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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창대군과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
yo**** 조회수 7,939 작성일2008.06.24

질문이 한가지 있는대요

 

만약에 영창대군과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요

 

역사랑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세종이나 영조,정조에 못지 않은 성군이 되었을수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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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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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역사엔 만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 질문처럼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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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y****
식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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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들이 성군이 되었을지는 의문이군요.

특히, 소현세자라면 조금 가능성이 있었보이지만, 영창대군은...

 

영창대군은 선조가 돌아갈 당시 9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다해도, 직접 정치를 할 수 잇는 나이는 아니죠.

그렇다면 당연히 인목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할 것이고,

인목대비라면 자신의 아버지 김제남과 그 인척들을 불러 모아 정치를 좌지우지했겠죠.

전 시기와 뒷 시기의 여러 대비들이 그랬듯이...

그랬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당시 인목대비는 30세 안팎의 젊은 나이였고, 혼자서는 정국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의지할 수 있는 인척들을 불러 특권을 주며,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랬다면 영창대군이 성군이 되기는 힘들었겠지요.

그가 얼마나 영리했는지, 성품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 성인이 되서도 외척들의 세력을 떨쳐버리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

우리가 익히 보아온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정해 볼 수 잇는 것은,

만약 영창대군이 왕이 되었다면,

반대로 광해군이나 그 밖의 이복형들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지.

인목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고 그 외척들이 정권을 잡은 상황에서 혹, 그 힘이 강하지 못하다면,

영창대군은 광해군을 비롯한 장성한 형들의 역모에 시달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형들의 죽음이 이어질 수 있겠죠.

영창대군이 증살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광해군이나 그 밖의 형들이 이를 빌미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이래저래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영창대군이 성군이 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소현세자.

역사에서 그 죽음을 아쉬워 하는 인물 중 하나가 소현세자입니다.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후, 청을 상대로 유연한 외교를 하고,

여러 새로운 문물들에 관심을 가지며 많은 것을 배워온 인물이지요.

만약 그가 왕이 되었다면, 그리고 유신을 가능하게 했다면,

조선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잇는 조선과 많이 달라져 있겠지요.

 

그러나, 불행히도, 소현세자의 아버지 인조는 서인들에 의해서 옹립된 왕입니다.

서인들이란, 이이의 학문을 이어 받은 골수 성리학자들입니다.

사실 광해군이  폐모살제 외엔 이렇다할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폐위된 것은,

이런 골수 성리학자들에 의해, 사회 곳곳에 성리학적 질서가 이미 자리 잡혀 잇었기 때문입니다.

일반 백성들까지도 폐모는 나쁜 것이란 인식을 하고 있었으니,

반정은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소현세자, 그 아버지 인조가 이런 서인들에의해 왕위에 올랐고,

아직도 그들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들 제대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있었을까요.

더구나 조선은 원래부터 신권이 왕권에 맞먹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오랑캐라고 여기는 청의 문물과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고자 해도,

그것이 과연 가능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정치를 잘 해 나가는냐가 관건이긴 하겠지만,

그가 성군이 되려면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해야 했을 겁니다.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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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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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생각 많이 하지만 더욱 안좋아 졌을지도..

 

궁이라는 만화처럼 입헌군주제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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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영창대군은 어머니, 누이와 떨어질 적 울고불고하던 어린애였습니다.

영창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면 어쨌을지는 미지수지요...

 

그러나 소현세자의 경우는 다릅니다.

소현세자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아들까지 셋이나 두고 있었고,

또 청나라에서 오랫동안 인질 노릇을 하며 점점 문명에 눈을 떠가던 상태였습니다.

그가 비명횡사한 까닭도 야샤에서는 인조의 노여움을 받았기 때문이라 전해지고

거의 정설이라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소현세자는 굴욕에 못 이겨 반청사상에 찌든 아버지 인조와는 달리

청의 발달된 문화에 감탄하며 그를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청에 관해 무조건 반대입장을 취했던 인조나 그 아들 효종과는 달리

진보된 사상을 가진 이였으니 만약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면

우리나라가 좀 더 개화를 일찍 맞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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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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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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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창대군 등극

 

두가지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단종의 경우;

 

즉 장성한 숙부들이 서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왕위를 찬탈 하는 경우

 

한가지 단종시대와 다른 점은

 

인목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고 외척이 조금더 쎌 것같다는 것입니다

 

순조의 경우

 

즉 인목대비 세력이 세서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갈 수도 있습니다.

 

(명종의 경우 도 비슷)

 

어느 경우나 영창대군이 주도적으로 왕의 역활을 하기에는 미흡할 것 같습니다

 

현실상은 광해군을 밀어낼만한 뚜렷한 명분도 없고해서

 

상당히 불안정한 정권이 될 것 입니다

 

2.소현세자의 경우는

 

청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취한다면

 

첫째 서인 세력을 억압하는 경우

 

이 경우는 광해군의 운명을 닮겠죠ㅗ

 

둘째 서인 세력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하는 경우

 

불안정한 동거형태인데.. 왕권 약화로 인해 할 일을 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보여 집니다

 

정치란게 한 사람의 카리스마로만 결정이 되는게 아니라

 

그 시대 세력간의 균형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인조 반정으로 서인 세력이 득세한 조정에서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듯 보입니다

 

하나 가능성은 정여립 사건때 서인이 동인을 몰살시킨 것 처럼..떼몰살을 시켜서 새로 하는 방법은 있는데...

 

이것도..참;;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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