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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시조,속담,전설 조사하기
비공개 조회수 6,353 작성일2009.08.30

제가 방학숙제 때문에 시조,속담,전설 조사를 해야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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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우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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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1. 가갸 뒷자도 모른다 : 아주 무식하다는 말. / 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
2. 가게 기둥에 입춘 : 격에 어울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
3, 가난도 비단 가난 : 아무리 가난해도 체통을 잃지 않고 견딘다는 말.
4. 가난한 양반 씨나락 주무르듯 : 한없이 주물럭거리고만 있음을 비꼬아 하는 말.
5. 가난한 집 신주 굶듯 : 줄곧 굶기만 한다는 말.
6.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 치르기 어려운 일만 자꾸 닥친다는 말.
7. 가는 날이 장날이라 : 우연히 갔다가 공교로운 일을 만났을 때를 이르는 말.
8. 가는 말에 채찍질 : 닫는 말에 채질한다.
9.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 자기가 먼저 남에게 잘 대해 주어야 남도 자기에게 잘 대해 준다는 말.
10.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 남에게 해를 끼치면 그보다 더 큰 화가 돌아온다는 말.

 

11.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처한 처지에 있음을 이르는 말.
12. 갈수록 수미산(태산)이라 : 갈수록 더욱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됨을 이르는 말.
13.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듭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된다는 말.
14. 가랑잎에 불 붙듯 : 성미가 급하고 도량이 좁은 사람이 걸핏하면 발끈 화를 내는 것을 이르는 말.
15. 가랑잎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한다 :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을 가지고 남을 속이려 할 때 이르는 말.
16. 가래 터 종놈 같다 : [가래질하는 마당의 종놈처럼] 무뚝뚝하고 거칠며 예의 범절이라고는 도무지 모른다는 말.
17.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 말이 많음을 경계하는 말.
18. 가마가 솥더러 검정아 한다 : 제 흉이 더 많은 주제에 남의 흉을 본다는 말.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
19. 가마 타고 시집가기는 다 틀렸다 : 일이 잘못되어 제대로의 격식을 차릴 수 없게 되었다는 말.
20. 가문 덕에 대접 받는다 : 좋은 가문에 태어난 덕분에 변변하지 못한 사람이 대우를 받는다는 말.

 

21. 가물에 콩 나듯 : 무슨 일이나 물건이, 어쩌다가 하나씩 드문드문 나타난다는 말.
22. 가슴이 화룡선 같다 : 사람의 도량이 크고 속이 트였음을 이름.
23.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 추수하는 가을에는 매우 바쁘다는 말.
24. 가을 중 싸대듯 :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님을 이르는 말.
25. 가재는 게 편이다 : 됨됨이나 형편이 비슷한 것끼리 어울리게 되어 서로 사정을 보아줌을 이르는 말.
26.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 자식을 많이 둔 어버이에게는 근심이 끊일 때가 없다는 말.
27. 가지나무에 목맨다 : 워낙 딱하고 서러워서 목맬 나무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죽으려고만 한다는 말.
28. 감기 고뿔도 남을 안 준다 : 감기까지도 남을 안 줄 정도로 몹시 인색하다는 말.
29. 감꼬치의 곶감 빼 먹듯 : 있는 재물을(늘리기는 커녕) 하나씩 하나씩 축내며 살아가는 모양을 이르는 말.
30. 감사 덕분에 비장 나리 호사한다 : 남의 덕으로 호강한다는 말.

 

31. 감장 강아지로 돼지 만든다 : 비슷한 것으로 대신해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말.
32. 값도 모르고 싸다 한다 : 속내도 잘 모르면서 이러니저러니 참견을 하려 든다.
33. 갓마흔에 첫 보살(버선) : 오래 기다리던 일이 뒤늦게 이루어졌을 때 이르는 말.
34. 강물도 쓰면 준다 : 많다고 헤프게 쓰지 말고 아껴 쓰라는 말.
35. 강아지 똥은 똥이 아닌가 :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다는 말.
36. 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 : 운이 나빠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함을 이르는 말.
37. 갖은 놈의 겹철릭 : 필요 이상의 물건을 겹쳐서 가짐을 이르는 말.
38. 같은값이면 과붓집 머슴살이 : 이왕이면 조건이 좋은 쪽 일을 하는 것이 낫다는 말.
39. 같은값이면 다홍치마 : 이왕이면 더 좋은 쪽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말.
40. 개가 똥을 마다한다 : 평소에 좋아하던 것을 뜻밖에도 사양함을 보고 천하게 이르는 말.


41. 개가 웃을 일이다 : 말 같지도 않은 같잖은 일이다.
42.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 : 돈을 벌 때에는 궂은 일을 가리지 않고 벌고, 번 돈을 쓸 때에는 어엿하게 써야 한다
43. 개 꼬락서니 미워서 낙지 산다 :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좋아할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
44. 개 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 : 본디 질이 나쁜 것은 아무리 오래 두어도 끝내 좋아지지 않는다.
45.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 평소에 가까이하고 좋아하던 것이 먼저 눈에 띄는 법이다. / 질이 낮은 사람에게는 질이 낮은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46.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는다 : 남을 너무 되게 몰아세우면, 도리어 해를 입게 되기 쉽다.
47.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 : 개도 은혜를 베푼 사람을 알아보는데 어찌 사람이 은혜를 모르랴.
48. 개도 손들 날이 있다 : 거지도 손 볼 날이 있다.
49.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 아주 흔하던 것도 정작 필요해서 찾으려니까 구하기가 어렵다.
50. 개 못된 것은 들에 가 짖는다 : 제 밥 먹고 쓸데없는 짓만 하고 다니는 사람을 비꼬아 이르는 말.

 

 [시조]

효(孝)를 주제로 한 시조모음

1. 뉘라서 가마귀를

뉘라서 가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1) 지은이 : 박효관(1781-1880) - 조선 철종, 고종 때의 가객(歌客). 제자 안민영과 더불어 가집 <가곡원류(歌曲源流)>를 엮음

2) 어휘 설명
하돗던고 - 하였던고. 하더란 말인가?
반포보은(反哺報恩) - 까마귀(반포조,효조(孝鳥)라 함)의 새끼는 다 자란 뒤에는 제 어미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가 먹여준다. 어버이의 은혜를 갚는 것을 말한다.
못내 - 잊지 못하고 늘
슬허하노라 - 슬퍼하노라.

3) 감상
미물인 까마귀도 효도를 행하는데 사람 가운데에는 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많다.


2. 반중 조홍감이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1) 지은이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 호는 노계. 그의 작품은 대개 고사(故事)를 많이 인용하고 한문을 많이 쓰는 흠이 없지 않으나,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오륜가>를 지었다.

2) 어휘설명
반중(盤中) - 소반 위. 소반에 담은.
조홍감(早紅枾) - 일찍 익은 감. '조홍시'라 해야 옳은 듯함.
보이나다 - 보이는구나!
유자(柚子) - 추운 지방에 자라는 귤(橘)의 한 가지.
반길 이 - 반가워할 사람. 즉, 지은이의 어머니를 가리킴.
글로 - 그것을. 그것으로. 그런 까닭에

3) 감상 :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성어(故事成語)
- 옛날 중국 오나라의 육적이, 6세 때에 원술의 집에서 접대로 내놓은 유자귤 세 개를 슬그머니 품안에 숨겨 나오다가 발각이 되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대답하여, 그 지극한 효성이 모두를 감동시켰다.
- 이 시조(時調)는 한음 이덕형이 접대로 내놓은 감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조라 한다.
- 보통 조홍시가(早紅枾歌)라 불린다.
-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옛글귀를 연상케하는 시조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하며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3. 왕상의 잉어잡고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를 증자같이 하리라


1) 지은이 : 박인로

2) 어휘 설명
왕상(王祥)의 잉어 - 옛날 중국의 왕상이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앓으면서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왕상이 옷을 벗고 강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려 하였더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어나왔다고 한다.
맹종(孟宗)의 죽순(竹筍) -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맹종은 늙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니 대숲에서 슬피 울며 탄식하니, 죽순이 겨울에도 솟아 나왔다고 한다.
위의 두 효자의 이야기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고사(古事)이다.
노래자(老來子)의 옷 - 칠순(七旬)의 나이에도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리면서 늙으신 부모님을 즐겁게 했다는 효자(孝子) 노래자의 이야기.
양지성효(養志誠孝) - 어버이를 잘 봉양하여 그 뜻을 기리는 정성스러운 효성. 공자(孔子)의 수제자인 증자(曾子)는 효자로서 유명하다.

3) 감상 :
'조홍시가(早紅 歌)'의 둘째 수이다. 중국의 유명한 효자인, 왕상, 맹종, 노래자, 증자 못지 않게 나도 그들처럼 효도를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효는 모든 덕의 근본이기에 훌륭한 성현들은 모두 효자였다는 사실을 유념해야겠다.


4. 어버이 날 나으시고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몸 나서 어질소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1) 지은이 : 낭원군(朗原君, ? - 1699) - 선조 임금의 손자이며 효종의 당숙(堂叔). 학문에 조예(造詣)가 깊고 시가에 능하였다. '산수한정가(山水閑情歌)', '자경가(自警歌)' 등 시조 30수를 남겼다.

2) 어휘 설명
어질과저 - 어질게 되게 하고자
아마도 - 시조 종장 첫머리에 흔히 쓰이는 감탄사로서, '그럴 것 같다'는 뜻으로 많이 쓰임.
못내 갚아 하노라 - 못다 갚을 것 같아 안타깝다.

어버이 날 낳으셔 어떻게든 어진 사람되라고 고이고이 길러 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어찌 내가 사람다운 사람될까보냐? 이 지극한 은혜 어이 다 갚을꼬?


5. 어버이 살아신제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1) 지은이 : 정철(鄭澈,1536-1593)
호는 송강(松江). 고산(孤山) 윤선도, 노계(盧溪)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조 3대 작가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가에 윤고산, 장가(長歌)에 정송강"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사(歌辭)의 제1인자. 시가집 '송강가사'안의 작품에는 관동별곡, 성산별곡, 사미인곡 등 장가(長歌)를 비롯하여, 장진주사, 훈민가 등과 같은 단가(시조) 77수가 실려 있다.

2) 감상 :
송강 정철의 訓民歌중의 '자효(子孝)'이다. 효도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며, 불효(不孝)는 죄(罪) 중에 대죄(大罪)이다. 그러니 효도는 미루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계실 적에 효(孝)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

답변참고 >> http://www.hyoworld.or.kr/hyostory/view.php?id=58

 

조선의 명기 황진이 시조 모음

● 잣나무 배  <황진이>

저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 배
몇 해나 이 물가에 한가로이 매였던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넜느냐 묻는다면
문무를 모두 갖춘 만호후라 하리

小栢舟(소백주)

汎彼中流小柏舟 幾年閑繫碧波頭 後人若問誰先渡 文武兼全萬戶侯
범피중류소백주 기년한계벽파두 후인약문수선도 문무겸전만호후

* 세월이 흐른 뒤, 황진이가 자신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지었을 법한 시이다.

● 반달을 노래함  <황진이>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詠半月(영반월)

誰斷崑山玉 裁成織女梳 牽牛離別後 愁擲壁空虛
수착곤산옥 재성직녀소 견우이별후 만척벽공허

* 이 시는 초당(草堂) 허엽(許曄, 1517~1580)의 시인데 황진이가 자주 불러 황진이의 시로 오인되고 있다는 학설도 있다.

● 산은 옛 산이로되... <황진이>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 청산은 내 뜻이요…  <황진이>

청산(靑山)은 내 뜻이요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어예어 가노라

* 황진이 자신을 청산에 비유하여 변치 않는 정을 노래하고 있다.

●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 외로운 밤을 한 허리 잘라내어 님 오신 밤에 길게 풀어 놓고 싶다는 연모의 정을 황진이만의 맛깔난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 그리운 정에 떨어지는 잎 소리마저도 님이 아닌가 한다는 화담의 시조에 지는 잎 소리를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황진이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황진이와 벽계수와의 이야기는 서유영(徐有英,1801~18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자세히 전한다.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한편 구수훈(具樹勳, 영조 때 무신)의 <이순록(二旬錄)>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종실 벽계수는 평소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졌다.

●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이다.

 

○ 전설

1.용마한골의 전설

용인시 내사면에 있는 용마한골이라는 골짜기에는 홍씨 집안에 얽힌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홍씨는 나이들어 어렵게 자식을 하나 얻어 아이를 애지중지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없어졌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아이는 대들보위에서 방실방실웃으며 놀고 있었다. 아이의 몸을 살펴보던 홍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이의 겨드랑이에 난 날개를 본 홍씨 부부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예로부터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이는 역적이 된다고 하여 나라에서 아이뿐만 아니라 집안전체를 몰살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홍씨부부는 어쩔수 없이 아이를 죽였고 아이가 죽자 마을 뒷산에 용마가 나타나 슬피 울다가 마을 연못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버렸다. 원래 장수가 나면 용마가 따라 난다고 하며 그 장수가 죽으면 용마도 주인을 따라 죽는다고 한다.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은 용마가 나온 골짜기를 '용마한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2. 백제건국신화(온조신환)

백제의 시조는 온조다. 그의 아버지는 추모왕, 또는 주몽이라고도 한다.주몽은 그 졸본주 왕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이 비류요, 둘째 아들이 온조다.

이들 비류와 온조는 나중에 태자에게 용납되지 않을것을 우려하여 마침내 오간과 마려등 열사람의 부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드을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비류와 온조 일행은 드디어 한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부아악에 올라가 근거지가 될만한 땅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비류는 바닷가에서 근거지를 잡으려고 했다. 열사람의 그 부하들은 비류에게 간했다

"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 한수를 끼고 동쪽으로는 높은 멧부리에 의지하고, 남쪽으로 기름진 들이 펼쳐져 있고, 그리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어 그 천연으로 이룩된 요새의 이로움으로 보아 얻기가 어려운 지세이온데 이곳에서 도읍을 일으키는 것이 역시 마땅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비류는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따라온 백성들을 아우 온조와 나누어 미추홀(지금의 인천)로 가서 자리 잡았다.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서 그 열사람의 신하들을 그의 보익으로 하여 국호를 <십제>라 했다. 그것은 한나라 성제 15년(BC 18)의 일이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짠 때문으로 하여 안거할 수가 없어 되돌아왔다. 돌아와, 위례에 도읍이 바야흐로 자리 잡히고 인민들이 편안히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마침내 부끄러움과 후회로 하여 죽고 말았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백성들이 즐거워했다고 해서 그뒤 국호를 <백제>로 고쳤다. 백제의 세계는 고구려와 함께 다같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씨(氏)>를 <해(解)>라고 했다.

뒤에 성왕 연대에 이르러 도읍을 사자에 옮기니 지금의 부여군이다


 

20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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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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