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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투막집이 뭔가요 ㄴㄴ
락락락 조회수 4,902 작성일2010.04.05

투막집이랑 우데기 랑 대청마루와 하회마을과 인사동은 뭔가요 내공 팍팍 드리고요 내공냠냠글은바로 신고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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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업서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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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막집: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통나무와 나무껍질로 짓는 전통 민가.

[개설]
민가를 벽체 구조와 재료로 분류하자면 화통집과 투막집으로 나눈다. 화통집은 기둥 사이에 나뭇가지로 엮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벽을 만든 집이고, 투막집은 통나무를 정(井)자로 쌓아 올려 벽을 만든 집을 말한다. 투막집은 일반적으로 귀틀집이라 호칭되나 지역에 따라 상이한 속칭이 있다. 태백산맥 산간 오지에는 투방집, 울릉도에서는 투방집 또는 투막집, 평남 지방에서는 방틀집 또는 목채집, 평안북도와 강원도 지방에서는 틀목집이라 부른다.

울릉도에 투막집이 많은 것은 개척 초기 화전 경작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산간 정착민들이 주변의 풍부한 목재가 투막 구조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전국 최대의 적설 지역으로 무거운 적설량을 견디기에도 매우 적합한 구조이다. 따라서 울릉도 투막집의 구조와 형태는 육지의 산간 지역에 남아 있는 투막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조]
지붕을 너와로 이은 투막집과 새(茅)로 이은 투막집이 있는데 그 중 너와로 얹은 집은 너와집, 새로 지은 집은 투막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가는 아니지만 벽엔 진흙을 두툼하게 발랐고 기와집은 아니지만 지붕에는 넓적한 나무 기와가 촘촘히 이어져 있다. 창문은 한 군데도 없으며,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은 일반 문들과는 달리 대나무로 엮었다. 우데기를 집 주위를 둘러 생활공간으로 이용하며, 우사와 축사는 부엌에 가까이 두어 먹이를 주기 쉽게 하였다.

울릉도의 투막집은 육지와 달리 형태와 크기가 독특하다. 바람과 눈이 많은 섬 지방의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집수리 한 번 하지 않은 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건축 방법]
울릉도의 투막집은 육지의 귀틀집이나 너와집과 마찬가지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통나무와 나무껍질로만 지었다. 잡목을 베어 쌓아서 지붕까지 올리며 너와지붕은 고로쇠나무로 만든다. 예전에는 나무를 엮을 때 칡을 사용하였다. 나리분지 일대에서 투막집을 지을 때 쓰이는 나무는 고래솔·솔송나무·회솔목·너도밤나무라 불리는 것들인데, 이런 목재는 나리분지 주변의 산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통나무의 굵기는 대개 15~20㎝ 정도의 것을 많이 쓰는데, 방 한 칸 길이보다 조금 길게 도끼 또는 톱으로 잘라서 양쪽 끝을 아래위로 홈을 판 다음, 이 홈에 맞추어 재목이 서로 직교되게 쌓아올려 서로 얽혀져 무너지지 않게 결구한다. 따라서 못을 쓰지 않고도 튼튼하게 짜여지며, 아래위 통나무 사이가 좁아지기도 한다. 아래위 통나무 사이의 뜬 공간은 진흙으로 메워서 바람을 막는다. 이렇게 통나무를 주재료로 하여 구성된 벽은 열을 잘 차단해주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방을 만들어주며, 틈 사이를 메운 진흙은 비오는 날은 습기를 머금었다가 갠 날은 발산하여 실내의 습도를 조절하여 준다.

그리고 지붕의 처마 끝 안쪽에 처마를 따라가며 여러 개의 가는 기둥을 집 주위에 세우고 출입구만은 비워둔 채 새로 이엉을 엮어 가는 기둥에 기대어 집 주위에 새를 엮어 벽을 치는데 이것을 우데기라 한다. 우데기는 닥나무·피나무·칡나무 껍질을 사용하여 엮는다. 우데기는 새 이외에도 싸리나 옥수숫대 등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게 되고 내구성이 있는 판자나 함석으로 바뀌어갔고, 출입구에도 미닫이널문을 달기도 했다. 우데기가 있을 적에는 마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데기 안에 마루가 있는 집은 전통 투막집이 아니고 개량된 집이다.

투막집의 구들은 결이 바른 돌을 골라서 깨어 구들장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구들을 놓을 때 경사도를 알맞게 주어야 연기가 잘 빠지기 때문이었다. ‘굇돌’은 열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을 잘 놓아야 방이 골고루 따뜻해지므로 기술자들이 신경을 썼던 부분 중 하나이다. 구들을 경사지게 깔고 방 끝에 연기가 고여 있는 부분을 파놓아 그 곳으로 연기가 빠지게 한다. 굴뚝은 연기가 잘 빠지게 따로 낸다.

[특징]
울릉도 민가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붕 처마 끝을 따라 집 주위에 한바퀴 우데기를 둘러치는 것이다. 그리고 출입구에는 새(茅)를 발같이 엮어서 매어달고 말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개폐를 한다. 방의 벽과 우데기 사이에는 공간이 생기는데 이 부분을 축담이라 한다. 이 축담을 통하여 방과 마굿간 등의 집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특히 나리분지는 눈이 많이 올 때는 그 깊이가 3m에 이른다. 따라서 우데기는 적설시에 가족들의 옥내 활동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시설이다. 축담의 폭은 대개 1.2~1.6m 정도로서 적설시에 옥내의 통로이자 작업 공간·저장 공간 등의 생활공간이 된다. 이와 같이 우데기는 적설시가 아니라도 겨울철의 추운 북서풍이나 북동풍을 막아주는 방풍벽도 되고, 축담에 그늘을 드리워주고 또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사계절 언제나 설치되어 있다.

[현황]
새마을 운동 초창기까지는 각 마을에 투막집이 여러 채씩 있었다. 남양리 석문동의 경우에는 1970년대까지 투막집에 너와지붕을 짓고 살았던 집이 10가구나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지붕 개량 또는 주택 개량으로 인하여 없어지고, 원형대로 보존된 것은 나리분지 일대에서 4~5채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내부 구조가 투막인 채로 있는 집은 다소 있다.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지정문화재가 된 울릉도 나리 투막집이 현재 4곳 있으며, 울릉군에서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여 보수 관리하고 있다.

 

 

우데기:[정의]
울릉도의 독특한 자연환경 및 주생활이 반영된 가옥의 외벽 설비.

[개설]
울릉도의 민가에서 방설·방우·방풍 등을 위해 본채의 벽 바깥쪽에 기둥을 세우고 새나 옥수숫대 등을 엮어 친 외벽이다.

[연원 및 변천]
우데기는 울릉도에서 자생적으로 고안된 이중 외벽 설비이다. 울릉도 민가에서 설치된 우데기는 방설 및 방풍과 방우·차양 등의 기능과 더불어 몸채 위주의 자족적 공간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가옥 사면에 설치한 경우가 많으나 후면을 제외한 삼면 또는 전면에만 설치한 경우도 있다.

사용 재료는 새, 옥수숫대, 널판, 함석 등이다. 초기에는 주로 새(억새)나 옥수숫대로 이엉을 엮어 쳤는데, 해방 후쯤에 비늘판벽이나 함석 등으로 교체되었다. 출입문은 방문 위치에 맞추어 설치했다. 초기의 출입문은 새를 이엉으로 엮어 말아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거적문이 많았다. 그 후에 판문이나 함석, 유리, 섀시 등의 재료로 교체되면서 개폐방식도 대부분 미세기 또는 미닫이문으로 바뀌었다. 이런 재료 및 개폐 방식의 변화는 실내 채광, 통풍, 출입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변화로 보인다.

[형태]
가옥의 기단 끝 안쪽에 여러 개의 가는 기둥을 사방으로 세우고, 이 기둥에 새·옥수숫대로 이엉을 엮어 대거나 널판·함석 등을 붙여 만든다.

[현황]
지금은 울릉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나리동에 있는 2채의 투막집이 경상북도 민속자료 및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어, 이곳에서 우데기의 원형을 볼 수 있다.

대청마루: 옛날에 지은 집에 주로 사용되었던 마루로, 대청을 사용해서 만든 것.

 

 

하회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
지정번호중요민속자료 제122호
1984년 1월 10일
안동시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조선시대
528만 8,008㎡
민속마을
1984년 1월 10일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이다.

하회마을의 지형을 태극형 또는 화부수형()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싸고돌면서 ‘S’자형을 이룬 형국을 말한다. 강 건너 남쪽에는 영양군 일월산()의 지맥인 남산()이 있고, 마을 뒤편에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이 마을 중심부까지 완만하게 뻗어 충효당()의 뒤뜰에서 멈춘다. 강 북쪽으로는 부용대()가 병풍과 같이 둘러앉아, 산천 지형 또한 태극형 연화부수형국을 이룬다.

유성룡()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고을로, 임진왜란의 피해도 없어서 전래의 유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유씨() 배판이라는 말대로 최초의 마을 형성은 허씨들이 이룩하여, 하회탈 제작자도 허도령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허씨들이 벌초를 한다고 한다.

화천()의 흐름에 따라 남북 방향의 큰 길이 나 있는데, 이를 경계로 하여 위쪽이 북촌, 아래쪽이 남촌이다. 북촌의 양진당()과 북촌댁(),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은, 역사와 규모에서 서로 쌍벽을 이루는 전형적 양반가옥이다. 이 큰 길을 중심으로 마을의 중심부에는 유씨들이, 변두리에는 각성()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생활방식에 따라 2개의 문화가 병존한다.

지금까지 보물이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은 양진당(보물 306), 충효당(보물 414), 북촌댁(중요민속자료 84), 원지정사(:중요민속자료 85), 빈연정사(:중요민속자료 86), 유시주가옥(:중요민속자료 87),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88), 겸암정사(:중요민속자료 89), 남촌댁(중요민속자료 90), 주일재(:중요민속자료 91), 하동고택(:중요민속자료 177) 등이다.

양진당·충효당·남촌댁·북촌댁 등 큰 가옥들은 사랑채나 별당채를 측면으로 연결하거나 뒤뜰에 따로 배치하는 등 발달된 주거 구조를 보이고, 장대한 몸채·사랑채·많은 곳간·행랑채가 공통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특히 사랑방·서실·대청·별당과 같은 문화적 공간을 지니는 점은,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이 소유한 최소한의 주거 공간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인사동:

서울 종로구
북쪽으로는 관훈동(), 동쪽으로는 낙원동(),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 서쪽으로는 공평동()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과 견평방()에 속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원동(), 승동(),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등이 인사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승동, 원동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인사동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출장소 제도 신설로 경성부 북부출장소 인사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경성부 인사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인사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 실시로 종로구 인사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이 동()으로 바뀔 때 인사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인사동은 행정동인 종로1·2·3·4가동 관할하에 있다. 인사란 지명은 관인방과 대사동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댓절골, 향우물골, 이문동, 원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댓절골은 큰 사찰인 원각사()가, 향우물골은 우물 옆에 향나무가, 이문동은 순화궁의 이문()이 있었다는 데 명칭이 연유한다. 149번지는 중종반정 때의 정국공신 구수영()이 살던 곳으로, 조선 후기에 김흥근()의 소유였다가 헌종의 후궁 경빈이씨의 순화궁()이 되었다.

3·1운동 당시 33인이 모인 태화관()이 있었으나 재개발사업으로 헐리고 12층의 태화빌딩이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골동품상가가 밀집되어 있으며, 축제로는 관훈동과 함께 1988년부터 해마다 '관훈·인사동 전통문화의 마을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종교기관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승동교회가 있다. 주요기업으로는 성신양회공업(주)의 본사가 있다.

201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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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막집 이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에서 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집

 

우데기 란?

 

울릉도의 투막집에서만 보이는 벽의 형태로 눈보라와 비바람,

햇빛 등을 막기 위해 집채에 설치한 울릉도 특유의 외벽

 

대청마루 란?

 

집의 방과 방사이에 있는 큰 마루

 

하회마을 이란?

 

하회 마을의 하회는 한자로서 河回로 쓰며 뜻은 물이라는 뜻의 물하(河)자이고

돈다라는 뜻의 돌회(回)자입니다

하회마을에 가 보시면 알겠지만 낙동강물이 동쪽에서 흘러들어 마치

태극문양처럼 마을을 한바퀴 휘돌다 서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물이 돌아간다라는 뜻의 하회라는 지명이 지어진 것이고 이러한 마을형태를

 

하회마을 이라고 합니다

 

인사동 이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

 

201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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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투막집

 

설명


투막집은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통나무와 나무껍질로 짓는 전통 민가를 말한다.

 

민가를 벽체 구조와 재료로 분류하자면 화통집과 투막집으로 나눈다. 화통집은 기둥 사이에 나뭇가지로 엮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벽을 만든 집이고, 투막집은 통나무를 정(井)자로 쌓아 올려 벽을 만든 집을 말한다. 투막집은 일반적으로 귀틀집이라 호칭되나 지역에 따라 상이한 속칭이 있다. 태백산맥 산간 오지에는 투방집, 울릉도에서는 투방집 또는 투막집, 평남 지방에서는 방틀집 또는 목채집, 평안북도와 강원도 지방에서는 틀목집이라 부른다.

 

울릉도에 투막집이 많은 것은 개척 초기 화전 경작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산간 정착민들이 주변의 풍부한 목재가 투막 구조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전국 최대의 적설 지역으로 무거운 적설량을 견디기에도 매우 적합한 구조이다. 따라서 울릉도 투막집의 구조와 형태는 육지의 산간 지역에 남아 있는 투막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조


지붕을 너와로 이은 투막집과 새(茅)로 이은 투막집이 있는데 그 중 너와로 얹은 집은 너와집, 새로 지은 집은 투막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초가는 아니지만 벽엔 진흙을 두툼하게 발랐고 기와집은 아니지만 지붕에는 넓적한 나무 기와가 촘촘히 이어져 있다. 창문은 한 군데도 없으며,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은 일반 문들과는 달리 대나무로 엮었다. 우데기를 집 주위를 둘러 생활공간으로 이용하며, 우사와 축사는 부엌에 가까이 두어 먹이를 주기 쉽게 하였다.

 

울릉도의 투막집은 육지와 달리 형태와 크기가 독특하다. 바람과 눈이 많은 섬 지방의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집수리 한 번 하지 않은 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건축 방법


울릉도의 투막집은 육지의 귀틀집이나 너와집과 마찬가지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통나무와 나무껍질로만 지었다. 잡목을 베어 쌓아서 지붕까지 올리며 너와지붕은 고로쇠나무로 만든다. 예전에는 나무를 엮을 때 칡을 사용하였다. 나리분지 일대에서 투막집을 지을 때 쓰이는 나무는 고래솔·솔송나무·회솔목·너도밤나무라 불리는 것들인데, 이런 목재는 나리분지 주변의 산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통나무의 굵기는 대개 15~20㎝ 정도의 것을 많이 쓰는데, 방 한 칸 길이보다 조금 길게 도끼 또는 톱으로 잘라서 양쪽 끝을 아래위로 홈을 판 다음, 이 홈에 맞추어 재목이 서로 직교되게 쌓아올려 서로 얽혀져 무너지지 않게 결구한다. 따라서 못을 쓰지 않고도 튼튼하게 짜여지며, 아래위 통나무 사이가 좁아지기도 한다. 아래위 통나무 사이의 뜬 공간은 진흙으로 메워서 바람을 막는다. 이렇게 통나무를 주재료로 하여 구성된 벽은 열을 잘 차단해주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방을 만들어주며, 틈 사이를 메운 진흙은 비오는 날은 습기를 머금었다가 갠 날은 발산하여 실내의 습도를 조절하여 준다.

 

그리고 지붕의 처마 끝 안쪽에 처마를 따라가며 여러 개의 가는 기둥을 집 주위에 세우고 출입구만은 비워둔 채 새로 이엉을 엮어 가는 기둥에 기대어 집 주위에 새를 엮어 벽을 치는데 이것을 우데기라 한다. 우데기는 닥나무·피나무·칡나무 껍질을 사용하여 엮는다. 우데기는 새 이외에도 싸리나 옥수숫대 등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게 되고 내구성이 있는 판자나 함석으로 바뀌어갔고, 출입구에도 미닫이널문을 달기도 했다. 우데기가 있을 적에는 마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데기 안에 마루가 있는 집은 전통 투막집이 아니고 개량된 집이다.

 

투막집의 구들은 결이 바른 돌을 골라서 깨어 구들장으로 사용했는데, 이는 구들을 놓을 때 경사도를 알맞게 주어야 연기가 잘 빠지기 때문이었다. ‘굇돌’은 열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것을 잘 놓아야 방이 골고루 따뜻해지므로 기술자들이 신경을 썼던 부분 중 하나이다. 구들을 경사지게 깔고 방 끝에 연기가 고여 있는 부분을 파놓아 그 곳으로 연기가 빠지게 한다. 굴뚝은 연기가 잘 빠지게 따로 낸다.

 

특징


울릉도 민가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붕 처마 끝을 따라 집 주위에 한바퀴 우데기를 둘러치는 것이다. 그리고 출입구에는 새(茅)를 발같이 엮어서 매어달고 말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개폐를 한다. 방의 벽과 우데기 사이에는 공간이 생기는데 이 부분을 축담이라 한다. 이 축담을 통하여 방과 마굿간 등의 집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울릉도는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특히 나리분지는 눈이 많이 올 때는 그 깊이가 3m에 이른다. 따라서 우데기는 적설시에 가족들의 옥내 활동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시설이다. 축담의 폭은 대개 1.2~1.6m 정도로서 적설시에 옥내의 통로이자 작업 공간·저장 공간 등의 생활공간이 된다. 이와 같이 우데기는 적설시가 아니라도 겨울철의 추운 북서풍이나 북동풍을 막아주는 방풍벽도 되고, 축담에 그늘을 드리워주고 또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사계절 언제나 설치되어 있다.

 

현황


새마을 운동 초창기까지는 각 마을에 투막집이 여러 채씩 있었다. 남양리 석문동의 경우에는 1970년대까지 투막집에 너와지붕을 짓고 살았던 집이 10가구나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지붕 개량 또는 주택 개량으로 인하여 없어지고, 원형대로 보존된 것은 나리분지 일대에서 4~5채 찾아 볼 수 있을 뿐이다. 아직도 내부 구조가 투막인 채로 있는 집은 다소 있다.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지정문화재가 된 울릉도 나리 투막집이 현재 4곳 있으며, 울릉군에서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여 보수 관리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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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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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막집 이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에서 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집

 

우데기 란?

 

울릉도의 투막집에서만 보이는 벽의 형태로 눈보라와 비바람,

햇빛 등을 막기 위해 집채에 설치한 울릉도 특유의 외벽

 

대청마루 란?

 

집의 방과 방사이에 있는 큰 마루

 

하회마을 이란?

 

하회 마을의 하회는 한자로서 河回로 쓰며 뜻은 물이라는 뜻의 물하(河)자이고

돈다라는 뜻의 돌회(回)자입니다

하회마을에 가 보시면 알겠지만 낙동강물이 동쪽에서 흘러들어 마치

태극문양처럼 마을을 한바퀴 휘돌다 서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물이 돌아간다라는 뜻의 하회라는 지명이 지어진 것이고 이러한 마을형태를

 

하회마을 이라고 합니다

 

인사동 이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

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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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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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투막집

(1)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에서 눈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집이다.

(2) 육지에서는 이를 귀틀집이라 부르고 있다.

(3) 벽엔 진흙을 두툼하게 발랐고, 지붕에는 억새풀이 촘촘히 이어져 있다.

(4) 사방을 돌아봐도 창문은 한 군데도 없으며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은 일반 문

     틀과는 달리 대나무로 엮었다.

(5) 전혀 못을 사용하지 않고 통나무와 나무껍질로만 지었다.

(6) 형태와 크기가 독특하고 바람과 눈이 많은 섬 지방의 기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7) 집 둘레에는 싸리나 옥수수대로 울타리(우데기)를 만들어 겨울의 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8) 내부의 방은 대개 3칸으로, 부엌이 헛간과 장독을 겸하고 있어 지붕 위에까지 눈이 쌓여 통행이 되지 않아도 집 안에서 식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규모가 큰편이다.

(9) 방은 지름 20 ∼ 30cm, 길이 3m 가량의 통나무를 정방형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 2개

의 방을 먼저 만든 뒤 가운데의 공간 양측을 또다시 통나무를 쌓아올려 3칸의 방이 된다.

(10) 통나무 사이의 벌어진 틈은 진흙에 억새풀을 섞고 물에 반죽하여 메우며, 방바닥엔 대

       나무를 엮은 돗자리를 깔아 장판을 대용한다.

(11) 방이 완성되면 5 ∼ 6평쯤 되는 커다란 부엌을 달아내며 마루가 없는 대신 울타리를

집에 바짝 붙여 놓는데 이것은 찬바람이 방벽에 직접 와 닿는 것을 막기 위한 것다.

(12) 벽을 쌓는 재료는 횡경피나무, 단풍나무, 너도밤나무를 주로 사용하였고, 굴뚝은 질이

단단한 주목 둥치를 잘라 속을 파낸 뒤 세웠으며, 지붕은 고로쇠 나무나 솔송나무 등을

기와 모양으로 빚어 얹었다. 비가 새거나 눈 무게로 내려앉는 일은 있을 수 없을 만큼

튼튼하게 지어져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따뜻한 것이 특색이다.

2. 제주도 집의 특징

(1) 제주도는 거센 바람과 눈, 비가 많아 집은 낮고, 가옥의 벽면을 돌벽으로 쌓았으며 지붕은 띠로 덮은 후 동아줄로 총총히 얽어 매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2) 전통적인 제주도 가옥의 재료는 주로 돌과, 흙, 억새의 일종인 새 등이며 특히 지붕의 재료로 볏짚 대신 억새를 이용해서 엮어 만들고 바람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지붕이 날리

지 않게 그물 모양으로 엮어놓는다.

(3) 제주도는 기후가 따뜻한 곳이므로 온돌을 시설하지 않고 부뚜막 없이 솥을 따로 내걸어

     음식을 만든다

이유ㅡ바닷가나 섬에 있는 집의 특징

먼저 제주도는 지붕에 새를 얹고, 새를 엮어 만든 끈을 그물처럼 만들어 잡아 매거나 돌을 달았습니다.

섬이나 바닷가가 아닌집은 억새로 지붕을 엮지 않았는데말이죠..

또 담장도 바닷가나 섬이 아닌 지역보다 더튼튼합니다.

ㅡ그렇게 집을 지은 이유

제주도는 바람이 많이 불어집도 그러한 환경에 맞도록 지었습니다.

제주도는 다른지역보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당연히 다른곳보다 집구조를 튼튼히 하는것입니다

 

참고로 울릉도 투막집 사진 하나 올릴게요

 

옛날 울릉도민들이 이렇게 집을 짓고 살았다는 군요...

2010.04.07.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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