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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무안의 자랑거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6,807 작성일2009.06.15

안녕하세요

저는 삼향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김현주 입니다.

숙제가 어려워요

무안군의 자랑거리..

힘들어요

내공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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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신
학교생활 14위, 학교생활 32위, 전라남도 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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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은 전라남도 도청이 소재하고 잇으며 무안국제공항이 잇는곳 으로 서해안 시대의 중심거점 도시 입니다

 

무안의 특산물

 

전남 무안군의 특산물로는 마늘, 양파, 고구마가 주이고, 이외에는 미역, 피조개 등의 해조류의 생산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안의 관광지

 

1.품바발생지

소 재 지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의산리

일로읍 의산리에 소재한 천사촌은 우리민족의 한과 울분의 역사를 마감하고 희망찬 새시대의 도래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은 상황연극의 효시인 '품바'가 탄생한 옛터다.

품바는 1981년 당시 일로면 공회당에서 인의 예술회를 통해 문화활동을 해오던 시인이며 극작가인 이 고장 출신 고 김시라의 각색 ㆍ연출과 정규수(1대 품바) 출연으로 초연한 이후 국내외 4000여회 최장기 공연으로 최다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수립하였다.

품바발상지, 천사촌 
 

천사마을이라는 명칭보다는 1982년 12월에 초연되어 4천여회이상 국내외 공연한 향토극의 대표적인 작품,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품바 일인극으로 으로 더유명한 곳.

어느해인가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 일로에만 유독히 걸인들이 모여들어 주민대표들이 모여 어찌 한해가 들었는데 이곳으로만 모여드느냐고 불평했더니, "타향에서 괄세받고, 푸대접 받다가 이곳 일로에 오니 문전박대 않고 한 끼니만 있어도 나누었는 지라, 고향에 온 기분으로 떠나지 않고 눌러 앉았다." 고 걸인들이 대답하니 주민들은 오히려 그들의 사정을 불쌍히 여겨 더욱더 도와준 후로 천사촌이 이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각설이라는 뜻은 깨우칠 각(覺), 말씀 설(說)로 가진 것 하나없고 조롱의 대상인 각설이가 그 상황을 뛰어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름침을 준다는 뜻으로 5000년을 이어온 우리의 걸인패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그 대표적인 것이 품바이다.

해학과 풍자, 날카로운 비판의 한판춤을 우리는 귀담아 보아야 할 것이다.



 
2.나상열가옥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167호 
지 정 일  1984.01.10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698  
시     대 일제강점기 

약 90년전에 지은 집으로 안채와 일제 때 지은 창고가 있으며 문간채와 중문채가 있다. 사랑채나 헛간채가 없어 확실한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이 마을 부호의 집으로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경사를 이용하여 제일 높은 곳에 있으며, 맞은편에 창고가 있다. 안채와 창고 사이의 마당을 위·아래로 구분하였는데, 창고 앞의 마당이 훨씬 넓어서 가을철 수확기에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 쉽게 하였다. 안채와 창고 앞 마당 사이에는 계단을 중앙과 동쪽 끝에 만들었는데 서쪽으로는 경사로를 만들어 수레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큰방과 방 앞에 샛방, 부엌방이 있고, 뒷쪽에는 넓은 부엌이 있다. 오른쪽에는 작은방과 사랑큰방, 사랑샛방 작은방이 있다. 대청은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중심부에 좁게 한 칸만 만들었다. 앞쪽에는 가장 오른쪽 1칸을 제외하고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창고는 중심부에 각각의 문이 있는데 일본식이 가미되어 있고, 좌우 옆면과 뒷면의 벽을 널판으로 처리한 것으로 보아 일제 때 지은 집으로 보인다.

정원시설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없으나 집 뒤에 음식저장고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상당히 넓은 대지 위에 여러 채의 집들이 세워진 큰집이다.
 
 
3.무안향교

종    목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지 정 일  1985.02.25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무안읍 교촌리 261-1  
시     대  조선시대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 3년(1394)에 무안읍성의 남쪽 공수산(현재의 남산)에 세웠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성종 1년(1470)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임진왜란(1592) 때 파손된 것을 숙종 15년(1689)에 고쳤으며, 그 뒤에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현 건물들은 조선 후기 이후에 점차적으로 지어진 것이며,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내삼문 등이 있다.

경사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뒤쪽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공간이 있어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4.원갑사

종    목  문화재자료  제85호  
지 정 일  1984.02.29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해제면 산길리 676  
시     대  통일신라시대

원갑사는 영광 불갑사, 영암 도갑사와 함께 남도의 3갑사라 불린다.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하지만 지은 시기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1908년 새로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른다. 절의 자리도 세 차례 옮겼는데 그에 따라 이름도 강산사 , 당산사 , 원갑사로 바뀌었다.

절 경내에는 법당인 무량전과 요사채가 있다.

무량전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보관하고 있는 문화재로 고종 16년(1897)에 만든 탱화 1점이 있다.
 
 
5.법천사,목우암

종    목  문화재자료  제82호 
지 정 일  1984.02.29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956  
시     대  신라시대

법천사는 원나라 승려인 원명이 세웠다는 기록과,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서역 금지국의 승려인 정명이 세우고 남송 임천사의 승려 원명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법천사의 부속 암자인 목우암은 원나라 승려인 원명이 지었다고 한다.

현재 목우암 내에는 법당, 요사채, 축성각이 있다. 법당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삼존불이 있고 그 앞에 숙종 7년(1681)에 만든 석등이 있으며 목우암 입구에는 조선 후기에 만든 부도 5기가 있다.



6.식영정

종    목  문화재자료  제237호 
지 정 일  2002.04.19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배뫼) 551외  
시     대 조선시대

식영정은 한호 임연(1589∼1648)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입향 이후 강학소요처로 지은 정자로 영산강[이호]과 그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곳이다. 그리고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 임상덕(1683∼1710)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임씨 강학교류 공간이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경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

식영정은 창건주 임연의 증손인 노촌 임상덕 등 대를 이어가면서 교류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식영정은 인문적 측면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정자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나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한 건물이다. 


 
7.화설당
 
소재지  청계면 사마리 1구(화설당마을)
규모  정면4칸, 측면2칸 
 
문화 류씨 입향조 류자의 손인 처사 류운(1580~1643)이 지은 정자로 화설당이라는 액호의 유래는 1685년(숙종15) 왕세자(경종) 책봉시 반대 상소를 올려 제주도로 유배되었던 우암 송시열이 상경중 그의 친구이자 당시 무안현감이던 류운의 정자에 이르러 뜰에 핀 매화와 붉은 동백이 눈에 덮여 있는 것을 보고 화설당이라 이름하고 액호를 써 준데서 유래되었다. 1689년과 1728년 두차례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8.도리포

소 재 지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무안읍에서 해제반도 중앙을 지나는 지방도로를 따라 20여분 정도 달리면 도리포구에 닿는다.

도리포는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철산바다와 인접한 곳으로서 바다낚시로 유명하며 낚시후 어획한 싱싱한 활어를 즐길수 있는 횟집을 주위에 즐비하고 있어 낚시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며 그 중 숭어회가 맛있는 곳으로 소문난 포구이다.

도리포 해맞이  
 
서해안에서는 보기드물게 장엄한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해안도로에서 보면 어선사이로 비추는 아침햇살과 썰물 이면 갯벌에 비치는 햇살이 장관을 이룬다.



9.회산백련지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에 위치한 회산 백련지는 일제의 암울했던 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저수지이다.
대부분의 저수지는 골짜기나 계곡을 막아서 축조하는 데, 회산백련지는 평야지대를 삽과 가래로 파서 둑을 쌓아 만든 저수지 이다.

면적은 10만여평으로 두 개의 저수지가 합하여져 인근 250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농작물의 젖줄 역할을 하였으나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된후 풍부한 농업용수가 공급되면서 사실상 농업용 기능을 상실하였다. 

당시 저수지 옆 덕애 부락에는 6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이 우물옆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12주를 구해다가 심은후 그 날밤 꿈에 하늘에서 학12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이 흡사 백련이 피어있는 모습과 같아 그날 이후 매년 열과 성을 다해 연을 보호하고 가꾸었다.

그런 정성이 헛되지 않았음인지 해마나 번식을 거듭하여 지금은 동양최대의 백련 자생지가 되었다.

또한 이 곳 마을이름이 회산(回山)으로 "온 세상의 기운이 다시 모인다"는 의미로 유래되고 있어 앞을 내다보는 옛 선현들의 높은 안목과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맑은 꽃을 피운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탕에 두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특성이 불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10.홀통유원지 
 
현경면 오류리에 위치한 홀통 해수욕장은 천혜의 자연 발생적 유원지로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해수욕, 야영, 바다낚시, 해수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하여 전국 단위 윈드서핑 대회 개최등 해양스포츠의 최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출처 : 무안군청

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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