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루

울산종합일보 / 기사승인 : 2019-08-14 09: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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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종합일보-홍성조의 역사·문화이야기 13
▲ 태화루
▲ 태화루 입구
◇태화루, 다시 번창할 울산의 미래

태화루는 풍류와 문화의 공간으로써 정사를 돌보는 장소였고, 울산과 운명을 함께해왔으며 임진왜란 전·후 멸실됐으나 400여 년이 지난 2014년 4월 지역기업인 S-OIL(주)에서 건립비를 지원해, 울산시민의 오랜 염원에 힘 입어 원래의 자리를 찾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울산 번영의 상징인 태화루가 건립되면서 울산은 더 큰 발전과 번영을 꿈꾸고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누정 그 자체로 문화를 만들어냈듯이 시민의 품으로 되돌아온 태화루는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그리고 교육, 휴식, 힐링의 공간으로 거듭남으로써 새로운 울산의 상징으로 이미 자리매김 됐다.

◇태화루의 시작

고려시대 일연의 삼국유사와 김극기의 태화루시서에 따르면 당나라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온 자장이 634년(신라 선덕여왕 12년) 울산에 와서 태화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태화루는 태화사 경내에 조성된 누각으로 황룡연이 내려다보이는 태화강가의 절벽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태화루가 지어질 당시 신라는 백제의 침입으로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호국사찰인 태화사를 이곳에 건립한 것은 국가적으로 울산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울산은 수도 서라벌로 가는 관문이자 외부세계와 교통하는 국제항으로서 번영을 누렸고 이와 함께 태화루는 울산을 대표하는 누각으로 자리잡게 됐다.

또 수많은 선인들이 태화루의 빼어난 풍광과 정취를 노래하며 시와 글을 남겼으며 107편 정도가 현재 전해져오고 있다.

▲ 태화루
▲ 태화루에서 바라 본 태화강 전경
◇태화루의 유물과 흔적

태화사와 태화루가 있던 옛터에 대해서 울산발전연구원에서 2010년 4월21일 부터 5월19일까지 발굴조사를 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건물터 3기와 고려시대 담장 1곳 조선시대 수혈유구 2기 등의 유구가 조사됐다.

건물터는 대부분 훼손됐고 일부만 남아있어 전체적인 구조를 알 수 없으나 발굴조사에서 확보된 연화문수막새와 기타 관련 자료를 통해 황룡연 언덕일원이 태화루터임을 추정한다.

◇태화루의 시와 글

또 수많은 선인들의 태화루에 대한 107편 정도가 전해져오고 있다.

-태화루(정포/설곡집/고려시대)-

‘붉은난간은 관도에 임해있고 푸른물결은 절 문을 격했어라. 시끄러운 수레소리 동헌으로 돌려보내니 노래소리 날마다 끊이지 않네 가랑비속에 꽃은 나무가지에 피고 봄바람 이는 곳 술이잔에 가득하네 고금에 떠나는 한, 달은 황혼인데 고기잡이 노랫소리 앞마을에서 일어나네’

‘정포’(1309~1345)
고려말의 문신, 울주에 유배돼 ‘울주팔경’등을 남겼으며 저서로는 ‘설곡집’이 있음.

-울산 태화루(서거정/사가집/조선시대)-

‘울산의 서쪽 지경에 태화루가 있으니 거꾸러진 그림자 푸른 물속에 잠기었네. 아득함이 처음엔 학의 등인가 의심했다가 어슴푸레 자라 머리에 오른 걸 문득 알았네. 산빛은 계림의 새벽에 가까이 닿아 있고 바다 기운은 멀리 마도 가을에 연하도다. 만리 멀리 바라보는 흥취가 끝이 없어 하늘 가득 비바람에 난간 기대 시름 짓노라’

‘서거정'(1420~1488)
조선초기의 문신. 학자로서 예문관대제학, 좌찬성을 지냈으며 왕의 명령으로 동국통감을 편찬함. 문집인 ‘사가집’에 태화루에 관한 시를 남김.

▲ 태화루 안내판
▲ 태화루
◇태화루와 함께온 시간들

신라
643년 : 태화사의 조성과 함께 태화루 건립

고려
997년 : 성종(成宗) 방문
명종 연간 : 김극기(金克己) 방문, 시를 남김
충혜왕 연간 : 정포(鄭誧) 방문, 시를 남김

조선
1399년 : 태종의 장인 민제(閔霽) 방문
1401년 : 민제(閔霽)의 부탁으로 경상도안찰사 안로생(安魯生)이 태화루 중창
1465~1466년 : 경상좌도 병마평사 김종직(金宗直) 방문, 시를 남김
1479년 : 경상도순찰사 서거정(徐居正) 방문, 시를 남김
1484년 : 울산군수 박복경(朴復卿)이 태화루 중수
1590년대 : 경상도관찰사 홍성민(洪聖民) 방문, 시를 남김, 임진왜란 전·후 멸실 추정

글 정리 : 홍성조(울산종합일보‧신문 발행인/대표이사)
사진 : 최상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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