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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최규석

최규석에게 서재란 ‘사람의 이야기’다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는 분야별 전문가를 만나 직업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들이 직접 추천하는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평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만화가. 웹툰 <송곳>의 저자로 잘 알려진 최규석이다. 세상의 소외된 이야기에 집중하는 그는 만화계의 비평가라고 불린다. 새삼스럽지 않다. 독설과 유머가 버무려진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묵직한 한 방이 있으니까. 재미있지만 마냥 낄낄대면서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 주변에 관심을 가진 것뿐이라고. 작년 11월, <송곳>의 완권을 출간한 그는 지금 또 다른 사람과 그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그를 만나 봤다.

잘난 척하길 좋아한 소년의 그림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어렸을 때부터 잘난 척하길 좋아했던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죠. 초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같은 반에 4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그림을 꽤 잘 그렸어요. 덩달아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 집에 오면 그림만 그렸어요. 시골이라 그림 그릴 종이가 마땅치 않아서 달력 뒤에다가도 그림을 그렸어요. 한 달이 지나가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어느새 학교에선 그림 잘 그리는 애로 이름을 떨치게 됐는데, 친구들이 칭찬해주니까 으쓱한 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물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지만, 이외에도 그림은 여러모로 매력적이었어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게 그 중 하나예요. 접힌 팔을 그릴 수도, 상상하던 로봇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림을 그리면서 안 되던 게 되는 경험을 맛봤던 거 같아요.

최규석

중학교 땐 ‘시건방진 모범생(?)’이었던 터라 선생님들이 하지 말라는 건 웬만해선 안 했어요. 만화는 나쁜 것, 학생이 봐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할 때도 그렇구나, 했어요. 만화를 많이 읽고 있었으면서도 그 말엔 동의한 거죠. 그러다 그런 생각을 깨부순 작품들을 운명처럼 만나게 됐어요.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 등이요. 신세계였죠.

세상엔 좋은, 다시 말해 어른들이 말하는 예술성을 겸비한 만화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만화가 실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뒤틀린 방식이긴 했지만 만화에 대한 제 취향이 형성된 것도 이때였던 거 같아요. 사실적이고 과장이 덜한 부류요. 지금의 제 작품에도 녹아 들어있죠.

만화를 그리며 산다는 것은

막연하게나마 만화를 좋아해서였는지 만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대학 전공을 만화과로 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대학 다니면서 돈도 필요하고, 또 인정 받고 싶기도 하니 공모전에 몇 차례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어요. 졸업 후엔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그려 나름 유명해졌죠. 덕분에 TV에도 나오고요. 운이 좋았어요. 막상 돈은 얼마 못 벌었지만요.

1년에 몇 백만 원 정도?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뜨곤 창원에 내려가 미술학원 강사가 되기로 했어요. 뭘 하든 만화는 그릴 수 있으니까요. 만화가가 되지 않더라도 만화를 그리면서 살 순 있겠다, 싶었던 거죠. 창작에 대한 욕구는 언제나 들끓었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판단했어요. 만화가로 살기 시작한 건 <습지생태보고서> 연재 제의가 들어오면서부터예요. 그제서야 만화만 그리면서도 먹고 살 수 있게 됐거든요.

최규석이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이야기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만화를 그리면서 사람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스토리의 중심인 캐릭터를 잘 나타내려면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사람이 처한 조건, 배경 … 여타 모든 것에도 관심이 생겼죠. 제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라 할 수 있어요. 이것 또한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잖아요. 사실 한국의 대중문화의 범주는 예상외로 좁아요. 오랫동안 사회 문제는 보통 말하는 대중문화에서 배제된 소재이기도 했고요. 그 소외된 이야기를 가져와 대중문화의 스펙트럼을 좀 넓히고도 싶었어요. 대중문화를 얘기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많은 것을 아우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다양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스토리를 다루고 싶은 마음이에요.

새 도전을 위한 ‘자뻑’

최규석

사회 문제와 관련된 만화를 그리는 데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 것도 있어요. 흔히들 말하는 ‘대박’을 치기에는 힘든 소재이긴 하지만 ‘신선하다’라는 평가나, 비평적으로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거든요. 만화가 재미가 없어도 독자분들께서 어느 정도는 봐주시는 부분도 있고요. 재미가 없어서 책을 덮기엔 왠지 모를 죄책감이 손목을 잡는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다만 작가로 혹시 제가 이런 면에 기대어 안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긴 해요. 그래서 새로운 걸 시도해 보려고요. SF나 로맨스 같은 거. 앞으로 웬만한 건 다 해보고 싶어요.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두렵기도 하죠. 그간 잘 숨겨왔던 제 실력이 이번에 들통나면 어쩌나 하고요. 이때 필요한 게 ‘자뻑’이에요. 만화가와 같은 창작자에겐 굉장히 강력한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할 수 있는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요. 방법이 없어요. 그냥 사람들에게 계속 보여주고 많은 사람이 내 작품을 재미있다고 얘기해주는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하는 수밖에. 결국, 그 기간을 버티게 하는 힘은 내 만화는 재미있을 거야, 내 만화는 분명히 재미있어, 라고 믿는 자기 확신인 거예요. 한마디로 ‘자뻑’이죠.

최규석 그리고 서재

작품을 집필할 땐 사회 비판서를 많이 읽는 편이에요. 보통은 자료 조사를 위해서인데 우연치 않게 영감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송곳>을 집필할 때의 일이에요. 전설적인 사회운동가인 사울 D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읽는데, 마치 오랫동안 사회활동이란 전투를 거친 백전 노장의 느낌을 받았어요. <송곳>의 캐릭터인 구고신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됐죠.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어요.

알린스키가 미국 내 소수 인종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었죠. 마침 소수 민족의 대표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전통 음식을 정성스럽게 대접해요. 알린스키는 음식을 한 입 먹더니 대뜸 말합니다. “에이 맛이 없네. 너희도 평소에 이런 거 안 먹지?” 그의 솔직한 태도는 소수 부족 대표자들과의 벽을 단번에 허물고 친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그 누구도 아닌 알린스키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죠. 이게 바로 캐릭터의 힘이에요. <송곳>의 명대사인 ‘옳은 것보단 좋은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도 여기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어요.

최규석

<송곳>의 연재를 끝낸 요즘엔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고 있어요. 제 만화가 굉장히 좁은 영역에 들어가있긴 하지만, 대중문화의 향유자로서의 저는 다양한 장르를 영유하는 편이거든요. 책은 보통 한 달에 3~4권 정도 읽는 거 같아요. 어렸을 땐 더 많이 읽었던 거 같은데 말이죠. 도서관 가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도서관을 한 바퀴 쭉 돌면서 책 제목을 훑어 보는 게 취미였어요.

셀 수 없이 꽂힌 책을 보다 보면 인간의 관심 분야, 지식의 범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가 그려지더라고요. 사고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스스로 겸허해지기도 하고요. 제가 품은 생각들이 결국 과거의 학자들이 한 번씩은 생각한 거란 사실을 알게 되니까 안주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더라고요.

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여력이 된다면 저희 집도 도서관처럼 꾸며 놓고 싶긴 하지만 현재로선 작업실과 집을 통틀어 7개의 책장을 가지고 있는 게 다예요. 양적으로는 사회 비판서가 가장 많고, 철학, 윤리학. 생물학 등이 뒤를 잇죠. 지루하지 않느냐고 말씀들 하시는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정말 재미있다고요. 갑자기 한 독자 분이 저 보고 개미관찰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네요. 아마 인류학, 생물학 관력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사람을 한 걸음 떨어진 데에서 볼 수 있는 관찰력을 길러 준 셈이죠.

최규석의 추천도서

삼체

<삼체>
류츠신 저
이현아 역
단숨
2013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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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지금 2부까지 나왔는데요, 3편은 언제 나오나 발을 동동거리고 있어요. 문화 대혁명의 광기 속에서 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인류를 대상으로 복수를 하는 내용의 SF 소설이에요. 이야기는 정말 황당한 사건으로 시작돼요. 이후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예술이에요. 흐트러짐 없이 잘 짜여 있는 스토리가 놀랍죠.

참고로 이 책은 버락 오바마의 추천서예요. 버락 오바마가 읽은 책을 같이 읽는다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묘미라면 묘미죠(웃음). 그가 ‘삼체를 읽으면서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과 내려야 하는 결정이 얼마나 작은 것이 알게 됐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정말이지 거대한 스케일과 상상력을 자랑하지만 지극히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에요. 때문에 작가로서 영감 받는 요소가 많죠.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이한 저
미지북스
2012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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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기억하시죠? 이를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작가 이한의 책이에요. 마이클 샌델이 철학적 방법론과 예시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논리 정연하게 따지면서 그가 비판하고 왜곡한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복원하고 있죠. 탄탄한 논리와 깔끔한 문장이 돋보이는데요. 학자의 책은 무릇 이래야 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읽는 내내 지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건 덤이고요.


백 사람의 10년

<백 사람의 10년>
펑지차이 저
박현숙 역
후마니타스
2016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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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추천하는 책 중 아마 가장 짧은 책일 거예요. 하루 안에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조금 낯설 수도 있으나 중국 역사의 최대 비극으로 분류되는 중국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을 얘기하고 있어요. 문혁 10년 동안 고통받은 중국인들 가운데 100인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단순히 개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단 문혁을 통해 고통받는 한 세대의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인류적으로 너무나도 비극적인 사건을 담은 책을 읽다 보면 사람과 세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돼요. 가끔 현실은 소설보다 더 비극적인 거 같아요.


스토리텔링 애니멀

<스토리텔링 애니멀>
조너선 갓셜 저
노승영 역
민음사
201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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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서사에 집착할까요?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읽어 보세요. 굉장히 문학적인 질문에 과학적으로 답하고 있는 게 매력이에요. 생물학, 심리학, 신경 과학으로까지 접근하죠. 어찌 보면 대중적인 과학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야기란 인간의 본질적 측면의 하나’라는 게 이 책의 골자인데요, 저자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류의 생존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죠. 이때 근거로 드는 것이 ‘이야기의 시뮬레이션 이론’이에요. 결국, 인간이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만화의 이해

<만화의 이해>
스콧 맥클라우드 저
김낙호 역
비즈앤비즈
2008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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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 논픽션 만화로 <만화의 미래>, <만화의 창착> 총 3연작으로 돼 있어요. 가장 잘 만들어진 만화 이론서란 평을 받을 정도로 만화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하죠. 그간 홀대받았던 만화의 정체성과 예술성 등을 깊이 있게 풀어내고 있는데, 만화가 가진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시나리오 작업하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이 밖에도 시나리오 작업 때 도움을 받았던 책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20가지 플롯>,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등이 있어요.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솔 앨린스키 저
박순성 역
아르케
2008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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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서재, 지금의 나를 만든 서재

<송곳>의 주인공인 구보신 캐릭터를 잡는 데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책이에요. 시민운동 활동가들의 인생론을 얘기하고 있는데요, 책에선 저자인 사울 D 알린스키라는 캐릭터가 가진 힘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죠.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어요. 알린스키가 미국 내 소수 인종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마침 소수 민족의 대표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요.

전통 음식이 정성스럽게 준비되고 알린스키는 음식을 한 입 먹더니 대뜸 말합니다. “에이 맛이 없네. 너희도 평소에 이런 거 안 먹지?” 그의 솔직한 태도는 소수 부족 대표자들과의 벽을 단번에 허물고 친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하지만, 이는 그 누구도 아닌 알린스키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겠죠. 이게 바로 캐릭터의 힘인 거예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송곳>에서 구고신 캐릭터를 구체화한 것은 물론 “옳은 것보단 좋은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라는 대사를 탄생시켰죠.

발행일

발행일 : 2018. 04. 12.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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