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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일본도 조선처럼 중국에 세장책봉할때 허락?을 받았나요?
비공개 조회수 269 작성일2019.07.03
일본도 명나라나 청나라에게 세자(?)를 결정할때 허락을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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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신

일본은 세자가 없었고 오랑캐 취급 받아서 상국도 없었습니다.

일단,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스스로들을 천자국으로 여겼기에 제후(황제의 꼬봉)의 후계자인 세자가 아니라 태자가 있었고, 일본이 전국시대를 기점으로 조선보다 군사, 경제적으로 강해지지만 우리나라나 중국에선 그냥 오랑캐 해적집단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출신성분 때문에 명나라에 자신을 신하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실제로 책봉받아 책봉식을 치루긴 하였으나 이건 명나라가 그냥 전쟁에서 빨리 손 떼고 싶어서 그랬던거라 조선의 왕보다 낮은 군왕급 왕으로 봉했습니다.

왜 구태여 명나라의 신하가 되려고 하냐면 중국을 사대하는게 나쁜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중국 말고는 다 중국의 꼬봉이자 일부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그럴만한 통제력이 있기는 힘들고 사방팔방 전쟁하면 자기가 망하니 중국 내의 번국들은 왕족들에게 나눠주고, 조선같은 동맹은 '우리 존나 쎈 중국이 너네를 나라로 인정해주고 형제로 삼아줄 것임, 너네는 대신 남한테는 내가 형님이라고 할 것'으로, 쉽게 말해 UN 가입하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근데 일본은 아예 그런 취급을 안 받았기 때문에 쇼군(천황을 대신해 실제로 일본을 다스리는 시무라이)이 되지 못한 히데요시(출신이 불분명하고 아마 천민으로 추정되나, 본인은 출세하고 나서 최하급 무사 가문 출신이라고 하고다님, 쇼군은 황가의 친척인 사무라이만 가능했음)는 자신의 통치력을 굳힐 겸 일본을 문명권에 편입시키려고 명에게 왕으로 삼아달라고 한거지요.

이런 연유로 일본은 중화문명과는 따로 놀아서 누군가의 제후가 아니여서 태자만 있었을 뿐 세자는 없었고, 세자급의 위치는 내친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그렇구요.

일본 태자 책봉식은... 현재까지도 비밀로 유지되고 있기에 일본 왕족이나 궁내청 관계자가 아니면 거의 알 수가 없습니다. 황가만이 출입 가능한 신사(신전)에 들어가 황족의 행사를 치루기 때문입니다. 이건 절대로 공개가 된 적이 없으며 일본에서 황족의 사진, 목소리, 영상을 담는 것 자체도 원래는 불가능했으며, 지금도 황실 어른들의 허가 없이는 언론에서 어린 황족의 목소리를 보도해서는 안됩니다.

그럼 사실상의 왕인 쇼군의 아들도 있겠으나 쇼군 자체가 세습신분이 아니라 황제가 임명하는 관직의 일종이라 그냥 현 쇼군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천황한테 도장 찍으라 하고 후계자한테 관직을 주는 거라 책봉의 개념이 없습니다. 승계가 이루어지기 전엔 그냥 생각으로만 하고있는거라서 언제든 바꿀 수 있는거고 일본 사무라이들은 수행을 끝내고 무사로 인정받으면 천황 명의로 미관말직이라도 따로 받아서 조선의 @@목사 처럼 관직을 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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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
바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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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실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에 일본의 야마토국의 여왕 히미코(姬子)가 중국역사에 등장하지만 백제가 멸망한 이후 일본천왕에게 봉작을 내렸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습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생활한 후 왕위에 오른 백제의 무녕왕의 지석에서 당시 중국의 양나라로부터 영동대장군이라는 직위를 부여받았다는 점은 지석의 이름이 寧東大將軍百濟斯馬王이었지요. 그 내용애서 중요한 단어는 崩이라는 말이었지요. 일본사기에 사마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가 무녕왕인게 밝혀지고 어찌되었든 그의 죽음을 崩이라 적혀있으니 (이는 천자의 죽음을 말하며 왕이나 제후의 죽음을 薨이라 함) 백제의 위상을 짐작하며

백제의 멸망이후 자기의 국호를 倭(이는 와라고 읽음. 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도 와로 독음했는데 임난이후 왜로 바뀌었음)를 버리고 日本으로 바꾸었고 이후 고려가 몽고에 항복했어도 결사항전 태세를 취했지만 이른바 가미가제(神風)이라는 태풍으로 원과 고려의 연합군을 궤멸하여 정복을 면한 것은 전설적이다.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나 토쿠가와 이에야스를 달래기 위해 명에서 왕으로 봉한다는 문서를 보냈을 지 모르나 이른바 흥선대원군의 집정 이후에도 청은 조선이 속국임을 강변하나 일본에 대해서는 속국 운운하는 역사 구절이 없으니 일본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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