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랑은 신부와 잠자리를 하고 싶어도 어른들의 눈치가 보여 부부간에 운우의 정을 나누기가 요즘처럼 쉽지 않았다. 심지어 부부지간이라도 합방을 하려면 좋은 날을 가리고, 날씨도 청명하고 별도 많이 나는 날이 되어야 한 번씩 잘 수 있도록 어른들이 허락을 해야만 했다.

남녀의 육체적 관계만큼 은밀한 것도 없다. 설사 잠자리를 하고 싶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남녀가 사랑방과 안방에서 따로따로 기거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만일 부인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면 십중팔구 정숙치 못한 여자라고 핀잔을 들을 것이 뻔하다. 남자라고 여자와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부부사이라 해도 어찌 상대방의 속내를 다 알 수 있겠는가. 이 때 은근하게 매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혼사 때 받은 기러기이다.

문갑 위에 놓인 기러기를 가지고 넌지시 자신의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남편이 부인과 잠자리를 하고 싶으면 수컷의 머리를 암컷 쪽으로 살짝 돌려 놓는다. 부인도 뜻이 맞아 암컷의 머리를 수컷 쪽으로 돌려 놓으면 그야말로 만사 오케이다. 굳이 무슨 말이 따로 필요한가. 이 얼마나 은근하고 멋진 표현인가. 

그렇다면 왜 혼사 때 기러기를 주고 받았을까? 신랑 신부가 서로 만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같이 살기를 다짐할 때, 기러기를 혼례 의식에 가장 으뜸으로 삼았다. 우리네 전통 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처음 행하는 의례가 기러기를 바치는 전안례(奠雁禮)이다. 이처럼 혼례에 기러기를 가장 중요한 예물로 사용한 까닭은 믿음 지켜서 제 짝을 저버리는 일이 없고, 암수가 한 번 짝짓기하면 평생동안 다른 놈하고 교접하지 않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도 따라 죽는 새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날아다닐 때도 항상 선두를 중심으로 가지런히 질서를 지키고, 앉아 있을 때도 손위의 뜻을 어기는 법이 없는 등 부인이 남편을 따르는 상징성이 있고, 부부간의 신의를 지키는 덕목을 갖추었기 때문에 혼례의 으뜸 예물로 써서 생활의 본보기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혼례에 썼던 나무기러기(木雁)는 지금도 골동품가게에서 다른 것에 비해 아주 비싸게 거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