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영화 살인의 추억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아시는분.
odin**** 조회수 2,919 작성일2003.06.08
보면서 짜증을 유발하는 상황...어디까지 진실인지...사건의 중요성으로 봐서 영화의 재미로는 끝내기가

어려운듯 싶네요..너무 관객을 기만하는 내용이 있을듯...허구는 어디이며 어디가 진슬인지...

확실히 아시는분..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3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mett****
고수
해외프로축구, 드라마영화, 팝, R&B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저는 살인의 추억을 보지도 않았습니다만..원작이라고 알려진 연극 '날 보러 와요'
를 96년도에 봐서 얘기를 좀 해보자면..

사건 자체 외에는 허구일껍니다..
사회적인 압력과 공허하게 돌아가는 수사 속에
크나큰 심리적 압박을 느끼며 결국 생각의 틀에 범인을 맞추게끔되는
겨를없는 모습으로 치닫는 과정...
그런 모습들 자체가 그당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연극 끝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는데여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가 여러가지 장치와 상황들을 사건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다분히 첨가해야 하는 상황이 될거라고 생각이 되고..
따라서, 사건 자체 외에는 진실이 없다고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여..

영화를 보면, 허구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옛날에 jfk를 보고 진짜 말도 안되는 사건이다..마법의 총탄은 존재하고
과연 누가 그를 죽였는가..거대한 음모..이야~~
이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감독이 허구가 많이 포함되었다는 얘기를 했다는 걸 나중에
듣고는 실망을 많이 했었져..

영화는..어떤 사건을 바탕으로 대개의 경우가 허구라고 보는 것이 맞고
내용 자체가 모두 사실이라면..다큐멘터리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그런 것 자체에 관객기만등의 느낌을 적용하시며 괜한 맘고생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여.

참고로..연극 '날 보러 와요'도 참 재밌습니다..
이번에 다시 하던데...한 배우가 여러 용의자의 다양한 면을 일인다역으로 표현한 점이
참 매력적이었져..

2003.06.08.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ysmm****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살인의 추억은 영화이니만큼 허구가 들어있는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읍니다
백광호(정신지체아 용의자)가 기차에 뛰어 들어 자살장면을 예로들면 실제로 살인 용의자로 몰렸던
사람이 기차에 뛰어 들어 자살했다고 합니다
물론 범임이 잡히지 않은거 님도 아시는 사실이고요
밑에 글은 "살인의 추억"의 배경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실제 사건 일지입니다
님이 읽어보시고 영화하고 비교해보세요
도움이 되었나모르겠군요.....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0건이나 되는데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이 모두 여성들이고 성폭행을 당한 뒤에 잔인하게 살해되어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고 건국이래 최대의 미스터리, 화성은 밤이 되면 유령의 거리…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은 조심하라는 유행어까지 남길 정도로 화제가 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검거되지 않고 어느덧 무심한 세월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대략을 살펴본다.

1차사건 : 1986년 9월19일 오후 2시 발견, 이순분(가명 71세. 태안읍 안녕리)이 마을 앞 목초 밭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하의가 벗겨져 있었으나 별다른 폭행 흔적은 없음. 일주일 전 쯤 살해된 것으로 추정.

2차사건 : 1986년 10월23일 오후 2시50분 발견, 박순애(가명 25세. 직장인. 송탄시 신장동)가 진안리 농수로에서 알몸의 시체로 발견됨.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살해되고 강간 흔적 있음. 등과 하체에 심한 상처. 양손이 뒤로 묶여 있음.

3차사건 : 1987년 4월23일 오후 2시 발견, 권숙경(가명 26세. 직장인. 태안읍 안녕리)이 공장 옆의 울타리 넝쿨 밑에서 시체로 발견됨. 양손이 묶인 채 하의가 벗겨져 있음. 시체가 부패되어 몇 달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현장에 도장이 떨어져 있고 피해자의 옷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함.

4차사건 : 1986년 12월21일 낮 12시30분 발견. 이정애(가명 23세. 정남면 관항리)가 약혼자를 만나고 귀가하다가 살해된 뒤에 관항천에서 시체로 발견됨. 옷이 입혀져 있고 하체에 심한 상처. 강간 흔적 있음. 시체는 일주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5차사건 : 1987년 1월11일 오전 10시30분. 홍미경(가명 18세. 고등학생. 태안읍 황계리)양이 병점읍 외곽을 흐르는 황구천 둑에서 피해자의 목도리로 목이 졸린 시체로 발견됨. 양손은 스타킹과 브래지어로 뒤에서 묶여 있고 입에 재갈이 물려 있음. 피해자 국부에서 B형 혈액형 검출. 1월10일 밤 8시30분쯤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6차사건 : 1987년 5월9일 오후 3시 발견. 박혜정(가명 29세. 주부. 병점읍 진안리)씨가 진안리 야산에서 하교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체로 발견됨. 시체는 브래지어, 내의 블라우스로 각각 세 차례 목이 졸리고. 목 어깨 등에 돌로 찍은 듯한 상처. 팬티, 청바지는 입은 채로 살해되어 있고 폭행 흔적 없음.

7차사건 : 1988년 9월8일 오전 9시 발견. 안영자(가명 54세. 주부. 팔탄면 가재리)씨가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입에 재갈. 양손 뒤로 묶여 있고 강간 흔적. 먹던 복숭아가 국부 안에서 발견됨.

8차사건 : 1988년 9월16일 오전 6시30분 발견. 박지영(가명 14세. 중학생. 태안읍 진안리)양이 집에서 잠자다가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폭행 흔적. 남자의 체모 발견. 감정 결과 B형 혈액형 발견. 체모에서 티타늄원소가 분석됨.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여섯 번째인 박혜정씨의 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여겨져 그다지 국민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관할 경찰서인 화성경찰서가 병점지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딸이 셋 있는 주부 박혜정씨 사건이 발생하면서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화성은 수원과 오산 사이에 있는 평범한 농촌으로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들어서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공단이 생기면서 갑자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 필연적으로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게다가 경기도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수원과 인접해 있어서 당시에 1년 평균 강간 사건이 40여건이나 발생하는 등 문제가 많은 지역이었다.

매스컴에서 두 번째 연쇄살인사건으로 꼽히고 있는 박순애 살인사건은 그녀의 사체가 농수로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그 동안의 단순 강간살인에서 범인의 범행이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희롱할 정도로 점점 대범하게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경찰은 박순애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행의 단서가 될만한 유류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설로 쓰기 위해 화성을 3개월 정도 걸려서 취재했다. 살인사건 현장을 직접 답사했고 수사본부에도 찾아가 보고 피해자 가족들도 만나보았다. 그 결과 살인사건 현장이 대부분 농로, 야산, 개울둑이어서 범인들의 유류품을 찾지 못한 것이 수사에 가장 어려운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쇄살인의 첫 번째 살인사건인 이순분 할머니 살인사건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화성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연쇄살인 사건 1호로 기록되게 되었다.

세 번째 살인사건은 시체가 발견된 것이 너무나 늦어서 시체의 신원을 밝히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므로 특별한 단서를 찾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녀의 시체가 완전히 부패했기 때문에 옷가지와 근처에서 발견된 도장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했을 정도였다.

네 번째 살인사건인 이정애양이 살해된 것은 관항천 옆의 논둑이었다. 그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약혼자와 데이트를 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11시경에 귀가하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농로에서 관항천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다고 한다. 범인은 그녀의 국부를 우산대로 난자한 뒤에 깻단, 짚더미 등으로 덮어 두어 시체가 여러 날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체가 일주일이나 지나서 발견되었고, 비가 와서 유류품이 모두 쓸려가는 바람에 경찰은 역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정애양은 그후에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다섯 번째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고등학교 3학년인 홍미경양이었다. 홍미경양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도대표 탁구선수를 할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상업학교로 진학을 한 뒤에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자 사건 당일 취직을 하러 수원에 나갔다. 부친은 학교나 졸업한 뒤에 취직을 하라고 했으나 효녀인 그녀는 하루빨리 취직을 하여 집안을 돕겠다고 이력서를 써가지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 8시30분 그녀는 귀가하다가 황구천 둑에서 살해되었다. 그녀는 귀가할 때 큰길로 돌아왔으면 살인마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으나 지름길로 돌아오기 위해 인적이 없는 개울가 둑길을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오다가 살해된 것이다. 부친의 진술에 의하면 다음날 경찰이 데리러 와서 현장에 가보니 딸이 죽어 있었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해 취재하는 필자를 가슴 아프게 했다. 사체는 짚단으로 덮여 있었다.
홍미경양의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으나 용의주도한 범인은 단서를 남기지 않아 지능범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여섯 번째 살인사건은 딸이 셋이 있는 가정주부에 대한 살인사건이었다. 주부 박혜정은 사건 당일 남편이 취직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자 그를 마중하러 집 앞에 있는 수인산업도로의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그날은 비가 억수 같이 내려서 귀가하던 마을 사람들이 그녀가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밤11시 이후 행방이 묘연해 졌다. 그녀는 11시 이후 범인에게 마을 앞 야산으로 끌려올려가 살해된 것이다. 그녀의 구두가 논둑에 버려져 있었고 사체가 유기된 야산은 집 앞에서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그녀는 귀가하는 초등학생들에 의해 나뭇가지에 덮여 있는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일곱 번째 살인사건은 54세가 되는 주부가 피해자다. 안영자씨는 아들이 하는 분식집에서 일을 하고 팔탄면 가재리에서 버스를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농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둑에서 범인을 만나 살해되었다. 안영자씨가 살해될 무렵은 9월이어서 개울둑 옆의 논에는 벼가 무성했다. 그리고 개울둑에는 커다란 포플러나무가 서 있어서 그날의 참극을 모두 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가 현장을 취재하러 갔을 때는 89년 겨울인데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수원에서 팔탄으로 가는 넓은 국도 옆에 있는 작은 둑에도 겨울비가 음산하게 내리고 있어서 마음이 착잡했다.

여덟 번째 살인사건은 중학생이 집안에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사건이다. 그 학생이 살해된 것도 9월인데 사건 당일 MBC에서 인현왕후를 방송하여 가족들이 모두 그 방송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언니는 안방에서 잠을 잤고 박양은 작은 방에서 잠을 잤다. 필자가 만난 박양의 언니는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범인은 그 언니를 성폭행하려고 침입했다가 언니가 없고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동생을 살해한 뒤에 성폭행을 했다고 한다. 범인의 유류품으로 체모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수거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범인의 체모를 분석한 결과 티타늄원소가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티타늄원소는 용접공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접봉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용접할 때 용접공들의 인체로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즉시 화성 일대의 용접공들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성의 전과자, 우범자를 저인망식으로 수사했으나 용접공들을 수사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마침내 농기계수리공인 청년이 리스트에 올랐다. 경찰은 용의자에게서 머리칼을 수거하여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범인의 체모에서 검출된 티타늄원소가 용의자의 머리카락에서도 발견되었다. 경찰은 용의자를 검거하고 자백을 받아냈다. 범인은 화성연쇄살인과는 관계가 없었다.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살인사건은 계모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으로 밝혀져 제외되었다.

아홉 번째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정미숙(가명. Y여고 2학년. 16세)이 수원시 오목천동 농수로에서 1989년 7월9일 알몸의 시체로 발견되어 전국을 놀라게 했다. 숨진 정양은 가슴은 예리한 흉기로 도려내져 있었고 옷이 벗겨져 거의 반듯하게 농수로에 눕혀지고 풀숲으로 덮여 있었다. 경찰은 하루가 지난 다음날 10일 인근에서 범인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정양의 유부와 책가방을 찾아냈다. 그러나 유력한 단서를 찾는데는 실패하여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다.

화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중에 열 번째 사건으로 밝혀진 것은 14세의 중학생으로 학교에서 귀가하다가 행방불명이 되어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살인마는 이 여학생을 성폭행 한 뒤에 살해하여 경찰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화성 주민들을 또 다시 공포에 떨게 했다. 이 사건에서도 범인은 검거되지 않아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시간이다.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어언 14년, 그 동안 연인원 10만명이 넘는 베테랑 형사들이 투입되고 살인마를 체포하는 경찰은 2계급 특진을 시키고 범인을 제보하는 시민들에게는 5천만원의 현상금까지 걸었으나 미제사건으로 남아 아쉬움이 많다.








원본글입니다 - 제2화 화성연쇄살인사건

mystery0, 2001-04-21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0건이나 되는데도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이 모두 여성들이고 성폭행을 당한 뒤에 잔인하게 살해되어 한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고 건국이래 최대의 미스터리, 화성은 밤이 되면 유령의 거리… 빨간 옷을 입은 여인은 조심하라는 유행어까지 남길 정도로 화제가 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검거되지 않고 어느덧 무심한 세월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대략을 살펴본다.

1차사건 : 1986년 9월19일 오후 2시 발견, 이순분(가명 71세. 태안읍 안녕리)이 마을 앞 목초 밭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하의가 벗겨져 있었으나 별다른 폭행 흔적은 없음. 일주일 전 쯤 살해된 것으로 추정.

2차사건 : 1986년 10월23일 오후 2시50분 발견, 박순애(가명 25세. 직장인. 송탄시 신장동)가 진안리 농수로에서 알몸의 시체로 발견됨.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살해되고 강간 흔적 있음. 등과 하체에 심한 상처. 양손이 뒤로 묶여 있음.

3차사건 : 1987년 4월23일 오후 2시 발견, 권숙경(가명 26세. 직장인. 태안읍 안녕리)이 공장 옆의 울타리 넝쿨 밑에서 시체로 발견됨. 양손이 묶인 채 하의가 벗겨져 있음. 시체가 부패되어 몇 달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현장에 도장이 떨어져 있고 피해자의 옷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함.

4차사건 : 1986년 12월21일 낮 12시30분 발견. 이정애(가명 23세. 정남면 관항리)가 약혼자를 만나고 귀가하다가 살해된 뒤에 관항천에서 시체로 발견됨. 옷이 입혀져 있고 하체에 심한 상처. 강간 흔적 있음. 시체는 일주일 전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5차사건 : 1987년 1월11일 오전 10시30분. 홍미경(가명 18세. 고등학생. 태안읍 황계리)양이 병점읍 외곽을 흐르는 황구천 둑에서 피해자의 목도리로 목이 졸린 시체로 발견됨. 양손은 스타킹과 브래지어로 뒤에서 묶여 있고 입에 재갈이 물려 있음. 피해자 국부에서 B형 혈액형 검출. 1월10일 밤 8시30분쯤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됨.

6차사건 : 1987년 5월9일 오후 3시 발견. 박혜정(가명 29세. 주부. 병점읍 진안리)씨가 진안리 야산에서 하교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시체로 발견됨. 시체는 브래지어, 내의 블라우스로 각각 세 차례 목이 졸리고. 목 어깨 등에 돌로 찍은 듯한 상처. 팬티, 청바지는 입은 채로 살해되어 있고 폭행 흔적 없음.

7차사건 : 1988년 9월8일 오전 9시 발견. 안영자(가명 54세. 주부. 팔탄면 가재리)씨가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입에 재갈. 양손 뒤로 묶여 있고 강간 흔적. 먹던 복숭아가 국부 안에서 발견됨.

8차사건 : 1988년 9월16일 오전 6시30분 발견. 박지영(가명 14세. 중학생. 태안읍 진안리)양이 집에서 잠자다가 목이 졸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됨. 폭행 흔적. 남자의 체모 발견. 감정 결과 B형 혈액형 발견. 체모에서 티타늄원소가 분석됨.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여섯 번째인 박혜정씨의 사체가 발견될 때까지 일반적인 개별 살인사건으로 여겨져 그다지 국민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관할 경찰서인 화성경찰서가 병점지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딸이 셋 있는 주부 박혜정씨 사건이 발생하면서 매스컴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화성은 수원과 오산 사이에 있는 평범한 농촌으로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들어서기 전에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그러나 공단이 생기면서 갑자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 필연적으로 성범죄가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게다가 경기도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수원과 인접해 있어서 당시에 1년 평균 강간 사건이 40여건이나 발생하는 등 문제가 많은 지역이었다.

매스컴에서 두 번째 연쇄살인사건으로 꼽히고 있는 박순애 살인사건은 그녀의 사체가 농수로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그 동안의 단순 강간살인에서 범인의 범행이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희롱할 정도로 점점 대범하게 발전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경찰은 박순애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행의 단서가 될만한 유류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필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설로 쓰기 위해 화성을 3개월 정도 걸려서 취재했다. 살인사건 현장을 직접 답사했고 수사본부에도 찾아가 보고 피해자 가족들도 만나보았다. 그 결과 살인사건 현장이 대부분 농로, 야산, 개울둑이어서 범인들의 유류품을 찾지 못한 것이 수사에 가장 어려운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쇄살인의 첫 번째 살인사건인 이순분 할머니 살인사건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화성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연쇄살인 사건 1호로 기록되게 되었다.

세 번째 살인사건은 시체가 발견된 것이 너무나 늦어서 시체의 신원을 밝히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므로 특별한 단서를 찾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녀의 시체가 완전히 부패했기 때문에 옷가지와 근처에서 발견된 도장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했을 정도였다.

네 번째 살인사건인 이정애양이 살해된 것은 관항천 옆의 논둑이었다. 그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약혼자와 데이트를 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 11시경에 귀가하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농로에서 관항천으로 끌려가 살해되었다고 한다. 범인은 그녀의 국부를 우산대로 난자한 뒤에 깻단, 짚더미 등으로 덮어 두어 시체가 여러 날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체가 일주일이나 지나서 발견되었고, 비가 와서 유류품이 모두 쓸려가는 바람에 경찰은 역시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정애양은 그후에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다섯 번째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고등학교 3학년인 홍미경양이었다. 홍미경양은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도대표 탁구선수를 할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상업학교로 진학을 한 뒤에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자 사건 당일 취직을 하러 수원에 나갔다. 부친은 학교나 졸업한 뒤에 취직을 하라고 했으나 효녀인 그녀는 하루빨리 취직을 하여 집안을 돕겠다고 이력서를 써가지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밤 8시30분 그녀는 귀가하다가 황구천 둑에서 살해되었다. 그녀는 귀가할 때 큰길로 돌아왔으면 살인마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으나 지름길로 돌아오기 위해 인적이 없는 개울가 둑길을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오다가 살해된 것이다. 부친의 진술에 의하면 다음날 경찰이 데리러 와서 현장에 가보니 딸이 죽어 있었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해 취재하는 필자를 가슴 아프게 했다. 사체는 짚단으로 덮여 있었다.
홍미경양의 살인사건은 사건 발생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으나 용의주도한 범인은 단서를 남기지 않아 지능범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여섯 번째 살인사건은 딸이 셋이 있는 가정주부에 대한 살인사건이었다. 주부 박혜정은 사건 당일 남편이 취직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자 그를 마중하러 집 앞에 있는 수인산업도로의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다. 그날은 비가 억수 같이 내려서 귀가하던 마을 사람들이 그녀가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밤11시 이후 행방이 묘연해 졌다. 그녀는 11시 이후 범인에게 마을 앞 야산으로 끌려올려가 살해된 것이다. 그녀의 구두가 논둑에 버려져 있었고 사체가 유기된 야산은 집 앞에서 훤히 바라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그녀는 귀가하는 초등학생들에 의해 나뭇가지에 덮여 있는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일곱 번째 살인사건은 54세가 되는 주부가 피해자다. 안영자씨는 아들이 하는 분식집에서 일을 하고 팔탄면 가재리에서 버스를 내려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농로를 가로지르는 작은 개울둑에서 범인을 만나 살해되었다. 안영자씨가 살해될 무렵은 9월이어서 개울둑 옆의 논에는 벼가 무성했다. 그리고 개울둑에는 커다란 포플러나무가 서 있어서 그날의 참극을 모두 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가 현장을 취재하러 갔을 때는 89년 겨울인데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수원에서 팔탄으로 가는 넓은 국도 옆에 있는 작은 둑에도 겨울비가 음산하게 내리고 있어서 마음이 착잡했다.

여덟 번째 살인사건은 중학생이 집안에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사건이다. 그 학생이 살해된 것도 9월인데 사건 당일 MBC에서 인현왕후를 방송하여 가족들이 모두 그 방송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언니는 안방에서 잠을 잤고 박양은 작은 방에서 잠을 잤다. 필자가 만난 박양의 언니는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범인은 그 언니를 성폭행하려고 침입했다가 언니가 없고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동생을 살해한 뒤에 성폭행을 했다고 한다. 범인의 유류품으로 체모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경찰이 수거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범인의 체모를 분석한 결과 티타늄원소가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티타늄원소는 용접공들이 많이 사용하는 용접봉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용접할 때 용접공들의 인체로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찰은 즉시 화성 일대의 용접공들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화성의 전과자, 우범자를 저인망식으로 수사했으나 용접공들을 수사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었다.

마침내 농기계수리공인 청년이 리스트에 올랐다. 경찰은 용의자에게서 머리칼을 수거하여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범인의 체모에서 검출된 티타늄원소가 용의자의 머리카락에서도 발견되었다. 경찰은 용의자를 검거하고 자백을 받아냈다. 범인은 화성연쇄살인과는 관계가 없었다.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살인사건은 계모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으로 밝혀져 제외되었다.

아홉 번째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정미숙(가명. Y여고 2학년. 16세)이 수원시 오목천동 농수로에서 1989년 7월9일 알몸의 시체로 발견되어 전국을 놀라게 했다. 숨진 정양은 가슴은 예리한 흉기로 도려내져 있었고 옷이 벗겨져 거의 반듯하게 농수로에 눕혀지고 풀숲으로 덮여 있었다. 경찰은 하루가 지난 다음날 10일 인근에서 범인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정양의 유부와 책가방을 찾아냈다. 그러나 유력한 단서를 찾는데는 실패하여 범인을 검거하지 못했다.

화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중에 열 번째 사건으로 밝혀진 것은 14세의 중학생으로 학교에서 귀가하다가 행방불명이 되어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살인마는 이 여학생을 성폭행 한 뒤에 살해하여 경찰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화성 주민들을 또 다시 공포에 떨게 했다. 이 사건에서도 범인은 검거되지 않아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는 시간이다.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어언 14년, 그 동안 연인원 10만명이 넘는 베테랑 형사들이 투입되고 살인마를 체포하는 경찰은 2계급 특진을 시키고 범인을 제보하는 시민들에게는 5천만원의 현상금까지 걸었으나 미제사건으로 남아 아쉬움이 많다.

2003.06.08.

  • 출처

    직접작성+미스테리 하우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3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탈퇴한 사용자 답변
실제 있었던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 화제를 뿌리면서
영화 속 논픽션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되고 있다.
실제 사건과 영화는 얼마나 닮아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때로는 현실이 허구보다 더 우습고 엽기적이고 기막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비오는 날 밤 빨간 옷을 입은 여인들이 범행 대상?

실제 사건에선 2차부터 5차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영화 속에서도 나중엔 빨간 옷과 무관하게 사건이 발생한다.
또 비오는 날이면 비상이 걸린 것도 사실.

#범행에 쓰인 도구는 피해자의 물건?

브래지어나 스타킹 등으로 몸을 결박하고, 거들이나 팬티로 피해자의 얼굴을 씌운 것
역시 실제 있었던 일. 또 영화 속에서 살해당한 여학생의 경우 가슴을
면도칼로 베인 자국 등도 실제 사건 자료를 토대로 했다.
볼펜 면도칼 숟가락포크 등의 사용도 사실.

#유전자 검사

영화 속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과 서태윤(김상경 분)은 유력한 용의자 박현규(박해일 분)가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히고 정액 샘플을 미국에 보낸다. 그런데 실제론 일본에 보냈다.
회신 내용은 ‘용의자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

#지방 형사, 서울 형사, 용의자의 자살

실제 살인 사건이 이어지며 직위 해제된 경찰들이 있었다. 또 시경 도경 등에서 파견된
형사들이 경쟁하듯 수사를 펼쳤다. 당시 사건에 동원된 경찰병력은 연 인원 180만 명이었고
3000명의 용의자가 조사를 받았다. 한편 영화처럼 실제 사건에서도 수사를 받은 뒤 풀려났다가
정신분열 증세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

#경찰, 점집을 찾다?

영화 속 박두만은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고 부적도 산다.
실제로도 당시 수사본부 간부들은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다녔다.
또 경찰서 정문이 북향이라 일이 꼬인다는 말을 믿고 동쪽으로 이동하기도 했고
어떤 점쟁이는 서해 바다에서 발가벗은 채 목욕하고 치성을 드리면 범인이 잡힐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당시 두 명의 수사본부 간부는 정월 그믐날 서해안 안중 갯벌에서
목욕하다가 육군 초병에게 들켜 줄행랑 쳤다고 한다.

#허수아비(제웅)

당시 수사본부는 짚으로 엮어 창호지를 씌운 제웅(사람 형상을 만들어 액막이로 쓰는
허수아비 모양의 주술적 도구)을 5곳의 사건 현장에 세웠다.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섞여 죽는다’는 범인을 저주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영화에선 서태윤이 처음 등장할 때 제웅이 나온다.

#무모증

영화 속 박두만 형사는 사건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 범인은 무모증일 것이란
엉뚱한 발언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도 당시 형사들은 무모증일 수도 있다는 가설 하에
인근 절과 목용탕을 탐문조사 했다.


복숭아 9 조각이 나온것도 사실이라 더군요...

2003.06.08.

  • 출처

    무비스트 발췌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