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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고대] 아일랜드의 고대 시대[ 2. 중세] 아일랜드의 중세 시대[ 3. 근대] 아일랜드의 근대 시대[ 4. 20세기 초반] 20세기 초반의 아일랜드[ 5. 2차 대전 후] 2차 대전 후의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역사

  • ●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던 아일랜드 왕국은 12세기 후반 이후 영국으로부터 노르만족의 침략을 받기 시작하였음. ● 영국의 헨리 8세가 1541년 아일랜드 왕을 겸임함에 따라 이후 영국 왕이 아일랜드 왕을 겸임하는 모호한 형태로 아일랜드 왕국이 존재하게 되었으나,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는 영국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졌고, 1801년에는 대영제국의 일부로 완전히 병합되었음. 이후 1919년 1월 21일 독립 선언에 이어 1921년 12월 6일 독립 승인까지 아일랜드는 대영제국의 일부로 존재하게 됨. ※ 다만, 아일랜드가 영연방을 탈퇴한 것은 1949년 ● 점령기간 동안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종교적 · 사회적 · 경제적 억압과 차별을 받았으며, 이는 반영감정과 민족주의를 발생시킴. – 특히, 19세기 대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 인구가 반세기만에 3분의 1로 줄어들었으나, 영국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아일랜드 곡물 수입을 계속하여 이를 방관한 것이 아닌가...

  • 코크는 아일랜드 제2의 도시로 남서부 먼스터 지방에 있다. 915년 바이킹족들이 들어와 살았고, 1185년 도시 헌장이 수여됐다. 양모산업이 발달하면서 도시도 성장했다. 민족주의가 강한 도시로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 때 심하게 불에 탔다. 파이저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 ● 국명 아일랜드(Ireland) ※ 헌법상 공식 국명은 Ireland이며, Republic of Ireland는 북아일랜드(영국의 일부)를 제외한 아일랜드 공화국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표현 ※ 에이레(Eire)라는 국명은 아일랜드 고유어인 게일릭어(Gaelic) 명칭 ● 위치 유럽 북서부의 섬나라 – 북위 51.55 - 55.5, 서경 5.5 - 10.5 ● 기후 온대 해양성 기후 – 여름 일 평균 14-16℃ 겨울 일 평균 4-7℃ ● 면적 70,282km2(한반도의 1/3, 남한의 약 82%) ● 인구 501만 명(2017년) ● 수도 더블린(Dublin) ● 주요도시 코오크(Cork), 리머릭(Limerick), 골웨이(Galway), 워터포드(Waterford) ● 주요민족 켈트인(Celt) ● 언어 게일릭어, 영어 ● 종교 가톨릭(78%), 기타(12%), 없음(10%) ● 국경일 3월 17일(St. Patrick's Day) – 서기 5세기경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 [ 1. 아일랜드의 지리] ● 아일랜드는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섬나라로서 동쪽으로는 깊이 200m 이하의 대륙붕이 발달한 Irish Sea가 영국과 경계를 이루며 대서양쪽 해안은 급경사를 이룸. ● 섬 중앙부는 석회암 중심의 저지이며, 남부는 붉은 사암으로 된 산악지대, 서부 및 북부는 화강암, 현무암의 산악과 고원이 많음. ● 과거 빙하의 영향으로 산정호, 빙하계곡, 습지 등 특수 지형이 발달되어 있음. [ 2. 아일랜드의 기후] ● 멕시코 만류와 남서풍의 영향으로 기후와 온도가 전국에 걸쳐 균일한 편임. 가장 추운 달은 1-2월로서 일평균 4-7℃ 정도이며, 가장 더운 달은 7-8월로서 일평균 14-16℃임. ● 중앙 저지의 연평균 강수량은 800-1,200mm이지만, 동부 일부 지역은 750mm, 서부는 1,500mm 이상이며, 산악지대는 2,000mm 이상인 곳도 있음. ● 연중 고루 비가 오나, 전체 강우량의 60% 정도가 8월에서 1월 기간에 내리며, 4-6월에

  • ● 아일랜드는 4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Willian B. Yeats, George Bernard Shaw, Samuel Becket, Seamus Heaney) 및 20세기 최대의 문제작으로 일컬어지는 Ulysses의 작가 James Joyce와 극작가로 유명한 Oscar Wilde, 걸리버 여행기의 Jonathan Swift 등을 배출하는 등 문학적 자산이 풍부하며, 유네스코는 2010년 더블린을 문학 도시(City of Literature)로 지정하였음. ● 아일랜드는 James Joyce의 Ulysses를 기념하는 Blooms Day(6월 16일), 국제문학축제(5월 말), 도서축제(11월 중순)를 포함하여 수많은 문학 및 문화 축제를 수시로 개최하고 있으며, 더블린 시의회에서는 세계문학상 중 가장 상금이 큰 임팩더블린문학상(IMPAC Dublin Award)을 매년 영어 문학작품(번역작 포함) 가운데 선정하여 수여하고 있음. ● 1991년 더블린 시는 세계적인

  • ● 영국에 대한 저항으로 1641년 구교도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영국의 크롬웰에 의해 처참히 진압되었으며, 대규모의 토지 몰수, 지주 추방이 단행되어 구교 세력의 정치기반이 약화되었음. ●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전쟁의 영향으로 자치운동이 전개되어 1782년에는 아일랜드 의회의 독립이 허용되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자극받아 1798년 전 국민적 반란이 시도되었으나 조직의 미흡으로 쉽게 진압된 후, 1800년에는 아일랜드 의회가 해산되고 영국의회로 통합되었음(Act of Union). ● 1845-1849년 대기근은 아일랜드 해외이민의 역사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영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 민족주의를 고무하게 됨. ● 19세기 후반에 독립과 토지개혁을 위한 운동이 크게 확산되어 Fenians(Irish Republican Brotherhood) 비밀결사, National Land League 등의 단체 형성을 통해 아일랜드 민족주의가 더욱 고무되었으며, 1905년에는 아

  • ● 1916년 부활절을 기해 Irish Citizen Army 및 Irish Volunteers는 영국 통치에 대항하는 무력봉기를 시도하였으나, 주모자 15명이 처형됨으로써 국민감정이 크게 자극 받음. 1918년 총선에서 Sinn Fein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후 영국의회를 무시하고 1919년 12월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독립의회(Dail)를 구성함. ● 이에 따라 1919-1921년 영국 · 아일랜드 전쟁(아일랜드 독립전쟁)이 발발하였고, 1921년 12월에 영국 · 아일랜드 조약이 체결되어 영국은 Ulster 지방의 6개주를 제외한 아일랜드의 26개주를 Irish Free State로 독립시키면서 영연방 자치령의 지위를 부여함. ● 그러나 Irish Free State 성립 후에도 William Cosgrave 주도의 국민당(Cumann na Gaedheal) 정부는 영국 · 아일랜드 조약이 아일랜드의 분단을 영구화한다며 반대하고 나선 Eamon de Valera 주도의

  • [ 1. 역사적 배경] 북아일랜드 문제의 역사적 배경[ 2. 북아일랜드 문제의 유혈 사태화] 북아일랜드 문제의 유혈 사태화[ 3. 영국 · 아일랜드의 평화정착 노력] 영국 · 아일랜드의 평화정착 노력[ 4. 브렉시트(Brexit) 이후 아일랜드 · 북아일랜드 국경문제 논의] 브렉시트(Brexit) 이후 아일랜드 · 북아일랜드 국경문제 논의[ [참조/영문]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원문)]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원문)

  • ● 1848년 혁명 시 Thomas Francis Meagher에 의해 최초로 도입된 후, 1916년 자유 아일랜드의 상징이 되었으며, 1922년 아일랜드 국기로 공식 인정됨. ● 녹색은 에메랄드색의 자연과 국민의 다수를 점하는 가톨릭교도를, 오렌지색은 신교도를, 그리고 백색은 두 종교 집단 간의 평화와 이해를 상징함. ● 비율은 1 : 2

  • 템플바는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중앙을 흐르는 리피강의 남안에 있는 지역이다. 템플바엔 문화 관련 기구, 단체, 그리고 술집이 많다. 이 지역은 17세기 들어 개발되기 시작했다. 템플바는 매립지에 건설된 도로 이름에서 유래했다. 피셈블 스트리트는 헨델의 '메시아'가 1742년 4월 13일 초연된 장소이다. 매년 '메시아' 연주회가 같은 장소 같은 날에 열리고 있다.

  • ● 9세기경부터 바이킹족의 침입을 당했으나, 10세기 말 Brian Boru가 바이킹을 격퇴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국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음. ● 그러나 12세기 후반 이후 영국으로부터 노르만족의 침략이 시작되었으며, 헨리 8세는 1541년 아일랜드 왕의 칭호를 겸한 최초의 영국왕이 되었고,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는 영국의 직접 통치하에 들어감. ● 종교적으로도 16세기부터 영국은 아일랜드에 신교를 강요하였으며,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도들이 대규모로 아일랜드(특히, 북아일랜드 Ulster지방)에 이주 정착하였으나, 신교는 영국의 압제와 연관 지어져 민중적 차원에서는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음.

  • 킨세일은 아일랜드 코크주에 있는 항구도시다. 도시는 코크시로부터 남쪽으로 25km 떨어져 있고, 밴돈강 어귀에 자리 잡았다. 인구 5,000명 남짓 되는 소도시지만 아일랜드 역사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601년에 스페인 원정군이 킨슬리에 도착해 아일랜드 반군과 손잡고 영국군을 공격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엔 영국의 원양 정기선이 킨세일 앞바다에서 독일 U보트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오늘날 킨세일은 국제적인 휴양지다.

  • [ 1. 영국 · 아일랜드의 테러중지 노력 합의] ● 아일랜드 정부는 1979년 8월 Mountbatten 경(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촌) 피살을 계기로 영국 정부와 접촉, 북아일랜드에서의 테러 중지를 위해 상호 노력하기로 합의함. – 1979년 11월 아일랜드 총리는 미국을 방문, 미국계 아일랜드인들과 접촉, 북아일랜드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토록 요청 [ 2. 영국 · 아일랜드 정부 간 회의(Anglo-Irish Intergovernmental Council, 1981)] ● 아일랜드 Haughey 총리와 영국 Thatcher 총리 간 합의에 따라 영국 · 아일랜드 정부 간 회의가 1981년 출범하였으며, 이로써 북아일랜드 사태 해결을 위한 공식적인 대화체가 마련됨. [ 3. 영국 · 아일랜드 협정 체결(Anglo-Irish Agreement, 1985.11)] ● 영국 · 아일랜드 양국은 1985년 11월 영국 · 아일랜드 협정을 체결함. ● 동 협정에 의해 아일랜드 정

  • ● 16년간 집권하여 오던 공화당(Fianna Fail)은 1948년 총선에서 패배, 통일당(Fine Gael)을 주축으로 John Costello가 구성한 연립정부는 동년 아일랜드공화국법을 통과시켜 영연방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함. ● 1957년 공화당(Fianna Fail)이 재집권, Sean Lemass 총리하에 급격한 경제적 성장을 달성하였으며, 1965년 영국 · 아일랜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1973년에는 구주공동체(EC)에 가입함. ● 1969년 이래, 위기로 치달은 북아일랜드 분쟁은 아일랜드 국내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음. 아일랜드 역대 정부는 북아일랜드에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해결책 모색을 위해 계속 노력해 오고 있음('북아일랜드 문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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