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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창녕군 고암면의 문화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85 작성일2019.04.18

경상남도 북쪽에 위치한 창녕군 고암면의 문화재로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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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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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의 문화재)


1. 창녕 감리 마애여래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6호 
지 정 일 1972.02.12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감리 산64 
시 대 통일신라


경상남도 창녕에 있는 작품으로 화강암으로 된 자연암벽을 다듬어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기고 있다.


마멸이 심하여 세부표현은 잘 알 수 없지만, 탄력있는 둥근 얼굴과 어깨까지 닿은 귀, 목에 있는 3줄의 삼도 등에서 뛰어난 조각수법을 엿볼 수 있다. 옷은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에서 무릎까지 U자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배 모양이며, 머리광배는 2줄의 선으로 둥글게 표현하였다.


탄력있는 얼굴, 굴곡이 표현된 신체, 부드러운 옷주름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인다.
 


2.창녕 노변소 묘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53호 
지 정 일 1996.03.11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길 22-7 (우천리 681-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전기 경주 부원을 지낸 청민공 노변소의 유적으로, 경상남도 창녕군 고아면 우천리 뒷산 소곡당에서 약 300m 떨어진 야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봉분은 원형이고 봉분 아래에는 긴 돌을 사각형 모양으로 돌려서 봉분의 파손을 방지하고 있다. 묘 앞에는 양쪽으로 문인석이 1쌍 놓여 있고, 오른쪽 문인석 옆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3.창녕 구니서당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9호 
지 정 일 1997.12.31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창밀로 506-32 (가상리 1160) 
시 대 조선시대


구니서당은 300여년 전 김굉필의 후손들이 세운 것으로, 그 뒤 묘각이나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조선 고종 3년(1866)에는 김굉필의 둘째 아들 언상공을 비롯한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 지금 있는 정당은 1916년에 규모를 넓게 수리한 것이다.


경내에는 정당을 비롯하여 사당, 동재, 서재, 문루, 관리사 등이 있다.
 


4.창녕 관산서당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35호 
지 정 일 2003.10.30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월미상월길 115 (우천리 431) 
시 대 조선시대


창녕 관산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전면의 반칸을 퇴칸으로 한 축조한 형식이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방의 전면 툇마루는 한단 올려 대청과 높이가 다르게 시설하였다. 방의 창호는 모두 세살문을 사용하고 있다. 좌측방에는 두짝, 우측방에는 외짝의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의 뒷벽에는 판장문을 달아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소박한 형태이다. 3량 가구 형식으로 중앙부에 대들보를 걸고 전면의 퇴칸에는 퇴보를 걸어 연결하였으며 큰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박공지붕 형식이다.


건립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1900년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퇴칸의 사용이나 간결한 가구기법 및 장식적 기법 등 조선후기 건축양식과 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무엇보다 창녕지역에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5.창녕 소곡서당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6호 
지 정 일 2005.07.21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길 111 (우천리 775) 
시 대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에 있는 서당이다. 원래는 소곡서원으로 1650년경 건립될 당시 지금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있었고 1856년 소곡서당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민공 노변소, 만취공 노침, 절효공 노홍언 등 3인을 합향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피해를 봤다.


소곡서당의 건물은 '튼□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남북을 축으로 대문채와 강당을 두고, 그 앞쪽 양옆에 관리사와 영사정이 있다. 강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이며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고 전퇴에 툇마루가 있다. 왼쪽 온돌방에는 '청아헌', 오른쪽 온돌방에는 '양진당'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마루는 개방형이며 뒤쪽에 쪽마루가 있다.


영사정은 1825년~1830년에 창건되었고 1925년에 강당 동쪽으로 옮겨 다시 건립되었다. 강당 서쪽에 있는 관리사는 1998년 대대적으로 수리가 이루어졌고 대문채는 2000년 앞면 5칸, 옆면 1칸으로 신축되었다.


소곡서당과 관련하여 남쪽 500여 미터 지점에 청민공묘(기념물 153호)가 자리 잡고 있고, 북쪽 500미터 지점에는 절효공 노침의 묘가 있다.
 


6.창녕 반곡 고택


종 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20호 
지 정 일 2007.03.15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월미상월길 193-6 (우천리 260) 
시 대 조선시대


반곡고택은 장연노씨 반곡파종중 소유로 상량문이나 중건기 등의 구체적인 문헌기록이 없어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안채는 반곡 노희간이 45세 때인 1852년(철종 4)에 창건하였다고 알려졌다.


안채는 정면4간 측면1간반 규모의 전퇴집으로 실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 우에 각각 방을 배치하고 붙여 부엌을 배치한 형식이다.방의 배면쪽으로는 벽장을 두었고, 마루의 배면에는 쪽마루를 두었으며, 부엌의 배면에는 천방을 두었고, 우측으로는 기둥의 바깥쪽으로 덧대어 공간을 확장함. 홑처마에 합각지붕 형식이다.


사랑채는 정면3간, 측면1간반 규모의 전퇴집, 안사랑채는 정면3간, 측면1간의 규모이며 좌측 1간에는 광을, 가운데는 간과 우측 반 간은 방으로 나머지 반 간에는 마루를 노음. 홑처마에 우진각지붕 형식이다.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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