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아파트 시장의 양극화

박해천 | 홍익대 BK 연구교수

모 부동산정보업체는 올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아파트 시가총액을 약 1931조원으로 추산했다. 17대 대선이 치러진 2007년 말에 비해 약 363조원이 늘어난 규모다. 언론에서는 부동산 침체를 걱정하고 각 대선 후보 진영에선 하우스푸어 관련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상황임에도, 지난 5년간 오히려 아파트 시장의 규모는 커졌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정보업체에 따르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신규 물량의 증가이다. 전체 아파트 매매가는 5년 전에 비해 0.29% 하락했지만, 약 116만가구가 새로 공급됐다. 둘째, 아파트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아파트 가격은 각각 6.7%, 11.43% 하락했으나 지방 아파트 가격은 대폭 상승했다. 5대 광역시의 평균 상승률은 40.1%이며, 부산은 무려 56.9%나 올랐다.

[문화와 세상]대선과 아파트 시장의 양극화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수도권과 지방의 아파트 양극화이다. 세종시 출범과 혁신도시 조성, 고환율 정책으로 인한 지방 수출 기업의 호조, 4대강 사업의 낙수효과, 평창 동계올림픽과 여수 엑스포 등이 지방의 아파트 값 상승세를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지방 거주 중산층의 상당수는 최근 5년간, 2002~2007년에 수도권 중산층이 경험했던 부동산 버블을 반복 경험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12년의 그들은 적어도 아파트에 관해서만큼은 수도권의 2007년과 유사한 상황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그들에게 ‘하우스 푸어’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거나 수도권에서 들려오는 풍문일 따름이다.

이런 추론을 대통령 선거라는 맥락에서 대입해 보면, 지방 중산층이 MB정권에 느끼는 감정의 색채가 수도권 중산층과는 전혀 다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수도권의 부동산 버블이 한창 정점을 찍고 있었던 시기에 치러진 두 차례 선거결과를 들여다보자.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과 이회창, 범보수 후보들의 수도권 지지율은 60%를 훌쩍 넘어섰다. 이런 흐름은 그 이듬해의 18대 총선에도 이어져, 현 여당은 수도권 선거구 총 111개 중 81개의 지역구를 획득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수도권 중산층 상당수가 자산시장에 대한 이해관계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투표한 결과였다. 누군가는 ‘아파트 투표’라고 불렀고, 또 누군가는 ‘욕망의 정치’라고 명명했다.

이 ‘욕망의 정치’가 바로 오늘 지방의 투표장에서 반복될 것이라고 예측해 보는 것은 어떤가? 지난 4월의 총선을 보자. 이 선거는 ‘정권 심판론’만 되풀이한 야권의 무능을 증명한 사건으로 해석되곤 한다. 하지만 혹시 ‘욕망의 정치’가 지방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을까? 수도권에서는 부동산 하락세와 함께 양극화에 내몰린 중산층의 아우성이 넘쳐난 반면, 지방에서는 뒤늦게 자산소득의 맛을 본 중산층이 ‘아파트 투표’를 결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야권은 수도권과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열세였고, 진보 후보들은 노동자 정치 1번지라는 울산과 창원에서 지리멸렬했다.

대선 당일, 아파트 시장의 양극화가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일 것이라는 예측은 뒤늦은 감이 있다. 그럼에도 오늘 투표장으로 나서기 전, 유권자들이 아파트와 관련된 장부상 수치만큼은 한번쯤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계부채 총액은 1000조원에 도달했고, 가계 간 담보대출이나 다름없는 전세시장의 규모는 600조원을 넘어섰으며, 이 빚들의 담보물인 전국 아파트 시가총액은 1931조원이다. 국세청 과세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1인당 평균소득은 6895만원, 전체 평균소득은 3460만원이다.

그리고 8년 뒤면, 2002년에 태어난 저출산시대의 첫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눈앞에 다가온 저성장의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욕망의 정치’가 아니라 ‘욕망의 근검절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