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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라부아지에의 일생
fvf3**** 조회수 215 작성일2018.03.09
빨리 알려주세용 좀 간결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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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틴
수호신 eXpert
서비스업 수학 29위, 중2수학 22위, 중3수학 30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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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의 엄친아로 그의 아버지는 당시 유명한 변호사였고 집안은 부유하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처음에는 변호사를 지망하여 법과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산소를 발견하여 기존의 패러다임인 플로지스톤 이론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 참고로 다른 학자들도 비슷한 시기에, 혹은 더 빠른 시기에 발견한 학자들도 많지만 나중에 프랑스 대혁명과 아내인 마리의 홍보활동으로 명성이 더욱 커진 점도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혁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혁명 정부로부터도 존중을 받았으며 혁명 때문에 위험에 처한 동료들을 구해내는 공헌을 하기도 했지만, 공포정치 시대에 체포된다. 죄목은 당연히 불법 징세, 그 외에도 혐의 중에는 담배에 해로운 물질을 첨가하여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는 것도 있었다. 원래 해롭잖아 다만 이건 증거가 없어 무죄 판결. 아무튼 징세청부업자로 얻은 악명 때문에 라부아지에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당시는 개념박힌 당원들이 혁명 진행에 대해서 싸우던 상황이었고, 걸핏하면 시민군 사령관이 의회에 들어가서 총으로 협박하던 상황이었으니 더욱...

결국 이런 이유 때문에 1794년 5월 8일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와 같이 일했던 세금 징수원들과 같이 죽었는데 그는 죽을 때 조용하게 유언은 아내에게 편지로 남겼다면서 차분하게 죽었다고 한다. 죽기 전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아직도 못다한 실험이 있는데... 하는 아쉬움과 같이 자길 외면한 동료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잘 살라면서 아내를 걱정하며 사랑한다는 모든 마음을 정리하여 편지로 남겼다. 그의 죽음에 수학자 라그랑주는 "그들이 이 머리를 베어 버리기에는 일순간으로 족하지만, 같은 두뇌를 만들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라고 그의 죽음을 애통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크 샤를과 몽골피에 형제(열기구로 유명한 과학자)는 오히려 혁명정부에서 대접했다.

그러나 마리가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구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는 외면했고 결국 마리는 그와 관계를 끊었다. 하지만 라그랑주는 이탈리아 출신으로서 프랑스에서 활동한 수학자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으로 민족주의가 끓어오르는 시점에서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프랑스에서 쫓겨날 뻔하기도 했는데, 이 때 다름 아닌 라부아지에의 비호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은인인 라부아지에를 외면한 셈이지만 사실 라그랑주는 보호자인 셈이었던 라부아지에까지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남을 구명하거나 하는 활동을 할 처지가 못 되었기에 그를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만일 그가 영국이나 프로이센 국민이었다면 혁명 정부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강대국의 주민이니 구명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배은망덕이겠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도 딱히 막아줄 수도 없는 이탈리아 출신이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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