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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성계 이방원
비공개 조회수 56,415 작성일2014.09.13

태조(이성계)랑 태종(이방원)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이기 안 좋았던 이유가 뭔가요? 최대한 구체적으로 빨리 알려주세요!!!!


내공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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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a****
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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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아버지이고, 이방원은 이성계의 아들입니다

이성계가 이방원을 싫어한 이유는 동생을 죽였기때문이죠

 

이방원은 이성계가 왕이 될수있게 해준 공을 앉고있는 인물중의 한명입니다

 

그러면 세자의 자리는 이방원에게 와야할텐데 이성계는 이방원의 성격이 너무 과격하여 임금감이 못된다고 생각하여 막내왕자인 방석을 세자로 삼았습니다

그걸 못 마땅하게 여긴 이방원은 어머니의 배가 다른 방번과 방석을 살해하였습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왕자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그 시기에 방번과 방석의 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도 세상을 떴으니

이성계는 충격이 컸던거죠

그래서 이성계는 멀리 함흥으로 떠나버립니다.

 

이방원은 나중에 3대 태종임금이 되는데 (이방원이 바로 우리나라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인 세종대왕의 부친입니다)

태종은 아버님을 모시기 위해 여러 차례 차사(중요한 임무를 맡겨 파견하는 신하)를 보내 태조를 청하지만 그때마다 태조는 활로 그들을 쏘아 죽여 자신의 노여움을 표현합니다. 그 다음부터 심부름을 시켜 보냈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경우를 함흥차사라 부릅니다. 그러나 평소부터 친분이 있었던 박순의 간청과 억울한 죽음 그리고 오랜 벗인 무학대사의 권고로 마침내 태조는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어 태종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다가 생을 마칩니다.

 

201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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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tr****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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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왕일때 이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정도전과 방간 방석(왕세자,새부인의 아들)

을 모두 살해 합니다. 이때문에 태조와 이방원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정종이 즉위한후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납니다.(이건 이방원이 일으키지 않았습니다.)여기서 이방원은 또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원의 카리스마(?)로 왕위를 얻어 냅니다.

하지만 형제를 죽인아들의  아버지인 이성계는 이를 인정할수 없죠.

이성계가 궁에 왔다가 옥새를 들고 함흥으로 갑니다.

여기서 이방원은 차사를 보내는데 이성계가 모두다 죽이다보니까 소식이 없습니다. 이걸 함흥 차사라고합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여러가지 정책을 펼쳐서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얻어 냅니다./

이렇게 되서 결국엔 태조가 죽을 때 까지는 사이가 나쁘진 않게 되었다내요

 

2014.09.13.

  • 출처

    약간의 책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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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신

다섯째 아들인 방원이 왕권을 좌지우지했고

더우기 형제들까지 죽이는 끔찍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죠.

 

제1차 왕자의 난

 

태조 이성계는 정비인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 여섯명의 아들 방우, 방과 , 방의 , 방간

방원, 방연을 두엇습니다. 그리고 계비 신덕왕후 강씨 사이에 두 아들 방번과 방석을

두어 모두 여덟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하여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첫째부인 한씨 소생 왕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시 총애하던 계비강씨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방원을 비롯

한 한씨 소생 왕자들은 이를 못마땅해 했는데,  특히 조선 건국의 제 1 공로자로서 고

려조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정몽주를 연석에 불러,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하여가)

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며, 조선건국의 반대 세력을 제거할 때 큰 역할을 한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방원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방원은 친복 형제들과 함께 1398년에 사병을 동원하여, 당시 세자 방석을 지지

하던 개국공신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을 제거하고 이어 세자 방석과 방번을 죽이는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제 1 차 왕자의 난 입니다

 

 

제 2 차 왕자의 난

 

1차 왕자의 난을 성공하자 방원의 휘하 이저, 이거이, 하륜, 이숙번 등이 그를 세자로

옹립하려 했으나 방원은 정치적 입장과 그의 형들이 있었기에 방원의 뜻으로 둘째형

방과를 세자로 옹립했습니다,  이가 바로  조선 제 2 대왕 정종입니다.

 

그런데 후에 정종에게 소생이 없자,  세자의 자리를 놓고 내째 방간과 다섯째 방원은

미묘한 갈등을 하던 중, 공신록에 불만을 품은 박 포가 방원을 떠나 방간에게 붙어서

세자 자리를 충동질하자, 1400년 방간은 방원과 무력 충돌을 했는대 그 때 충복들과

사병들을 많이 가졌던 방원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제2차 왕자의 난 입니다. 그 후에 방원은 스스로 세자에 오르고 같은

해 11월에는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으니, 이가 곧 조선의 제 3 대 태종입니다.

201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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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아마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이성계의 아들, 즉 이방원의 형이나 아우, 삼촌 등을 모조리 잡아죽이고,

왕위를 탐할 가능성이있는 대신, 신하들을 모두 잡아죽였기때문에죠. 이를 "왕자의 난"이라고 합니다.

201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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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정도전과 이방원이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정도전은 경복궁의 각각 궁들의 이름과 위치를 정했는데

정도전이 이방원의 사병(이방원이 가지고 있는 병사)를 뺐으라고 이성계한테 말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신경전을 벌이다가 이방원은 사병을 데리고 정도전을 죽입니다.

이성계 입장에서는 조선을 세운 1등공신을 죽인거죠.

또 이성계는 왕위를 이방원이 아닌 일곱번째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습니다.

이방원은 일곱번째 아들도 죽였습니다.

201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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