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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용찬 Feb 14. 2017

게으르다 게으르다

출애굽기 5장 1절 ~ 23절 / 6장 1절 ~ 2절


그 유명한 '모세'


  오늘은 모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세라는 인물이 매우 친숙합니다. 아마 여러분들 세대에 여러분들 친구들 중에는 모세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지요. 음.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름에 대해 말해봅시다. 혹시 '찬양', '찬송', '이레', '요셉', '사야', '예담', '요한', '온유' 등의 기독교적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있지요? 제 딸의 이름은 '정이래'입니다. 아.이.를 쓰는 이래. 흔하지는 않죠. 한자도 있어요. 이로울 이자에 올 래자를 쓰지요. 이런 이름들은 참 나쁜짓을 하기도 힘들어요. 학교 때 친구가 '이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 친구는 야한 책을 좋아했어요. 그 왜 있잖아요. 야한 사진들 있는 책. 한 날은 선생님들께 걸린거에요. 뭐 교회 다니는 놈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그 빨간 책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 이노무 시키야. 이름이 요한이고 이건 뭐 요한 계시록이냐?" 뭐 반 전체가 초토화 되었죠. 여하튼 모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친숙해요. 혹시 모세가 무슨 뜻인지 아는 친구들 있나요? 맞아요 모세는 물에서 건지다라는 뜻이에요.




그 유명한 'Let my people go'

크루즈 갈대호를 탄 모세   

  모세의 인생은 참 기구합니다. 어려서 강에 버려지요. 어머니 요게벳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누나 미리암에게는 좋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 애를 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당시 상황을 알아야겠지요. 모세가 살던 당시에는 이집트가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아싸라 말레이꿈' 흉내 내면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이집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라는 강대국의 노예로 살고 있었는데 번식력이 너무 좋아서 인구가 금방금방 늘었습니다. 강대국 입장에서는 좋은거죠. 그런데 좀 불안했는지 출산제한을 하기에 이릅니다. 사내 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버리거나 죽여버리라는 명령이 내려오죠. 왜 그랬을까요? 젊은 남자들이 많아지고 어느정도 인구가 늘어나면 반란을 할까봐서 그런겁니다. 모세가 그런 기구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버려진 모세는 크루즈 '갈대호'를 타고 나일 강을 유람하죠. 그러다가 이집트 공주의 눈에 띄어 소위 '금수저'를 가지게 됩니다. 이 때 멀리서 지켜보던 누나 미리암이 기회를 놓히지 않고 젖을 먹여줄 유모를 소개해줍니다. 그게 바로 친엄마 요게벳이죠. 대단해요. 이건 뭐 공조, 더킹, 마스터 같은 영화에 나오는 치밀한 범죄전략보다 더 한거죠. 미리암 정말 대단한 누나에요. 일단 공주의 동선을 파악하고 정확한 시간에 나일강물의 흐름을 파악하여 치밀한 각도로 갈대상자를 띄워 보낸거죠. 게다가 몸을 보이지 않게 은닉하는 것까지 와 대단한 여자 맞습니다. 

 

모세가 금수저를 가지는 과정

  이렇게 입궁하게 된 모세는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차박차박 밟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뭐 대치동에 있다는 월 300만원짜리 영어 유치원을 나오고 초등학교는 리라초등학교 중학교는 국제중학교 고등학교는 민사고 대학교는 서울대나 카이스트를 나온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 때는 이집트가 초 강대국이었으므로 유학은 필요하지 않았죠. 모세의 이름과 잘 맞지 않나요?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강에 버려졌다가 건져져서 공주의 아들이 되었요. 노예민족이라는 강에서 건져져서 왕족으로 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의 뜻과 잘 맞아요. 이렇게 잘 자란 모세는 한 마흔 살 쯤 되던 어느날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지요. 이집트 관원이 노예를 학대하는 모습을 본겁니다. 의로운 분노가 차올랐던 모세는 관원을 때려서 죽입니다. 그리고 이집트 법에 의해 살인자가 되어 처벌 당할 것이 무서워 도망하게 되지요.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나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운명의 여인 '십보라'를 만나고 40여년을 광야에서 보내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죠. 이번에도 모세는 이름값을 합니다. 도망자의 인생에서 사명자로 건져지게 되는거죠. 멋지지 않나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이집트 왕에게 전해라.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이게 영어로 하면 Let my people go입니다. 자 우리 친구들 학교에서 배웠죠? Let은 사역동사 뒤에 my people는 목적어 go는 동사원형의 목적보어. 해석하면 내 백성을 놓아줘라 이런 뜻입니다. 자 따라 해볼까요? Let my people go.  




메시지 캐리하러


  이렇게 메시지를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졸라서 능력의 지팡이 뿐 아니라 형 아론도 함께 득템합니다. 스스로 말을 못한다고 셀프 디스 하시고, 무섭다고 커밍아웃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요. 우리도 이래야 해요.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실 때 쫄린다면 쫄린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시고 동역자도 세워주시는 줄로 믿어요. 이제 하나님의 메시지를 캐리하러 갑니다. 40년 만에 등장하는 모세를 보고 이집트 왕이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옛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뭐 사촌지간이거나 친구거나 아니면 삼촌 조카 뭐든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을 겁니다. 쨌든 모세도 로얄패밀리 맞잖아요. 모세가 시원하게 본론부터 말합니다. 그게 오늘 본문에 나온 내용이에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내 보내라고 하신다. 그리하여 절기를 지키며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가 누구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신 따위 알게 뭐야!"



  이집트 왕 바로가 생각보다 세게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이 거듭 말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바로는 오히려 역정을 내고 화를 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괴롭히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당장 눈 앞에서 일이 잘 안 풀리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악화될 때도 있죠. 기죽지 마세요. 사탄이 발악하는거에요. 기껏 받은 메시지 캐리하는데 뜻대로 안된다고 포기하면 마귀에게 지는겁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을 더욱 힘겹게 합니다. 매일 주던 지푸라기 공급을 끊고 스스로 짚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생산해야 하는 벽돌의 갯수는 줄여주지 않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일찍 일어나 더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들에서 산에서 짚을 찾아야 했지만 생산량을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죠. 바로도 호락호락 하지 않는데 같은 팀인 백성들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너희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가? 이제 그만하고 가라"


  민심은 흉흉하여 지고 원망이 가득합니다. 생산량을 못 채운 백성들에 대한 매질이 계속됩니다. 모세와 아론의 심정이 어떨까요? 당장이라도 바로 왕에게 무릎꿇고 백성은 무죄하니 살려달라고 사과하고 빌고 싶지 않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홍해는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며 출애굽기는 쓰여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탁, 신탁, 신의 메시지 캐리는 끝까지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메시지 캐리는 어떻게? 끝까지 강력하게~




게으르다 게으르다

  

  오늘 본문에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5장 17절입니다.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하나님이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바로가 보인 반응입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바로가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니네가 시간이 많아서 딴 생각하는 거지? 지금. 어? 아주 시간이 많아요. 게을러터져서 예배나 드리겠다고 하는거지?' 뭐 이런 식입니다. 저는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있을 때 비슷한 일을 겪었어요. 수요예배 드리겠다고, 또 주말에 보강 안하고 교회가겠다고 하니까 주중에 일을 엄청주더라고요. 그리고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예배드리자고 하면 보이는 반응이 대부분 비슷해요. 우리가 게으른 줄 알아요. 한가한 줄 알아요. 할 일이 없어서 예배하고 하나님 믿는 줄 알아요. 그래서 우리를 차별하려고 합니다. 짚을 주지 않는 바로처럼 핸디캡을 주고 자꾸만 우리에게 못되게 굽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세에게처럼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백성을 보내라는 말을 세상 권세 잡은 사단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곧 우리 친구들 학교에 가게 됩니다. 약 보름 정도 지나면 개학하게 되는데 개학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아직도 지옥에 끌려가는 친구들, 죄의 무게에 눌려 사단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러 가는 겁니다. 가서 예수 믿고 천국가자라고 말하는 순간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반응이 쏟아질 겁니다. "안돼! 그시간에 자야돼! 아침에 못일어나.", "하나님? 개독교? 그게 뭐야? 나 무신론자야.", "학원가야 돼. 니 성적에 교회갈 시간에 공부나 하지?" 와우 모멸감이 느껴집니다. 계속 전도하다가 성적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희한한 대학교에 들어가는 날에는 아주 쪽이 팔려 죽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숨통을 조아옵니다. 너는 교회 다니니까 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희생을 요구하고 은근히 따돌림을 행합니다. 그게 사단이 모세 때에도 지금에도 우리를 공략하는 방법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메시지를 캐리해야 합니다. 그게 사명이니까요.




그리고 6장 1절과 2절


  우리 말씀을 그냥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 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메시지를 캐리하는 메신저가 지치고 힘들고 수치와 모멸을 당하고 당신에게 나왔을 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제 바로는 X됐다. 끝났다. 내 뜻을 알고도 거역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니 그 이유는 나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이 후 바로의 불순종으로 인해 열가지 재앙이 임하게 되고 이집트가 작살나는 과정이 성경에 나옵니다. 마지막 홍해의 사건은 대단하죠. 600대의 전차 그리고 그것을 끌던 말 그리고 그 말을 몰던 병사들이 한꺼번에 수장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다음세대가 줄어가고 있다.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 노령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는 곳이 교회다. 이제 복음의 대를 이을 수 없다. 여러가지 말도 안되는 말들이 많습니다. 죄의 문제로 사단에게 여전히 눌려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 합니다. 사단의 면전에 대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 이렇게 강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친구에게 예수믿고 구원받자고 말하는 것이 바로 사단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온갖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주눅들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대답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사단이 미친겨. 내가 강한 손으로 작살낼꺼고 결국 내 백성은 내게로 올것이여. 왜냐하면 말이다. 나는 여호와거든!!!" 3월 새학기 하나님의 백성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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