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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발생 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대해서...
jimk**** 조회수 5,845 작성일2008.02.07

학교에서 발표가 있는데 아무리 인터넷을 찾아봐도 반복되는 내용뿐이고 자세히 나와있지 않더라구요..

자세한 내용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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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고수
육군, 병영생활, 신당동 1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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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북화해사업에 따른교류와 군사적 대치상황을  8.18 판문점만행사건때문이다 라고 이렇듯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이때는 이미 남북 분단상황이었고 그런 역사는 없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분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간접적인 영향이 있을걸로 보여집니다. 이 사건이 벌어질때만 해도 155마일 휴전선은 철책이 아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는 나무막대(목침)에 불과 햇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점차 군사분계선(NLL)과 남,북방한계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졌으며 정치적으로 많이 혼란한 시기였고 남북 교류또한 전혀 이루어 지지 않다가 80년대부터 소극적이지만 점차 남북 교류사업이 진행되었고 밤북정상회담을 2번 이룬 지금에까지 이르기에 된 것입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국제연합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지휘 ·경호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 장교 2명과 수십 명의 사병이 나타나 작업중지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한국측 경비병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갑자기 수십 명의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달려와서 도끼와 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폭행,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는 중 ·경상을 입힌 뒤 사라졌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 돌입)를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미군은 F-4 전폭기 1개 대대와 F-111 전폭기 1개 대대를 한국에 증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항진시켰으며, B-52 폭격기를 출동시키는 등 전쟁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국제연합군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9월부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남과 북의 분할경비로 되었다.

200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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