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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두희를 죽인게 잘한일일까요?
mila**** 조회수 24,584 작성일2007.03.11
김구를 죽인 안두희를 죽인게 잘한일일까요? 1997년 버스기사셨던 박기서라는 분이 안두희를 몽둥이래 개패듯이 패서 죽였다고 들었는데요. 죽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김구를 왜 죽였는지 미국에 의해서 죽였는지 아니면 이승만에 의해서 죽였는지 자세히 알수있지 않았을까요..? 미국에 의해서 죽였다면 지금의 아이들도 일본못지 않게 미국이 얼마나 나쁜놈들인지 의식하게 될수 있을테고 또한 이승만에 의해서 죽였다면 이승만이 외국에서 조금 독립활동을 펼치긴 했다지만 앞날을 책임지지도 않고 미국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재산과 부를 위해 김구선생님을 죽일수있는 이런일까지 저지를수 있는 미국의 꼬봉이라고 알수있을텐데 말이죠. 근데 안두희가 꽤나 오래 산거 같은데 어째서 사형을 당하지 않은건가요? 또한 발켜내기 위해 심한 고문을 했다면 알아내지 않았을지.. 어디서 들은바로는 고문을 해도 말하지 않았다는거 같은데 정말인가요.. 여튼 다른분들 생각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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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희를 죽였거나 안 죽였거나 배후자는 안두희가 죽는 날까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을 겁니다.

말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겠죠.

세월이 더 많이 흘러 1세기 쯤 지나면 사람들은 자유로이 공개석상에서 누구라 딱 집어 말할 수 있을까요?

안두희는 김구 선생님을 암살하고 죽는 날까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적으로 끌려다니며, 이사다니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숨어도 단체나 민간이나 기어코 찾아가 괴롭혔으니 이유있는 대한민국 왕따였죠.

아마 살아서 지옥을 맛봤으니 지옥에 간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안두희가 끝내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배후자를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어서 그러지 않았을까도 싶습니다.

배후자가 안두희를 죽이는 게 아니라 민중들이 배후자를 알고 난 후엔 더이상 살려 둘 이유가 없었겠죠.

안두희가 저지른 악행은 우리 민족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데도 그 사람이 평생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목숨을 겨우 유지했다고 생각하면 더이상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짐작하는 배후자들을 욕하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배후자들이 상어라면 우리는 피라미만 쥐잡 듯 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죽는 날까지 밝혀질 리가 없습니다.

안두희가 우익단체에 끌려가 김구선생님의 무덤 앞에서 울며 엎드려 흐느끼는 화면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안두희가 죽을 당시는 그냥 힘없는 노인이었습니다.

가끔은 우리 민중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얼마나 잔인해지는지....

상어는 놔두고 피라미만 안 죽을만큼 고통을 주었던 것이니 안두희 개인의 입장으로썬 죽는 게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죽기 전 몇년은 사람들 시선을 피해 숨어 있는 걸 박기서란 분이 찾아낸 것이니 잘했다고 해야 하는지 못했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역사는 그렇게 죽이고 죽이는 역사인지...

 

200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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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九선생 암살 안두희는 美방첩대 요원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시해사건의 주범 안두희가 미군 방첩대(CIC) 정보원이자 정식 요원이었으며, 우익청년 단체였던 백의사 특공대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미 국립공문서 보존기록관리청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졌다고 3일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했다.

편찬위측은 해외사료 이전사업의 일환으로 미국에 파견한 방선주 박사와 정병준 박사가 미국 정부측에 수년 전부터 비밀해제를 요구해 열람하게 된 「김구:암살에 관한 배후 정보(Kim Koo:Background Information Concerning Assassination)」란 제하의 미 육군 정보국 문서파일(RG 319, Entry 85A, 1949년6월29일 작성)에 이같은 사실이 적시돼 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 따르면 48년 말까지 CIC요원으로 한국에 근무했던 미 육군 소령이 이후 미 본토로 귀환, 미 1군 정보과장으로 근무중 1949년 김구 선생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이 문서를 작성했으며, 이 문서는 신뢰도면에서 A, B, C, D, F(각 1, 2, 3, 4등급으로 세분)등급 중 A2등급을 받아 신뢰도가 높다는 미군 자체평가가 붙어있다고 편찬위측은 말했다.

편찬위측은 “이 문서에 김구 선생 시해사건 당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빠져있어 미 방첩대가 시해사건의 배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성자는 한국 근무 당시 안두희를 잘 알고 있었고, 안씨가 CIC를 위한 정보원으로 일하다 나중에 정식 요원이 됐다고 기록했다”고 말했다.

또 42년 결성된 최대 우익 청년단체였던 ‘백의사’의 단장 염동진 앞에서 안두희가 ‘죽음으로써 활동하겠다’고 맹세했으며, 김구 선생이 염동진과도 잘 아는 사이라는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고 편찬위측은 말했다. 이 문서에는 김구 선생이 남북 연석회의에 다녀온 후 연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며 ‘큰 나무인데 공산주의라는 벌레가 꼬이고 있다’는 백의사측의 비판적 발언이 기록돼 있어 김구 선생이 이념투쟁 과정에서 우익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편찬위는 말했다.

이밖에 편찬위는 “이 문서에는 1948년 여순사건 진압부대였던 한국 4연대가 여순반란자들과 관련돼 있었으며, 이승만 정부와 북 정권과도 다른 파시스트적인 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정부의 수반으로 김구 선생을 옹립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미국측의 여순사건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두희는 지난 96년 10월 23일 인천시 중구 신흥동 동영아파트 502호 자신의 집에 침입한 버스운전사 박기서(53·97년 3년형 확정 후 복권)씨가 휘두른 방망이에 머리를 맞고 살해됐다. 당시 안두희는 79세였다.

( 최원석기자 yuwhan29@chosun.com ) 조선일보 9월 4일



"김구선생 암살범, 미군 정보원 활동"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성무)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백범 김구 시해범 안두희가 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자 우익단체인 백의사 특공대원이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했다”고 밝혔다. 미 제1군사령부 정보참모부 조지 실리 소령이 백범 암살 직후인 1949년 6월 29일 작성한 이 문서는 ‘김구-암살관련 배경정보’란 제목 아래 “나는 그를 정보원으로, 후에 한국 주재 CIC 요원으로 알고 있었다”며 “안두희는 백의사 혁명단 1소조 구성원으로 백의사 지도자인 염동진이 명령을 내리면 암살을 거행하겠다는 피의 맹세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리 소령은 1946년부터 1948년 12월까지 한국 주재 CIC파견대에서 근무한 한국통으로, 20개월간 염동진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백의사는 염동진이 해방 직전 평양에서 조직한 대동단을 모태로 1945년 11월 서울에서 월남한 청년·학생들이 중심이 돼 조직한 단체로, 반공 테러활동과 함께 미군 CIC와 연계하에 대북 첩보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백의사는 1945년 9월 현준혁(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장)을 암살했고, 1946년 3월에는 신익희와 연계하에 대북 테러공작을 전개, 김일성·김책·강양욱 암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실리 소령은 “장덕수와 여운형의 암살범들도 이 지하조직의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었다.

염동진은 1932년 중국 낙양군관학교를 졸업, 중국군에서 활동하다가 관동군에 체포돼 첩보요원으로 변절한 인물로, 6·25당시 북한군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무 위원장은 “현재로선 미국이나 백의사가 백범 암살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며 “관련자료를 계속 발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 조선일보 2001년 9월 4일



국사편찬위 자료공개 "백범암살 배후는 미국"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安斗熙·96년 사망)가 미군 방첩대(CIC)의 정보원이자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우익 청년단체인 백의사(白衣社)의 특공대원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미국이 백범 암살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짙어지는 한편, 백의사의 단장인 염동진(본명 염응택)이 이를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장덕수와 여운형을 암살한 범인들도 백의사일 것이라는 자료도 나왔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국외사료 조사작업의 일환으로 미국에 파견한 정병준 방선주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문서철에서 ‘김구-암살에 관한 배후 정보(Kim Koo-Background Information Concerning Assassination)’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견했다고 4일 밝혔다.

이 문서는 1948년 12월까지 남한 주둔 CIC 파견대에서 근무한 조지 E 실리 소령이 1949년 6월 백범 암살 직후 본국에서 작성해 미국 육군정보국에 제출한 A4용지 5장 분량의 보고서로 비밀등급 3급, 신뢰도 A2를 책정받은 최상급 신뢰도의 문건이다.

실리 소령은 보고서에서 “안두희는 백의사의 특공대원으로, 나는 그를 한국주재 CIC 정보원으로, 뒤에 한국주재 CIC의 요원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그는 염동진이 암살 명령을 내리면 누구든 죽이겠다는 피의 맹세를 했다”고 밝혔다.

백의사는 낙양군관학교 재학시절 백범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염동진이 장제스 휘하의 반공 결사단체인 남의사(藍衣社)를 모방해 1942년 8월 창설한 반공 결사조직이다. 백의사는 1946년 평양역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대회에서 김일성 암살을 기도하고, 북한지역 토착 공산주의자인 현준혁을 암살하기도 했다.

실리 소령은 또 “2명의 저명한 한국 정치인인 여운형과 장덕수의 암살도 백의사 구성원들의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측은 “실리 소령이 한국을 떠난 지 6개월 후에 백범이 암살됐기 때문에 미국이 백범 암살에 직접 개입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암살배후 규명이 진일보하게 된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신용하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안두희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그동안의 심증을 확인해주는 물증”이라고 말했다.

▼백의사단장 염동진은 누구▼

이번 자료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염동진(본명 염응택). 백의사 단장을 맡았던 그가 백범 암살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눈이 멀어 ‘맹인장군’으로 불렸던 염동진은 1909년 경기 파주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에 건너가 1932년 중국 국민정부의 군사교육기관인 낙양군관학교을 졸업했다. 이 학교의 한국 학생들은 김구 계열과 이청천 계열로 나눠져 있었는데 염동진은 이청천 계열로 분류된다. 이로 인해 김구와 평소 사이가 나빴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광복 이후 공산주의자에 대한 각종 테러활동을 벌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살해당했다. 실리 소령은 보고서에서 그에 대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나 미국인과 인터뷰할 때는 통역을 활용해 신분을 위장할 만큼 비상한 지략의 소유자”라고 회고했다.

☞ 김구 암살 관련 美 정보문건 전문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동아일보 2001년 9월 4일



"백범 암살범 안두희는 미군정보요원"

1949년 6월26일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는 주한 미군방첩대(CIC) 요원이었음이 4일 밝혀졌다.

또한 안두희에게 백범 암살을 지시한 인물은 해방 직후에 활발한 대(對) 공산주의 테러 활동을 벌인 극우테러리스트 집단인 '백의사'(白衣社) 단장 염응택(일명 염동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 김구 암살 관련 美 정보문건 전문


이런 사실은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최근 미국 제1군사령부 정보장교인 조지 실리(George E. Cilley) 소령이 백범 암살 3일 뒤인 1949년 6월29일에 작성을 하고 그 해 7월 1일 미 육군 일반 참모부 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문건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서 발굴해 이날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밝혀졌다.

안두희가 CIC 요원으로 드러남에 따라 백범 암살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그동안의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을 한층 짙게 해주고 있다.

이 문건은 방선주 박사팀이 미 정부측에 대해 비밀해제를 요구해 최근 열람하게된 '김구:암살에 관한 배후정보(Kim Koo : Background Information concerning assassination)'란 제목의 미 육군 정보국 문서파일에 들어있으며 3급 비밀문서(confidential)로 분류돼 있다.

이 문서에서 실리는 "안두희(Ahn Tok Hi)는 한국인 청년으로 이 비밀조직(=백의사)의 구성원이자 이 혁명단 제1소조 구성원이다"라면서 "나는 그를 (한국주재 CIC의) 정보원(informer)으로, 뒤에 한국주재 CIC의 요원(agent)으로 알고 있었다"라고말하고 있다.

실리는 또한 안두희가 "염동진이 명령을 내리면 암살을 거행하겠다는 피의 맹세를 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백의사'는 해방 직전인 1944년 11월 무렵 신익희 주도로 서울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사무국'이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해방 뒤에는 각종 극우테러리즘 활동을 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946년 3월1일 평양역 광장에서 소련 공산당 주요 인물과 김일성, 김책, 최용건,김두봉을 비롯한 나중의 북한 정권 핵심 인물을 비롯해 7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3.1절 기념행사장에서 폭탄투척사건을 일으켰으며, 북한지역 토착 공산주의자의 대표자인 현준혁을 암살하기도 했다.

이 단체 핵심인물인 염응택 또한 그 전모가 제대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으나 이번 실리 문건에 따르면 가장 '악질적인'(The Most Malignant) 인물로서 '맹인장군'(Blind General)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백의사를 통해 각종 청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있다.

이와 관련 실리 문건은 "두 명의 저명한 한국 정치인인 장덕수와 여운형의 암살범들도 이 지하 조직(백의사)의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두희가 각종 테러와 암살 사건에 개입된 백의사 골수멤버로 드러남에 따라 백범 암살 또한 염응택의 지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단체는 장개석이 항일전쟁 때 조직한 테러리즘 단체인 '남의사'를 본떠 '백의민족의 남의사'라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신익희와 유진산이 지도하는 가운데 염응택이라는 인물이 단장을 맡았다.

실리 문건은 또한 염응택이 중국에서 활동 당시 김구의 밀고로 중국 공산당에 넘겨져 고문을 받는 과정에서 맹인이 되었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백범 암살이 그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이런 개인적인 원한도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연합뉴스]

동아일보 2001년 9월 4일



“안두희는 美방첩대 소속”…국사편찬위 자료 오늘 공개

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 암살범인 안두희(安斗熙·96년 사망)가 미군 방첩대 소속이었으며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 선생의 암살에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의 단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사편찬위원회는 4일 이 같은 내용을 뒷받침하는 사료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국사편찬위 관계자는 3일 “안두희는 백범 선생 암살 당시 국군 장교였으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해 그 배후가 베일에 가려있었다”면서 “이 사료는 안두희가 활동했던 단체를 밝히는 최초의 사료”라고 말했다.

이 사료가 미국이 백범 암살사건에 개입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료를 계기로 백범 암살에 미국이 개입했는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준우기자>hawoo@donga.com 동아일보 2001년 9월 4일

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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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서라는분이 사살했다는근거를 못찾겠는데 .. 그런데 .. 안두희를죽인게잘한거라하는데 .. 그때어차피 먹을만큼많이나이를먹었을겁니다 이상허접한답변입니닷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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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 면 안두희 님도 나이를 꽤먹었다 생각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김구를 죽인 이유를 대지 않았다면 뭔가 사연이 있겠죠

 

참다 못한 박기서란 분이 죽였다 이해가 될수있죠

 

그리고 지금도 미국도 일본이나 만큼 욕은 많이 먹습니다

200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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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우발적으로 김구선생을 죽엿든 누구의 사주로 죽엿든...그걸 시작함으로써 그사람의 인생은 잘못들어섰다고 볼수 있죠...그 배경이 돈이였든 그사람 환경으로 인한 협박이었든...그건 시작하면 안됫을 일이라고 생각해요...그사람도 사정이 있엇겟죠...그냥 김구선생을 죽인 범인이라 너무 밉지만...그사람도 사람인지라 그냥 안타깝네요...그사람을 편드는게 아니에요...그냥 생명은 소중한거니깐 당연히 김구선생님의 생명도... 하지만 안두희의 생명도 중요하거든요...첨에 맞아 죽었다는 소릴 들었을땐 속이 후련햇죠... 김구선생님의 행적도 알기에...그러고 나니...안두희도 정말 불쌍한 한명의 인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깐 죽인게 잘하고 잘못했다기 보다 그냥 안됬습니다...암살당한 김구선생님을 암살 해서 개죽음 당하는 안두희도...안두희가 하지 않았어도 그누군가 했겟죠...그사람은 또 맞아 죽었을테고...이건 알 이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 그런 생각이드네요...그런짓을한 안두희는 용서가 안되지만...그래도 그렇게 죽이고 후련해 하는 우린 제2의 안두희 아닐까요?? 죽기전까지도 많이 힘들었을텐데...안됬기도 하고 그런길을 택한 안두희가 밉기도 하고 그렇네요...대답이 애매하게 해서 죄송해요...요점은 잘한거 못한거 보다 그사람이 너무 안됫어요...김구선생님을 왜 죽여서...그렇게 안타깝게 살았는지... 그냥 제 생각을 써봣어요 그래도 생명은 소중한 거라구 생각해요...절때 포기하거나...누구에게 죽음을 당할 짓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자기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타인을 위해서요...점수는 필요없어요...

200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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