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우진 보훈처장 “이념 떠난 자리 ‘따뜻한 보훈’이 제자리 찾을 것”

박성진 기자
피우진 보훈처장이 26일 서울 용산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피우진 보훈처장이 26일 서울 용산 서울지방보훈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피우진 육군 예비역 중령(61)이 지난 5월17일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되자, “역대급 홈런”이라는 환호가 쏟아졌다. ‘역대급 홈런’ 인사라는 평가 속엔 피 처장의 간단치 않았던 삶의 궤적이 담겨 있었다. 그는 유방암 투병 중 국방부의 부당한 강제퇴역 조치에, 동료 여군의 성희롱 피해에 물러서지 않았다. 전역 후 젊은여군포럼을 만들어 군 인권 개선에 앞장섰다. 1982년 첫 여성 헬기 조종사에 이어 2017년 첫 여성 국가보훈처장까지, 그의 인생이 훑고 간 자리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런 만큼 피 처장 임명은 문재인 정부에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초대 내각 여성 30% 발탁이라는 대통령 의지를 상징하는 인사로 평가됐다. 보수정권 9년 동안 이념의 그늘에 가려졌던 ‘보훈’과 ‘유공’이 피 처장이 약속한 “따뜻한 보훈”으로 제자리를 찾게 됐다.

취임 4개월여 만인 26일 처음으로 언론 앞에 선 피 처장의 소회를 들어봤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생각하는 사람 중심의 국정철학이 제가 살아온 세월과 맞물려지면서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5월17일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새 정부에 걸맞은 새로운 보훈정책인 ‘따뜻한 보훈’ 정책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 보훈 대상자들이 전국적으로 약 24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의 사연과 애환이 다 다르다. 보상금을 주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뵙고 눈높이를 맞추며 그 잡은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뒤집힌 현실은 여전한가.

“해방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보이는 것 같다. 2015년에 실시한 생활실태조사가 있다. 독립유공자분들과 후손의 경우 연소득과 자산 등 생활수준 전반에 걸쳐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 국민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도 어렵게 생활하는 분들이 있다. 내년부터는 보상금을 받지 못하는 생활이 어려운 자녀 또는 손자녀에게 매달 생활지원금을 지급해 도울 계획이다.”

-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을 찾아내는 작업도 중요한데.

“관련 자료에 따르면 독립운동에 300만명가량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타깝게도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신 분은 이 중 1만476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포상 근거가 되는 재판기록이나 수형기록을 모두 조사하여 독립운동 입증 가능성을 높일 방침이다.”

-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는 등 지난 정부 보훈처가 이념 편향성 논란을 불렀는데.

“국가보훈은 국가를 위해 공헌·희생한 국가유공자를 보상하고 예우하는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말부터 ‘나라사랑 전문 강사진 강의’와 관련하여 국회 등을 중심으로 이념 편향성 문제가 제기됐다. 보훈처 전체 업무를 폄하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불러온 측면이 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나라사랑 교육 중 강사 중심의 일방향 교육은 폐지했다.”

- 일부 예비역들이 과격 시위에 앞장서는 등 ‘무법자 할배’ 이미지가 있다.

“이분들도 예우를 해야 할 보훈 대상이다. 그분들이 정치수단화됐던 부분은 보훈처장 입장에서도 아픈 부분이다. 그분들이 살아온 희생을 국민들이 기려야 함에도 일부 행동 때문에 왜곡되고 다른 유공자들에 대한 시각도 영향을 받는다. 과격 행동을 막으면서 끊임없이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분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등 예비역 단체들의 바람직한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한때 수익금을 회원 복지에는 미미하게 사용하고, 지휘부의 비리에 활용하거나, 이념 편향성을 가지고 특정 정당이나 정권을 지지하는 데 재향군인회 단체의 명예를 활용하는 지휘부들이 있었다. 이런 부끄러운 소수 지휘부들의 과거 비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국군의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변경하자는 여론이 있는데.

“ ‘국군의날’ 주관 부처인 국방부와 기념일 관련 법령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입장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우리 보훈처도 그 뒤를 이어서 기념일 변경에 적합한 절차들을 밟을 수 있다고 본다.”

- 2008년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도 이름을 올린 적 있는데.

“당시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방향이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 그리고 사회 인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의무감으로 비례대표에 응했다. 정치인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 후배 여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거대한 군 시스템 안에서 7%에 불과한 소수 여군이라는 정체성이 종종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게 한다. 혼자인 것 같지만 옆을 보면 동료 여군들이 있고, 또한 앞서간 선배 여군도 있고 뒤따라오는 후배 여군도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흐르는 신호가 응원의 메시지임을 감지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 부당 전역에 맞선 여군, 철의 여인이라는 말을 듣는데.

“사실 부당한 처우에 맞선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철의 여인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운 것 같다. 만약에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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