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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대해서 궁금 합니다
miru**** 조회수 9,006 작성일2004.02.02
현재 국내에서 제작중인 애니메이션이

무엇이 있으며(다 만들고 개봉 준비중인것 포함)

그것을 만든 곳의 제작사가 어디고

홈페이지가 어떤건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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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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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도덕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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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작사 http://www.hangil.co.kr/(한길프로덕션)
http://www.hahnshin.co.kr( 한신코퍼레이션)
2. 국내 애니메이션 동향
김혜숙 여사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우리는 고리타분하고 한가로워 보이는(흔히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은) 한국 만화영화의 지나간 역사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과거사를 모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산 만화영화들이 놓여 있는 현재 위치까지 망각하게 되고, 결국 그것은 국산 만화영화를 일본의 최신 만화영화와 비교하는 넌센스로 이어진다. 하지만 일본의 최신 만화영화라 할지라도 그러한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에 걸친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시각은 새로 만들어진 국산 만화영화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과연 이 작품이 역대 한국 만화영화사에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 작품이며, 그 수준은 과거의 국산 작품들과 비교해 향상된 것인지 아니면 퇴보한 것인지를 먼저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평가한 뒤에, 세계 수준과는 얼마간의 격차가 남아 있는가 하는 식으로만 접근하더라도 우리는 좀더 실질적인 목표치를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과거보다 나은 내일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믿는다.
이번 발표에선 주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설명해 나갈 것이다. 여기서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만화영화에는 분명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은 일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관점에서 바라본 단점이 본래의 단점에 분명히 덧붙여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단점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과 좀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한국 만화영화의 현 주소를 알려주기 위해 이 발표를 준비했다.
위와 같은 목적으로 풀어나갈 ꡐ한국 만화영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ꡑ은 시대별로 나누어 설명해 나갈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각 시대별로 나타나는 사회적 모습을 간단히 설명하고 그 당시에 한국 만화영화를 변화시키고 각성시키는 대표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현재의 모습의 기본이 되는 과거를 설명해 나갈 것이다.



1. 극장 만화 영화의 태동기 (1960~1980)
1)60년대
①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의 등장
▾1967년 1월 7일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은 상영 4일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한 대작이었다. 선 녹음 제작방식을 사용하는 등 당시 일본에 비해 결코 떨어지는 기술력이 아니었다. 시작 초기 극장용 만화영화에 한해서는 일본과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뒤에서 설명할 국내의 TV보급으로 일본만화시리즈를 TV로 보게 되면서 극장용 만화영화도 위축되기 시작한다.
▾67년에 개봉된 신동헌 감독의 후속 작 <호피와 차돌바위> 또한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돈만 챙긴 영화사들이 만화영화 제작에 대한 재투자를 하지 않아 흥행에 성공한 신동헌 감독은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단 외적으로 드러나는 한국 만화영화의 흥행은 만화영화란 만들기만 하면 돈방석에 않는다는 유행이 일시적으로 생기게 만들었다. 단, 국산 애니 창작 붐으로 이어지지 않고 외제 애니 수입을 부채질했다. 이와같은 한탕주의 흥행업자들의 장삿속에 환멸을 느낀 신동헌 감독은 극장판 만화영화제작을 그만두고 말았다. 결국 세계적 수준의 만화영화를 제작했던 한국 만화영화는 이처럼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말았다.

2)70년대
①TV의 보급
-TV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극장판 만화영화 시장은 갑작스럽게 위축당하게 된다. 1971년 용유수 감독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이후 국산 장편 만화영화 제작은 거의 중단되었으며 1975년도까지 이어진다.
▾70년대 초 어린이 프로에 대한 자체 제작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국내 방송국은 이를 대체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일본 만화영화들을 수입 방영하였다. 급기야 70년대 후반엔 대부분의 국내 만화영화 인력들은 돈벌이가 되는 하청작업 쪽으로 업종을 전환하여, 창작 만화영화 시장은 거의 황폐화되고 만다.
▾대단히 열악한 제작 여건 속에서 1976년 12월 13일,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가 등장하였다. 하지만 완성도는 67년의 <홍길동>에 비해 뛰어나지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을 뒤흔들고 있었던 <마징가Z>의 붐을 삭히며 등장한 만큼 <로보트 태권V>는 일제 만화영화의 신드롬을 상당부분 분쇄해 주었다. 움직임의 자연스러움을 위해 대권도 사범들의 동작을 기초로 작화하고, 소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음향효과에도 신경을 썼다. 특히 <로보트 태권V 2탄>의 음악은 국내 창작만화영화 사상 최초의 O.S.T음반 발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메리‘라는 캐릭터 삽입으로 ’훈이‘를 놓고 ’영희‘와 대립을 유도시키는 참신한 설정도 눈에 띈다. 또한 <로보트 태권V 대 황금날개의 대결>에선 김청기 감독의 두 캐릭터인 태권V와 황금날개가 동시에 출현했는데, 김청기 감독은 이렇게 두 캐릭터를 동시에 출현시키는 시도를 한 국내 유일의 감독이다. 하지만 외국 만화영화의 표절과 도용으로 진정한 질적 발전이 도모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로보트 태권V>의 분전은 국산 창작만화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타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세계 최대의 만화영화 하청기지(1980~1985)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 (78)>를 기폭제로 한국의 창작만화영화 시장은 양적으로 팽창되었으나 질적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아 점차 쇠퇴해 갔다. 이러한 우리나라 만화영화의 암흑기는 거의 동등한 기술로 시작한 일본 만화영화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국내에 반입되기 시작한 외국의 하청 물량들의 폭주로 대부분의 국내 업체들이 하청업으로 기수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외 다국적 기업들의 하청 만화영화 시스템은 질적인 발전 없이 ‘창의력 부재’하는 오명을 남겼을 뿐이다.
▾하청기지의 배경 ①70년대 거품경제로 인건비 폭주가 일어난 일본은 어느 정도 발달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을 하청기지로 건설할 복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일본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하청 만화영화 제작사들이 국내에서 난립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69년에 설립된 ‘국제 아트 프로덕션’은 미국과의 하청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일부 작업뿐만이 아닌 연출, 원화, 동화, 선화, 채화, 촬영, 편집에 걸쳐 거의 전 공정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제작사들이 속속 생겨나 한국의 하청 만화영화 산업은 구조화, 시스템화 되어간다. ②더구나 방송국은 하청 제작된 작품들을 다시 싼 가격으로 수입해 방송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굳이 국내 창작만화영화 제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일본문화의 국내 유입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 3국을 통한 수입을 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식 번역과 녹음을 하여 국내 만화영화로 위장시켰다. ③연간 매출액 1억 달러 규모의 하청 만화영화 시장을 다분히 외화벌이 품목으로 이용하기 위해 문화체육부가 아닌 상공부의 휘하에 만화영화 산업을 묶어 두었다. 하청이라는 확실한 돈줄을 포기하고 돈도 안되는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제작하는데 돈 쓸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하청 제작작품으로는 김대중감독이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작화한 <울트라맨 키즈>와 협력업체 형식으로 세영동화가 참여한 <로도스도전기 OVA>와 <나디아> 그리고 한국의 동양동화와 일본의 스펙트럼사가 합작형식으로 제작한 <배트맨:판타즘의 가면>, 메인 스텝에서도 여러명의 한국인이 활약한 이 있다.
▾이렇게 80년대에 이르러 TV시리즈의 제작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높아져 가는 애니메이션 팬들의 눈에는 한참 못미치는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는 당연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78년에 ‘스티브 한‘에 의해 설리된 ’한호흥업‘이 종속적 보세가공형태의 하청작업에 싫증을 느껴 세계시장을 내다보고 세계 최초의 입체 만화영화인 <스타 체이서>를 제작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입체 만화영화인 <스타 체이서>는 당시 정부 당국의 만화영화에 대한 애매 모호한 업종 분류의 입장과 전무했던 지원 정책 등으로 한국의 브랜드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미국에서의 초전 흥행실패로 인해 국내에서는 미처 개봉되지 못한 작품이다. (93년 SBS에서 일반영상으로 TV방영이 되긴 했었다.) 당시 미국 내 언론에서도 ‘대단히 잘 만든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하여 ’스티브 한‘은 외국으로 망명성 도피를 하고 만다. 하지만 <스타 체이서>는 역대 최고의 입체 영상물로 추대받고 있으며, 한국의 만화영화 창작능력에 대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계기를 만들었다.


3.자체 제작 TV 만화영화 시대 개막(1985~1990)
-TV판 만화영화의 제작은 대단히 비중있고 중요한 작업으로, 선진국의 만화영화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인력들도 TV만화영화의 제작을 통해 갈고 닦은 경험을 기반으로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근 30여년 동안이나 국내의 방송사들은 철저하게 자체 제작 TV 만화영화를 외면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은 사회 각계 각층에 걸쳐 엄청난 문화 충격을 가해오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은 당시 낙후되어있던 국내의 모든 문화 소비 패턴을 갑작스레 올림픽 수준에 맞추려 했을 때 나타나는 충격들이었다. 물론 만화영화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로소 자체 제작 시대가 개막되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방송국들이 해외 만화영화 수입 방영에만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본격적인 TV만화영화 제작이 시작된 것은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이 개봉된지 무려 20년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전개된 문화개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자체 제작 TV만화영화의 필요성이 제기 되고, 마침내 1987년 5월에 MBC의 <달려라 호돌이>와 KBS의 <떠돌이 까치>를 선보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국내 자체제작 TV만화영화 시장은 KBS가 김수정 원작의 <아기공룡 둘리>를 제작 방영하면서 가속화 되어간다.
▾KBS와 MBC사이의 국산 만화영화 제작 경쟁: 이에 자극을 받은 MBC는 <독고탁의 비둘기 합창>을 제작 방영한다. 하지만 바로 그 이튿날 KBS가 <까치의 날개>를 제작 방영하면서 본격적인 국산 만화영화 제작 경쟁이 벌어진다. 이러한 국내 TV만화영화 제작에 대한 선의의 대결구조는 TV만화영화 시장의 질적, 양적 발전에 커다란 가산점이 되었다. 1989년 1월 신년특집으로 새로운 형식의 르포르타주 만화영화 <도단이>를 선보였다. 사회 고발성이 짙게 깔려있는 이 작품은 만화영화의 주 시청자가 꼭 어린이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 1989년 봄철 프로그램 개편에서 KBS는 자체 제작 TV만화영화이 방영을 주 1회로 고정 편성했다.
▾80년대~90년까지의 대표작품으로는 ①만화영화 캐릭터뿐만 아니라 각종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는 인기를 보여주었던 까치의 <떠돌이 까치>가 있으며 ②옴니버스 타입의 만화영화로 원로가수 ‘최희준’이 주제가를 불렀으며, 캐릭터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인 <옛날옛적에>가 있다. ③또한 <머털도사>는 작화력과 연출력의 모자람을 스토리 구성으로 커버 할 수 있다는 좋은 교훈을 안겨준 작품이다. 국내에서 뿐 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으며 기획, 원작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수작이다. ④11억이라는 국내 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역대 최고의 제작비가 투여되었던 국내 최초의 자제 창작 SF 만화영화인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는 주인공을 외국인으로 설정하여 국제적 감각에도 적절하게 대응하는 등 작품 외적인 부분에 많은 시멸을 기울인 작품이다. 천문과학에 대한 감수를 현, 우주환경과학 연구소 소장인 조경철박사가 맡았다. 국내에서의 실패와는 대조적으로 1989년 10월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국제 TV프로그램 가을 견본시(MIPCON)에서 프랑스 국영 앙탱 2TV를 통해 최우수 만화영화로 소개되었다.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선전으로 인해 하눅은 종전의 만화영화 하청제작국가에서 이제는 당당한 창작 애니 수출국가로 거듭났다. ⑤이후 국내 최초의 TV입체영화인 <빛돌이 우주 2만리>가 제작 방영된다.


4.부활하는 한국 만화영화(1990~1992)
-67년 당시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홍길동>은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 히트를 쳤다. 또한 70년대를 주름잡았던 김청기 감독의 <로보트 태권V>시리즈는 일본의 <마징가Z>신드롬을 꺾을 만큼 국산 만화영화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이후 극장에선 국내 창작 만화영화를 거의 만나 볼 수 없었고, 한국 만화영화의 동면기 동안에 해외 대작 만화영화들이 속속 국내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음성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일본만화의 기습으로 한국의 만화시장이 초전박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방송사들의 자각으로 국내 TV만화영화 시장은 의욕적인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지만 극장에선 김청기 감독 시대 이후의 국산 만화영화를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국내 극장가에 만화영화 붐이 생기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1년 겨울, 월트디즈니사의 <인어공주>가 개봉되어 4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부터였다. 1993년 여름,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던<슈퍼차일드>가 갑자기 극장에서 개봉을 하고 1994년에는 <블루시걸>이 개봉되었다.
▾1980년 1월 16일에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삼국지>는 공식적인 국내 최초의 극장판 성인용 만화영화였다. 하지만 같은 성인용이라는 간판을 달고 나온 <블루시걸>은 음란물과 성인물을 구분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블루시걸>은 국내 최초의 극장판 음란 만화영화인 것이다. 흥행의 성공과는 대조적으로 모진 혹평을 받은 <블루시걸>은 원화, 동호가 아닌 연출과 디자인이 바로 한국의 만화영화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점임을 뼈아픈 현실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 동원 관객 22만 5천명으로 당당히 흥행에 성공한 <블루시걸>은 만화영화의 참담한 완성도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나름대로의 상품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먼저 홍보와 C.G를 앞세운 극장공략의 성공이다. 또한 제작사와 기업과의 유기적인 협조 하에만 이루어 질 수 있는 P.P는 이번 <블루시걸>이 그 표본 구실을 잘 해주었다. 홍보에서 성공하고 작품에서 실패한 <불루시걸>은 극장판 만화영화제작이 채산성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많은 기업들이 만화영화 산업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고무적인 성과이나, 졸작을 보고 실망한 관객들의 국산 만화영화에 대한 이미지 쇄신이 그리 쉽지 않았다.


5.한국만화영화의 제작 붐(1992~1995)
-1995년은 경쟁력 있는 국산 만화영화를 만들어 보려는 제작사들의 움직임이 매우 분주했고, 정부 당국도 만화영화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을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블루시걸>과 <슈퍼차일드>의 저급한 동화 퀄리티에 대한 사회적 질책은 이후 95년에 개봉한 세 작품에 일본의 기술도입을 유도하게 된다.
▾1995년 8월에 개봉된 <붉은매>는 만화영화 기술적인 측면에선 하자가 없는 작품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일본 하청 경험을 갖고있는 대원이 만들었기 때문에 일본적 연출로 만들어 졌다. 별도의 투자자 없이 단일 제작사의 작품으로 일부 캐릭터 설정부분을 제외한 전 과정을 외국의 도움 없이 자체 소화해낸 작품으로,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비디오 시장에서는 성과를 올렸다.
▾12월 14일 개봉한 <돌아온 영웅 홍길동>: 선진국과의 기술 제휴를 통해 그들의 기술적 제작 노하우를 전수 받기 위한 협력 방안은 불가피 한 것이지만, <돌아온 영웅 홍길동>의 방식은 합작이 아닌 위탁의 방식이며 엄격히 따진다면 국산 만화영화로 간주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제작사는 작품의 상업성에 앞서 이제는 문화적, 산업적 가치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12월 23일에 개봉한 <헝그리베스트5>는 <돌아온 영웅 홍길동>과 마찬가지로 작품제작의 2/3이상을 일본의 ROBOT사에서 제작했다. 더구나 시사회마저도 일본에서 가질 정도로 철저하게 일본기술로 만들어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선입견으로 무장된 파트너 선정에 대한 실수 때문이었다. <헝그리베스트 5>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TV시리즈 수준의 극장판 이었다. 우리는 전체 일본 만화영화의 상위 20%의 작품들만을 선별 감상하고 나서 마치 일본 만화영화의 전반적인 수준을 다 알고 있는 것 인양 선입견을 가진다는 것이다.
▾일본제작이 판치고 있는 가운데 꿋꿋이 순수 국내 제작을 고수했던 <아마게돈>은 1996년 1월 20일 서울극장을 메인 상영관으로 개봉했다. 여기서 한가지 전제해 두어야 할 것은 제작이 착수된 시기가 앞에서 말한 작품들 보다 빨랐다는 점이다. 앞서 개봉한 <블루시걸>은 <아마게돈>의 C.G삽입 및 인기 배우의 성우기용 방안 등의 컨셉을 모방, 급조하여 새치기 개봉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도둑맞고 경쟁작들이 모두 일본기술을 앞세워 관객들을 유린해 감에 따라 차, 포를 다 잃고 개봉해야만 했다. 더구나 국내 필름 현상 기술상의 문제로 미국에서 4채널 돌비서라운드로 녹음해온 사운드의 오른쪽 채널이 날라가는 돌발사태와 직배 영화들과의 힘 겨루기로 인한 극장 섭외 문제들이 맞물려 개봉시기마저 예정보다 한 달이나 늦어졌다.
<아마게돈>의 등장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우선 전문 캐릭터 관리자의 부재로 인해 누적된 한국 만화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상당부분 극복되었다. 이것은 애니메이터들 스스로가 원작 이현세의 그림체를 연구하고 자기화 시키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러한 노력에 동조하여 이현세 총감독 자신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원화 작감 부분에 가장 많은 할애를 했다. 하지만 전 13권에 이르는 원작만화의 장대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응축하지 못해 산만한 작품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게돈>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기획에서 제작, 홍보, 사업, 마케팅, 배급에 이르는 전 공정을 단일 집단이 독립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그동안 문제시되어 왔던 한국만화영화계의 근본적인 병명을 알아냈기 때문에 그들의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차기 국산 만화영화제작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제작과정에서 체득한 시행착오와 노하우는 제작증언서 ‘아마게돈 백서’의 출간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90년대의 극장만화영화 제작물결은 앞서 개봉된 작품들의 미진한 흥행 성적과 쏟아지는 악평 속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96년 여름에 개봉된 <아기공룡 둘리-어름별 대 모험>은 <돌아온 영웅 홍길동>에 육박하는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이로 인해 <돌아온 영웅 홍길동>의 흥행 성공으로 자칫 일본에 제작을 위탁하는 것이 안전 책이라는 풍조 속에 국내 순수 제작으로도 승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주었다.
▾이어서 97년 여름에 개봉된 세 편의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인 <전사 라이안>과 <난중일기>, <임꺽정>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전사 라이안>은 작품 퀄리티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기술 이전의 성과는 점차적으로 한국 만화영화를 발전시키는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다.


6.한국만화영화의 잠재성 부활(1995~쾌속진행중)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만화영화와 캐릭터산업의 시장성과 잠재성을 깨달은 정부가 나서서 만화와 만화영화에 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발(SICAF)나 춘천만화 페스티발 등 다양한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들이 줄을 이었고 1999년에는 서울 남산에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을 위한 서울 애니메이션센터가 문을 열었고 국내 기획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간혹 진지하고 단계적인 접근없이 시류에 내기나 편승하여 내용 없는 생색내기나 다소 과열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만화영화와 만화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시각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만큼 꾸준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이러한 극장용 만화영하에 덧붙여서 TV만화영화시장 또한 강세다. 1995년 12월 방영된 한, 중, 일 합작 만화영화 <공자전>의 좋은 반응으로 힘을 얻은 KBS는 대원동화와 함께 96년 <두치와 뿌꾸>를 완성하여 방송했으며 97년 가을에는 <녹색전차 해모수>를 방영했다.
▾1997년 겨울에는 두편의 TV시리즈가 오랜 제작을 마치고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바로 ‘투니버스’에서 제작한 <영혼기병 라젠카>와 위에서 말한 <녹색전차 해모수>가 그것이다. 비교적 두 작품은 90년대 식 만화영화에 근접한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었다. ①잘 다듬어진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어색함으로 아쉬움이 남는 <녹색전차 해모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무지개전차 이리스>라는 제목으로 일본 NHK에 방영되어 상당한 혹평을 받았다. ②후반부로 가면서 좋은 평을 얻었지만 <녹색전차 해모수>와 마찬가지로 스토리, 연출상에서 문제점을 나타내었다. 손색없는 강력한 음악은 오히려 만화영화를 가리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영혼기병 라젠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주인공은 막돼먹은 꼬마이며 악당들은 멋지고 카리스마가 있다. 또 그들은 날 때부터 선인이 아니며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 방식의 삶을 절박하게 갈구한다. 타겟을 청소년층으로 잡고 위와 같이 캐릭터에도 파격적인 성격을 부여한 SF만화영화인 <영혼기병 라젠카>는 5시 10분이란 유아용 방송시간에 방영됨으로써 그 본래 목적을 상실한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송국의 행동은 현재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또한 98년에 <누들누드(OVA)>와 <지구용사 벡터맨>이 제작되었다. <누들누드(OVA)>는 1998년 비디오 업계의 최대 이변으로 꼽히며 비디오용 만화영화시장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메인 타겟은 30~40대의 성인남녀이며 순수제작사 자체 자본에 의해 기획, 제작된 작품이다.
▾일본 만화영화에서 시작된 거대로봇의 경향은 최근까지도 전투로봇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만화영화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외 실정도 마찬가지여서 현재까지 전투로봇컨셉으로부터 탈피한 로봇 만화영화가 제작된 적은 없다. 이렇게 ‘거대로봇=전투로봇’이라는 일종의 등식이 마치 불변의 원칙처럼 자리잡은 사오항에서 99년에 KBS에서 방영된 <레스톨 특수구조대>는 과감히 ‘구조로봇’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싸우는 로봇이 아닌 ‘사람을 구조하는 로봇’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 만화영화업계에 도전장을 던진 <레스톨 특수구조대>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안전한 수퍼 로봇을 지양한다. <레스톨 특수구조대>는 한국의 KBS, 일본의 NHK BS2, 투니버스, 아리랑TV에서 방영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의 NHK에서 방영시 당시의 인기를 알려주듯 오프닝이 한국어 원어로 방영되었으며 ‘레스톨 한국어로 부르기’ 코너까지 있었다고 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카드캡터 사쿠라>와 동시 방영되어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1999년 10월 KBS에서 방영된 <마일로의 대모험>은 97년 ‘제 1회 동아-LG 국제만화 페스티발’에서 캐릭터 부문 대상 수상작인 신동민의 <프프의 대모험>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상업 만화영화 제작사의 실제 프로젝트로 채택된 모범적 사례에 속한다.
▾2000년에 방영된 <하얀 마음 백구>는 우리 정서에 맞는 스토리와 캐릭터로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최초의 한국형 가족 만화영화다. 우리민족의 정서가 담긴 토종 진돗개를 소재로한 만화영화로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화면에 담아낸 서정적 작품으로 한국 만화영화의 새로운 전형을 구축한 순수 창작 만화영화다. 등장 주인공인 백구를 세계적 캐릭터로 키워나가기 위해 출판, 음반, 게임, 완구 등의 캐릭터 사업을 추진한 복합문화 프로젝트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계속 발전하며 올라가는 국내 만화영화에도 수많은 고난과 위험이 뒤따라 왔었다. IMF이후 제작 중이던 <오돌또기>와 <망치>등이 제작을 중단한 상태이며 국내의 만화영화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제작 자체에 위험이 많았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탄생된 만화영화도 국내 방송사의 잘못된 편성으로 인하여 낮은 시청률과 무수한 가위질에 시달려 왔다. 최근에 제작되는 만화영화는 국내 만화영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타겟의 연령층이 청소년대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만화영화들이 잘못된 편성으로 방영되는 것은 국내의 만화영화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행위에 불과하다. 위와 같은 시청자들의 연령을 고려하지 않은 방송편성으로 조기 종영등의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게 된 만화영화에는 <영혼기병 라젠카와>, <가이스터즈>, 그리고 국내 최초의 SF 미스테리 액션물 <바스토프 레몬>등이 있다.
▾2001년 1월부터 MBC에서 방영된 <가이스터즈>는 국내 창작 만화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세련된 3D 애니메이션과 빠른 스토리 전개, 그리고 화려한 메카닉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국내 만화영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3년여에 걸쳐 40여 억 원을 들여 기획, 제작된 이 만화영화는 모두 26회에 걸쳐 방송될 예정이었으나, 방송사의 잘못된 프로그램 편성으로 평균 2~3%대의 저조한 시청률로 제작사인 프레임 엔터테인먼트측에서 추가 재원을 유치하지 못해 13부를 마지막으로 종영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우수한 청소년용 만화영화의 황당한 사건으로, 이후 청소년용 창작 만화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자리잡기가 더욱 힘들어 졌다. <가이스터즈>의 제작 중단 후 최근까지도 <가이스터즈>의 재방영을 요구하는 글과 함께 국내 만화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의 글이 지속될 만큼 국내 만화영화 팬들의 꾸준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의 YOMICO측에서는 <가이스터즈>의 내용이나 퀄리티가 일본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라고 평가하고 후반부 13편에 대한 출자를 제시하였다. 이후 프레임 엔터네인먼트의 동의로 <가이스터즈>는 일본방영에 성공하였다. 이번 성공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먼저 <가이스터즈>라는 한국만화영화의 원작과 기술력이 일본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며, 국내 창작 만화영화에 대한 부가산업에 일본이라는 커다란 시장이 추가되므로,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는 매출확대에 커다란 진전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국내와 일본시장을 동시에 공략함에 있어 공동 마케팅을 전개하여 머천다이징에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이후 세계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보다 나은 제반 사항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이번 <가이스터즈>의 일본 방영은 전국방송을 비롯, 총 6개의 방송국 그리고 ‘TV북해도’에서 방영이 시작되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가이스터즈>상품들이(DVD, VHS) 나와있다.
▾<가이스터즈>사건 이후 국내 만화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토론이 확산되면서 최근 청소년용 국산 만화영화의 TV방영시간 이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세게 일어나고 있다. MBC에서 방영된 <영혼기병 라젠카>는 오후 5시 15분, 역시 MBC에서 방영된 <가이스터즈>는 오후 5시 20분,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오후 5시 30분에 KBS에서 방영되었다. 어린이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설정을 가진 작품들은 결국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시청률이 추락, 대부분 불명예스럽게 하차해야했다. 만화영화가 국책 사업에 준하는 관심을 받는 이 시점에서 청소년용 작품은 구색 맞추기라는 현실이 바뀔 수 있을 것인지,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현재 국산 만화영화 <레스톨 특수구조대>의 팬 패이지 담당자들과 함께 서명운동 사이트인 ‘잃어버린 시간’(http://www.lost-time.ce.ro)에선 5시 시간대에서 우리 만화영화를 탈출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의 힘과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올해 4월부터 방영중인 청소년 타겟 만화영화 <바다의 전설 장보고>는 이번 서명운동의 결과로 방영시간이 오후 5시 30분에서 6시로 바뀌었지만, 이시간은 중고생들이 시철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되지 못하는 시간이다.
▾처음부터 이러한 한국시장을 목표로 삼지 않고 미국시장을 목표로 제작 방영했던 <큐빅스>가 올해 국내에서 방영되었다. 미국시장에서 먼저 화제를 모았던 국산 3D만화영화 <큐빅스>는 지난해 국내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워너브라더스의 어린이용 공중파 네트워크 방송인 ‘키즈 워너브라더스’를 통해 방영됐던 작품이다.
▼<덤불속의 재>로 각종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성강감독의 올해 극장 개봉작인 <마리 이야기>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고 있으나 보통 컴퓨터 그래픽이 가져오는 차갑고 거친 금속성의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분위기을 자아낸다. 캐릭터의 제작 과정도 매우 독특한데, 영화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반인 12명을 선정하여 1년 반 동안 그들의 일상 생활을 영상으로 담아내서 캐릭터 작업화 시켰다. 배경 또한 실사 촬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3D와 2D를 합성한 만화영화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이질감들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내었다. <마리 이야기>는 기술적인 진보 이외에도 차별화 된 색채감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만화영화를 비롯한 액션위주의 만화영화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극적인 원색들 대신 색상표를 꼼꼼하게 조합해낸 파스텔 색조들로 영상을 채색하였다.
이번 12일에 막을 내린 서울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2002에서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는 장편 부문 그랑프리를 차지했으며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페스티발 경쟁 부문에 올랐다.
▼젊은이 꿈 희망 사랑을 그린 세계 최초의 디지털 만화영화 <원더풀 데이즈>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 장면을 2D, 3D, 미니어처(모형)의 3단계 합성 제작 방식을 택했다. 배경을 실사 영화처럼 사실감있게 보이기 위해 미니어처로 처리했고 인물 캐릭터는 2D로 ,움직임이 큰 물체는 입체감과 생동감을 주기 위해 3D로 제작하였다. 이같은 합성과정을 거쳐 만든 데모비젼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질감과 사실감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선녹음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스토리에서도 다른 외국들의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결국 <원더풀 데이즈>는 대만에 30만 달러에 판권을 계약했으며 일본과 25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이는 일본에 200만 달러에 팔린 <공동 경비구역 JSA>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올해 11월엔 국내 최초로 전용관에서 상영되는 국내 창작 만화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고21‘이 제작중인 <오세암>은 이와 같은 배급방식으로 현재 한국 만화영화가 처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급상승하는 한국 만화영화의 제작 증가에도 불구하고 개봉관 확보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것이 우리 만화영화계의 현실이다. 극장 스크린을 잡기도 어렵고 행여 극장 개봉에 성공한다 해도 1~2주만에 막을 내린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 작품성이 뛰어난 <오세암>은 자체 배급망을 통해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또한 9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된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초기 2~3분짜리 스폿물이나 15짜리 광고에 이어 이젠 장편이나 시리즈물까지 등장, 시장확대에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부 업체의 경우 외국의 합작 제의가 잇따르는 등 세계적 수준의 업체들과 경쟁할 정도로 급 성장했다. 최근 5년만에 국내 기술력이 미국과 영국 정상 업체의 80%선까지 추격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현재 국내 업체들은 5곳 정도로 지난해 방영된 국내 첫 장편 <미루의 환상여행>을 만든 이미지 플러스의 경우 현재 미국과의 합작을 통해 해외시장 개척을 추진 중이다.


7. 움직임의 원동력
- 지난 15~19일 프랑스 칸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영상물 견본시인 MIP-TV (Morche International Programmes des Television)에서 한국의 만화영화 제작 업체들이 기대 이상의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KBS에서 방영된 바 있는 <바스토프 레몬> 은 아시아 및 남미 지역 배급 계약을 콜럼비아 트라이스타인터내셔널과 50만 달러에 맺었다. 이와 같은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은 외국업체들이 한국을 더 이상 만화영화 제작 하청업체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즉, 우리 나라의 만화영화는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국낸 만화영화를 다른 외국의 작품과 비교하기에 급급했던, 또한 무시하면서 관심조차 없었던 국민들이 국내 만화영화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길 기대해본다. 최소한 발전하고 뛰는 국내 만화영화에 어느 정도는 맞춰줄 수 있는 아주인들이 되길 바라며 이번 발표를 마친다.

200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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