·도를 상징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① 상징 마크
  ② 시·도의 꽃
  ③ 시·도의 나무
  ④ 시·도의 새
  ⑤ 시·도의 노래
  ⑥ 시·도의 특산물
  ⑦ 시·도의 특수한 조형물
  ⑧ 시·도의 특수한 건물
  ⑨ 시·도의 독특한 문화재 등이 있다.

 

각 시·도를 상징하는 마크

각 시·도를 상징하는 마크에는 그 지방을 나타내는 뜻이 있다.

  [광주광역시의 상징마크]


  광주광역시의 기본 심볼은 빛과 생명의 원천인 태양과 인간 형상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세계, 미래로 열린 빛고을 광주의 열망과 진취적 기상을 표현한 것으로 전체 둥근 원은
  태양을,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경쾌한 곡선은 인간을 의미한다.

  [광주광역시 새(시조)]

   평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화합과 안정을 추구하는 광주 시민 정서를 상징한다.

  [광주광역시 꽃(시화)]

   무등산에 자생하는 꽃으로 광주 시민의 끈질긴 근성과 후한 인심, 다정다감함을 상징한다.

  [광주 광역시 나무(시목)]

   나무가 곧고 수명이 길어 거목으로 성장하므로 광주의 기개와 무궁한 발전을 상징한다.


우리 시·도의 여러 문제

[쓰레기 문제]

  (1) 도시의 인구 집중과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해마다 쓰레기 양이 늘어
       난다.
       ① 주거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신문류, 음료수 병, 폐가구류, 의류, 음식
           물 찌꺼기류 등
       ② 산업 단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폐유, 헌기계류, 화학 약품류 등
       ③ 상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음식물 찌꺼기, 목재류, 폐건축 재료 등

  (2) 쓰레기 처리 문제
       ① 지방자치마다 쓰레기 처리장을 만든다.
       ② 곳곳에 소각장을 만든다.

  (3) 문제점
       ① 인근 주민들이 쓰레기장 및 소각장 시설물의 설치를 반대한다.
       ② 오염된 물, 공기, 냄새 등으로 주위에 피해를 준다.

[교통 문제]

  (1) 생활 수준이 높아지자 승용차가 늘어나고 있다.
       ① 1가구 1차 세대에서 1가구 2차 세대가 늘고 있다.
       ② 승용차가 늘어나는 만큼 주차 시설과 도로의 확충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 교통 관련 문제
     ① 도로의 차량 증가로 매연이 심하여져 공기가 나빠지고 있다.
     ② 주차장의 부족으로 아무 곳이나 주차해서 통행에 불편을 준다.
     ③ 골목 주차로 통행 불편, 소음, 냄새 등의 발생으로 주민 생활이 불편해
         진다.

[토지 개발과 관련된 문제]

(1) 고속 도로 건설 문제
     ① 아름다운 산이 훼손되어 가고 있다.
     ② 자연 보호 지역의 환경 파괴가 되기도 한다.

(2) 위락 시설 문제
     ① 골프장 건설로 숲이 훼손되며 폐수, 시설물의 건설 등으로 자연이 훼손
         된다.
     ② 휴양 시설의 건설로 자연림이 파괴된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


[주택 부족 문제]
①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지역에서는 해마다 집을 지어야 한다.
② 녹지나 농경지가 줄어든다.
③ 택지 개발로 자연 환경이 파괴되기도 한다.

[부족한 주차 문제]
① 골목마다 차량 주차로 통행이 불편하다.
② 불이 나거나 위급한 상황이 있을 때 구급차, 소방차의 통행이 어려워진다.
③ 매연과 소음이 심하여진다.

[도시 재개발 문제]
① 주택 재개발 계획에 대한 주민의 반대가 심하기도 하다.
② 길을 넓히거나 근린 공원을 세울 땅이 부족하다.

[학교 주변의 상업 시설 문제]
- 학교 주변에 호텔, 호화 음식점, 성인용 휴게 시설이 세워져 학생들의 정서
   생활을 해치기도 한다.

[그밖에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로 주민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
① 아파트에서 애완 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②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옆집에 피해(소음, 햇빛 차단, 골목길 차단)를 준다.
③ 골목 주차 질서를 안 지켜 통행에 불편을 준다.

 

우리 시·도의 여러 문제

1) 우리 고장과 다른 고장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알아보자.

(1) 고장(지역)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① 쓰레기 매립장, 소각장, 장례식장, 원자력 발전소 등의 지역 선정 문제
         이다.
     ② 자연 환경 오염: 매연, 냄새, 오염 물질을 발생시킨다.
     ③ 보기 안 좋음: 장례식장, 화장터 등이 있다.

(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사정
     ① 전체 우리 시·도 주민을 위해서 꼭 필요한 시설들이다.
     ② 어느 지역에서든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2) 지역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여 나가는지 알아보자.

[쓰레기 매립장의 예]

(1) 주민들의 여론 조사와 설득
     ①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알아본다.
     ② 반대 의견이 있을 경우 설득과 이해를 구한다.
     ③ 지방 자치 단체 및 지방 의회, 지역 주민들 간 협의를 한다.
     ④ 공청회를 열어 대책을 마련한다.
     ⑤ 지방자치 단체장은 최종 결정하여 그 결과를 발표한다.

(2) 갈등 문제의 해결 과정
     여론 조사 ⇒ 반대 운동 ⇒ 주민과의 협의회 ⇒ 공청회 ⇒ 최종 결정 ⇒ 주
     민에 대한 보상

 

시민 단체는 어떤 일을 할까요?

시민 단체란?
① 시민 단체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활동한다.
②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회원이 된다.
③ 환경 보존, 바른 사회 세우기, 소비자 보호 운동과 관련된 시민 단체가 있다.

시민 단체의 하는 일
① 정치, 경제, 국가 정책 등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고치도록 주장한다.
② 환경을 훼손하는 국가 정책 등에 반대하는 운동을 한다.
③ 시민의 인권 침해가 있는 일에 대하여 항의한다.
④ 환경 운동 연합에서 하는 일
    - 새만금 갯벌 살려 주세요!
       :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는 운동이다.
    - 난지도 골프장 건설 반대
       : 자연 생태계로 복원하자는 운동이다.
    - 지리산 식수 댐 건설 반대
       : 남강, 낙동강, 지리산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운동이다.
    - 모피 옷 입기 반대
       : 야생 동물을 보호하자는 운동이다.

시민 단체의 활동 방법
① 피켓을 들고 항의한다.

② 서명 운동을 통해 항의한다.

③ 인터넷을 통해 항의 내용을 올린다.

 


시·도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바라는 것 알기

(1) 주민들의 바람을 조사할 수 있는 방법
     ① 고장 주민과의 면담
     ② 고장의 신문이나 잡지 찾아보기
     ③ 고장의 기관장이나 민원 담당자 찾아가 보기
     ④ 인터넷을 이용하여 조사하기

(2) 주민들이 바람(설문 조사 예)
     ① 자랑거리

        주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잘 보존된 성곽이며, 아름다운 가로
        수길과 전통 한옥도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다.
    ② 해결되어야 할 문제

        우리 고장의 주민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문제에는 교통 문제, 환경 문
        제, 청소년 문제 등이다.
    ③ 미래의 자연 환경

        우리 고장의 주민들이 미래의 자연 환경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맑은
        공기이다.

 

우리 시·도의 미래 모습은?

(1) 첨단 정보 산업이 발달한 고장
     - 교통 수단이 지금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발전할 것이다.
     - 첨단 정보 산업의 발달로 인공 지능 시설들이 많아질 것이다.
     - 무인 시스템이 많이 생길 것이다.

(2) 쾌적한 환경
     - 도시 속에 운하(물길)와 연못을 만들어 휴식처를 만든다.
     - 여러 가지 과일과 꽃을 피우는 복합 나무가 가로수로 정하여질 것이다.

(3) 생활 모습의 변화
     - 항법 자동차가 발명되어 앞차와 절대 부딪치지 않는다.
     - 집에서 시장보기, 공부, 치료, 공연 감상 등을 할 것이다.
     - 정보를 말로 안내하는 컴퓨터 겸용 텔레비전이 생길 것이다.

 

우리 시·도의 미래 모습


(1) 고장의 미래 모습을 그림지도로 나타내어 보자.


(2) 위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여 보자.
     · 도심의 공원은 숲이 우거지고 귀여운 동물들이 생활하고 있다.
     ·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공중 브릿지(다리)를 연결하여 오고 갈 수 있다.
     · 부상 철도가 있어 공중으로 전철이 다닌다.
     · 사람이 많이 모이는 홀에는 대형 스크린으로 실황 방송을 볼 수 있다.
     · 샛강은 물이 맑아 고기가 많아지고 새들의 낙원이 만들어진다

출처 : m[a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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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여러 시도의 전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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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초 (나 강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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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여러 시도의 전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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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바라는 것 알기

(1) 주민들의 바람을 조사할 수 있는 방법
     ① 고장 주민과의 면담
     ② 고장의 신문이나 잡지 찾아보기
     ③ 고장의 기관장이나 민원 담당자 찾아가 보기
     ④ 인터넷을 이용하여 조사하기

(2) 주민들이 바람(설문 조사 예)
     ① 자랑거리

        주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잘 보존된 성곽이며, 아름다운 가로
        수길과 전통 한옥도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다.
    ② 해결되어야 할 문제

        우리 고장의 주민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문제에는 교통 문제, 환경 문
        제, 청소년 문제 등이다.
    ③ 미래의 자연 환경

        우리 고장의 주민들이 미래의 자연 환경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맑은
        공기이다.

 

우리 시·도의 미래 모습은?

(1) 첨단 정보 산업이 발달한 고장
     - 교통 수단이 지금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발전할 것이다.
     - 첨단 정보 산업의 발달로 인공 지능 시설들이 많아질 것이다.
     - 무인 시스템이 많이 생길 것이다.

(2) 쾌적한 환경
     - 도시 속에 운하(물길)와 연못을 만들어 휴식처를 만든다.
     - 여러 가지 과일과 꽃을 피우는 복합 나무가 가로수로 정하여질 것이다.

(3) 생활 모습의 변화
     - 항법 자동차가 발명되어 앞차와 절대 부딪치지 않는다.
     - 집에서 시장보기, 공부, 치료, 공연 감상 등을 할 것이다.
     - 정보를 말로 안내하는 컴퓨터 겸용 텔레비전이 생길 것이다.

 

우리 시·도의 미래 모습


(1) 고장의 미래 모습을 그림지도로 나타내어 보자.


(2) 위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여 보자.
     · 도심의 공원은 숲이 우거지고 귀여운 동물들이 생활하고 있다.
     ·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공중 브릿지(다리)를 연결하여 오고 갈 수 있다.
     · 부상 철도가 있어 공중으로 전철이 다닌다.
     · 사람이 많이 모이는 홀에는 대형 스크린으로 실황 방송을 볼 수 있다.
     · 샛강은 물이 맑아 고기가 많아지고 새들의 낙원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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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여러 시도의 전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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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돼시기를바랍니다 몇번보심될꺼에용

시·도청을 찾아서

우리 시·도청은 어디에 있을까?
  ① 도청, 시청, 군청 등은 우리 지역의 살림을 맡아 보는 곳이다.
  ② 내가 살고 있는 도에는 몇 개의 시와 몇 개의 군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③ 내가 살고 있는 시나 군의 주위에는 어떤 시·군 등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시·도청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① 시·도 의회에서는 시·도 전체의 살림살이를 확인·감독하고, 주민의 요구 사
      항을 들어 준다.
  ② 시·도청에서는 시·도의 살림살이를 직접 맡아서 하며, 살기 좋은 시·도를 만
      들기 위한 여러 가지 복지 사업을 한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 하는 일
  ① 지역 주민 생활의 불편을 해결해 줍니다.
  ②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종합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합니다.
  ③ 도로, 주택, 상·하수도 건설 등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을 계획하고 실천합니
      다.
  ④ 지역 문화를 가꾸고 발전시킵니다.

시·도 의회의 구성을 알아봅시다.
  ① 각 선거구에서 당선된 의원들로 구성된다.
  ② 본 회의 : 본회의 구성원은 해당 연도의 지방 자치 단체 선거구에서 선출된
      모든 의원이다.
  ③ 상임 위원회 : 의장이 조례에 규정된 상임 위원회의 위원수대로 적당한 의원
      을 추천하고, 본회의 의결을 거쳐 상임 위원회 위원이 된다.

시·도 의회에서 주민들을 위하여 하는 일
  ① 주민의 대표로서 시·도의 예산을 심의하고, 법을 만들어 시·도청에서 주민을
      위해 올바르게 일하도록 의논하고 감독한다.
  ② 지방의 고유한 사무를 처리한다.
  ③ 중앙 정부에서 지방 의회로 나누어 준 일을 처리한다.
  ④ 지방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이나, 지방의 여러 가지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한
      다.

 

지역의 대표 뽑기

모의 선거를 통하여 선거의 절차를 알아봅시다.

   

  ① 각 모둠은 우리 시의 문제를 조사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토의하여 선거 공
      약을 정한다. 선거 홍보 벽보와 팜플릿을 작성하고 연설문도 만든다.
  ② 각 모둠의 후보는 선거 관리 위원들의 감독 아래 선거 연설을 한다. 이 때,
      다른 후보를 헐뜯는 말을 하지 않고 선거 공약을 내세운다.
  ③ 교실에 투표소를 마련하고 비밀 선거에 의해 투표를 실시한다. 선거 관리
      위원의 입회 아래 개표를 마치고, 당선자를 발표한다.

민주주의 선거 4가지 원칙을 알아봅시다.
  ① 보통 선거 : 일정한 기준에 맞는 사람이면 누구나 투표에 참가할 수 있다.
  ② 평등 선거 :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은 누구나 1표씩의 투표를 할 수 있다.
  ③ 비밀 선거 : 투표를 한 사람은 남이 알지 못하도록 투표 내용은 비밀로 한다.
  ④ 직접 선거 : 투표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하고 만약, 직접 할 수 없으면 기권이
      된다.

 

지방 의회 견학

지방 의회 견학 계획을 세워 봅시다.
  ① 견학 날짜
  ② 견학할 장소
  ③ 알아볼 내용
      · 의회의 구성
      · 의원의 수
      · 의회에서 하는 일
      · 회의하는 내용

지방 의회가 하는 일을 조사하여 봅시다.
  ① 주민의 의견을 듣는다.
  ② 지역의 기관들과 협의회를 개최한다.
  ③ 지역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다.
  ④ 사업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심의한다.

 

우리 시·도를 상징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① 상징 마크
  ② 시·도의 꽃
  ③ 시·도의 나무
  ④ 시·도의 새
  ⑤ 시·도의 노래
  ⑥ 시·도의 특산물
  ⑦ 시·도의 특수한 조형물
  ⑧ 시·도의 특수한 건물
  ⑨ 시·도의 독특한 문화재 등이 있다.

 

각 시·도를 상징하는 마크

각 시·도를 상징하는 마크에는 그 지방을 나타내는 뜻이 있다.

  [광주광역시의 상징마크]


  광주광역시의 기본 심볼은 빛과 생명의 원천인 태양과 인간 형상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세계, 미래로 열린 빛고을 광주의 열망과 진취적 기상을 표현한 것으로 전체 둥근 원은
  태양을,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경쾌한 곡선은 인간을 의미한다.

  [광주광역시 새(시조)]

   평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화합과 안정을 추구하는 광주 시민 정서를 상징한다.

  [광주광역시 꽃(시화)]

   무등산에 자생하는 꽃으로 광주 시민의 끈질긴 근성과 후한 인심, 다정다감함을 상징한다.

  [광주 광역시 나무(시목)]

   나무가 곧고 수명이 길어 거목으로 성장하므로 광주의 기개와 무궁한 발전을 상징한다.


우리 시·도의 여러 문제

[쓰레기 문제]

  (1) 도시의 인구 집중과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해마다 쓰레기 양이 늘어
       난다.
       ① 주거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신문류, 음료수 병, 폐가구류, 의류, 음식
           물 찌꺼기류 등
       ② 산업 단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폐유, 헌기계류, 화학 약품류 등
       ③ 상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음식물 찌꺼기, 목재류, 폐건축 재료 등

  (2) 쓰레기 처리 문제
       ① 지방자치마다 쓰레기 처리장을 만든다.
       ② 곳곳에 소각장을 만든다.

  (3) 문제점
       ① 인근 주민들이 쓰레기장 및 소각장 시설물의 설치를 반대한다.
       ② 오염된 물, 공기, 냄새 등으로 주위에 피해를 준다.

[교통 문제]

  (1) 생활 수준이 높아지자 승용차가 늘어나고 있다.
       ① 1가구 1차 세대에서 1가구 2차 세대가 늘고 있다.
       ② 승용차가 늘어나는 만큼 주차 시설과 도로의 확충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 교통 관련 문제
     ① 도로의 차량 증가로 매연이 심하여져 공기가 나빠지고 있다.
     ② 주차장의 부족으로 아무 곳이나 주차해서 통행에 불편을 준다.
     ③ 골목 주차로 통행 불편, 소음, 냄새 등의 발생으로 주민 생활이 불편해
         진다.

[토지 개발과 관련된 문제]

(1) 고속 도로 건설 문제
     ① 아름다운 산이 훼손되어 가고 있다.
     ② 자연 보호 지역의 환경 파괴가 되기도 한다.

(2) 위락 시설 문제
     ① 골프장 건설로 숲이 훼손되며 폐수, 시설물의 건설 등으로 자연이 훼손
         된다.
     ② 휴양 시설의 건설로 자연림이 파괴된다.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


[주택 부족 문제]
①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지역에서는 해마다 집을 지어야 한다.
② 녹지나 농경지가 줄어든다.
③ 택지 개발로 자연 환경이 파괴되기도 한다.

[부족한 주차 문제]
① 골목마다 차량 주차로 통행이 불편하다.
② 불이 나거나 위급한 상황이 있을 때 구급차, 소방차의 통행이 어려워진다.
③ 매연과 소음이 심하여진다.

[도시 재개발 문제]
① 주택 재개발 계획에 대한 주민의 반대가 심하기도 하다.
② 길을 넓히거나 근린 공원을 세울 땅이 부족하다.

[학교 주변의 상업 시설 문제]
- 학교 주변에 호텔, 호화 음식점, 성인용 휴게 시설이 세워져 학생들의 정서
   생활을 해치기도 한다.

[그밖에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로 주민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
① 아파트에서 애완 동물을 기르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②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옆집에 피해(소음, 햇빛 차단, 골목길 차단)를 준다.
③ 골목 주차 질서를 안 지켜 통행에 불편을 준다.

 

우리 시·도의 여러 문제

1) 우리 고장과 다른 고장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알아보자.

(1) 고장(지역) 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
     ① 쓰레기 매립장, 소각장, 장례식장, 원자력 발전소 등의 지역 선정 문제
         이다.
     ② 자연 환경 오염: 매연, 냄새, 오염 물질을 발생시킨다.
     ③ 보기 안 좋음: 장례식장, 화장터 등이 있다.

(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사정
     ① 전체 우리 시·도 주민을 위해서 꼭 필요한 시설들이다.
     ② 어느 지역에서든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2) 지역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여 나가는지 알아보자.

[쓰레기 매립장의 예]

(1) 주민들의 여론 조사와 설득
     ①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알아본다.
     ② 반대 의견이 있을 경우 설득과 이해를 구한다.
     ③ 지방 자치 단체 및 지방 의회, 지역 주민들 간 협의를 한다.
     ④ 공청회를 열어 대책을 마련한다.
     ⑤ 지방자치 단체장은 최종 결정하여 그 결과를 발표한다.

(2) 갈등 문제의 해결 과정
     여론 조사 ⇒ 반대 운동 ⇒ 주민과의 협의회 ⇒ 공청회 ⇒ 최종 결정 ⇒ 주
     민에 대한 보상

 

시민 단체는 어떤 일을 할까요?

시민 단체란?
① 시민 단체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활동한다.
②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회원이 된다.
③ 환경 보존, 바른 사회 세우기, 소비자 보호 운동과 관련된 시민 단체가 있다.

시민 단체의 하는 일
① 정치, 경제, 국가 정책 등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고치도록 주장한다.
② 환경을 훼손하는 국가 정책 등에 반대하는 운동을 한다.
③ 시민의 인권 침해가 있는 일에 대하여 항의한다.
④ 환경 운동 연합에서 하는 일
    - 새만금 갯벌 살려 주세요!
       :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는 운동이다.
    - 난지도 골프장 건설 반대
       : 자연 생태계로 복원하자는 운동이다.
    - 지리산 식수 댐 건설 반대
       : 남강, 낙동강, 지리산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운동이다.
    - 모피 옷 입기 반대
       : 야생 동물을 보호하자는 운동이다.

시민 단체의 활동 방법
① 피켓을 들고 항의한다.

② 서명 운동을 통해 항의한다.

③ 인터넷을 통해 항의 내용을 올린다.

 


시·도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이 바라는 것 알기

(1) 주민들의 바람을 조사할 수 있는 방법
     ① 고장 주민과의 면담
     ② 고장의 신문이나 잡지 찾아보기
     ③ 고장의 기관장이나 민원 담당자 찾아가 보기
     ④ 인터넷을 이용하여 조사하기

(2) 주민들이 바람(설문 조사 예)
     ① 자랑거리

        주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잘 보존된 성곽이며, 아름다운 가로
        수길과 전통 한옥도 자랑거리로 생각하고 있다.
    ② 해결되어야 할 문제

        우리 고장의 주민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문제에는 교통 문제, 환경 문
        제, 청소년 문제 등이다.
    ③ 미래의 자연 환경

        우리 고장의 주민들이 미래의 자연 환경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맑은
        공기이다.

 

우리 시·도의 미래 모습은?

(1) 첨단 정보 산업이 발달한 고장
     - 교통 수단이 지금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발전할 것이다.
     - 첨단 정보 산업의 발달로 인공 지능 시설들이 많아질 것이다.
     - 무인 시스템이 많이 생길 것이다.

(2) 쾌적한 환경
     - 도시 속에 운하(물길)와 연못을 만들어 휴식처를 만든다.
     - 여러 가지 과일과 꽃을 피우는 복합 나무가 가로수로 정하여질 것이다.

(3) 생활 모습의 변화
     - 항법 자동차가 발명되어 앞차와 절대 부딪치지 않는다.
     - 집에서 시장보기, 공부, 치료, 공연 감상 등을 할 것이다.
     - 정보를 말로 안내하는 컴퓨터 겸용 텔레비전이 생길 것이다.

 

우리 시·도의 미래 모습


(1) 고장의 미래 모습을 그림지도로 나타내어 보자.


(2) 위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여 보자.
     · 도심의 공원은 숲이 우거지고 귀여운 동물들이 생활하고 있다.
     ·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공중 브릿지(다리)를 연결하여 오고 갈 수 있다.
     · 부상 철도가 있어 공중으로 전철이 다닌다.
     · 사람이 많이 모이는 홀에는 대형 스크린으로 실황 방송을 볼 수 있다.
     · 샛강은 물이 맑아 고기가 많아지고 새들의 낙원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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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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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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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rg****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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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인사 와~ 감사합니다 ~~~~

기자 :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임진왜란의 불멸의 영웅. 이순신장군님과 인터뷰를 하겟습니다.

          안녕하세요 장군님.

 

이순신 : 안녕하시오.

 

기자 : 여쭤볼게 몇개있는데..개전초기에 조선육군과 수군이 맥없이 무너진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순신 : 그것은 우리 조선이 200년간 평화로운 상태였기 때문에

                 국방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소...

                 게다가 왜란이 일어나기 전은 당파싸움이 극에 달하지요.

                 결국 왜가 처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지못해

                 속수 무책으로 당했다고 볼수잇소..

 

기자 : 당시 조선군에는 신무기들이 많이 있엇다고 들었는데요?

 

이순신 :물론 많았습니다.화차, 총통 등 우수한 화약무기들이 많았지만

                오랜 평화로 그것들은 무기고에서 녹슬고 있었소이다.

 

기자 : 아 그렇군요.장군님은 1년전부터 왜의 침략에 대비해 전라 좌수군을

              강군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이순신 : 그건 당연히 했어야할 군사훈련과 전선증강이었을 뿐이오..

                  왜의 침략에 대비했다고 하는것도 틀린 말도 아니오.

                  거북선을 건조했으니까..왜는 조총이란 신무기를 가지고 있었소.

                 그것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함일수도 잇지오.

 

기자 : 아 그렇군요.그럼 경상좌수사 박홍장군과 경상우수사 원균 장군

             도망치지 않고 전선들을 직접 이끌고 옥포에서 왜 수군과 결전을

            벌였죠?피해상황은 어느정도 됩니까?

           

 

이순신 :  적선 26척을 격파하고 수천명의 장졸들을 죽였으나

                  우리군은 단한척도,단 한사람도 잃지 않았소.

 

기자: 이야! 대단하군요. 또 세계4대해전에 손 꼽을 만한 해전을 벌렸다구요?

 

이순신 : 한산도전투를 말하는것 같군요..

 

기자:맞습니다. 바로 한산도 대첩.어떤 전투였나요?

 

이순신 : 해전이래 왜수군이 대함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저는 학익진으로 왜 함대 70여척을 포위,격멸했습니다.

                아주 치열했죠..적선은 66척이 불면되고 약 9천명이 죽엇습니다.

                 우리 측에서도사상자10여명이 속출햇습니다.

 

기자 : 와. 대단합니다.역시 불멸의 영웅입니다.

20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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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특산물

 

인천,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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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산물 
 
 
  시·군명  특산물
 
강화군화문석, 화방석, 꽃삼합
 
옹진군(북도)김, 굴, 포도
 
         (송림)농어, 굴
 
         (백령)홍어, 까나리액젖, 전복, 해삼, 농어
 
         (대청)홍어, 농어, 꽃게, 흑염소
 
         (덕적)굴, 꽃게, 버섯, 더덕
 
         (자월)굴, 꽃게, 포도
 
         (영흥)바지락, 고추, 포도, 꽃게
 
가평군쌀, 사과, 배, 포도, 잣, 느타리버서, 표고버섯, 두릅, 고로쇠 수액, 옻한우, 옻돼지
 
고양시쌀, 선인장
 
과천시화훼 단지가조성되어 있어, 꽃재배가 이루어지며 축산업도 많이 행해진다.
 
군포시쌀, 닭, 멸치, 잣, 꿀, 잡곡, 마늘, 고추, 고구마, 더덕, ?감, 배, 사과, 메론
 
김포시쌀, 찹쌀보리, 포도, 배, 복숭아, 느타리버섯, 딸기, 오이, 토마토, 상추, 쌈채소, 부추, 화훼, 시설무, 배추
 
남양주시나전칠기
 
동두천시동양버섯, 호접란, 상추, 돼지, 시클라멘
 
부천시복숭아, 포도 등의 과수 및채소, 화훼 재배
 
성남시사과, 포도 등의과일, 한우, 젖소, 돼지, 닭 등
 
시흥시포도, 미나리, 쌀, 상추, 토마토, 오이, 쑥갓, 화훼
 
수원시불휘, 수원갈비
 
안성시안성 유기, 안성마춤 포도, 안성마춤 쌀, 안성마춤 인삼, 안성마춤 배, 안성마춤 한우
 
양주시회암솔잎부추, 백석부추, 한 바이오 임꺽정 쌀, 양주 배
 
양평군강상김치, 강상 병산리 쌀, 강상오이, 강상 팽이, 강상 표고, 강하 동충하초, 강하 부추, 강하 오메쌀, 강하 표고, 게군 배, 개군 신령, 개군 오리쌀, 개군 한우, 서종 꿀, 서종 달뫼골, 서종 산더덕, 서종 잣, 서종표고, 서종 한우, 양서 고추, 양서 느타리, 양서 배포도, 양평 상추, 양평한과, 양평 해오름, 옥천 느타리, 옥천분재, 옥천 영지, 용문 수진원, 용문 광어원, 용문 장골식품, 용문산 은행, 용문 풀향기나라, 용문양조장, 용문 푸른작목반, 단월 소리산, 단월 장승, 단월 가마솥 칡청, 양동 계정씀바귀, 양동 부추, 양동 거파니고추, 청운특산품토종꿀, 청운과수, 청운 수박, 양평임산업, 지제 수곡 느타리, 지제 옥현득화, 청운둥글래
 
여주군도자기, 여주쌀, 고구마, 땅콩, 금싸라기참외, 표고버섯, 여주배
 
연천군연천율무, 전통메주, 토종벌꿀, 양봉, 산김치, 연천쌀, 연천병배, 병포도, 중면서리태, 연천만두, 연천밤호박, O2 오이, 막걸리, 석공예, 인삼, 버섯, 오이, 참기름
 
오산시유신쥬얼리, 이화다이아몬드
 
용인시버섯, 쌀, 수산, 화훼, 축산, 체험농장, 과수, 채소, 가공식품
 
이천시도자기, 이천쌀, 게걸무, 산수유
 
의왕시우렁각시쌀, 월암부추, 청계산 벌꿀, 의왕버섯, 의왕청정채소
 
의정부시송산배, 떡갈비, 의정부찌게
 
파주시쌀, 잡곡, 청과류, 인삼, 홍삼, 양봉제품, 장류제품, 임진강참개, 만수어즙, 축산물, 화훼류, 건강식품
 
평택시쌀, 배, 화훼, 오이, 애호박, 붕어액즙, 열대어, 자라
 
포천시포천막걸리
 
하남시하남상추, 하남부추, 화훼
 
화성시꿀참외, 느타리버섯, 한과, 허브, 알타리무, 한우고기, 육계닭, 계란, 화성참굴, 화성마른김, 화성바지락,

20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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