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신본점은 보다 개방적인 환경에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소통’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다 건강하게 생활하고 즐겁게 일하며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를 높여가도록 할 것입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지난 9월 72주년 창립기념사에서 한 말이다. 서 회장이 용산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세번째 역사 페이지를 펼쳤다. 서 회장은 1956년 용산에서 국내 최대 화장품사업을 일궈낸 김동영 창업주의 역사를 밑거름 삼아 아모레퍼시픽만의 아름다움을 새로 빚는다.
용산 본사에는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을 외치는 서 회장의 경영지침이 녹아있다. 서 회장은 자신의 비전인 ‘원대한 기업’을 새 심장 용산에서 실현할 계획이다.

◆'미·소통·워라밸' 가치 빚은 '서경배 빌딩'


#. 신용산역 1번 출구 앞. 쭉쭉 뻗은 고층빌딩 사이로 정육면체 빌딩이 하얗게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풀 메이크업’ 사옥이다. 사옥 가운데를 뻥 뚫어 고즈넉한 정원으로 꾸몄고 사옥 둘레를 조경수가 빙 두르고 있다. 자연과 도시, 지역사회와 기업, 고객과 임직원을 잇겠다며 서 회장이 주문한 키워드 ‘소통’과 부합하는 설계다. 건물 안팎은 막바지 공사 작업에 한창이다. 20일부터 아모레퍼시픽, 에뛰드, 이니스프리, 에스쁘아 등 임직원 3500여명이 순차적으로 이 건물에 입주한다.

서경배 회장이 아모레퍼시픽 용산시대를 본격 개막했다. 그의 부친 서성환 선대회장이 1956년 사옥을 세워 사업의 기틀을 닦고 1976년 10층 규모 신관을 준공했던 그 자리에 서 회장이 신사옥을 건립, 세번째 용산시대를 연 것이다.

1956년, 1976년에 이어 세번째 신사옥을 세운 서 회장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미의 전당’이 될 신사옥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신사옥은 지하 7층, 지상 22층, 연면적 18만8902m²(약 5만7150평) 규모로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했다. 화려한 기교 대신 편안하고 풍부한 느낌을 주는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절제된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방했다고 아모레퍼시픽 측은 설명했다.

특히 이번 신사옥 건립에 서 회장이 직접 건물 디자인과 공간 활용에 의견을 내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서 회장의 ‘변화와 혁신’ 의지는 사무공간에도 반영됐다. 용산 신사옥 사무공간을 전부 열린 공간으로 꾸민 것.

직원들은 칸막이 없는 책상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 6~21층 사무 공간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수평적이고 넓은 업무공간으로 구성했다. 회의실은 모두 투명한 유리벽으로 꾸몄다. 동시에 혼자 집중해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5·11·17층엔 탁 트인 야외정원을 조성했다. 직원들이 언제든 나가서 산책하며 바람을 쐴 수 있는 공간이다. 자연 채광이 되는 사무실에서 조도에 따라 자동센서로 조명 밝기가 달라지게 하는 등 직원들의 사무환경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또 800여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직원식당과 카페, 최대 13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피트니스센터, 마사지를 받는 힐링존도 마련했다. 전 직원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사진제공=아모레퍼시픽

◆2015년 전성기 재현할까

이처럼 건물 곳곳에 소통공간을 마련한 것은 최근 상황과 맞물린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정부의 보복 직격탄을 맞고 올해 2·3분기 전례 없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 회장은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사옥 이전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소통과 협업은 필수”라고 당부했다. 용산 사옥 이전이 물리적 이동을 넘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터닝포인트라는 의미다. 서 회장은 용산 사옥의 의미로 ▲오픈 스페이스 ▲디지털화 ▲워크라이프밸런스가 이뤄진 공간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용산 신사옥 이전을 기점으로 2015년 전성기를 재현하기 위한 개혁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먼저 지난달 임원 정기인사를 실시해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를 포함해 13명의 경영진을 교체하는 등 조직을 정비했다. 이어 중국 쏠림현상에서 벗어나 고령화, 경쟁심화, 지식혁명에 대처하는 디지털 중심의 새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혁신상품 개발 및 브랜드 중심의 차별화 마케팅 ▲이커머스 등 신채널 대응을 통한 내수기반 확대 ▲미국시장 확대와 신흥시장 진출을 통한 글로벌사업 가속화 등이 주요 골자다.

'유커(중국인단체관광객) 모시기'에 집중하던 힘을 유통채널과 해외시장 개척에 돌려 사업을 다각화하는 모습이다. 사드 파고를 겪고 난 뒤 매출처 다각화가 위험요소를 낮추는 방안이라고 판단한 것.

출발은 순조롭다. 한중관계가 회복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안팎으로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다. 증권가에서도 장밋빛 전망이 잇따른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인근에 용산 신라아이파크면세점, 호텔플렉스 서울드래곤시티(SDC) 등이 들어서면서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용산시대를 새롭게 연 서 회장이 아모레퍼시픽의 존재감을 어떻게 다시 드러낼지 주목된다.

☞프로필
▲1963년 서울 출생 ▲198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7년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졸업 ▲1987년 태평양 입사 ▲1997년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 ▲2003년~ 대한화장품협회 회장 ▲2013년~ 아모레퍼시픽그룹 대표이사 회장 ▲2016년~ 서경배과학재단 이사장


☞ 본 기사는 <머니S> 제515호(2017년 11월22~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