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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근데 왕비들은 외척세력으로 권력잡앗는대 여왕남편들은 왜 그런게없어요?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653 작성일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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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별신
한국사 46위, 역사학 52위, 동양사 5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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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왕비들이 권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 것처럼 여왕의 남편들도 권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왕들은 독신으로 지낸 경우(한국의 선덕여왕,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등)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여왕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왕비보다는 여왕의 남편에 대한 기록이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 여왕의 남편이 권력을 행사했닫는 기록도 있는데 <삼국사기> <진성(여)왕 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금이 평소에 각간 위홍(魏弘)과 정을 통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늘 궁중에 들어와서 일을 보게 했다.(중략)

위홍이 사망하자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는 시호를 추증하였다. 이후로 임금은 젊은 미남 두세 명을 몰래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주어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이 때문에 아첨하고 총애를 받는 자들이 방자하였고, 뇌물을 주는 일이 공공연하게 행해졌으며, 상과 벌이 공정하지 못하고 기강이 문란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성왕 [眞聖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또 여왕은 아니지만 태후(국왕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정부에게 권력을 준 사례도 있었는데 진시황의 어머니인 선태후가 노애(嫪毐)라는 남자를 총애해 그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었다는 기록이 <사기> <여불위 열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태후는 부형을 주관하는 관리에게 은밀히 넉넉하게 뇌물을 주고 거짓으로 형을 집행한 것처럼 한 다음 수염과 눈썹을 밀고 내시가 되게 하니, 마침내 태후를 모시게 되었다. 태후는 몰래 간통하며 노애를 끔찍하게 아꼈다. 임신이 되자 태후는 사람들이 알까봐 겁이 나서 속임수로 점을 쳐서 잠깐 궁을 피해야 한다면서 거처를 옹(雍)으로 옮겼다. 노애가 늘 따랐고, 아주 많은 상이 내려졌다. 모든 일이 노애에 의해 결정되었다. 노애의 집에는 노복이 수 천 명이었고, 벼슬을 얻으려고 노애의 식객이 된 자들도 천 여 명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85. 여불위열전 [卷八十五. 呂不韋列傳]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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