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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의정부에 볼거리나 명소좀 추천해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8,359 작성일2016.06.02
아무리 찾아봐도 잘 안나오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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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정부 예술의전당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의정부2동 323 

 

의정부 예술의전당은 대극장,소극장,국제회의장,전시장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이다.

 

1,057석 규모의 대극장은 300여명이 동시에 출연할 수 있는 348평의 무대를 보유한 경기북부지역 최대규모와 최신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기능의 입체적 이동무대와 첨단 무대 조명시설, 음향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뮤지컬 등 모든 장르의 무대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소극장은 81평의 무대, 대극장 못지 않은 조명, 음향시설을 갖추고, 실험적인 작품을 비롯해 연극, 합창, 실내악, 독주회,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물을 생동감 있게 펼칠 수 있다.

전시장은 137평 규모의 원형 대전시장과 각 43.5평의 제1전시장,제2전시장으로 나뉘어 있어 3개의 각기 다른 전시회를 동시에 개최할 수 있으며, 그림, 서예, 조각, 공예, 사진 등 규모와 분야에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전시가 가능하다. 제1, 제2전시장은 원형의 천장을 통한 자연채광에 의해 전시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특히 전시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가시선, 조명설비, 작품의 보존을 위한 공기조화 설비 등을 고려함으로써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할 수 있다.

국제회의장은 각종 심포지엄, 워크샵, 학술세미나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109석의 회의석과 68석의 방청석, 5개 국어 동시통역설비와 영상 음향조정실 등을 보유하고 있다.

 

2.의정부 명물찌개거리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의정부1동 

 

1998년도부터 음식점들이 하나 둘 생겨난 의정부의 대표적 명물찌개거리는 햄, 소시지, 다진쇠고기와 김치, 고추장, 야채 등 양념을 혼합한 것이 특징이다.

 

3.원도봉유원지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원도봉유원지 

 

원도봉유원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의에 위치한 도봉산 기슭에 있는 유원지로서 도봉산 기슭의 장수원 일대 계곡에 있자리하고 있다. 도봉산은 최고봉 자운봉을 비롯하여 만장봉·선인봉·주봉 등의 암봉이 수려하고 계곡미가 빼어나다. 유원지 내에는 수영장· 어린이놀이터·산장·야영장·식당·매점 등의 시설이 있고 계곡에는 대원사·쌍룡사·망월사 등의 고찰이 있다.

 

주변에 기암이 많고 특히 망월사를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들이 절경을 이룬다.

 

4.망월사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산 91 

 

망월사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주봉 등의 암봉이 수려하고 빼어난 도봉산에 위치하고 있다. 망월사로 오르는 길은 매표소에서 대원사, 원효사, 광법사를 차례로 돌아서 가는 코스가 있고 원도봉계곡을 따라가는 코스가 있는데 망월사에서는 두 갈래 등산로 중 어느 쪽으로 오르든 포대능선에 이르게 된다. 망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년)에 해호스님이 여왕의 명에 의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하였다. 당시 서라벌 월성을 향해 기원하는 뜻에서 망월사라 이름하였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운수 납자의 대선사들이 많이 거쳐갔는데 고려시대의 혜거, 영소대사와 조선시대의 천봉, 영월, 도암 등 많은 명승들이 지냈고 근대의 도인이라 불리우는 만공, 한암, 성월 등 선지식들이 지내던 곳이다.

 

망월사 큰 법당에서 남서쪽으로 언덕을 들어가면 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2호)가 있다. 지금도 많은 수도승들이 참선하고 있다. 망월사 큰 법당에서 남서쪽으로 언덕을 넘어가면 혜거국사 부도가 있다. 부도란 이름난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해 두는 돌탑을 말하는데, 대개 절 근처에 세운다. 혜거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이다. 전체의 높이는 3.4m이고 탑의 몸통 둘레는 3.1m이다. 탑모양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단 부위에 구형 탑신을 안치하고 옥개석과 상륜부로 구성돼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대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대석은 팔각형 삼단의 일석으로 조성되고 높이가 80cm이다. 그리고 그 위에 괴임대를 놓았다. 탑 몸통은 공 모양으로 조성되고, 괴임대 윗쪽과 옥개석 아래쪽에 홈을 파서 탑 전체의 안정감을 꾀했다. 옥개석은 복발과 보주까지 한 개의 돌로 만들었는데, 낙수면은 목조건물의 지붕모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귀꽃은 모두 8개이다. 상륜부는 옥개석과 일석이며 복발면에 연꽃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부도의 주인공인 혜거국사는 속성이 노씨이며, 자가 홍소로서 고려시대 국사를 지냈다. 그러나 행장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회룡사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304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에 의상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니 의정부지방에서는 망월사 다음으로 오래된 절이다. 그 후 경순왕 4년(930) 동진국사가 재창한데 이어 고려 문종 24년(1070)에는 혜거국사가, 고려 우왕 10년(1384)에는 무학대사가 개축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해 오다가 6.25 동란 때에는 완전히 불타 없어졌으며 대웅전, 약사전, 선실, 요사를 차례로 복원했으며, 1971년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큰법당을 신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룡사의 귀중품은 의상대사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5층 석탑과 식수저장용으로 쓰이는 석조가 있고, 신장상을 조각한 노주가 있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법성사 였는데 회룡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는 전설은 구구하다. 

 

6.정문부장군 묘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37호

지 정 일 1977.10.13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379-32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뛰어난 공적을 세운 농포 정문부(1565∼1624) 장군의 묘이다.

 

선조 18년(1585)에 생원이 되고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조 24년에 함경북도의 병마평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관북일대가 함락되자 이에 격분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명천·길주 등에서 적을 물리치고 관북 지역을 되찾았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길주 목사가 되었다. 인조 때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사망하나 후에 무죄가 증명되어 좌찬성으로 벼슬이 높여졌다.

 

부인 고령 신씨가 함께 묻혀 있는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 좌우로 1쌍의 문인석이 서 있다. 묘역 동남쪽에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현종 6년(1665)에 세웠던 것을 철종 12년(1861)에 추가로 기록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7.노강서원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지 정 일 1977.10.13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6-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1654∼1689)의 학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박태보는 호남 암행어사, 파주 목사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가는 도중 죽었다. 학문에도 깊고 성품도 강직한 분으로 알려졌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숙종 21년(1695)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27년(1701)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노강’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원래는 서울 노량진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6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 동재·서재, 고직사 등과 출입문이 있으며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당은 박태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으며, 각 칸에는 4짝으로 이루어진 문을 달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양식을 사용하였는데 가운데 칸에 용머리를 첨가하였다. 동·서재는 온돌방으로 꾸며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기거하는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8.송산사지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42호

지 정 일 1977.10.13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 산 66-1

시 대 조선시대 


송산사터는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 왕조와의 절개를 지킨 조견, 원선, 이중인, 김양남, 유천, 김주 등 여섯 분의 뜻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이 있던 터이다.

 

조선 정조 22년(1798)에 건립되 ‘삼귀서사’라 하였는데, 순조 3년(1803)에 ‘송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고종 5년 (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건물은 헐려 없어졌고, 1892년 옛터 위에 여섯 분의 위패가 모셔진 단이 마련되었다. 1995년의 발굴조사 결과 재실의 남쪽에서 사당터가 확인되었다. 사당터는 북향으로 자리잡고 있어 고려의 왕도인 개성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보면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앞면에 개방된 툇간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산사터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의 소규모 사당터이나 배치가 북쪽을 향해 있어 매우 특이한 유적이다.

 

9.신숙주선생 묘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88호

지 정 일 1985.09.20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고산동 산53-7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문신이었던 보한재 신숙주(1417∼1475) 선생의 묘이다.

 

세종 20년(1438)에 사마양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세종 25년(1443)에는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세조가 즉위한 뒤 예문관대제학,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으며 예종 1년(1471)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왕명으로 명나라 황찬의 도움을 얻기 위해 요동을 13차례나 왕래하기도 하였다. 특히 세조와는 이전부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계유정난 과정에서도 세조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는 뛰어난 학식과 글재주로 모두 6명의 임금을 섬기면서『국조오례의』,『동국통감』,『세조실록』,『예종실록』을 비롯한 많은 편찬사업에도 참여하였다.

 

묘는 부인 안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은 2기가 있다. 봉분 사이에는 1897년에 세운 묘비가 있고,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봉분 좌우에는 문인석 2쌍이 서 있다. 묘역 아래에는 이승소가 글을 지어 성종 8년(1477)에 세운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다.  

 

10.서계 박세당 묘역

 

종 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3호

지 정 일 2002.09.16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산146-1 
시 대  조선시대


서계 박세당(1629~1703)은 조선 후기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그 역사적 업적이 뛰어나다. 참판 박정의 아들로 1660년에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1664년 황해도 암행어사로 나갔다. 1667년 이조좌랑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아 장형을 받기도 했으나 1694년 갑술옥사에 소론이 득세하자 승지로 특진하였다. 이러서 공조판서를 거쳐 이조,형조판서를 지냈다.

 

서계 박세당의 묘는 장암동 소재 석천동 북족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분은 단 분으로 두 부인과 삼위합장묘이다.

 

(양주의 볼거리나 가볼만한 곳)

 

1.불곡산  
    

위 치 :경기 양주시 유양동 및 산북동

 

불국산으로도 불리는 불곡산은 해발 470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대동여지도'에 양주의 진산으로 나와 있다. 양주시 유양동 및 산북동의 경계에 솟아있으며 서울 근교의 다른 산과 달리 주말에도 붐비지 않아서 좋다. 산의 규모는 작으나 기암들로 이어진 오밀조밀한 산세를 자랑한다. 인근의 도봉산에 밀려 빛을 못보고 있으나 교통이 편리한데다, 봄철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는 산이다.

 

특히 유양동에는 옛 양주군 관아지를 비롯해 문화 유적들도 산재, 자녀교육을 겸한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또한 산 중턱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백화암이 있다. 백화암 밑에 있는 약수터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고 전한다. 백화암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한 편이다. 정상의 암벽 지대는 겨울철 눈이 내리면 위험한 코스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양주시와 의정부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유양리에는 양주목사가 4백여년간 행정을 펴던 동헌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2호인 어사대비, 양주향교(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국가 무형문화재 제2호) 전수회관, 양주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금화정, 경기도 기념물 제143호인 양주산성 등 문화재가 모여있다.

 

양주별산대놀이 마당에서는 4~10월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후 3~5시까지 상설공연과 깨끼춤 강습이 이루어진다. 또한 유양동 마을의 전통 순대는 유명하다. 등산객들이 하산길에 들러 소주를 곁들여 먹는 순대국이 별미다. 양주순대국전문, 원골전통순대국전문, 원조할매순대국, 유양리토종순대국 등이 있다.

 

2.석굴암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번지

 

석굴암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번지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오봉산 관음봉 중턱에 턱 자리잡은 석굴암은 서울 인근에서는 숨은 보석과도 같은 나한기도도량이다. 절 뒤로 펼쳐진 훤출한 산세가 그렇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 또한 맑고 깊다.

 

게다가 군부대 초소를 통과해야만 갈 수 있어, 아직까지는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지라 서울과 바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 서울의 명산 북한산과 도봉산, 그 중에서도 산세가 가장 뛰어난 도봉산 서쪽에 있으며, 석굴암 위로는 다섯 봉우리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이는 오봉으로 불리는 곳으로 석굴암은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가람의 지세는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크고 뛰어난 산세이다. 또한 물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도봉산은 주봉인 자운봉에서 남쪽으로 만장봉. 선인봉이 있고, 서쪽으로 오봉산 석굴암이 있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을 접하고 있다.

 

또 도봉은 풍수지리상으로 왕관(王冠)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서쪽의 오봉은 주봉을 호위하는 장군기마상이라 할 수 있다. 석굴암 창건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도선국사께서 창건했다는 설도 있나, 고려시대 나옹화상이 공민왕시절에 왕사로 3년간 수행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번씩 장흥을 지나다 우러러 보았듯이 오봉산의 산세와 그 절경은 옛 대사들의 창건설을 뒷받침해 주듯 고찰이 들어설 자리임을 짐작케 하는데, 산세를 보듯, 그리고 가람을 보듯 석굴암이 자리한 관음봉 중턱은 정말 선풍을 지키는 수도처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의 제자인 설암관익대사가 주석하며, 석굴에 지장과 나한 두 존상을 조성했으며, 1455년에는 단종왕후가 왕세자를 위해 왕후원찰로 중수하기도 하였다. 이후 끊임없는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맥을 이어갔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이 가람은 일반인들에게 잊혀진 사찰이 되었다. 그러나 근래에 초안스님의 불사와 기도, 그리고 그의 상좌인 도일스님의 원력으로 현재 석굴암은 일반인들에게 나한기도의 도량으로 찾아 가고 있다.

 

수십년간 군사보호시설로 묶여 속세의 때가 묻지 않았으며, 옛 고승대덕의 수도처로서 유명한 석굴이 있는 곳. 이곳이야 말로 진정 일반인들이 찾고자 하는 이상향 같은 기도처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의외로 군사보호시설로 묶여 있었던 것이 다행인지 오봉산의 뛰어난 산세와 자연절경은 그대로 간직되어 있으며, 산길을 오르는 곳곳마다 산속의 나한님을 찾으로 떠나는 비경이 곳곳에 펼쳐진다.

 

3.온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19

지정현황 :사적 제210호

 

조선 중종의 원비  신씨의 능이다.

 

왕후는 연산군 때 좌의정이며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의 딸로 1499년(연산군 5) 13세로 진성대군이던 중종과 가례를 올리고 반정으로 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반정과정에서 반정 주체세력이 신수근을 살해하고 왕에게 강권하여 폐출시켰으며 왕후는 1557년(명종 12) 사저에서 71세로 승하하여 신씨 묘역에 묻혔다가 1739년(영조 15)에 복위되어 묘호를 단경, 능호를 온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뒤에 곡원을 두르고 석양·석호 각 2필로 호위하게 하였고 능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을 세우고 망주석· 문석·마석을 배치하였다. 동물 모양의 조각을 반으로 줄인 것은 비릉으로 봉해진 무덤의 예에 따른 것이다.

 

무덤 아래에는 제사지내는 방(제실)이 있었으나 1970년 도로 확장 때 없어졌다.


4.권율장군묘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 168-1

지정현황 :경기도 기념물 제 2호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명장인 권율(1537∼1599)과 정부인 창녕 조씨, 후부인 죽산 박씨의 묘이다. 권율은 안동 권씨로 선조 15년(1582)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의주목사로 근무하던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광주목사에 임명되었다. 한양 수복을 위하여 북상하였으나 용인싸움에서 패하자 다시 광주로 되돌아가서 군사를 모아 충청도 금산 이치싸움에서 왜적을 대파시켜 전라도 지역을 지켰다. 이어 함락된 한양의 수복을 위하여 다시 북상하던 중 수원 독산산성에 진지를 구축하고 왜군의 진격을 막았다.

 

이후 행주산성으로 진지를 옮겨 권율이 일사분란하게 통솔하고 군사들은 사력을 다해 싸워 대승을 거둔다. 권율은 이 공으로 전군을 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으며, 선조 29년(1596)에는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 32년(1599) 관직을 물러나 그해 세상을 떠나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의 일반적인 묘역구조는 봉분 앞에 묘비·혼유석·상석·향로석이 있고 상석 앞에는 장명등이 있고, 그 양쪽으로 망주석, 문인석을 각각 1쌍씩 세웠다.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공신이나 훌륭한 학자에게 허용되었던 것으로 묘의 남쪽 가까이 세웠다.

 

권율의 묘역은 이러한 원칙에 비교적 충실히 하였다. 권율의 묘소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각1기씩 있다. 그리고 무덤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인 망주석과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 세우는 동자석·문인석이 각 1쌍씩 세웠다. 묘역의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가 비문이닳아 없어져 철종 12(1861)에 권율의 후손들이 새로 건립한 것이다. 1971년과 1999년 정화사업으로 묘를새롭게 단장했다.

 

5.양주향교  
      

위 치 :경기 양주시 유양동 266

지정현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1983.09.19 지정)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 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었다.

 

또한 향교에서는 교육뿐만 아니라 중국과 조선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시에는 50명, 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일반적인 향교의 건물 배치는 앞의 외삼문쪽에 공부하는 장소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서재를 두고, 뒤의 높은 곳인 내삼문 안에는 공자와 4성현(안자, 자사, 증자, 맹자)을 제사지내는 대성전과 공자의 제자 및 송나라와 우리 나라 현인을 제사하는 동무·서무를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룬다.

 

이 향교는 조선 인조 때 창건된 후 많은 유학자를 양성·배출하던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대성전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8년에 유림들이 재건한 것이다. 이 향교는 제향 인물 중 송나라 4현이 빠지고 기호지방의 이름난 유학자를 제사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6.양주별산대놀이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  
지 정 일 1964.12.07


산대놀이란 중부지방의 탈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경기지방에서 즐겼던 산대도감극의 한 갈래로 춤과 무언극, 덕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 놀이이다. 이 놀이는 약 200년 전부터 사월초파일, 단오, 추석 등 크고 작은 명절과 비가 오길 기원하는 기우제 행사 때에 공연되었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양주고을 사람들이 한양의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놀다가 그들이 지방공연 관계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많아지자 고을 사람들이 직접 탈을 만들어 놀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놀이는 전체 8과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놀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면과 의상을 갖추고 음악을 울리면서 공연장소까지 행진하는 길놀이와 관중의 무사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놀이에는 파계승, 몰락한 양반, 무당, 사당, 하인 및 늙고 젊은 서민들이 등장하여 현실을 풍자하고 민중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등장배역은 모두 32명지만 탈은 함께 사용하는 것이 있어 보통 22개가 활용된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중부지방 탈춤을 대표하는 놀이로서 해서지역 탈춤과 함께 한국 가면극 중 연극적인 볼거리가 풍부한 가면극이라 하겠다. 


7.송추유원지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고양시와 의정부시를 잇는 39번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도가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여, 송추유원지는 오래 전부터 수도권 주민들의 유원지 구실을 해왔다. 산세로 살피자면도봉산 북서쪽, 사패산 서쪽에 자리한 유원지이다.

 

송추역 남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약4km의 계곡으로 이루어진 휴양지이다. 수영장, 낚시터 등을 갖추고 있으며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근처 농원에서는 계절에 맞추어 딸기, 배, 복숭아, 포도 등이 입맛을 돋군다. 국립공원 송추지역은 오염되지 않은 계곡과 삼단폭포의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등산코스는 도봉산 오봉 코스와 사패산 코스가 있다. 소요시간은 왕복 3시간 정도. 이 근래에는 여성봉과 오봉산코스가 널리 알려져 있다.


8.일영유원지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양주시는 경기도의 중앙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의정부시, 구리시, 동두천시, 미금시, 남양주군을 포함했었으나, 4개 시와 남양주군이 독립, 분리됨에 따라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동쪽은 포천시, 서쪽은 파주시와 고양시, 남쪽은 서울시와 의정부시, 북쪽은 연천군, 북동쪽은 동두천시와 연천군에 접하고 있다.

 

수영장과 보트장 및 숙박시설이 있으며 곳곳에 넓은 잔디밭과 소나무 숲이 있어 경치가 좋고 시원하여 가족들이 함께하는 휴식처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봄·가을 소풍, 대학생 MT장소, 캠핑장소로도 많이 이용된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계곡 안 1.5km 지점에 주말농장이 있으며, 349번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가족농장, 식당, 청소년수련장, 야외조각공원 등을 갖춘 "해맞이 동산"이 있다.


9.장흥관광지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일원

 

양주시는 경기도의 중앙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의정부시, 구리시, 동두천시, 미금시, 남양주군을 포함했었으나, 4개 시와 남양주군이 독립, 분리됨에 따라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동쪽은 포천시, 서쪽은 파주시와 고양시, 남쪽은 서울시와 의정부시, 북쪽 은 연천군, 북동쪽은 동두천시와 연천군에 접하고 있다. 장흥관광지는 개명산을 정점으로 좌측에 황새봉 및 앵봉과 우측에 있는 일영봉 사이로 석연천이 흐르고 있는 계곡중심의 구릉지이다.

 

옛부터 울창한 산림과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으로 사람들의 발갈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가을철 단풍은 유난히도 붉고 아름다워 멀리서 보면 마치 산이 불타는 것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주변에 종합문화단지인 장흥아트파크과 밤나무숲 공원, 향토특산품을 소개하는 특산물 전시장과 야생화 공원이 새로 문을 열었고 도자기 전시장인 예촌 및 도기념물 제2호인 권율장군묘 등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또한, 놀이 동산인 양주리조트, 자동차 전용극장인 영화사랑이 있어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10.송암스타스밸리  
        

위 치 :경기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410-5

 

산 정상에 위치한 송암천문대는 세계 최대규모의 테마파크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송암천문대는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천체관측소이다.

 

아련하고 멀기만 했던 우주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술의 중심지고 국내 최초 자체기술력으로 제작된 60cm 대형 Ritchey-Chretien 망원경과 Takahashi, Meade사의 최고급(High-end) 망원경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고, 기술이 밝혀내는 무한한 우주의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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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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