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 전설을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됬는데요
비단 우리나라 탈 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의 탈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종류뿐만 아리나 탈에 관한 전설 아는것이 있음 아려주시고(하회탈 전설 제외)
또 우리나라의 탈 문화가 세계에 어떻게 알려지고 있는지 문화콘텐츠 개발 계획이나 현황에 대해서도 아는것이 있음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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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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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탈춤의 종류
탈춤은 거의 우리나라 지방 전 지역에서 놀이 되었을 것입니다. 현재 보존되어 놀이되는 탈놀이는 대략 13종류 정도로 대개 지역별로 구분되는데
[1]. 황해도 지역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2]. 서울 경기 지역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
[3]. 경북 안동 [하회 별신굿 탈놀이]
[4]. 경상남도 지방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5]. 부산지방 [동래야류], [수영야류]
[6]. 강릉지방 [강릉 관노놀이]
[7]. 함경도 북청 [북청사자놀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2 탈의 유래와 역사
[탈의 유래]
우리 민족은 탈을 주변에 가까이 두기를 꺼렸습니다. 장례식에서 쓴 방상시(方相氏)는 물론이고 한 마을의 지킴이로 모셨던 탈들도 마을에서 좀 떨어진 당집 안에 둘 뿐 절대로 방안에 걸어 놓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탈놀이가 끝나게 되어도 어느 고장에서나 탈을 불에 태워 없앴는데 이것이 놀이의 마무리인 양 꼭 지켜져 왔습니다. 그것은 탈에는 갖가지 액살이 잘 붙는 것이니 태워 버려야 한다는 것이 오랜 속신(俗信)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오래된 민족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한국 연극, 무용, 영화 사전"(한국예술사전IV, 편찬위원회, 대한민국예술원,1985)의 '가면(假面)' 항목이 탈에 대한 국내외의 해석을 적절하게 요약하였습니다.
가면은 얼굴을 가려 변장이나 방호, 호신등의 특정한 목적과 용도로 쓰이며 또한 동물, 초자연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가장성을 갖습니다. 넓은 의미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한, 방독, 방호적인 측면까지 포함시키고는 있으나 대개의 경우는 토속적, 연극적 가면을 뜻하며 상징과 표정 두가지 요소로 환원되는 조형 예술품입니다.
가면은 한자로는 면(面), 면구(面具), 가수(假首), 가두(假頭), 가면(假面), 대면(代面,大面)등으로 표기합니다. 우리말로는 탈, 탈박, 탈바가지, 광대, 초라니라 불러 왔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탈이라 통칭되고 있는데, 얼굴 전면(前面)을 가리는 면구(面具)를 가면이라 하고, 머리 전체 후두부까지 가리는 것을 가두, 투두(套頭), 가수로 구별 하기도 합니다.
[탈의 역사]
가면을 사용한 것은 원시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처음에는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수렵 대상물인 동물에게 접근하기 위한 위장면(僞裝面)으로, 뒤에는 살상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 하며 또한 그 주술력을 몸에 지니기 위한 주술적 목적에서 비롯하여 점차 종교적 의식과 민족 신앙의 의식용으로 변모, 발전되었습니다.
중국의 연극사에서 가면의 효시는 나례(儺禮)에 쓰인 방상시 가면이며, 나례 계통과 다른 가면은 육조(六朝)시대 이래의 가무(歌舞)에 쓰인 구자(龜玆), 천축(天竺), 강국(康國), 안국(安國) 등 서역 악무의 영향을 받은 외래의 것이었습니다.
고구려의 무악면(舞樂面), 백제의 기악면(伎樂面), 신라의 월전(月顚)/속독(束毒)/산예면 등도 서역의 영향을 받은 가면들이며 중국의 방상시면과 서역계의 외래면도 함께 전해 받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가면 중 최초의 것으로 알려진 것은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조개껍질에 두 눈과 입을 뚫은 가면입니다.
다음은 6세기경 신라시대의 방상시 가면으로 추측되는 목심칠면(木心漆面)으로, 1946년 경주 노서리 호우총 고분에서 출토되었습니다. 그 외에 덕물산(德物山) 가면,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하회(河回) 가면, 병산(屛山)가면 등 옛 가면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탈의 의미]
탈이란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정의 내리기에는 탈 자체의 실체와 기능이 너무 다양하면서도 복합적입니다.
탈이란 아득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생산 신앙성을 띠면서 벽사, 의술, 영혼, 추억, 토템, 기우, 수렵, 전쟁, 연희, 등에 쓰여지기 위해 창출된 역사적 조형물입니다. 그것은 풍토, 역사, 생활 양식에 따라 독창적인 '탈문화권'을 형성하는 것이니 그 분류, 분포는 심지어 '마을의 역사' 단위로 세분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역사적 소산이기 때문에 지난 시대의 형태를 반복 표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발전과 함께 가변하면서 부단히 재창출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창출했을 탈의 시원은 현재로서는 기원전 5천년에서 3백년경으로 잡는 선사시대의 유물들에서 그것의 편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소형인물상이나 동물상들이 돌, 뼈, 흙 등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인물우(人物偶)는 가족, 씨족이나 마을을 수호하는 샤먼적인 신상들인데 이러한 조형물들에서도 탈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부조들이 있습니다. 암벽화, 벽화등에서도 탈이 존재했음을 암시하고 있으나 '바로 이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없습니다.
문헌 자료로서는 제3세기경 한반도의 여러 부족의 생활상을 기록한「삼국지위지동이전」과 그 밖의 중국 사적의 단편적인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에 의하면 어느 부족 사회에서나 1년에 한두 차례의 국중대회를 열어, 하늘에 제사하고 연일 술 마시며 춤을 췄다고 하였습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마한의 5월제와 10월제 등에서 이미 탈도 함께 쓰여졌을 만한 제의성(祭儀性)이 강한 연희가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대의 제의 및 연희 유산은 오늘날에 전승되고 있는 다양한 민간 예능에서 내용을 복원,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니 현존하는 '당굿'이 가장 소중한 대상입니다. 아직도 여러 고장에서 전승되고 있는 당굿의 습속과 그에 따르는 가무오신적(歌舞娛神的) 각종 예능들은 앞에서 말한 영고, 동맹, 무천 등에서 발전하였으며 본디는 원초적 근원 연극의 줄기들로 보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이 방면에 있어서 소상한 내용을 전하는 『삼국유사』를 보면 「가락국기」가운데 건국 신화인 수로왕의 전설이 춤과 노래의 제전연희(祭典演戱)를 통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세시풍속과 관혼상제 때에 병행되었던 예능 곧 '토템 의례' '농경 의례' 특히 '상장례'등은 물론이고 숱한 민간 놀이들에서 이 땅의 연극 기원과 함께 탈의 존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탈놀이'라기보다는 악가무(樂歌舞)가 함께하면서 이루어지는 이 땅의 독창적인 연희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탈의 시작은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패면(貝面)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토면(土面) 등으로 보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갈 수 있습니다. 1946년 경주 노서리 호우총에서 옻칠을 한 나무탈이 발견되었는데, 눈알은 유리로 되어 있고 두 눈에는 황금 환(環)이 그려져 있습니다. 방상시 가면으로 보이는 이 탈은 6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밖에 덕물산(德物山) 가면과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13개의 하회탈 및 병산탈 등이 전해집니다.
《삼국사기》와 최치원의 〈향악잡영 鄕樂雜詠〉에도 탈놀이 기록이 전해집니다. 한편 분명하지는 않지만 신라시대 탈놀음으로 검무(劒舞)와 처용무(處容舞)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현종 때의 학자 민주면(閔周冕)은 《동경잡기東京雜記》 풍속조에서 검무가 탈놀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검무는 관창의 용감한 이야기를 춤으로 놀이화한 것입니다. 처용무는 오늘까지도 연희되는데, 《고려사》 고종 23년조에 복야(僕射) 송경인(宋景仁)이 처용무를 추었다고 기록된 것이 문헌상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또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나례행사 때 방상시가면을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탈들이 뒷날 예능가면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조선조에는 산대잡희(山臺雜戱)에서 파생된 산대 가면극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각 지방 민간에서 연희되어 오던 해서(海西) 가면극, 야류(野遊), 오광대가면극 서낭신제 가면극 등이 있습니다.
[탈의 기능별 분류 ]
우리 탈은 과장되어, 코는 삐딱하고 눈꼬리는 사납게 찢어져 있는가 하면, 입이 비뚤어져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언청이탈, 문둥이탈, 옴탈과 같이 얼굴이 특이하거나, 혹이 나 있고, 이가 드러나 있으며, 이마가 넓고 주름이 많아서 각 부위의 비례가 맞지 않는 탈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사자탈이나 원숭이탈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듯이 모든 탈은 인간적입니다. 탈은 거의 타원형이지만, 바가지탈은 원형에 가깝고 나무탈과 종이탈에는 장방형, 역사다리꼴, 역삼각형도 있으며, 가죽탈처럼 모가 난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조각품이 평면적인 것과는 달리 가죽탈을 제외하면 입체감이 두드러집니다. 눈은 대체로 크고 동그랗거나 치켜 뜨고 있으며, 코의 경우 젊은 남성탈은 지나치게 크게 과장되어 있고, 여성탈은 콧대가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거나 굽어 있습니다.
입꼬리가 위로 치켜져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밑으로 축 처져 불만스러운 모습을 짓는 것도 있습니다. 언청이와 입비뚤이 등 병신스러운 모양을 하거나,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고 있어 심술궂은 모양을 하고 있는 탈도 있습니다. 귀는 대부분 없지만 산대탈이나 오광대탈에는 귀가 있습니다. 동래와 수영의 들놀음야류탈에는 귀가 특히 과장되어 있습니다.
통영오광대의 양반탈은 턱이 없고, 하회탈은 턱이 분리되어 있어 움직임에 따라 턱이 열리고 닫히며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탈의 고정성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색상은 대체로 원색적이고 강렬합니다. 탈놀이가 야간에 장작불 아래에서 행해지므로 강렬한 색채가 아니면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면극에 사용하지 않는 개성 덕물산의 신앙가면과 야간에 연희하지 않는 하회 및 강릉의 탈은 색채가 강렬하지 않습니다.
원색으로는 붉은색, 검은색, 흰색이 많이 보이며, 푸른 남색도 더러 있습니다. 간색으로는 얼굴색에 가까운 황색이 주로 쓰입니다. 사실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인물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에는 원색이 기능적입니다.
탈의 원색들은 신분계층에 따라 인물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남녀노소에 따라서 성격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늙은이 탈은 검고 어두우며, 젊은이 탈은 붉고 밝으며, 젊은 여성의 탈은 흰색이 많습니다.
색상은 방위와 계절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검은색은 죽음의 계절인 겨울과 북쪽을, 붉은색은 생산의 계절인 여름과 남쪽을 뜻합니다. 늙은이 탈이 검은색이고 젊은이 탈이 붉은색인 것은 겨울과 여름의 계절적 상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탈춤에서 보이는 노소의 극중 싸움에서 늙은이가 지고 젊은이가 이기는 것은, 싸움굿에서 여름이 겨울을 물리치고 승리함으로써 풍요를 비는 주술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간색으로 칠한 것은 하회탈이 대표적입니다. 여러 색이 배합된 간색을 몇 차례로 나누어 칠함으로써 입체감과 사실성이 돋보입니다. 부녀와 각시탈은 살색인 주황색을 몇 차례 칠한 위에 다시 흰색을 덧칠하고, 그 위에 연지, 곤지를 찍어서 화장한 여성의 얼굴을 실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눈썹의 경우도 바로 검은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녹색을 칠한 다음 검은색을 덧칠하여 한층 깊이를 느끼게 하였습니다.
탈의 성격 표현은, 인물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만들어 놓고 극중 행동을 통하여 어긋난 면을 폭로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인물의 부정적 성격을 형상화하여 풍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회의 양반탈은 반듯한 양반의 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나, 극중 행위와 말은 양반답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허위를 폭로합니다. 반대로 입이 비뚤어지고 턱이 뾰족하며 얼굴색이 검붉은 초랭이탈에는 신분적 한계가 드러나 있지만, 그 한계와 제약을 뛰어넘어 양반의 허위를 비판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하회탈은 용모 행위를 어긋나게 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풍자하는 효과를 올리는 것입니다.
기타 대부분의 탈은 생김새가 극중 성격을 드러냅니다. 양반의 바보스러움과 병신스러움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기 위하여 언청이와 문둥이 등으로 형상화하고, 노승의 허위를 풍자하기 위하여 검은 얼굴에 파리똥이 덕지덕지 앉은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탈의 형상에 이미 극중인물의 성격이 희화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들놀음의 말뚝이탈은 남성의 성기모양의 코가 이마에서 입까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이는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는 민중의식의 반영이자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탈의 색상에도 인물의 성격이 나타납니다. 붉고 짙은 색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누런 색은 바보스럽고 무능한 성격, 그리고 검고 어두운 색은 찌들리고 소외당한 인물의 성격을 나타냅니다. 고성오광대의 홍백양반탈은 얼굴 좌우에 붉은색과 흰색을 칠하여 인물의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하회탈은 보는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서 표정이 바뀝니다. 양반탈은 눈두덩과 광대뼈 등을 갈매기 모양으로 파서 아래위의 움직임에 따라, 초랭이탈은 입매를 좌우 상반되게 그려 좌우 움직임에 따라 화난 표정과 웃는 표정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각시탈은 내려깐 눈과 정면을 응시하는 눈을 함께 조각함으로써 각시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이를 극복하려는 내면적인 의식을 함께 표현하고 있습니다.
탈에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고려탈인 하회탈의 경우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등 인물의 성격이 표현되어 있고, 각시, 부녀, 할미 등 여성탈은 생산력에 따라 처음, 중간, 끝을, 중, 백정탈은 성속(聖俗)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조선 후기의 탈에는 포도부장, 포졸, 심지어 순사탈도 나타나며, 용산 삼계 덜머리집과 같은 술집여자, 취발이, 신장수와 같은 상업적인 인물도 나타납니다. 왜장녀, 서울애기와 같은 탈도 조선 후기에 등장한 탈입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운 탈이 생겨나기도 하고, 같은 탈이 다르게 형상화되기도 합니다. 고려탈인 하회의 중탈은 색상이 밝고 호방한데, 조선의 중탈은 어둡고 찌들려 보입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와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의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리를 하여 탈의 기능적 분류 요약을 합니다.
백정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4cm, 너비16cm
▶재료 : 오리나무
소를 잡는 백정역이 쓴다.
백정은 조선시대 계급구조에서도 최하층의 천민이었다.
이마에 주름살이 많은 것은 이같은 최하층 천민의 힘든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에는 이 가면을 '희광이'라 불렀다고 하며, 사람을 사형하는 형용을 하였다고 한다.
얼굴빛은 주황색이나 좀 검붉다. 머리와 눈썹은 검은 칠을 했고 양미간에 홈이 있다.
이마와 미간과 양볼에 주름살을 새겨 험상궂은 인상을 주며, 눈은 실눈으로 뚫려있다.
콧날이 넓고 큰 코에, 턱은 하회별신굿의 다른 탈들처럼 따로 달아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극중에는 천민복장에 삼색 띠를 매고 도끼와 칼을 가지고 나온다.
부네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4cm, 너비17cm
▶재료 : 오리나무
양반과 선비 사이에서 소첩역할을 하는 젊은 부인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 바탕은 살색으로 분칠을 하였으며, 이마와 양 볼에 연지, 곤지, 입술에도 붉은 칠을 하였다.
얼굴은 우뚝 솟은 날씬한 코, 눈썹, 눈, 양볼과 조화를 이루어 요염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젊은 부인의 복장으로 옥색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는다.
이매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15cm, 너비16.5cm
▶재료 : 오리나무
선비의 하인역으로 바보탈이라고도 한다.
얼굴빛은 주황색으로 양반, 백정가면과 같은 계통의 색깔이다.
눈은 실눈으로, 눈구석이 아래로 길게 처지고 이마와 볼의 주름살과 합쳐져 바보같이 웃는 표정을 나타낸다.
이 탈에는 하회별신굿에 나오는 다른 탈들과 달리 턱이 없다.
이 탈의 윕 입술에는 구멍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턱이 있었던 것 같다.
극중에서 이매는 평민 남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벙거지를 쓰고 나온다.
초랭이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0cm, 너비14cm
▶재료 : 오리나무
양반의 하인역으로 경망하게 까불어대는 성격이다.
오늘날도 경망되고 주책없이 까부는 사람을 보고 '초랭이 떨음한다'고 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턱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되어 있는 대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벌린 입에는 아래윗니가 드러나 보인다.
양쪽 볼에 약간의 주름살이 새겨져 있으며, 짧고 빨간 수염을 달아 코믹한 효과를 나타낸다.
별신굿에서는 바지 저고리 위에 붉은 쾌자를 입고 두 어깨와 허리에 걸쳐 청홍색 띠를 두르고 나온다
중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0cm, 너비16cm
▶재료 : 오리나무
세째과장에서 파계승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은 주홍색이며,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은색을 칠한 흔적이 있다.
이마에 작은 혹이 있고, 코는 매부리코로 우뚝하다.
턱은 따로 노끈으로 매어 달아 움직인다.
지팡이를 들고 고깔을 쓰고 가사와 장삼을 입는다.
양반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3cm, 너비17cm
▶재료 : 오리나무
하회별신굿 탈놀이 네째과장인 양반과 선비놀이에서 양반역이 쓰는 가면이다.
'한국의 탈'하면 언제나 제일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특히 분리된 턱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한국탈이 지닌 백미로 알려진다.
외모를 보아도 탈에 나타난 둥근 곡선에는 양반의 여유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양볼 위와 눈구석 언저리에 가느다란 주름살이 잡혀 실눈과 함께 웃는 모습이다.
눈과 코는 뚫렸고, 턱은 따로 달아 움직인다.
극중에 나올 때는 흰색 도포를 입고 정자관을 쓴채 한 손에 부채를 든다.
후대의 양반탈들과 달리 이 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권위와 위엄이 느껴지는 듯하다.
할미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0cm, 너비14cm
▶재료 : 오리나무
늙은 할미역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바탕은 검붉은 색깔이고, 얼굴 전면에 녹색반점을 찍어 기미를 나타냈다.
머리와 눈썹은 검은칠을 하였고, 눈은 둥글게 뚫렸고, 미간은 깊이 파지고, 작은 코가 오뚝 솟았다.
양볼과 눈언저리와 입가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턱은 움직이지 않는다.
평민계급의 노인복장으로 흰저고리와 회색치마를 입고 쪽박을 들고 나온다.
선비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19cm, 너비16cm
▶재료 : 오리나무
네째과장에서 선비역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빛은 주홍색 바탕에 갈색이 덮혔다.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게 칠했고, 이마와 양 볼과 눈 가장자리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다.
눈은 둥글게 뚫려 있어 웃는 얼굴이 아니고 다소 거만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다.
코는 매부리코로 크며, 턱은 따로 달아서 움직인다.
도포를 입고 갓을 썼으며, 담뱃대를 든다.
각시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39.5cm, 너비20cm
▶재료 : 오리나무
세째 과장에서 처녀가 사용하는 가면이다.
얼굴전체는 살색 위에 분을 칠했고 양 볼의 둥근 연지와 이마에 곤지의 흔적이 있고 입술도 붉은 색을 칠하였다. 눈은 실눈으로 떴고 코는 평평한 편이다.
처녀의 옷차림인데 보통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는다.
다른나라의 탈.
아프리카 탈
|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는 많은 가면춤과 가면극들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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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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