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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창대군의 죄
msj6**** 조회수 19,926 작성일2005.07.21

영창대군이 광해군에 의해서 증살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영창대군이 무슨 죄를 지어서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증살시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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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살이란 쪄죽이는것을 이야기합니다...

 

선조는 원래 방계혈통 즉 왕실의 적손이 아닌 임금이었습니다..그에 대한 컴플렉스가 굉장히 심하였습니다.

 

원래 선조는 신성군을 굉장히 총애하였으나 임진왜란때에 병사하였고 결국 총명 한 광해군을 세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인목대비가 아들을 낳으니 바로 영창대군이죠..적손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선조는 병사하였고 광해군이 제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기축옥사로 영창대군 지지파를 제거 합니다.

 

김제남등은 사사당하고 인목대비는 서인으로 폐해집니다.

 

그러나 실리외교가 유교의 명분론에 어긋난다는이유로 배척받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하고 맙니다..

 

인조반정을 일으킨 무리들이 내세운 명분은

 

1.  상국인 명나라를 배반하고 오랑캐로의 배신

 

2. 자신의 동생을 비롯한 (자신의형임해군 및 영창대군 옹호세력)여러사람을 죽인행위

 

3. 계모 인 인목대비에 대한 불효

 

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명분은 다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는 명나라는 이미 기울고 있었고 청나라는 신흥 강대국 이었지요..그래서 광해군은 대세를 보고 두나라의 중간에서실리 외교를 펼쳤던것입니다.

 

그러므로서 상국인 명나라를 배신하지않으면서 청나라의 비위를 맞추었지요.

그러나 인조가 즉위하면서 친명배금 정책을 펼침으로서 결국 조선은 왜란을 치룬지 몇년 되지 않아 두번의 호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두번쨰이유인 자신의 형제 살해 는 간단합니다 조선사나 앞의 고려사 등을 훑어보면 왕이 자신형제를 죽인 경우는 허다합니다.

 

조선초의 태종은 자신의 이복동생을 두명이나 살해하고 자신의 친형을 귀양보내기까지 했지요.

 

광해군의 친형 임해군은 성질이 포악하여 선조가 광해군을 세자로 삼자 그를 시기하여 광해군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임해군은 위험인물이었지요.. 영창대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것은 왕권 강화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것이 나을듯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목대비에 대한 불효는 전혀 근거없는 소리입니다..

 

인목대비는 오히려 광해군을 미워하고 증오하였습니다.. 왕세자 때부터 그러나 광해군은 오히려 그런것을 묵인하고있었지요..그리고 기축옥사때 그녀를 죽이지않고 오히려 서인으로 폐한것만으로도 알수있는 사실입니다.

 

광해군은 굉장히 총명하였으나 시대를 잘못만난 비운의 왕이라고 보시면 되며

 

연산군은 정말 포악한 왕이었다라는 평가가 맞는것입니다.

200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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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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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라고 해봐야 없어요........ 그냥 크면 자신의 권력기반에 금이 갈 것 같았을 거구요...... 영창대군이 또 무식하고.. 정신이 약간 이상했다면 또 어떻게 될 지는 몰랐지만.... 총명한 편이었고(그 정도 총명하면 신하들 도움 받으면서 나라 잘 다스리죠) 그리고 인목 대비의 발언권도 셌기 때문에...... 일단 죄를 씌워서 죽였죠........... 죄야 씌우면 되죠.......

 

자 그럼 누명의 진실을 밝힙니다~~~~~~

 

처음에 장님 점쟁이에게 점을 봅니다. 한 사람은 연흥 부원군의 종인 오윤남이라고 가장하고....  한 사람은 대군 보모 상궁이라고 가장하고 ....' 갑진생이 병오생을 위하여 을해생과 무술생을 해치우려고 하는데 성공할수 있을것이냐'라고 물어보고는...(갑진생=인목 대비 병오생= 영창대군 을해생= 광해군 무술생= 세자) 가고 나서 포졸들이 그 점쟁이를 잡아 심문하니 그대로 다 밝혀 결국에는 대비의 아버지 부터 시작해 주변 인척들을 모조리 숙청한 뒤에 결국 영창 대군을 강화도로 끌고 가 위리 안치(가시 울타리로 집을 둘러싸 가두는 귀양법정도로 보시면 되요)하여 불을 마구 때어 초가집 안에 쪄 죽여버렸습니다.(진짜로 쪄 죽이는 것이 가능한 가봅니다....)

결국 이렇게 되어 영창대군은 죽고 그 뒤에 이렇게 친척들을 죽이고 약간의 폭정으로 인해 인조 반정으로 광해군은 유배당해 죽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해군을 존경합니다.. 최초의 사대주의를 탈피하고 중립외교 정책을 펼쳐 우리나라가 다시 전성기를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의 이유때문에 인목 대비와 인조가 집권하면서 다시 사대주의로 돌아서고......... 결국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일으킵니다....(정묘호란이 먼저에요....)  만약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살려두고 인목 대비께도 효를 실천 했다면 좋았을 텐데요....(임진왜란때 이미 성군의 자질을 보여준 적이 있는 분이었죠.)

2005.07.21.

  • 출처

    능인사의 계축일기를 조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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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죄는 딱히 없구요, 선조의 빈이 아닌 왕비의 아들로 적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통이 아니었던 광해군에게는 위협적인 존재 였지요.

그래서 죽였습니다.

200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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