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WTO 개도국 지위 지킬 전략 세워야
입력 : 2019-04-29 00:00
수정 : 2019-04-29 23:55

미국, 중국 겨냥 “WTO 개도국 우대조치 손질 필요” 주장

한국 ‘불똥’ 우려…지위 상실 땐 쌀 등 민감품목 보호수단 없어져

전문가들 “정부, 손놓고 있어선 안돼…효과적 협상전략 마련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조정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불똥이 우리나라로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인도 등 경제규모가 상당한 나라들이 스스로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많은 우대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WTO 개혁의제 중 하나로 개도국 우대조치 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올초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WB)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라는 4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이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개도국 지위를 인정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겉으로는 WTO 개혁의제를 들고나온 것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WTO 안에서 중국이 누려온 혜택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미국의 주장대로라면 미국이 타깃으로 삼은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데 있다. 김상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미국이 제시한 4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한다”며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상실하게 되면 한국 농업에 미치는 파장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WTO 체제에서 개도국에겐 농산물시장 개방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많은 특혜가 주어진다. ‘특별품목’ 지정이 대표적인 개도국 우대조치다. 전체 농축산물 중 일부를 특별품목으로 지정하면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이들 품목의 관세를 전혀 깎지 않아도 된다. 임송수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에겐 일반품목보다 관세를 덜 줄이는 민감품목 지정만 허용한다”며 “개도국 지위를 잃는다는 것은 쌀을 비롯해 우리 농업계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품목을 보호할 좋은 수단을 잃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은 조심스럽다. 정치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개도국 지위 논의가 WTO 개혁의 일환으로 제기된 만큼 WTO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도출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농정당국도 아직 뚜렷한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는 미국의 제안서를 WTO 회원국들이 회람하는 단계이고, 아직 WTO 농업위원회에서도 논의된 바 없다”면서 “개도국 지위 논의가 WTO 회원국 전체적으로 논의될지 여부 등 향후 전망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마냥 손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면 관세인하, 농업보조금 감축 등 현실적으로 한국 농업이 수용하기 어려운 의무들이 줄줄이 발생한다”면서 “개도국 지위를 지키기 위한 논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효과적인 협상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함규원 기자 o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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