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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명박 대통령 탄핵뜬것에 대해서.
비공개 조회수 31,785 작성일2011.06.10

어떤 초글링들이 이딴짓거리들 하는지

나이좀 먹어가면 지능(뇌)스텟 부터 찍는게 어떠니?

나라 쪽팔리게

그리고 이대통령 난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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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신
병역

이명박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 '기관지확장증' 으로 신검에서 군대를 면제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의 주변에 이명박이 기관지확장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점, 현대그룹에 입사 후 중동지역에까지 파견된 점, 장기간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는 점으로 미루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해 훗날 대선 후보 청문회에서 ‘군대에 못 갈 정도로 병을 앓던 후보가 어떻게 불과 몇 년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정주영 회장과 함께 술을 엄청 먹고 ‘씨름왕’까지 차지할 수 있었냐’는 의혹 제기에 대하여 이명박은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고 해명하였다. [4] [5]

 

현대건설 상무로 재직하던 1969년 12월~70년 5월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69의 14 매머드빌딩 부지에 중기공장차고 7동을 무허가로 건축했다. 1972년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공개 수배된 뒤 구속되었다.

 노조설립방해와 근로기준법 위반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현대건설 전직 노조위원장 출신인 서정의 씨는 "1988년 현대건설 노조추진위원장 납치 사건의 총책은 당시 회장으로 있던 이명박"이라고 폭로하면서 당에 관련자료를 제출하고 대선 후보 검증 차원에서 조사를 의뢰했다. '현대건설 노조추진위원장 납치 사건'은 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서정의 씨가 88년 5월 6일부터 5일간 목포로 피랍돼 감금당한 사건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서 씨의 납치는 당시 현대건설 최 모 이사와 강 모 부장이 조직폭력배에게 납치를 청부했고, 그 대가로 2000만 원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회장이었던 이명박은 납치에 직접 관련은 없지만 '노조 설립 방해' 혐의로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노조는 여러 차례 노동부와 경찰에 이명박 회장 등 회사 간부들을 부당노동행위 및 폭력 혐의로 고소했지만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가 국회에서 현대건설 뿐 아니라 포항제철, 풍산 등 대기업들의 노조원 집단탈퇴가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면서 노동부가 뒤늦게 사태 해결에 나섰다. 노동부는 91년 2월 당시 현대건설 정훈목 사장 등 고위 간부 4명을 노동조합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또 노동부는 해고된 조합원에 대한 원직복직명령을 내렸다. 현대건설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서울지방노동청은 결국 그해 6월 이명박 회장을 '근로기준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끝까지를 이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7]

[편집] 선거법 위반과 범인 도피

1996년 15대 총선에서 이명박은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하여 노무현, 이종찬 후보 등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로써 그는 14대 국회에 여당의 비례대표 의원 (25번)으로 들어오면서 'CEO 출신 정치 신인'이라는 딱지를 떼게 됐다. 그러나 그해 5월 11일 각 후보의 선거비용 액수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야 4당 후보 중 신고 재산액(2억 6천만 원)이 가장 적었고 최하위 득표를 기록한 김을동 자민련 후보가 4명 중 가장 많은 선거비용(9,255만 원)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2위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7,271만 원)였고,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7,149만 원)와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후보(6,819만 원)가 각각 그 뒤를 이었다. 당시 이명박은 262억 원가량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고, 그가 후보 중 가장 공세적인 선거 운동을 전개했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3∼4위 후보보다 적은 비용을 신고하자 뒷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노무현 후보는 이명박의 신고액에 대해 “한 마디로 코미디”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총선 당시 이명박의 선거 기획을 담당했던 김유찬이 넉 달 후인 9월 10일 새정치국민회의 당사에서 “이명박이 총선 당시 전화 홍보 및 각종 행사 비용 등으로 6억 8천만 원을 썼고, 이 중 3,800만 원가량의 영수증을 가지고 있다.”라고 폭로하였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국회의원 6급 비서관이었던 김유찬은 이명박이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하자 5급 비서관으로 승진시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이명박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제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은 사건 초기부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고려대 후배로서 이명박의 '자문 역할'을 자임했던 홍준표 의원도 “후보 또는 회계 책임자 등이 금품 전달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당선 무효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종로구의 법정 선거 비용이 9,500만원이었기 때문에 김유찬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명박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을 게 분명했다. 한편으로, 공소시효 만료일 (1996년 10월 10일)만 넘기면 이명박이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6년 10월 9일 이명박은 형법상 범인 도피 및 공직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1997년 9월11일 1심에서 법정 선거 비용 초과 지출 및 범인 은닉 혐의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유죄 선고로 말미암아 국회의원 자격을 잃기 직전인, 이듬해 2월 21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명박은 1998년 4월 28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400만 원, 김유찬의 해외도피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명박은 “서울고법의 항소심 선고는 법적 판결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판결로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라며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포기했다.[8]

[편집] 황제 테니스 사건

이 부분의 본문은 이명박 공짜 테니스 사건입니다.

서울시장 재직 당시 그는 시 산하 체육기관 등의 후원으로 황금 시간대에 테니스장을 독점하면서 공짜로 “접대 테니스”를 즐겼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결국 이것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뒤늦게 사용료 600만원을 냈다.

 히딩크 감독 기념 사진 사건

2002년 FIFA 월드컵이 끝난 후에 열린 히딩크 감독의 명예서울시민 수여식에 참관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모든 행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아들과 사위로 하여금 히딩크 감독과 강제로 기념사진을 촬영시켰다. 밖에서는 히딩크 감독의 얼굴 한 번 보려고 서울시청을 찾아온 수많은 서울 시민을 경찰을 동원해 제지하는 와중에도 이명박 자신은 기념사진을 촬영해 물의를 빚었다. 특히 이명박의 막내아들인 이시형은 이 자리가 공식석상임에도 반바지를 입고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참석하였으며, 이명박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난 히딩크 감독과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회사도 빼먹고 여기로 왔다."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9][10][11] 이 사건은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취임한 지 사흘 만에 발생했으며, 이 사건 때문에 원래 진행이 예정되었던 히딩크 감독과 관련된 다른 행사는 모두 취소되었다.

 서울시장 해외순방 때 부인 기자단 포함

 2007년 대선과정에서 제기된 주요 의혹

 BBK 주가 조작 사건 연루 의혹

 이 부분의 본문은 BBK 주가 조작 사건입니다.

1996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 후, 선거법 위반과 범인 해외 도피가 밝혀져 이명박 후보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고 미국에 체류하였다. 이때 지인이었던 에리카 김(한인 여성 미국 변호사)의 남동생 김경준과 함께 2000년 BBK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에서 사이버 금융 사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김경준과의 관계는 청산되었다. 이후 김경준이 옵셔널벤처스라는 회사를 만들고 주가 조작을 통해 380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횡령한 뒤 미국으로 도피한 사건이 BBK 주가 조작 사건이다. 김경준은 회사의 실질적 소유주가 이명박이며 자신은 이용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명박은, 자신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으며 김경준에 의해 사기를 당한 사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장과 다르게 여러 가지 증거가 일반/언론을 통해 하나 둘 제시되기 시작했으며, 그중 ‘BBK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이다.’란 주제의 광운대 강연 동영상, BBK 설립 당시 언론을 통해 발표한 ‘이명박, BBK로 금융사업 시작’ 홍보/보도자료, BBK의 계좌와 이명박 씨의 계좌에 비슷한 시기에 정확히 일치하는 거액의 액수가 입/출금된 점, 이명박 씨가 직접 서명하거나 인감이 찍힌 BBK 내부 문건, BBK 대표이사직 명함 등 수많은 증거물이 상당수 제시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예상을 뒤집고 한국 검찰은 2007년 12월 5일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성에 대해 ‘증거 없음/무혐의’로 발표했다. 특히 결정적인 증거물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의혹은 검찰 측의 애매한 태도 탓에 더욱 커졌으며, ‘증거 없음/무혐의’ 발표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이다.

이 사건에 대해 정호영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2008년 1월 15일 현판식을 열고 수사를 진행했으며, 특검은 2008년 2월 21일 BBK 실소유 및 주가 조작 의혹은 “김경준 씨가 단독으로 BBK를 운영하며 옵셔널벤처스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한 뒤 주가조작을 했으며 유상증자 때도 김씨가 국외에 설립한 유령회사에 신주를 배정하고 옵셔널벤처스 신주를 다량 확보한 뒤 그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을 하고 법인 자금 319억 원을 횡령해 BBK 투자금 반환 등에 사용했고, 이 과정에 이 당선인이 개입한 증거가 전혀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으며 특히 “이 당선인이 광운대 강연에서 ‘BBK를 창업했다.’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김씨와 제휴해 인터넷 종합 금융사업을 하기로 약속한 상태에서 BBK와 김씨를 홍보하려고 한 말이라고 진술했다.”라며 “강연 내용만으로 이 당선인이 주가 조작과 횡령에 관여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가 갖고 있던 명함을 이 당선인이 실제 사용한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역시 주가 조작과 횡령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발표했다.[12] 수사 결과 발표 후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과반수가 특검의 무혐의 발표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13]

이 사건에 대해 한국 법원은 이명박에 대해 무죄, 김경준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으나, 미국 법원은 김경준 및 그 가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또한 다스옵셔널캐피털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김경준 측이 승소했다.[14]

2010년 9월, 이명박이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라는 문건을 봤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진실공방이 다시 가열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15]

위장 전입

2007년 6월 12일,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이명박이 부인 명의로 강남에서만 15차례에 걸쳐 위장 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16] 이에 대해 이명박은 39년간 25번의 이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 단위로 주민등록 변경이 이루어졌으며, 위장 전입은 없었다고 해명하였다. 이명박 캠프의 장광근 대변인은 “김혁규 의원의 허위 사실 유포는 정권 차원의 총체적 이명박 죽이기 공작의 신호탄”이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하기도 했다.[17] 하지만, 의혹이 제기된 지 5일 만에 국민일보가 위장전입 사실을 밝혀내자, 이명박은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이었다고 시인하고 사과하였다.[18]

1969년 이후 모두 24차례의 주소 이전 중에 1977년의 중구 남산동 이전, 1979년의 중구 필동 이전, 1981년의 중구 예장동 이전, 1984년의 서대문구 연희동 이전은 세 딸(리라초등학교)과 막내아들(경기초등학교)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주소 이전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부인 김윤옥 씨가 이 전 시장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집으로 주소를 옮긴 이유는 아들의 중학교 입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은 2007년 6월 16일 “알아봤더니 30년 전 아이들 초등학교 들어갈 때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떻든 저의 책임이니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사과했으며, 부동산 투기 의혹은 모두 부정했다.[19] 그러나 리라초등학교는 사립학교이므로 주소와 상관없이 학생을 뽑으며, 경기초등학교도 주소에 대한 가산점을 준 적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0]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인 박형준은 당시 관행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입학 우선권을 주었으며 실제 주소에 거주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고위 공직자 후보 검증 과정에서 위장 전입을 강하게 비판해 왔고, 그 때문에 낙마한 사례가 많아 문제가 되었다.[21] 이명박이 소속된 한나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의 국무총리 국회 동의 과정에서 국무총리 후보자(장상 등)의 위장 전입 문제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김대중 정권의 총리 지명을 여러 번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뉴타운 의혹

천호동이 뉴타운으로 선정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이명박 후보의 친인척들이 이 지역에서 땅투기를 하여 100억여 원의 차익을 올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명박 후보의 큰형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이 대주주로 있는 다스의 자회사인 홍은프레닝은 2003년 3월 29일부터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으며, 한나라당 검증 청문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천호 뉴타운 지역은 2003년 11월 뉴타운 선정 최종 발표 한 달 전에 강동구청에서 집창촌 개발의 필요성을 제기해 막판에 추가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홍은프레닝이 땅을 사들이기 직전에 이미 집창촌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뉴타운 선정 지침을 서울시가 확정했었다는 사실과 강동구의회 의원의 반대에도 뉴타운 지정이 강행되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22]

 건강보험료 편법 의혹

이명박 후보는 수백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지만, 2000년에서 2002년 동안 월 1만 5천~2만 3천 원의 국민건강보험료만 냈다는 것이 알려져 건강보험료 납부를 회피하고자 편법으로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23]

한편, 국민연금은 소득을 345만 원 이상(최고등급)으로 신고하였지만 건강보험의 경우는 200만 원가량 적은 100만 원대로 소득을 신고하여 소득을 속였다는 의혹과, 11개월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되었다.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의 장복심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후보처럼 건강보험료는 적게 내고 나중에 되돌려받게 되는 국민연금은 많이 내는 개인사업자들이 증가하고 있어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4]

 위장 취업을 이용한 탈세 및 횡령

2007년 11월, 강기정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국회 대(對)정부 질문을 통해 이명박 후보가 자녀를 자신의 회사(대명기업)에 허위로 고용하고 월급을 지급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즉, 자녀를 유령 직원으로 등재하여 8,800만 원을 횡령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탈세하였다는 것이다.[25] 강기정 의원은 대명기업에 전화를 걸어 경비와 관리직원이 이시형, 이주연 씨를 모르고 있음을 폭로하였다. 문제가 된 아들 이시형 씨는 지난해 국제금융센터(SIFC)에 입사하여 일한 기간과 대명기업에서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는 기간이 겹치며, 딸 이주연 씨는 이 기간에 미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처음 의혹이 제기되자,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해명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라는 이유로 해명을 거부하였으나 이후 “상근직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지만, 건물 관리에 일부 기여한 바가 있다.”라고 해명하였다.[26] 결국, 이명박 후보는 “본인의 불찰이고 꼼꼼히 챙기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세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조치하겠다.”라고 사과하였다.[27] 한편, 사과의 시점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28]

누리꾼의 비난과 탈세와 횡령에 대한 기소 문제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자격 유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자, 이명박은 자녀에게 지급한 월급을 소유한 기업의 비용 처리에서 제외하고, 건물 관리 업무와 무관한 성격의 자식에 대한 순수한 증여로 처리하고, 장녀에게 지난 7년간 지급된 월급에 대한 세금 4,394만 원을 세무서에 납부하였다.

한편, 이명박과 동일한 방식으로 외국에 있는 자식을 국내의 소유 기업에 위장 취업시켜 월급을 지급하여 횡령 및 탈세로 기소되었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회장의 사건과 비교하여 세무 조사 및 검찰 고발 요청서를 제출받은 국세청에서 이번 사건을 어떠한 방식으로 처리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29] 한편,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명박에 대한 세무조사를 주장하는 네티즌의 인터넷 서명 게시판을 선거법 위반으로 폐쇄하였다.

 경선에서의 갈등

이명박은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한 한나라당 내부에서의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의 비중을 늘리자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당원만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앞섰으나, 여론조사를 포함한 전체 결과에서 이명박 후보가 앞서면서 대통령 후보에 뽑히게 되었다. 당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30] 경선에 참여한 후보는 승리한 후보를 지원하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박근혜는 이명박을 지지했고 박근혜의 인기를 등에 업은 덕분에 이명박은 정동영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공약, 약속 문제

이명박은 대선 공약으로 내놓은 것들을 지키지 못하거나, 번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한 전정부에서 추진되던 것을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취소하거나 변경하여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2011년 5월 13일에는 LH공사를 이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경상도와, 전라도 주민들의 지역대결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북은 LH 분산배치가 좌절되서, 경남은 이미 확보했던 국민연금공단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31]

] 허위 공약

이명박은 경제분야에서 연 평균 7%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7대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며 747 공약을 내세웠다.[32] 하지만 취임 직후에 2000을 넘던 주가는 900까지 곤두박질 쳤으며, 취임 2년이 지난 2010년 현재도 취임 이전 수준인 2000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국민소득도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1만7175달러로 곤두박질쳤다.[33]경제 성장률도 2008년 2.3%, 2009년 0.2%로 공약에 크게 미치지 못하며,[34]2010년 예상 성장률도 5% 내외에 불과하다.[35] IMF는 2015년에도 한국의 국민소득 3만불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36]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정권이 교체되면 젊은 부부들에게 집 한채씩 줄 수 있을것"이라는 발언도 한바 있다.[37] 이러한 공약들에 대해 야당과 언론, 시민단체 등 각계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38][39][40] 또한 대선 당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2011년 신년 연설에서 갑자기 이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허위공약 논란이 일었다.[41] 이명박은 자신의 말을 번복하며 "대선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충청권 유치 얘기를 했지만 공약집에 들어있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선관위는 "대선 공약집에 충청권 유치 내용이 포함돼 있다"라고 밝히면서 거짓말 논란이 일기도 했다.[42] 또한 세종시와, 영남권 신공항, 반값 등록금 등등 공약했던것들을 줄줄이 뒤집으면서 비판을 받았다.[43] 이명박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던 '반값 아파트' 공약도 물거품이 됐고,[44] 통신비 20% 인하 공약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2007년에는 월평균 통신비가 128,842원에서 2010년 136,682원으로 기록되어 오히려 6.1% 상승했다.[45] 백지화된 공약들중 세종시와, 영남권 신공항에 대해서 박근혜는 공약을 지켜야 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실제로 세종시는 국회 표결절차에서 원안추진으로 결론나기도 했다. 영남권 신공항도 박근혜가 건설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46] 이명박은 4월 1일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통해 "공약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47] 하지만 민주당과 친박계가 반발하면서 불씨가 남아있다.[48] 민주당 조배숙 의원은 이명박을 가리켜 "백지왕"이라고 비판했다.[49]

한반도 대운하

 

내세운 경부운하(한반도 대운하)는, 경제성 및 식수 오염, 공사 비용, 공사 기간 등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50] 한편, 이명박 후보는 경부 운하 공약을 공개 토론을 통해 검증하자고 했었으나, 2007대선 시민연대가 공개토론을 제안하자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거부 의사를 밝혀 문제가 되었다.[51] 또한, 이명박이 벤치마킹했다고 주장하는 독일의 운하가 담당하는 물류량은 독일 총 물류량의 5%가 채 되지 않으며, 독일의 국토는 남부지방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평지인 데 비해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지여서 한반도 대운하의 현실성과 타당성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초 대운하 공약이 나왔을 당시 국민의 혈세 한 푼 안들이고 민자로 유치하겠다고 강조하였다.[52] 그러나 대운하 공약이 4대강 사업으로 바뀌면서 세금 22조원이 투입되도록 바뀌었다.[53]

이에 대해 명진 스님은 "내가 알고 있는 정치인 중에 이명박 장로만한 거짓말의 달인은 못 봤다", "낙동강 4대강 사업을 맡은 사람들이 포항 동지상고 (이명박 대통령의)동창들이 다 맡았다고 하는데, 이게 국가냐, 조폭집단이냐"며 이명박과, 4대강 사업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54]

더군다나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불법폐기물을 만들어내어 4대강 사업이 오히려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이 밝혀졌다.[55]

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생명 살리기"라고 강조하여 비판을 더욱 촉진시켰다.[56]

재산 환원 공약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당락과 관계없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2007년 12월 7일이다. 당시 선관위에 등록된 이 후보의 공식 재산은 모두 353억 8000여 만 원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영포빌딩 120억 원, 서초동 땅 90억 원, 양재동 영일빌딩 68억 5천만 원, 논현동 주택 40억 5천만 원 등이 포함되었다. 이 후보는 재산 사회환원 시기와 규모에 대해서는 방법과 절차는 주위의 좋은 분들과 의논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청와대는 재산환원에 대해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않았다.[57]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7월 5일 자신의 호를 따 재단법인 청계를 설립하고 331억 원을 출연했다. 이는 2009년 상반기중으로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공언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도되었으나, 재단의 관리, 운영인원의 대부분이 친족이나 지인/관계자라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비영리재단의 사회복지사업법의 법령상 출연자와 이사간에는 공익성을 위해서 고용등의 특별한 관계가 없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맏사위나 전 비서실장 등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의 환원인지 단순히 사유재산의 형식을 재단으로만 바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혹의 여론이 남아 있어 청계재단이 가질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58]

그러나 2010년 12월, 이명박의 퇴임 이후 초호화 사저를 짓기 위한 40억 원 예산안이 통과되면서 재산환원 공약과 매치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59] 이명박의 사저 경호원실 부지 매입비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지 가격보다 27배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60]

 경제지상주의

이명박 한나라당 17대 대선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면서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웠으며,[61][62] 이 구호와 현대건설 재임 시절의 입신출세 경력 등으로 말미암아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만을 너무 중시하는 이명박과 그의 지지자들에 대한 비판이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은 이 당선자의 분발을 촉구하면서도 “민심은 무딘 듯 날이 선 칼”이라는 칼럼에서 “위장 취업·전입의 경력이라도 좋다. 주가조작사건의 주모자인 국제사기꾼에 놀아난 인사라도 상관없다. 경제를 살려준다고 하질 않는가. (민심이) 그렇게 MB(이명박 당선인)의 손을 들어준 것이 혼란스럽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62]

2011년 4월 7일 기획재정부는 취임 3년 뒤에 국가채무에 따른 이자지급액이 50조원 정도에 육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하였다.[63]

 작은 정부

대선시절과 정권 교체 초기시절 이명박은 '작은 정부'를 강조하였다. 공무원 수를 30%정도 줄이고, 세수를 줄여 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수위에서 정부 부처를 줄이긴 하였으나, 정작 줄이기로 한 공무원 숫자는 오히려 8만1219명 늘리기로 하였으며, 예산도 전년 대비 5.3나 증가한것으로 드러났다. 봉황무늬 폐지

대선시절과, 정권 인수 초기시절 이명박은 권위주의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봉황무늬를 폐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10년 현재 봉황무늬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66]

 반 값 등록금

주요한 공약들중에 '반 값 등록금' 공약이 있었으나, 이를 조용히 없던 일로 하고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여, 허위공약에 대해 대학생들이 삭발 시위를 하거나,[67] 이명박을 고발하는 등[68] 비판을 받았다. 민주당은 등록금 반 값 공약을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하고 규탄하였다.[69] 2010년 12월 8일에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통과된 2011년 예산안에서 장학금과 등록금 지원을 대폭 삭감하여 이명박의 초기 공약을 지키지 못하였다.[70]

이에 2011년에는 네티즌 사이에 교육 등록금 문제를 해소하는 정당을 창당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었다.[71]

 세종시

 

2007년 9월 이명박은 "세종시 반드시 지키겠다"며 세종시 추진을 공약했다. 하지만 2009년 들어서 세종시 원안을 백지화 하겠다고 말을 바꾸면서 야당들은 물론 박근혜와의 마찰까지 빚어졌으며, 충청도민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여 이완구(한나라당) 충남도지사가 사퇴하고,[72] 한나라당 충청도 지역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73][74]

 이건희 단독 사면

2008년 8월, 이명박은 8.15 사면을 마지막으로 임기중 사면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75] 그러나 2년 뒤인 2010년 12월 29일 이건희에 대해서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단독 사면을 단행하였다.[76] 정부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삼성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면 한 것이지만, 정작 이건희는 삼성 특검 당시 배임,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이유로 IOC 위원 자격을 박탈당해 사면의 명분조차 사라졌으며, 대한민국 재벌 1위 이건희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을 받았다.

 저출산 대책

영유아 예방접종비 부담이 평균 100만원으로 이명박의 공약인 무료접종이 물건너간 우려가 있다.

외교력에 대한 비판

 4강 외교 추진 및 불발

2007년 10월 중에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순방하고 지도자들을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였지만, 모두 무산되었다.[79][80]

이명박은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었다며 면담 일정을 공개하였으나, 미국 백악관은 이를 공식 부인하였다. 이에 공식적인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추진했다는 비판이 있었으며, 사대주의 외교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한편, 오마이뉴스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성 전 장관과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81]

 소통 부족과 일방주의

 소통 부족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비판이 임기 초부터[82]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 발단은 초대 내각 인선으로 여겨진다. 내정자들이 특정 집단 위주(소위 '고소영', '강부자' 's라인'[83])에 편중되어 있으며 투기 등 수많은 의혹을 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는데,[84] 당시 당선인 이명박은 비판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였다.[85] 특히 여러 의혹과 반대를 무릅쓰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성호 국가정보원 원장 등의 인사를 단행하여 커다란 논란과 함께 지지율 하락을 겪었다.[86][87]

소통 부재는 2008년 5월 촛불 집회를 거치면서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국정 운영에 관한 대통령의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88][89]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화와 여론 수렴은 뒷전으로 한 채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만을 전달하고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첫 번째 사과 이후에도 시위에 배후 세력의 음모가 있다는 등의 인식을 보여 격렬한 비난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90]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대화보다 경찰의 물리력을 동원한 진압에 주력하여 집회의 합법성 논란과 함께 과잉 진압 논란이 불거졌다. 또한 국민과 소통을 강조한 두 번째 사과 후 일주일 만에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하여, 이 조치의 정당성이나 현실적인 어려움와는 별개로 소통을 외면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91] 촛불 집회 과정에서 보인 일방주의적인 대응과 '소통' 방식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92]

2008년 6월 10일 계획된 대규모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이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했던 이른바 '명박산성'은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 부재와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이 있다.[93]

소통 부재에 대하여 언론과 시민 사회에서는 정부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반면, 이명박 정부 측에서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정책을 충분히 '홍보'하는데 실패했다고 보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94][95]

이명박은 촛불 집회 기간 중 국회 연설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infodemics)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라고 발언하였다.[96]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근거 없는 괴담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촛불 집회의 매개체가 되었던 인터넷의 역기능만 지나치게 강조하였다는 비판도 있다.[97] 2개월 뒤에도 인터넷을 통한 개인정보의 침해와 불건전한 정보 유통의 피해를 지적하며 '정보전염병' 차단을 다시 언급하였다.[98]

이같은 그의 입장은 2008년 하반기 이후에 벌어진 사이버 모욕죄 신설 논란, 미디어 법 개정 논란, '미네르바' 구속 사건 등과 맞물리면서 이명박 정부가 소통의 부재 차원을 넘어 미디어를 장악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한다는 야당과 시민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를 두고 '독재정치'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99][100] 2010년 12월에는 천안함 침몰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인터넷 관련 글을 심의 없이 곧바로 삭제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여 여론을 탄압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101] 2011년 5월에는 트위터 계정 '2MB18nomA'에 대해서 방통위가 접속차단 조치를 함으로써 인터넷 여론 재갈물리기 논란에 다시금 불씨를 지폈다.[102]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윤여준은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통의 실패'에 있다"고 지적하였으며,[103]2009년 6월 3일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9.8%가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데에 동의하였다.[104] 이러한 논란 속이 명진 스님은 "현 정권을 4자성어에 빗댄다면 ‘쥐 귀에 경 읽기’, 즉 ‘서이독경 정권"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105]

여러 차례 소통 부족을 지적 받은 데 이어, 보수 언론까지도 소통 부족을 지적하기에 이르른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별 희한한 국민 소통을 다 보겠다.” 및 “이 정부 3년 내내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한 번도 없었던 셈이다.”라고 비판했다.[106][107][108] 그 사설에서 3년 동안 기자회견이라고 이름 붙인 행사를 20여 차례 가졌지만, 의례적인 회견이거나, 정부 치적에 관한 것이었고, 그나마 질문조차도 주제를 한정시키거나, 그 틀에서 벗어나면 질문을 받지 않거나 듣지 않은 걸로 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전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150회 이상 기자회견을 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친구’라 부르는 오바마 대통령만 해도 지난해에만 27차례 기자회견을 했음을 들어 소통이 없는 기자회견을 비판했다.[106][107][108] 또한 그러한 형식적 기자회견도 청와대에서 기획하고, 언론사는 방송장비만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108]

종교 편향

이명박의 종교 편향 논란은 임기 초반때부터 꾸준이 나왔다. 이명박이 다니던 소망교회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예배를 하는 모습이 그러한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 때문에 이명박은 한동안 청와대에서 예배를 자중하기도 했다.[109]

2008년 5월 초에는 주대준 당시 청와대 경호처 차장이 한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모든 정부 부처 복음화가 자신의 꿈'과 서울시장시절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다른 종교를 자극했다.

2008년 6월 말에는 정부가 관리하는 수도권 대중교통정보 시스템 '알고가'에 모든 생활 정보가 표기된 가운데 유독 수도권 사찰의 표기만이 빠졌음이 드러나면서 불교계는 크게 분노했다. 당시 불교계는 '이미 2002년 건교부가 구축했던 알고가 시스템에 수많은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었음에도 굳이 새롭게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이전 알고가 시스템에 포함되어 있던 사찰 등의 지리 정보를 누락시킨 것은 특정 종교를 선교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다. 불교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국토해양부는 "시스템 유지 관리 위탁을 받은 업체가 꼼꼼히 점검하지 않아 생긴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종교평화위원회는 '알고가에서 불교의 사찰과 상징물을 제외한 것은 누군가의 지시와 감독이 수반된 일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라며 관련 공무원의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논란의 와중에서 '전국경찰복음화 금식대성회' 포스터에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이 조용기 목사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사용되면서 불교계를 더욱 자극했다. 사태가 심각하게 번질 것을 우려한 정부‧여당은 조속히 진화에 나섰다.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가 종교적 형평성을 강조한 공문을 각 부처에 하달하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이 불교계 인사들을 예방해 '불심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2008년 7월 29일 경찰이 촛불시위 관련 수배자를 잡는다며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탄 승용차를 과잉 검문한 일이 벌어지면서 불교계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조계종은 "한승수 총리의 종교 편향 재발 방지 약속이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다"며,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과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불교계의 불만은 마침내 그해 8월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행위에 항의하는 범불교도대회'로 표출되었다. 당시 대회에는 27개 종단 20여 만 명(경찰 추산 6만 명)의 승려와 불자들이 참가했다. 3일 뒤에는 오대산 상원사의 전 주지 삼보스님이 조계사 대웅전에서 정부의 '종교 차별'에 항의하는 할복을 시도하기도 했다.

불교계와 정부의 첨예한 갈등은 같은 해 9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이 TV 생중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불교를 포함한 종교와 사회 통합을 폭넓게 하겠다"라며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 저의 불찰"이라는 사과 표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당시 불교계는 이 대통령의 '불찰'이라는 표현이 '유감'보다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사실상 수용했다. 1월 19일에는 '불교계 4대강 운하개발사업 저지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포 용화사(조계종) 주지 지관 스님이 심야에 만취한 경찰관 2명으로부터 폭행당해 입원하는 사건이 벌어져 불교계를 분노케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강희락 경찰청장이 2월 9일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해 "불미스러운 일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피해 당사자가 용서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와 종단도 그 뜻을 존중하려 한다"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1월 28일에는 조계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 행사가 국정원 직원의 압력으로 취소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시민모임 '진실을 알리는 시민'은 "조계사에서 열 예정이던 사랑의 라면탑 쌓기 행사가 장소 제공 문제로 연기됐다"며 행사가 연기된 데는 국정원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조계사의 한 관계자도 "국정원 쪽에서 (행사나 주최 단체가) 너무 정치 성향이 강한 것 아니냐"는 전화를 걸어온 사실과 함께 이 국정원 직원의 명함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등 9개 불교단체들은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심장 같은 사찰인 조계사에 국정원 직원이 압력을 행사한 것은 사정기관을 동원해 지속적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국민의 생각과 행동마저 통제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이 빚어낸 결과"라고 밝혔다.[110]

2011년 3월, 이명박은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목사 앞에서 무릎을 꿇어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신앙에 의해 아무데나서 무릎을 꿇면 안된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 사건은 이명박의 종교편향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국민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고, 김부겸 민주당 의원도 "우리 사회가 가진 종교적 다원성과 풍요로움이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대통령이 앞에 있는데서 '무릎을 꿇자'고 말한 목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은 "개신교계가 지나치게 오만해졌다"면서 대한민국 개신교를 전반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111] 불교계의 반발도 커졌다.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MBC 《PD수첩》이 취재에 들어갔으나 갑자기 방송이 취소되고, 담당 PD가 갑자기 징계가 되는 등 언론탄압 논란으로도 확산됐다.[112]

이러한 종교 편향 논란이 일던 가운데 2010년 10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이 다니던 소망교회 신도들은 84%가 '잘 하고 있다'라고 답변한 반면, 이명박과 대립해온 불교 봉은사 신도들은 29%만이 '잘 하고 있다'고 답변하여 종교 편향에 따른 갈등이 지지율로도 나타났다.[113] 결국 명진스님은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이 대통령은 국민의 단합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현 정권은 포항 등 영남지역과 동지상고·소망교회에 편중된 인사, 빈부 갈등을 심화시키는 정책들, 최악의 남북갈등 상태 조장, 특히 종교갈등까지 부추키고 있다”면서 “입으로는 사회 통합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게 현정부다.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깐 ‘철판 정권’이다"라고 비판했다.[105]

친이계 독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는 2008년 3월 26일 서울 강남에서 회동을 갖고 한나라당 공천 결과가 편파적으로 진행됐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 대통령을 강력히 성토했다.[114]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는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계 독선을 비판했다.[115] 또한 친이계를 중심으로 추진되던 세종시 원안 백지화와 관련해서도 박근혜는 '원안 플러스 알파' 입장을 내놓으면서 친이, 친박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였다.

 KBS 정연주 사장 불법 해임, 방송장악

2008년 8월 11일 이명박은 KBS 정연주 사장을 불법적으로 해임하였다.[116] "KBS 사장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한 방송법을 '해임권한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어떻게 대통령이 없는 권한을 행사해서 KBS 사장을 면직시킵니까? 이것은 명백한 법률 위반입니다."라고 비판하였으며[117][118],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내며 크게 반발하였다.[119] 이에 정연주는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120], 2009년 11월 12일 법원은 "일부 경영상 잘못은 인정되지만 해임사유가 될 수는 없다."라며 해임이 무효라고 판결했으나, 이후 복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121]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정연주가 해임된 이후 이병순이 KBS 사장으로 임명되었는데 낙하산 논란이 일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병순은 임명되자마자 소속 팀장 등의 동의도 없이 47명에 대해 인사발령을 내는 등 강력한 인사권을 행사하여 노조의 반발을 샀다.[122] 이후 2010년 12월 30일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KBS 사장 김인규가 청와대 고위 인사를 만나 "KBS를 장악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방송 장악 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123] 이후 KBS는 《시사투나잇》이 폐지되고 이명박과 성향이 다른 언론인들이 해임되는 일도 잇따랐다.[122]

또한 이명박의 대선 후보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구본홍을 YTN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비판과 반발이 일었다. 당시 YTN 노조는 구본홍의 출근 저지, 단식, 피켓 시위 등을 벌였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방송은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그런 면에서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이명박의 방송장악 시도에 대해 비판했다.[124] YTN은 구본홍이 임명된 이후 인기 프로그램 《돌발영상》이 폐지되면서 아나운서들이 검은 옷을 입고 진행하는 등 많은 갈등이 일었다. 당시 《돌발영상》은 이명박의 '멜라민 발언' 등을 보도하면서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122]

MBC도 김재철 사장의 임명으로 인해 《PD수첩》 제작진이 이명박의 소망교회와 종교편향 논란을 취재하다가 전근 발령이 나는가 하면, 《후플러스》가 폐지되는 등 PD와 기자들간에 지속적인 갈등이 빚었다.[122] 시사 프로그램 축소 폐지와 함께 이명박 정부에 비판을 제기하는 프로그램들의 방송 취소나 연기 되는 일도 잦았다. 2010년 12월 7일에 방송될 예정이었던 《추적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이 불방되는 일이 있었고, 같은해 8월 MBC 《PD수첩》<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도 불방되어 다른 프로그램으로 편성되는 일이 있었다. 특히 《PD수첩》은 국토해양부가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된 후 김재철이 긴급 방송보류를 결정해 노조원들의 반발이 있었다. PD와 기자들의 과도한 사법처리도 많았다. YTN 구본홍 사장의 출근저지를 벌이던 노조원들이 체포되거나, 2008년에 방송됐던 MBC 《PD수첩》 <광우병>편을 취재했던 취재원들은 31개월동안 수많은 소환조사와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실장은 "제도적 행위자 교체로부터 시작하여 말단 제작진 PD 교체 및 해임까지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존폐 과정에서 뚜렷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122]

2011년에 있었던 아덴 만 여명 작전에서 앰바고를 지키지 않은 언론에 대해 청와대가 징계 결정을 내렸는데 이 역시 언론에 대한 탄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참여정부시절 앰바고를 지키지 않는 언론에 대해 징계를 하려던 절차에 대해 한나라당은 비판을 하며 반대해왔던 모습들과 모순적으로, 이번에는 앰바고를 지키지 않은 언론에 대한 징계를 하면서 정책적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125]

이러한 이유로 2011년 국제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하였다. 프리덤하우스는 "검열과 함께 언론매체의 뉴스와 정보 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이 확대된 데 따른 것"이라며 "최근 몇 년간 온라인상에서 친북 또는 반정부 시각의 글이 삭제됐고, 정부가 대형 방송사의 경영에 개입해 왔다"며 강등된 이유를 밝혔다.[126]

 공인으로서의 품격에 대한 비판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 중 유영봉안소 안에서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되어 입방아에 올랐다.[127]

서울시장 재직 시절 월드컵 한국 대표팀 히딩크 감독과의 공식 행사에 외국 축구팀 유니폼을 착용하고 슬리퍼를 신은 아들을 입장시켜 기념사진 촬영을 하여 시장으로서의 공사 분별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이명박 후보는 일정이 끝난 후에 촬영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사실이 아니었으며, 기념 촬영 때문에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취소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2007년 7월 이명박 후보가 소유한 양재동 건물에 유흥업소가 입주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128] 한국진보연대는 양재동 빌딩에 유흥주점을 입주하게 해 성매매를 묵인했다며 이명박성매매 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으나, 2008년 2월 2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해당 업소가 윤락행위로 적발된 적이 없고 지난해 12월 노래방으로 업종을 변경했다며 각하했다.[129] 이명박은 2008년 11월 유흥주점을 운영해 논란을 빚은 세입자를 상대로 계약 내용과 달리 유흥주점 영업을 했기 때문에 가게를 비워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가 2009년 1월 소송을 취하했다.[130]

2007년 9월 선거 운동 중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말에 “안창호 씨”를 존경한다고 표현하여 구설수가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에는 태극기를 거꾸로 든 채 응원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2007년 5월 13일 이명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묘지를 방문했다. 그러나 묘지의 상석 위에 발을 올려놔 큰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131]

2009년 12월 이명박은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에게 "나도 지난 대선 때 어느 괴한이 권총을 들고 집에까지 협박을 하러 와서 놀란 적이 있는데, 경호원들이 붙잡고 봤더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으나, 이명박의 최측근인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에 의하면 협박범이 집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전화로 총소리를 내며 협박한 것'이라고 밝혀 이명박의 과장된 화법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었다.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진술도 실제로는 경찰 수사 후에 돌려보낸 것으로 밝혀져 거짓임이 밝혀졌다.[132]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비판

연이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과 철학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133]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 있었던 기도회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선포한다" 고 말하면서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 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고 발언하여 공직자인 서울시장 신분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134]

아이가 불구일 경우에 낙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발언이 문제가 되어 장애인들의 사무실 점거 농성과 비판[135]을 받아 사과하였다.[136]

노동과 노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이 있었다. 서울파이낸스포럼의 초청강연에서, 인도에 가 보니 대학 출신 종업원들이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안 받는다고 소개하면서 스스로 프라이드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교수의 노조 결성을 위한 법안에 충격을 받았다며 "대학교수란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겠다니, 교육이 제대로 되겠냐"고 비판했다. 또한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에 가입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아니, 음악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가 있는데, 그것도 전에는 금속노조에 가 있었다. 아마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 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천박한 노동관을 드러낸 노조 비하 발언이라며 사과를 요구했고 민주노동당은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빈곤한 노동 철학을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사실 오케스트라 노조는 금속노조에 가입되어 있지도 않았다.[137]

초청 특강에서 저출산 대책을 논하던 중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 있고, 고3을 4명 키워봐야 교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138] 이는 특히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경쟁자인 박근혜가 미혼이라는 점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발언이 문제가 되자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며 "국정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과거 서울시장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었던 것"이라고 바로 해명 및 사과하였다.[139]

경선 승리 후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이야기하다가 “얼굴이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남자들이… 그러나 얼굴이 덜 예쁜 여자들은 서비스도 좋고…”라고 이야기했다고 알려졌다.[140] 이 발언은 오마이뉴스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들이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이러한 침묵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141] 이 발언이 알려져 여러 여성 단체와 정치인이 이명박 후보를 비판하였다. 한편, 이명박 후보 측은 이 발언이 전후 맥락 없이 왜곡 보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명박 후보는 답변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였고 특정 직종을 암시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142] 그러나 최초로 발언이 보도됐을 때 발언 자리에 함께 있던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그런 발언이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했고, 이명박 후보의 측근들은 “선배의 얘기를 한 것”이라고 변명했으며,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성매매가 아니라 발마사지였다고 해명하는 등 엇갈린 해명으로 문제가 되었다.[143]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정우택 충북지사와 주고받은 농담이 문제가 되었다. 정우택 지사가 이명박 후보에게 “예전 관찰사였다면 관기라도 하나 넣어 드렸을 텐데.”라고 말하자 이명박 후보가 “어제 온 게 정 지사가 보낸 거 아니었냐?”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문제가 되었다.

국회가 합의한 ‘행정중심 복합도시’ 안을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다고 발언하여 문제가 되었다.[144]

촛불 집회에 1만 명이 참석했다는 보고를 받고 "신문만 봐도 나오는 걸 왜 보고하느냐. 1만 명의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라며 화를 냈는데,[90] 이는 특정 단체가 조직하지 않은 자발적 집회에서 엉뚱하게 '배후 세력'을 찾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145]

한글 맞춤법 규정에 맞지 않은 언어 사용 때문에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특히 2007년 6월 6일 현충원에서 작성한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146]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 라고 쓴 일은 소설가 이외수가 2007년 6월 6일 이후 당시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였던 이명박에 대해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라며 잘못 쓴 부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하여 맞춤법 규정에 맞지 않은 부분을 직접 교열하는 동시에 영어 몰입화 교육 정책을 비판한 일이 있으며, 그 이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이 문구를 풍자하여 "나는 (이명박을) 찍지 않았'읍'니다." 라는 문구가 적힌 상의가 판매되기도 하였다.[147]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연설을 하는 도중에 "대한민국은 4면이 바다" 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2009년 6월 25일 이문동 시장 방문시 시장상인들에 보인 무성의한 태도와 식당에서 같이 회식을 하며 시장상인들의 어렵다는 하소연에 "내가 젊어서 노점상할 때는 끽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장사되면 다행히고 안되면 죽고 ... 이게 뭐 ...하소연 할 데도 없었어! 어 ~ 지금은 뭐 그래도 뭐 얘기할 데라도 있으니 좋잖아? 허허 지금 좋아졌잖아 세상이" 라며 웃어넘겨 상인들이 입을 닫게 했다.[148]

이명박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2010년 9월 21일 한국 중부 폭우로 인한 피해 현장을 살펴보던중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에게 "마음을 편하게 먹어요. 기왕에 된거니까. 편안하게"라고 말을 해 논란이 되었다. 이 발언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으며 "저 아줌마 대통령 말 듣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라며 비판했다.[149][150][151] 그로 인해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라는 표현이 인터넷 유행으로 번졌다.

2010년 9월 배추값을 비롯하여 채소값이 전반적으로 폭등하던 때 이명박은 "배추가 비싸니 내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했는데 양배추 가격도 배추와 비슷한 수준으로 폭등하였기 때문에 누리꾼들은 "전 국민이 먹는 김치 값 관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양배추 김치'로 생색만 내면 다냐"라며 "먹을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말했던 마리앙투아네트의 발언과 비교하며 비판했다.[152][153][154] 이에 2010년 10월 1일에 이명박 대통령의 "양배추 김치" 발언에 관련 SBS뉴스 앵커가 비판받았다.[155]

2011년 이후로 저축은행 업무정지 사태와 관련하여 정치인들과, 고위공무원들의 비리 문제가 드러나자 이명박은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온통 나라가 비리투성이 같고…"라며 공직자들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제3자처럼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보수의 생명은 도덕성인데 잘못된 인사, 많은 병역 미필자가 당과 정권의 최고 지도부에 들어갔던 문제,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전관예우 인사들을 계속 앉히는 것, 이런 것들이 도덕성을 오히려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하고 비난에 대상이 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156] 경향신문은 칼럼에서 "이 대통령은 잘못됐단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없다. 총리도, 감사원장도 묵언(默言)이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인디밴드 블랙리스트 사건

서울시장 재직 당시인 2005년 8월 1일, 이명박이 인디밴드 카우치공중파 성기 노출 사건 이후, 홍대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인디밴드 중 ‘불건전’한 것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158]

이후 이명박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이 잇달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8월 14일에 인디밴드인 오! 부라더스의 공연에 참석하여 인디밴드에 대한 기존의 견해가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바 있다.

2010년 5월 4일 있었던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시에 이명박은 가슴에 손을 얹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제3조에는 "제복을 입지 아니한 국민은 국기를 향하여 오른손을 펴서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주목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어 국기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159]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

2008년 4월에 열린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쇠고기 수입 재개가 합의되었다. 협상 직후부터 축산농가 피해와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국민의 의견이 협상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 지적되어 논란이 증폭되었다. 국민은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와 시위를 계속했다. 시위가 격렬해 지면서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많은 시위대와 일부 전경과 의경이 다쳤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무리한 강경 진압과 자의적 법 적용으로 국제 엠네스티 등 인권단체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2008년 6월 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고시가 발효되었고, 2008년 7월 1일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됐다.

“값싸고 질 좋은 고기” 발언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21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 도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고기를 먹고 있다.”라면서 “(쇠고기 수입협상을 통해)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일반 시민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에서도 (쇠고기 협상 타결을)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한미관계에서 한두 가지 어려운 문제를 갖고 심각하게 생각했는데 부시 정부에서도 한국에 부담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160]

 모순된 언행

그러나 서울신문이 2009년 1월 12일 청와대, 3청사 내 정부부처 및 각 외청, 서울시청 등 70개 공공기관에 정보공개청구, 전화취재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08년 6월 26일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개정안) 고시가 발효된 뒤 미 쇠고기를 쓰는 곳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2008년 7월부터 9월까지는 특정 부위에 한해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2008년 10월부터는 LA갈비, 양지, 등심 등 여러 부위를 호주산으로 바꾸었다. 선지, 사골, 잡뼈 등은 국내산을 썼다.[161]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청와대 구내식당 관계자는 가격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육류수입업체와 대형할인점 등이 말한 바로는 쇠고기는 호주산이 미국산보다 오히려 10% 이상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중앙청사 식당 관계자는 미국산은 불안하다는 인식을 떨칠 수 없어서 미국산을 쓸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대전청사 식당 관계자도 공무원들 사이에서 미국산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에 미국산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면서 “약간 비싸더라도 안전한 호주산을 쓴다.”라고 전했다.[161]

2009년 국정감사에서 정부청사 구내식당은 2008년 9월부터 국감 현재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최규식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과천정부청사를 경호하는 경기706전경대는 지난 1년 동안 미국산 쇠고기만 공급받았지만, 경찰청 구내식당은 미국산 쇠고기를 구매하지 않았다.[162]

2010년 5월 이명박은 촛불집회 당시 "뼈저린 반성을 했다"며 사과하던 모습들과 달리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태도를 바꿨다. 이에 대한 누리꾼들과 언론들의 비판이 이어졌다.[163][164]

 경제지상주의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이명박과 그의 지지자들의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풍자의 일환으로, 이명박 후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 좀 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댓글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명박의 도덕적 결함을 무시하고 이명박을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만으로 당선시켜준 것[165]을 비꼬아, 이명박 대통령의 도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뭐 그런 거로 따지냐?”라는 글을 남겨서 풍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자녀의 위장취업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위장취업 좀 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댓글이 달리고,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글의 맞춤법이 틀렸다고 지적되었을 때는, ‘맞춤법 좀 틀리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하였다.[166][167]

 언론에 경제논리 적용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총파업과 관련해, 2008년 12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를 통해 방송통신 정책 문제는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은 방·통융합에 대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으로서 경제적 의미를 주로 강조했다.[168]

그러나 방·통 융합을 비롯한 방송정책 문제를 순수 경제적 의미에 국한하는 것은 썩 현실적이지 않다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송의 기능에는 경제영역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영역이 동시에 존재한다. 경제논리만 강조하면, 여론형성, 문화창조, 사회통합 등의 방송의 여러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성찰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168]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의 본래 기능은 경기부양, 고용창출이 아니라, 현실감시, 여론형성 기능이 더 강하다. 현재 한나라당과 정부가 언론 영역에 개입해 바꾸려고 하는 인터넷의 사이버모욕죄 도입, 신문·방송 겸영 허용, 방송 구조개편 등이 모두 여론 형성과정을 흔드는 정치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경제논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를 감추려는 의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교수는 국제적 미디어그룹을 만들려고 언론 관련법을 바꿔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인데, 언론소비자가 한정돼 있는데 법이 바뀐다고 갑자기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이 성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케이블 텔레비전이 도입된 지난 10년간 고용창출은 2만 명이 채 안 된다며 경제논리로만 따진다면, 신문사의 문을 닫고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168]

 녹색 뉴딜

녹색 뉴딜로 창출된다는 96만 개의 일자리는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나 일용직 등 이른바 ‘질 낮은 일자리’라는 지적이 있으며,[169][170] 재원 조달 계획이 부실하거나, 통계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다.[169] 또 겉포장만 바꾼 중복 대책이라는 평가도 있다.[170] 4대 강 정비사업 등이 포함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171] 그리고 건설 계획을 녹색 뉴딜로 포장한다는 의견도 있다.[172] 시민단체들은 4대 강 정비사업이 한반도 대운하를 이름만 바꿔서 사전작업으로 재등장시킨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173]

정부가 4대 강 정비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내놓은 동영상에서는 낙동강·영산강 하류가 5급수라거나, 물고기가 살지 않는 강, 철새가 오지 않는 강, 습지가 전무한 4대 강이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동영상에 나온 물고기 폐사 장면은 외국의 하천인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이에 대해 한승수 총리는 혼선을 일으켜 송구하다고 밝혔다.[174]

12월 29일 낙동강 지구에서 사전환경성 검토 작업 없이 착공식이 진행된 점에 비추어, 야당은 대운하 계획 수행을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을 가했다.[175]

또 4대 강 정비 사업과 관련해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반대가 절반 이상으로 나타나자 국토해양부가 결과를 숨긴 것이 드러나 비판이 일었다.[176]

민주당의 이정섭 의원은 “녹색 뉴딜은 전체 투자의 79.5%가 4대 강 살리기 등 토목, 건설 사업인 ‘회색사업’으로 가짜 녹색 뉴딜이며 녹색 뉴딜 사업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95만 6천 개라는 정부의 추정과 달리 실제 추정치는 25만 개에 불과하며 4대 강 정비사업의 경우도 정부 주장은 27만 개이나 실제는 3만 9천 개에 불과하다. 또 정부의 잘못된 성장률 예측으로 12조 원의 세수가 줄었으며 결국 국민의 세금부담이 커졌다.”라고 주장했다.[177]

 용산 참사

2009년 1월 19일 오전 5시 33분 용산 4구역 철거민과 전국 철거민 연합회 회원 등 약 30여 명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6층짜리 남일당 상가 건물 옥상을 점거하였으며, 경찰은 경비 병력으로 3개 중대 300여 명을 투입하였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철거민들은 옥상 건물 위에 망루(望樓)를 짓고 충분한 양의 가연성 물질인 시너를 바닥과 옥상에 준비하였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철거반에 저항하였으며,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맞섰다.[178] 철거민들은 서울시가 최소한의 보상도 없이 철거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179][180]

1월 20일 오전 1시 22분,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농성장 옆 상가 건물 가림막화재가 났으나 40분만에 진화되었고, 오전 6시 12분에 경찰은 철거민들에게 물대포 살수를 시작하였다.[178] 6시 45분, 경찰은 건물의 옥상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컨테이너경찰특공대를 태워 옥상으로 올려 보냈으며, 7시에 컨테이너가 옥상으로 올라가자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7시 20분에 특공대를 실은 두 번째 크레인이 올라가자 3층과 5층에서 불이 났고, 옥상에 있던 망루에도 불길이 번졌다. 7시 30분에서 40분 사이, 5층에서 3명이 불을 피해 창문가로 이동했다. 7시 45분에는 불이 붙은 망루가 무너졌고, 8시 30분에 소방관들이 옥상에 올라가 망루를 해체하였다.[181] 11시 45분 경찰은 망루를 수색하여 사망자 5명(세입자 2명, 전철연 회원 2명, 경찰특공대 대원 1명)을 발견했으며, 23명(경찰 16명, 농성자 7명)[182]이 부상했다고 발표하였다. 12시 20분 농성자 시신 1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178]

이후 김석기 차기 경찰청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과잉진압 논란은 일단락지어졌다. 일부에서는 경찰특공대 측에서 구타를 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경찰 측에서는 경찰특공대의 진압 직전, 건물을 무단 점거하고 있던 한 농성자가 망루 계단에 인화물질로 추정되는 액체를 뿌렸다는 단서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183] 1월 27일 검찰 수사본부 관계자는 “망루 안에 있던 농성자가 경찰특공대 2차 진입 직전에 망루 2, 3층의 계단에 액체를 뿌리는 장면이 촬영된 동영상을 확보했다”라고 언론에 밝혔다. 그는 ‘아직 망루 화재의 발화 지점이나 직접적인 화인은 확인되지 않았’고, ‘계단에 뿌려진 액체가 화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 물질의 정체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183] 공식적으로 재판부는 "농성자들이 망루로 진입한 경찰 특공대원에게 던진 화염병의 불이 인화물질의 유증기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 철거 관련

이명박 정부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분향소를 경찰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철거하여 물의를 빚었다. 일각에서는 "정치보복도 모자라 이젠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조차 금지시키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으며 시민분향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구속수감시키는 등 크게 물의를 빚었다.[184] 또한 단순히 서거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일 뿐인 이 시민분향소를 이명박 정부는 불법집회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과잉 제재하고 있다는 비판의 여론이 비등하다.

노무현의 영결식에 참석한 이명박은 경건해야 할 자리에서 수 차례 실소를 터뜨렸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명박, 김윤옥 부부가 영정에 헌화하는 장면 등의 현장 생중계 화면을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 이명박과 김윤옥이 웃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는 국회의원 백원우 등이 빚은 소동에 대해 전 청와대 비서실장 문재인이 사과한데 대해 이명박이 괜찮다는 반응을 보인 과정에서 나온 표정이라고 해명하였다.[185] 또한 이명박, 김윤옥이 차에서 내려 식장에 입장하기 직전까지 가슴에 꽃을 달지 않은 것이 방송 화면에 잡혀 이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영결식과 노제가 끝난 직후인 29일 밤 시민 분향소 천막을 다시금 강제 철거하면서 물의를 빚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이 서울지방경찰청장을 항의 방문하였고, 이 자리에서 주상용 청장은 의경들이 현장 활동 반경을 실수로 벗어나 저지른 실수일 뿐이라고 해명하였다.[186][187] 그러나 경찰지휘관이 시민분향소의 철거를 지휘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이 주장마저 허위사실임이 드러났다.[186][187] 실제 병역의 의무가 부과된 의경들은 현역병과 같은 신분으로서 명령 없이는 공적인 행동이 금지되어 있다.

 회전문 인사와 코드 인사

회전문 인사나 ‘강부자’, ‘고소영’ 등 코드 인사를 한다는 의혹이 있고 내정된 인사들이 위장전입, 투기 등 불법 사항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도 임명을 강행하는 등 도덕성에 무감각하다. 이러한 도덕성 이유로 중도에 낙마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188]

이명박의 인사 행태는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로부터도 혹평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양상훈 칼럼을 통해 인사를 잘못해도 어떻게 이토록 잘못할 수 있느냐고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람에게 주는 노벨인사상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받아야 한다면서 이 대통령의 인사가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고,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만드는 데 있어서 거의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첫째, 이 대통령은 인사로 만들어지는 전체 그림을 볼 줄 모른다면서 첫 비서진을 단 두 개 지역 출신만으로 구성한 것이 그 사례라고 지적했다. 둘째, 왜 하필 그 사람을 골랐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이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에 자신의 비서 출신을 앉히려 했던 것은 명분을 짓밟는 것이었다고 했다. 셋째, 이 대통령은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것이다. 예컨대 딴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만은 안 된다는 바로 그 사람을 고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은 '인사를 잘못한다', '할 줄 모른다'는 평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189]

 허위 및 거짓

  • 2000년 서울 시장 후보 출마 때부터 2007년까지 출생지를 “경북 포항” 또는 “경북 영일”로 밝혔다가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거짓임이 밝혀져 물의를 빚자 “일본 오사카”로 정정하였다. 이때 드러난 이명박의 본명이 쓰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였다. 이명박의 조부인 이종한이 1940년경, 성을 ‘이’씨에서 ‘쓰키야마’로 창씨개명을 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190][191] 한편 출생지를 속인 행위는 ‘허위사실 게재, 공표’(선거법 250조)로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190] 또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의 프로필란에 자신의 고향을 대한민국 ‘포항’이라고 기록하여 논란이 되었다. 현재는 포털사이트들이 일본 출생으로 정정하였다.
  • 2008년 초 한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대해 논의했느냐고 묻자 이명박은 “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화난 얼굴로 그 옆에서 곧바로 “논의했다.”라고 반박했다.[192] 사실 여부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으며, 실제로 그때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논의한 것으로 뒤에 밝혀졌다. 다만 당시 논의한 파병 병력은 전투 병력은 아니었으며, 이에 대해 2009년 6월 1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다시 논의하였다.
  • 2008년 7월 15일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서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에게 독도의 영유권 주장에 관해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라고 발언했다는 사실을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하였으나, 양국 정부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193] 이에 대하여 명확한 진실규명이 없자 민주당과 시민단체를 비롯한 국민 1886명이 모여 요미우리의 허위보도에 대하여 4억여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194] 이와 관련하여 요미우리 신문은 당시 기사가 사실에 입각했음을 밝히는 준비서면을 서울 중앙지법에 제출했으며, 한편 아사히 신문도 비슷한 논조의 기사를 실었다고 주장했다.[195]
  • 2009년 4월 2일 한미 정상 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제제안 결의를 미국 측이 했다고 발표했으나, 미국 측 자료에는 “제제안”이라는 말이 없었다.[196]
  • 학력 위조 논란: 고려대 졸업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취업을 한 것으로 논란을 빚고 있으며, 고려대에서 선관위에 제출한 학위 증명 자료에는 학위 번호도 누락되어 있어 그 의혹을 더하고 있다. 학력 위조는 당선 취소에 해당한다.[출처 필요]

‘최초’ 집착

유난히 대통령 임기 중 ‘최초’라는 의미 부여를 자주 하였다. 그러다 보니 최초가 아닌 일에도 최초라는 수식어를 쓰기도 했다.

  • 최초 백령도 방문 또는 최초 위험에 노출된 지역 방문 - "백령도는 북한 장산곶에서 13.1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이 대통령의 모든 행동들이 북한에 관측될 수 있고 그만큼 상당한 위험에 노출된 지역"이라고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이 강조했다.[197][198] 그러나 '위험에 노출된 지역 방문'은 최초가 아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

시장에 나가거나 인터뷰, 간담회 같은 데서 유독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나도 한때 ~해봤다' 시리즈를 많이 한다. 어디에 가기만 하면 자기도 경험해봤으니 당신 마음을 잘 안다식으로 말하기 때문에 못해본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있다.] 이러한 전지전능식 화법은 대표적으로 "나도 요즘 치킨을 시켜 먹어봐서 아는데", "점상도 해봐서", "비정규직도 해봐서 아는데",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나도 장사해봐서 아는데" 등이 있다기타 논란

  • 2008년 이명박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고려대학교 행사에 자주 참석하여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1월 25일에 고려대학교 경영대 동문회에 참석하였으며, 1월 4일 고대 동문 신년회와, 1월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고대 경영대 글로벌 50 출정식'에도 참석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우상호 대변인은 "고려대 행사에 자주 가는 것은 지나치게 특정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학연, 지연, 혈연 등 그동안 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인연에 기초한 관계정립들이 그 이후에 부정부패나 인사의 편파성 논란에 휘말렸던 전례를 상기해야한다"며 비판했다.[207] 이명박의 모교 동창회를 청와대에서 하는것도 자주 구설수에 오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교 동창들을 그런식으로 청와대에 불러들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208]
  • 2009년 7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친 서민 중도' 행보의 일환으로 충청북도 기숙형 고등학교인 괴산고등학교를 방문한 것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되었다. 학생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경호원, 특수경찰 100여 명으로 인해 완전히 통제당했으며, "'사진 찍을 때 안 웃는 학생은 뭡니까'라고 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각종 학용품 및 소지품들을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압수하였다는 주장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209]
  • 친인척 비리 (김옥희 비례대표 30억 수수 사건[210], 이상득 관련 의혹, 사돈 조석래 회장 효성그룹 비자금)
  • 이상득 의원 '형님정치' 개입 논란
  • 2008년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네티즌들의 항의가 빚자 패쇄했다가, 다시 미니홈피를 열었으나 글은 올리지 않고있다. 현재 글은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하고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이명박 대통령를 크게 비판하였다.[211]
  • 천안함 사건의 희생 유가족들에게 개 돼지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해 내정자의 이러한 발언은 형법상 '위법성 조각사유'에도 해당되지 않아 소송이 이어질 경우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전망으로서 원칙상 해임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조현오가 자신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청장 내정 취소를 하지 않았다.
  • 병무청 웹사이트에 이명박 대통령을 면제자로 기재하다가 삭제한 논란이 있다.[212]
  • 이명박은 한국타이어를 비롯한 여러 회사에 자신의 아들 이시형을 특혜로 입사시켰으며 더군다나 그렇게 입사를 하더라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시형으로 하여금 월급만 받고 출근은 하지 않는 형식의 위장취업을 하도록 했다.
  • 이명박은 2008년 쇠고기 수입 논란 촛불시위를 "폭동으로" 발언해 물러난 민동석을 다시 차관에 발탁하었다.[213]
  • 2010년 청목회 입법 로비 수사에서 손학규는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의 권력으로 죽일 때 그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손이 되었다"라고 바판하였다.[214] 이어서 이명박의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의문하였다.
  • 일정 관련 논란 : 2010년 6.2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5월 하순에 천안함 사고 조사결과 발표와,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 발표, 노무현 서거 1주기의 다음 날 축구 한일전 등등 지방선거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일정을 잡는다는 의혹과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215] 국방부의 합동 조사단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5월 20일에 하였는데, 실제로는 노무현 서거 1주기인 5월 23일에 하기로 했었다고 한다.[216] 이 외에도 이명박의 독도발언 판결 당일에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기자회견을 열여 독도 발언 잠재우기용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도 하였다.[217]
  • 연평도 포격 이후 군사에 대한 이명박의 초기 발언이 불분명하였다.[218] 또한 이명박의 대북 발언이 2010년 12월 말까지 호전적이였다는 우려가 있었다.[219]
  • 안경환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2010년 후반의 파행 사태에 대해서 "인권위가 국가를 감시할 수 있는 독립된 기관이라는 인식이 먼저 대통령에게 있어야 하고, 위원장을 포함한 직원들에게 그러한 신념이 있어야 하며, 국민도 이를 지지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전제가 없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발언하여 이명박의 부족한 결단력을 비판하였다.[220]
  • 2010년 12월, KBS 추적60분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내용이 방송될 예정이던 중 갑작스레 방송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청와대 개입 의혹이 불거져 정권에 의한 탄압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 외에도 추적60분에서 방영되었던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방송도 긴급 취소되었다가 가까스로 방송된바 있으며, 역시 4대강 사업에 관한 내용이 PD수첩에서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어 한주 늦게 방영된바 있어 정권에 의한 방송과, 언론 탄압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221]
  • 2010년 12월 15일 이명박은 김상기 육군참모총장이 내정되었지만 그의 고등학교 후배이지만 족벌주의적인 결정이라고 바판하였다.[222]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된) 예산에 이어서 군마저도 내 고향, 학교 후배만 챙긴다고 하면 국민들이 남은 2년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이명박의 결정을 규탄하였다.[223] 한편 이명박은 "이번 군 인사는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반영해 국방장관이 가장 공정하게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반박하였다.[224]
  • 이명박은 12월 1일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미국과 중국, 우리와 북한 사이에서 이분법적으로 갈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발표하였자만[225] 그 이후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군사적 대북조치를 강렬히 비판하였다.[226] 이것은 외국 정부가 이명박의 외교 지도력을 비판하는 예이다. 이것은 연평도 해상 훈련과 관계로 여러나라의 "한반도 외교전"이라 비화되었다.[227] 러시아 정부의 한 외무부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실시하는 해상 훈련을 한반도 상황을 안정화에 방해된다고 이명박의 대북 리더십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다.[228] 중국 베이징의 일간지 신경보는 이명박을 화약통 위에 앉은 대통령이라고 2010년 "가장 어렵고 위험한 한 해를 보낸 인물"로 뽑혀 그의 리더십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고 전하였다.
  • 손학규는 2011년 1월 3일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명박에 관해 "우리 국정이 파행으로 간데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 최소한의 유감표명이라도 있어야하지 않는가? 야당과 의회를 그렇게 무시하고 짓밟으면 나라의 격이 떨어지는 것이고 대통령의 격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230]
  • 그동안 대통령들이 참석해왔던 제주 4.3 사건 기념식에 이명박은 취임 이후로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아 홀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 이유로 이명박이 보수주의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제주 4.3 사건은 14,000여명이 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희생당해 보수정권에서는 치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좋아하는 인간들은 전부 '노무현 했던거 했다'혹은 '김대중 했던거했다'

'이명박떄 등록금 덜 올랐다' 하는데  아닌거면 하던거 왜하냐고

그리고 등록금 덜올라고 물가폭주는 왜 안막는데?

201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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