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세요
제가 이번에 인사동엘 가려는데
당췌 어디서 내려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몰라서요
모 인사동 듣기로만했지 한번도 가본적이없어서요
맛집이나
유명한곳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좀 이른시간 점심때 갈꺼거든요 괜찮은곳도 소개도좀 해주시고
아 지하철로 갈꺼에요
마지막으로 한강에있는 선유도에도 갈려는대 어디서 내려서 어디로 가야하는지좀 알려주세요 !!!!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서울 종로 3가 탑골공원 좌측에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리셔서 다녀오셔요. 입구 작은 야외 소공연장에선 상시 공연도 펼쳐진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청계광장(청계천)도 다녀오시고요.
이른 점심때 인사동을 보신후 허기가 지신다면 종로2가 뒷골목인 식당들을 찾아보세요.
곳있으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진짜 서울의 명소입니다. 지금도 철거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래는 네이버 참조> 퍼온 내용입니다.
피밋골의 맛집을 찾아서
술 마실 자리가 부쩍 많아진 요즘, 회사와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피맛골을 찾는 횟수도 잦아졌다. 오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 녀석들과 함께 교보빌딩 뒤편으로 향했다. 고작 두 사람이 지나쳐도 쉽게 어깨를 부딪치게 되는 비좁은 골목. 오랜만에 밟은 피맛골 길에는 예전엔 없던 낯선 간판이 몇 보인다. 에스프레소 전문점, 어묵과 정종을 파는 프랜차이즈 주점, 화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실로 ‘댄디한’ 고깃집. 깔끔하고 정갈하긴 해도 왠지 피맛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
빈대떡과 굴전이 맛있어 평소 부슬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3차쯤으로 오게 되는 ‘열차집’이 이번엔 1차 장소로 낙점됐다. 이른 시간인데도 자리가 없다. 주인은 2층에 자리가 있다며 올라가란다. 말로만 듣던 2층 ‘연회석’은 꽤 넓었다. 탁자 간격도 여유 있고 심지어 바닥도 깨끗하다. 하지만 ‘이건 아닌데’ 싶었다. 피맛골의 미덕은 ‘꾀죄죄함’이 아니던가. 내친 김에 피맛골의 미덕을 논하는 것으로 술자리는 시작됐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친구 A 왈, “실내는 빈대떡 부치는 연기로 뿌옇고 술꾼들이 내는 소음으로 가득해야 해.” 한때 소줏집을 열었다 망한 경력이 있는 B가 답한다. “탁자 공간은 안주 두세 가지를 함께 올려놓기에 살짝 좁아야 하지.” 나도 한술 거들었다. “엉덩이 겨우 걸칠 만한 긴 나무의자가 빠지면 안 돼. 그것도 다닥다닥 붙어 있어 뒷자리 손님과 등을 맞대야 제 맛 아닐까.” 일찍부터 술기운이 오른 C 녀석은 ‘남도식당’의 연탄돼지불고기와 부드러운 현미밥은 왜 빼놓느냐며 성질을 부린다. 사실 인사동 언저리(서피맛골)와 종로 3가 피카디리극장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피맛골(동피맛골)이 식객과 주객에게 외면받는 건 이런 정겨운 분위기가 사라졌기 때문일 게다. 두 곳 다 인스턴트 음식 같은 싸구려 안주를 내건 주점과 게임방, 성인 PC방, 싸구려 여관으로 점철되어 있다. 동·서 피맛골은 인간의 욕정이 만들어낸 어둠의 흔적에 지배된 지 벌써 오래다. |
많은 사람이 정과 추억이 아련한 공간에서 술잔을 주고받고 소박한 밥상을 즐기려고 교보문고 뒤편 피맛골로 모인다. ‘순례’의 근원은 아무래도 맛보다 분위기다. 사실 피맛골에서 내는 음식 중 절대미각 차원에서 볼 때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을 받을 집이 과연 몇이나 될까. ‘청진식당’의 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을 먹으면서 이 집은 화학조미료를 썼네 안 썼네, 한우 대신 수입 냉동육을 써서 고기가 질기네 어쩌네 이런 얘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열차집에서 나온 뒤 “기름기로 똘똘 뭉친 안주가 당긴다”는 한 녀석의 억지에 못 이겨 ‘대성양곱창’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또 다른 녀석이 한숨과 함께 내뱉는다. “참 잘도 올라간다. 이젠 종로마저 대형 주상복합 건물에 무릎을 꿇는구나.”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 각종 대형 건물이 들어서며 피맛골도 조각조각 잘라져 나갔다. 원래 피맛골은 이른바 ‘아랫것’들이 양반, 관리 등 ‘높으신 분’을 피해 다니던 뒷길이었다. 피맛골이라는 명칭도 ‘말을 피하다(避馬)’에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꼴불견을 두고 흉을 보던 서민의 골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높으신’ 빌딩이 아랫사람의 터전까지 치고 들어오는 형국이다. 열차집에서 목에 털어넣은 소주 일곱 잔 탓일까. ‘피맛골의 훼손(개발)은 서민문화의 말살’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
대성양곱창은 도톰한 곱창의 두께와 속을 꽉 채운 곱으로 절대 실망시키는 법이 없어 자주 찾는 집. 다른 곱창집과 달리 마지막에 양념 소스를 살짝 뿌려줘 적당히 매콤하고 간간해 끝없이 소주를 부른다. 이곳에서 친구 녀석들과 나눈 화두는 ‘도대체 피맛골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냐’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피맛골은 선입견 가득한 골목이 되어 버렸다. 40~50대 이상에겐 국부(國富)를 늘리기 위해 열심히 일한 뒤 뒤풀이한 곳으로 남아 있고, 386세대에게는 젊은 시절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구국의 집합소였다. 언론에선 이 길이 마치 문인과 화가, 한량만의 아지트였던 것처럼 ‘판타지’를 씌운다. 피맛골을 드나드는 이들은 이처럼 편향된 해석을 내키지 않아 한다. 피맛골은 그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우리 자신에 비해 크게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평범한 군상이 모여 편하게 한 끼 먹고 술 한 잔 건네는 그런 곳이다. 서민의 일상이 날것 그대로 꿈틀대는 밥벌이의 고달픔, 세상의 허장성세를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댈 수 있는 소박한 현장일 뿐이다. 여기에 임대료 비싸기로 소문난 종로 바닥에서 1만5,000원에 푸짐한 안주와 소주 두 병을 비울 수 있는 행운의 터전이라는 사실은 덤 아닐까. |
[2] 피맛골 내부
[3] 대림식당
청국장 + 삼치구이를 참 많이도 먹었다는..^^
[4] 이강순 실비집 (교보빌딩 뒷골목)
이강순 실비집은 원래 청진동 자리에서 쫓겨(? 아님 비싸게 팔고) 지금의 자리로 온 겁니다.
진짜 실비집은 찌그러진 놋그릇과 각목과 널빤지로 대강 만든 식탁, 의자를 새것으로 바꿀 때,
바로 그 때, 이미 없어진거나 마찬가지..
[5] 미진 (교보빌딩 뒷골목)
메밀국수는 평양냉면만큼이나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지요.
모든 메밀국수 평가의 기준이 바로 미진의 메밀국수랍니다.
1990년대 초에 미진은 경영난으로 "미진 호프"가 되었지요. 메밀국수와 맥주라..
도대체 말이 안되는 일이었지만 저녁에는 주로 맥주를 팔고 점심때만 메밀국수를 팔았었습니다.
종로쪽에는 이런 예가 몇군데 더 있었지요. 예를 들면 남원집 뒤쪽에 우렁된장국 잘하는 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호프집으로 변해있더군요. 물론 점심에는 우렁된장국 팔았었지만..^^
피맛골 유명맛집 5선…서민의 가격 임금의 밥상 |
[송기원의 뒷골목 맛세상] 피맛골 | ||
피맛골이라는 지명을 스쳐듣고 우연히 그곳을 찾아든 이들은 대부분이 우선,‘에게,이게 뭐야.’ 하고 눈살부터 찌푸릴 터이다.당연한 반응이다.서울의 어디를 가나 흔하게 대할 수 있는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풍경이 애써 나들이한 발걸음을 선뜻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더 옮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에 남아 있는 피맛골은 고작 두 사람이 지나쳐도 쉽게 어깨를 부딪치게 마련인 비좁은 골목길에다가 길이도 20여m를 넘지 않는다.그렇다고 무슨 뛰어난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찬 것도 아니다.고작해야 열차집이라는 두어 평 남짓한 빈대떡집과 대림식당이라는 생선구이집,그리고 반대편 초입에 서린낙지라는 간판의 낙지집이 한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의식주 해결할 물산의 집합소 이 교보문고 뒤편의 피맛골 말고도 종로 2가에서 인사동으로 접어드는 어름에 또 다른 피맛골이 남아 있다.서피맛골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그럴듯한 장명등 간판까지 내걸고 떠들썩한 주점가로 변하여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지만,정작 인사동 일대의 관광지구 작업에 편입되어 피맛골 자체를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변질시킨 듯한 싸구려 지분 냄새를 숨길 수가 없다. 피맛골이란 이름의 이 특이한 뒷골목은 원래 종로 1가 교보문고 뒤편에서 시작하여 종로 2가를 거쳐 3가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있었지만,큰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도중에 여기저기 골목이 끊기는 바람에 결국 두 곳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나로서는 이 두 곳 중에서도 피맛골 하면 역시 교보문고 뒤편의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골목이 그 이름에 걸맞은 것 같아서 못내 그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조선시대에는 지금 종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 부근을 운종가라고 하였는데,이 운종가는 소위 ‘상것’들이 사는 곳이었다.운종가의 이 ‘상것’들은 사농공상이라는 봉건 가치의 가장 아랫자리를 차지한 상인들로,종이나 백정 혹은 갖바치 같은 다른 상것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천한 신분이었다. 당시의 가장 윗자리 신분에 있던 사대부의 입장에서 보자면,이 운종가의 상것들은 여느 상것들과도 달리 참으로 처치곤란한 일종의 필요악이었다. 애오라지 학문과 수신에만 힘써 마침내 입신출세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필생을 바쳐야 하는 사대부로서 비록 굶어 죽을망정 어찌 당장에 급하다 하여 먹고 입고 자는 따위 천한 값어치에 눈길을 줄 수가 있으랴. 바로 그런 윗자리 신분의 필요에 따라 그들 대신에 먹고 자고 입는 데 필요한 모든 물산들을 주무르는 이들이 모여 이룬 거리가 다름 아닌 운종가였다.종각 네거리 일대에 이른바 육의전이 늘어섰으니,포목 무명,명주,종이,모시,생선 등이 운종가의 주된 물품이었으며,나아가 구리개나 동대문의 배우개 저자거리에는 옥패물,유기며 사기그릇,호랑이 가죽이며 수달가죽,엽초,과일 등 조선 팔도의 모든 물산들이 빠짐없이 다 모여들었다. ●윗자리 행차 피한데서 유래 운종가가 번화하면 할수록 높은 가마 위에 앉아 물렀거라,비키거라,호령과 함께 이곳을 지나치는 윗자리들은 저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외로 돌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쯧쯧,선현께서 이르시되 상업이 흥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느니….’ 운종가의 상것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윗자리들이 또한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비록 신분상 아랫자리에 위치한 천한 상것이라지만,누구보다 영리하고 사리에 밝아 윗자리들의 허허실실이며 허장성세를 뚜르르 꿰뚫는 데다가 이재와 처세술 또한 뛰어나 정도 이상의 부를 이루어 먹고 입고 자는 일에 신분에 걸맞지 않은 호화를 누리는 그들로서는 윗자리의 때 아닌 눈살이며 외고개짓이 마음 편할 수는 없었다. ‘쳇,그놈의 잘난 벼슬 좀 잡았다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란….’ 이런 아랫자리와 윗자리 사이의 눈살이며 외고갯짓이 한데 어울려 운종가 뒷골목에 언제부터인가 희한한 명칭의 골목길이 생겼으니,바로 피맛골이었다. 운종가에 한번 윗자리의 행차가 떴다 하면,아랫자리들은 재빨리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윗자리의 행차를 피하다 보니 뒷골목 이름 자체가 피맛골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듯 윗자리를 피해 숨어든 아랫자리들을 노려 다시 싸리나 간짓대에다가 술을 빚는 용수를 내건 선술집이 생기고,그 옆에는 다시 1m 남짓한 백지 괘등을 내건 장국밥,설렁탕,곰탕집들이 생겨나니,피맛골은 윗자리들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아랫자리들만의 공간이 된 것이다.아랫자리들이 만든 이 소중한 놀이공간은 피맛골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봉건시대 500여년을 면면히 맥을 이어왔다. 만일 그대가 아직도 이 시대의 아랫자리라고 여기거나 혹은 사는 일 자체를 힘들어한다면 한번쯤은 피맛골로 발걸음을 옮길 것을 권하고 싶다.함께 올 동료가 없다면 스스럼없이 혼자 와도 좋다.그리하여 이제 막 땅거미가 스멀거리기 시작하는 피맛골에 접어들어 열차집(02-734-2849)의 허름한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서라.벌써 빈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 자리라도 가서 낯선 사람에게 합석할 것을 부탁하라.백이면 백 기꺼이 응해줄 터이다. ●빈대떡에 소주 몇잔… 세상 시름 훌훌 마침내 자리를 잡으면 3장에 7000원인 빈대떡 한 접시에다 소주 한 병을 시켜라. 빈대떡이 아니라면 굴전이나 파전을 시켜도 좋다.그리하여 술과 안주가 탁자에 놓이면 소주 한 잔을 따라서 목 안에 깊이 털어넣어라. 그리고 문득 주변을 돌아보면 그대는 이미 혼자가 아니다.얼핏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그대에 비해 크게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얼굴,한 잔의 소주 혹은 한 사발의 막걸리에 이미 불콰하게 술기운이 오른 얼굴,바로 그대 자신의 얼굴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속에서 그대를 이 시대의 아랫자리에 위치하게 한 윗자리들의 허허실실과 허장성세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떠들고 있을 터이다. 그대가 술과 함께 밥도 먹을 작정이라면 열차집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대림식당(02-730-1665)으로 가도 좋다.삼치와 굴비,고등어 따위 생선구이 백반들이 저마다 5000원에다가 된장찌개 또한 맛이 뛰어나다.이 대림식당을 끼고 좀더 골목으로 접어들면 몇 걸음 안 가서 부산복집과 처마를 나란히 한 청진식당(02-732-8038)을 만나게 된다.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이 4000원에 비하면 넘칠 정도로 풍부한 양에다가 반찬은 물론 공기밥 한 그릇이라도 더 주기 위해 꾹꾹 눌러담는 주인아주머니의 큰 손이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는 것 자체까지도 공연스레 즐거워지게 한다. 만일 그대가 혼자가 아니라 서너 명의 벗들과 함께라면 좀더 골목을 에돌아 5000원짜리 한정식으로 이름난 남도식당(02-734-0719)을 찾거나 교보문고 뒷길에 있는 안성또순이집(02-733-5830)에 가서 20년 동안 생태찌개 한 가지만을 지켜오는 특별하고 맛깔스러운 고집을 만나기 바란다.비록 한 냄비에 4만원이지만 네 명이 충분히 먹고도 남아 크게 비싸지는 않은 편이다. 일찍이 시인 신경림은 노래했다.‘못난 놈은 서로 얼굴만 봐도 반갑다.’피맛골 안의 여기저기에서 만나는 결코 낯설지 않은 얼굴,바로 자신을 닮은 얼굴들이 어찌 반갑지 않으랴.잘난 놈만 먹고 노는 게 아니라 못난 놈도 즐겁게 먹고 놀 수 있는 놀이공간이 피맛골이다. |
선유도는
- 양평동 한신아파트(1,000m) : 604, 605, 5516, 5712, 6514, 6623, 6631, 6632, 6633, 6712, 9707 - 합정역 : 271, 570, 602, 603, 604, 5712, 5714, 6712, 7011, 7012, 7013, 7612 - 선유도 공원 정문 : 5714 |
- 2호선 당산역 4번 출구(1,500m) : 당산나들목(당산지하차도) 이용 - 2,6호선 합정역 8번 출구(1,500m) |
- 양화대교를 지나 1,000m 지점 양화 한강공원 선유도방면 진입, 양화 한강공원 주차장 이용 |
- 성산대교 밑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후 좌회전(굴다리 통과), 양화 한강공원 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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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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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타면 알아서가요ㅋㅋ
200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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