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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연쇄 살인범
tmda**** 조회수 6,253 작성일2009.02.05

일단 디렉토리는 마땅한게 업어서 대충 정한건 죄송합니다만...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나.유영철 등)  여러 살인번  즉 범죄자들좀 알려주십쇼

 

최댜한 정성스럽고 자세하고 보조자료까지 있었으면 좋겠지만 일단

 

잘 이해가게 사건집이나 인물 특징좀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내공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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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onnor
은하신
형벌, 형집행 37위, 재판, 소송 절차 85위, 음식점, 맛집 67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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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들에 대해 정리해 올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그리고 미국같은 다른 나라의 연쇄살인범들은 거의 대부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대디수의 살인사건들이 가해자-피해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이고 개인적 원한,이욕 같은 범행동기가 있는 반면에 연쇄살인범들은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또는 중증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범행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ㅇㅇ특히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이른바 `묻지마' 식으로 저지르는 소위 `증오형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가 부패했으니 날 때부터 돈 없고 배경도 없는 자신들은 범죄를 저질러서 썩어빠진 사회를

단죄하려 했다는 식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면서도 막상 사회적인

소외 계층이나 평범한 시민들을 상대로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유영철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여성들중 대다수는 출장 마시지에 종사히며 어렵게 살아온 자들

이었고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은 밤늦게까지 공장에서 일하다 귀가하다가,

또는 늦게까지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가던 길에 살해당한 경우였습니다.

자신들이 느낀 좌절감과 소외감을 해소하고자 자신들보다 더 힘없고 만만해보이는

대상을 상대로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 뿐입니다.

과연 이러한 가해자들도 동정받을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이러한 증오형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존파,온보현,정두영,김경훈 등 연쇄살인범 대부분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어린 시절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정신장애를 겪었지만 이들은 당시 어떠한 치료도 받지 못했으며, 주변에서도

이 같은 장애를 문제로 보지 않았고 또한 치료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몇년전 서울 서남부지역 일대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끝내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남규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성폭력과 학교폭력,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장애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했었습니다. 또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역시 어린시절 불우한 생활

을 했고 동물을 전혀 거리낌 없이 죽이기도 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분들은 '사춘기를 지나면 이미 늦기에 아동기부터 이러한 정신장애를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증오형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대부분 10대 중반부터 경찰서와 소년원,교도소 등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본격적인 범죄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증오형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위에서 언급드린 개인적인 요소들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물질만능주의와 인명 경시 풍조, 가치관의 상실, 가정의 해체 등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기에 가해자에게만 100% 책임을 돌릴수 없는 측면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하고,부모를 잃고,심각한 정신장애를 겪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 모두가 흉악한 범죄자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 못지않게 자기 자신의 의지도 중요한터라 비슷한 성장배경을 가졌어도 A는 훌륭한 사람

으로 성장한 반면에, B는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해만 끼치는 자가 될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의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가 부족하고 노력을 게을리한 것은 생각하지도 않은채 부패한 사회,사람들의

냉대 탓으로만 책임을 돌리는건 비겁한 변명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증오형 범죄'도

이해는 하지만 용서할수는 없는 범죄입니다.

 

 

2.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이른바 `묻지마' 식으로 저지르는 이 `증오형 범죄'의

대표적 사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 김대두 사건 : 희대의 살인범으로 불렸던 김대두는 유신정권 당시인 1975년 17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고 종교에 귀의한 뒤 `전과자에게 갱생의 길을 열어달라'는 유언을

남긴채 1976년 12월 결국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김대두는 1975년 8월부터 55일 동안 전국을 돌며 칠순 노인부터 생후 3개월짜리 영아까지

일가족 단위로 무참히 살해했는데 취업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소외의식 때문에

결국 그런 식의 마구잡이식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 > 우범곤 사건 :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인 1982년

에 발생한 우범곤 사건은 현직 순경이었던 우범곤이 경남 의령지역에서 총기를 난사해

이웃주민을 집단살해한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발생한 살인사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역사상 최악의 대량살인(mass murder)사건이자

경찰 스스로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범곤은 자신을 욕하고 무시한 동네주민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며 만취한 상태에서 총기를

마구 쏴 마을주민 56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1981년 4월부터 서울의 한 특수근무처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그는 술버릇이 심하고 성격이 난폭하다는 이유로 부임한지 단 8개월만인

같은해 12월 경상남도 의령군에 소재한 궁류지서로 사실상 좌천되었습니다.

그나마 좌천된 뒤에 반성,자숙이라도 제대로 했더라면 또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유감스럽고

불행하게도 그는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 순경은 1982년 초 전 모씨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했으나, 그녀의 집안에서는

평소 술주정이 심한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겨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군 궁유면 토곡리 일대 시골 마을에 난데없는 총성이 울렸습니다.

의령경찰서 궁유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禹範坤:당시 27세) 순경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수류탄 7발과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을 무단으로 들고 나와 토곡리 등

인근 5군데의 마을을 돌며 무고한 주민들에게 총을 무차별 난사하였는데 그는 토곡리 우체국

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마을과 외부 사이의 통신을 두절시킨 뒤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마구 총을 쏘고 수류탄도 터뜨렸습니다.

이로 인히여 56명이 사망하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희생자 중에는 태어난지 고작 1주일

이 지난 아기도, 70세가 넘은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우 순경의 만행은 8시간여동안 계속되었고 간신히 살아남아서 마을을 빠져 나간 주민의 신고

로 사건을 접수한 의령경찰서는 우 순경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경찰 기동대를 출동

시켰지만 그는 자취를 감췄고 다음날 새벽 인근 평촌리에 위치한 서모 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서 씨의 부인 등 2명을 죽이고 난 다음 수류탄 2발을 터트려 자폭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 순경이 내연의 처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결론지었는데 서울에서 의령으로 좌천된 인사조차에 대한 불만

도 범행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 > 서울 여의도 광장 차량폭주사건 : 2012년 현재는 푸른 숲이 우거진 '여의도 공원'이

시민들의 휴식처로 자리잡았지만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 공원이 있는 자리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드넓은 '여의도 광장'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여의도비행장이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국군의 날 퍼레이드가 열리거나 대통령 선거후보들의

공개연설,유세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는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며 휴식을 즐기던 장소였던 그 여의도 광장에서 1991년

10월 19일 오후, 훔친 프라이드 승용차를 몰고 눈을 감은 채 자전거를 타고 노는 어린이 등이

몰려있는 방향으로 질주해 5백여m를 달리면서 결국 5살 어린이 등 2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상처를 입힌 김용제(당시 27세)는 시력장애로 직장에서 해고된 데 앙심을 품고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4 >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사건 : 1980년대 후반에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사건

입니다.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 사이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부녀자 10명이 연쇄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뒤 처참하게 살해되었으며 특히 장기간에 걸친 잔혹한 살해수법으로 인해

`세계 100대 살인사건'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2003년 4월에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을 계기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사건인데 최근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결국 사건이 영구미제 상태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러한 잔인한 짓을 한 가해자는 지금도 과연 살아있을지,조금이라도 반성은 하고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3.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민주화가 정착되고 지속적으로 경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던 1990년대

에도 '증오형 범죄'는 계속 발생하였습니다.

 

5 > 지존파(至尊派) 사건 : `지존파 사건'은 1994년 9월 20일 추석연휴 기간에 세상에 전모가

드러난 폭력조직의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입니다.

김현양 등 조직원 6명은 1993년 7월 `지존파'를 결성, 사업가 부부를 납치 살해한 것을 비롯해

배신한 조직원 1명 등 모두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하거나 불에 태웠습니다.

 

지존파의 두목 김기환은 1994년과 1995년 사이에 열린 1, 2심 형사공판에서 "100번 다시 태어

나더라도 똑같은 일을 할 것이다."고 말하는가 하면 일당중 한사람이었던 강동은은 "야타족을

한명도 못 죽이고 죽는게 한스럽다."고 발언하는 등 방청인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결국 주범들은 사형을 선고받고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6 > 온보현 사건 : 지존파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부녀자 6명을 연쇄납치하고 살해한

온보현 사건이 터져 1994년 당시 우리 사회를 불안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온보현은 1994년 9월 13일 서울 양재동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훔친 택시로 납치해 살해

하는 등 부녀자 6명을 납치해 이중 2명을 살해했고,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서자 범행 보름만에

자수, 연쇄살인극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나마 온보현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혐의를 순순히 시인하면서 첫 공판 개정 2시간만에 검찰

의 구형까지 이뤄지는 등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피해자들의 고통

을 `천분의 일'이라도 생각한다면 판사님은 제게 극형을 선고하고 하루 빨리 집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지존파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결국 지난 1995년 11월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7 > 막가파,영웅파 사건: 연쇄살인 사건은 아니지만 지존파의 잔혹성을 모방하고 계승한

막가파,영웅파 사건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1996년 9월 중순 `지존파'를 모방한 최정수

등 일명 `막가파' 5명은 범죄단체를 조직한 뒤 같은해 10월 5일 귀가 중이던 40대 여성을

승용차로 납치, 금품을 빼앗고 구덩이에 산 채로 넣어 살해하는 등 `지존파' 못지않은 잔혹한

범죄를 일삼았다가 결국 경찰에 검거되었습니다.

 

1999년 10월 29일 검찰에 검거된 이순철 등 `영웅파' 조직원 6명도 평소 튀는 행동을 보여

눈에 거슬렸던 동료 조직원을 무참히 토막내어 살해하고 시신의 내장을 꺼내 나눠 먹는 등

잔혹성의 극치를 보여준 자들이었습니다.

 

 

8 > 정두영 사건 : 30대 초반의 연쇄살인범 정두영이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 사이에

부산과 울산,경남지역의 중산층을 범행대상으로 삼아 철강회사 회장 부부 등 9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입니다.

정두영은 금품을 훔치다 들키면 흉기나 둔기 등으로 잔혹하게 목격자를 살해했고 살해 동기

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내 속에 악마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태연스럽게 말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9 > 용인 연쇄살인사건 : 허모(25)씨와 김모(29)씨 등 20대 2명이 카드 빚을 갚고 유흥비를

마련하겠다며 2002년 4월 27일부터 승용차를 택시로 위장해 몰고 다니며 경기 용인 일대에서

3일간 여성 5명을 살해한 충격적 사건입니다.

 

10 >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건 :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노인과 부녀자, 정신지체

장애인 등 21명을 살해하고 사체 11구를 토막내 암매장하는 한편 3구는 불에 태운 사건입니다.

유씨는 여성을 상대로 한 범행시 주로 초저녁에 여성을 집으로 유인해 한밤중에 살해했고

자신의 경제적,가정적 좌절에 대한 비관과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으로 중산층 노인들을

무차별 살해했습니다.

 

'희대의 살인마'로 불리었던 유씨는 "만약 내가 경찰에 잡히지 않았으면 100명까지 살해할 생각

이었다."며 "4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장기 일부를 먹었다."고 진술해 충격을 줬는데 결국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만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 사형을 선고받고 확정된 다른 60여명

의 사형수들처럼 2013년 현재까지도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은채 교도소에서 대기중입니다.

 

 

4. 참,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일부 언론매체에서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결코 적절하지

않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최근에도 주택가에서 한 남성이 여러 사람에게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중 일부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고 전철역,시내번화가 한복판에서도 각각 흉기난동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사건에 붙인 수식어는 '묻지마 살인','묻지마 범죄'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강력범죄사건에 대해 마치 고유명사라도 되듯 ‘묻지마’ 란 단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 사건들의 가해자가 살인,흉기난동등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 '화가 나서”'라는 식

으로 보도됩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은 적절한 것일까요?

 

이러한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비면식범)일 뿐이지,

그 행위의 동기까지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앞서도 잠시 언급드렸었지만 불특정,다수

에게 가하는 강력범죄의 배경에는 특정 대상 혹은 집단에 대한 '증오','혐오'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묻지마 범죄'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건들이 사실은 ‘증오범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여성을 살해,강간하거나 감금하여 성적으로 학대하는 경우,

특정 학교의 학생을 증오하여 그 학교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는 등의 범죄행위가 대표적인

증오범죄 유형입니다.

특히 이러한 ‘증오범죄’는 여성과 아이,노인,외국인,노숙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보다 약하고 만만해보이는 대상을 골라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연쇄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를 '발바리'라고 칭하며 희화화(戱畫化)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

을 외면하고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본질마저 왜곡하는 아주 몰상식한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묻지마 쇼핑’,‘묻지마 관광’ 등에서 사용되는 '묻지마'라는 단어를 잔인하기

짝이없는 ‘증오범죄’에 붙여 넣는 것은, 살인,강간같은 강력범죄를 가볍게 취급하는

일임과 동시에 범행의 타겟이 되는 피해집단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그냥 넘겨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일입니다.

 

 

5. 그런데, 제가 앞서 열거해드린,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이러한 '증오형 범죄'를

저질렀던 자들중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성폭력은 결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도 아니고 또한 순간적인 성적 욕구를

참지 못해서 저지르는 범죄도 아닙니다.

 

적지 않은 수의 성폭력범들은 평소에 쌓인 좌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공격에 취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르며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평소에 알고 있는 사이라면 가해자가

피해자나 제3자에 대한 분노감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그걸 해소하기 위해 성폭력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성폭력범은 상해나 살인 등은 피해자가 격렬히 저항하였기 때문에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벌어진 일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얄팍하고도 비겁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성폭력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폭력은 성욕뿐 아니라 가해자 내면의 분노,가해자가

평소 억압되었던 욕구를 일시에 표출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대부분 사전에 계획된 것이며

특히 '증오형 범죄'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성폭력은 피해자를 학대해 물리적,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단순히 성욕 해소를 위해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기에 성매매를 합법화한다고 해서

성폭력이 줄어든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실제로 연쇄성폭력범들중 대부분은 과거에 성매수를 많이 해본 경험이 있고

특히 단속을 피헤서 성매수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즉,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서 성폭력을 저지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젓가락, 심지어는 볼펜만 들고 있어도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터라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피해자분이 저항 의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일부러 주먹이나

흉기를 휘두르는데 피해자가 두려워하고,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상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해자들이 평소에 사회나 주변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는

것이기에 성폭력은 더더욱 용서가 안되는 중대범죄입니다.

201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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