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온달은 어떤인물인가요?
비공개 조회수 1,680 작성일2019.08.05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2 개 답변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파인앳플 플랫폼
초인
인스타그램, 마케팅, 영업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안녕하세요,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으로 고구려의 장군입니다.

평강공주와 혼인하고서 전쟁에서 승리하며 대형 작위를 받았으며

아단성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합니다.

실제 인물이며, 바보온달이라는 인물설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8.05.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반야봉
수호신
2019 생활 분야 지식인 곤충류, 거미류 5위, 생태학 9위, 청소, 수리 13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 溫達 ]

원전서지

삼국사기 제45권 열전 제5(三國史記 卷第四十五 列傳 第五)

시대

고구려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때 사람이다. 용모는 구부정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빛이 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을 걸치고 시정(市井)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니 왕이 놀리며 말했다.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면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가야 되겠다.”

왕은 매번 이런 말을 하였다.

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容貌龍鐘可笑 中心則睦然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汝常啼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딸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딸을 상부(上部, 동부) 고씨에게 시집 보내고자 하니, 공주가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전날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께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왕노릇 하는 이는 실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명이 잘못되었으니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이 노하여 말했다.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정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너는 네 갈 데로 가거라.”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이에 공주는 보석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걸고 궁궐을 나와 혼자 길을 떠났다.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물었다. 그의 집에 이르러 눈먼 노모를 보고 가까이 다가가 인사하며 아들이 있는 곳을 여쭈었다.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보잘것이 없으니 귀인이 가까이 할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아보니 향내가 보통이 아니고, 그대의 손을 만져보니 매끄럽기가 솜과 같으니, 필시 천하의 귀인인 듯합니다. 누구의 꾐에 빠져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내 자식은 굶주림을 참다못해 산 속에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러 간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공주가 그 집을 나와 산 밑에 이르렀을 때,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가 그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온달이 불끈 화를 내며 말했다.

“이는 어린 여자가 하기에 마땅한 행동이 아니니, 필시 너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것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온달은 마침내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공주는 혼자 돌아와 사립문 밖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서 모자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온달이 우물쭈물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내 자식은 지극히 비루하여 귀인의 짝이 될 수 없고, 우리 집은 몹시 가난하여 진실로 귀인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공주가 대답하였다.

“옛 사람의 말에 ‘한 말의 곡식도 방아를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바느질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단지 마음만 맞으면 되지 어찌 꼭 부귀한 다음에라야 함께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윽고 공주가 금팔찌를 팔아 밭과 집, 노비와 소, 말과 기물 등을 사니 살림살이가 모두 갖춰졌다.

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侜 以至於此乎 惟我息 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 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 可共乎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처음 말을 살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했다.

“부디 시장 사람의 말을 사지 마시고, 나라에서 키우던 말 중에서 병들고 파리해져 쫓겨난 말을 골라 사십시오.”

온달이 그 말대로 하였다. 공주가 부지런히 기르고 먹이니, 말은 날로 살찌고 건장해졌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봄 3월 3일이면 낙랑(樂浪) 언덕에 모여 사냥해서,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령께 제사를 지냈다. 그 날이 되어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여러 신하와 5부의 병사들이 모두 따라갔다. 이때 온달도 자기가 기른 말을 타고 수행하였는데, 그의 말달리는 게 항상 앞서고, 잡은 짐승 또한 많아서 다른 사람이 따를 수가 없었다. 왕이 불러서 성명을 묻고는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初 買馬 公主語溫達曰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 祭天及山川神 至其日 王出獵 群臣及五部兵士皆從 於是 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 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王召來 問姓名 驚且異之

이때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군사를 내어 요동(遼東)에 쳐들어오자,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배산(拜山)의 들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이 선봉이 되어 날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고 떨쳐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공로를 논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감탄하며 “이야말로 내 사위다.”라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벼슬을 주어 대형(大兄)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왕의 총애가 더욱 두터워졌으며, 위엄과 권세가 날로 융성해졌다.

양강왕(陽岡王)[영양왕(嬰陽王)의 잘못]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었다.

“지금 신라가 우리의 한수 이북의 땅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삼으니, 그곳의 백성들이 애통하고 한스럽게 여겨 한시도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저를 어리석고 불초하다 여기지 마시고 병사를 주신다면 한번 쳐들어가 반드시 우리 땅을 도로 찾아오겠나이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온달이 길을 떠날 때 맹세하며 말했다.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되돌리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침내 떠나가 아단성(阿旦城)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서 죽고 말았다.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십시다.”

드디어 관을 들어 묻을 수 있었다. 대왕이 이를 듣고 비통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온달 [溫達]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2019.08.05.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