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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창대군의 죽음
비공개 조회수 4,371 작성일2018.10.29
영창대군은 어디에서 누구한테 왜 죽었고, 그것이 어디에 기록되어있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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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김재남 사헌부(현재 검찰총장)의 둘째 딸이 예쁨. 그 둘째 딸이 인목대비임. 선조가 60살에 19살 인목대비와 재혼함. 선조가 나이먹고 왕좌자리 계속있음. 35살의 광해군이 국방빼고 국무총리 겸 행정부 장관역할하다 선조에게 맨날 쿠사리 맞음. 19살 인목대비가 영창대군이란 남자아이 출산함.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대신들이 생겨남. 갑자기 선조가 죽음. 광해군은 엄마가 천민임(왕 똥오줌받아 검사하는 후궁출신) 


김재남을 중심으로 영창대군을 왕좌에 앉히고 외척정치 하려고함. 인목대비 수렴첨정시작.


30대 후반의 광해군은 듣도 보도못한 계모가 감자기 와서 자신을 무시하고. 자객이 들어 죽을 뻔함. 이때부터 광해군은 서울 도성 곧곧에 방호를 철저히 한 궁궐을 계속 지음. 내가 어디서 자는 지 모르게... 인목대비와 계모 외척들이 계속 자객보냄.


임진년 조일전쟁 광해군이 전국에 돌아다니며 전쟁에 같이 참여한 곽재우와 정인홍 중심 이황계열의 북인들이 인목대비를 추운 북쪽 골방에 갇아버리고 가시나무를 심음. 죽이진 않음. 10살정도의 배다른 형제인 영창대군 사약먹임.


인조가 계모라도 엄마는 엄마야 하면서 밤에 서대문쪽으로 말타고 들어와 광해군 죽임.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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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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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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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대군은 광해군의 재임시절에 죽었습니다
후궁소생의 광해군 쪽에서는 적자인 영창대군이 있음으로써 역모를 당할 위기에 있었기때문에 영창대군은 죽어야만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혀져 있을 거에요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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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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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h****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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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대군은 어디에서 누구한테 왜 죽었고, 그것이 어디에 기록되어있는지 알려주세요. 
->영창대군은 역모연루죄로 강화도에서 강화부사 정황에 의하여 증살(찜질방처럼 쪄 죽음)당했고,
광해군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광해군일기 75권 광해6년2월10일 임진2번째 기사정항(鄭沆)이 영창대군(永昌大君) 이의(李㼁)를 살해하였다. 【정항이 고을에 도착하여 위리(圍籬) 주변에 사람을 엄중히 금하고, 음식물을 넣어주지 않았다. 침상에 불을 때서 눕지 못하게 하였는데, 의가 창살을 부여잡고 서서 밤낮으로 울부짖다가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의는 사람됨이 영리하였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대비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염려하여 괴로움을 말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상복을 입지도 않았다. 그의 죽음을 듣고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
<http://sillok.history.go.kr/id/koa_10602010_002>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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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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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영창은 광해군 시기에 간신들의 모함에 죽었고 광해군일기(조선왕조실록)에 있을걸요.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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