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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도시들은 주로 어디에 있으며 왜 그곳에 생겼는지 알려주세요
js**** 조회수 1,689 작성일2008.04.04

도시들은 주로 어디에 있으며 왜 그곳에 생겼는지 써 주세요.

내공 드립니다. 오늘 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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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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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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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쪽 활동1염전:바닷물을 논에 끌어들여 소금을 생산한다

비닐 하우스:겨울에 먹지못할 채소나 과일을 먹는다.

42쪽 활동2

대전 넓은 밭이 펼쳐진 곳 인터넷,백과사전

(한밭)

43쪽 활동3

의생활:모시(모시풀)와 삼베(삼)로 옷을 만드는 점 무명(목화) 비단(누에고치)로 옷을 만드는 점

식생활:김칫독을 땅에 묻어 보관하는점

주생활:불을 지피면 바닥이 따뜻해지고 거기에 밥도 해 먹는 점

44쪽 활동1 ㅈㅅ하지만 사회과 부도 28쪽 참고 부탁 설명은 교통이 편리!!

44쪽

활동2

조상들의 의식주

 

우리 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의 날씨가 뚜렸하기 때문에 조상들은 봄,여름,가을,겨울에 따라 입는 옷도 뚜렸해집니다. 먼저 봄에는 겨울보다는 얇지만 여름보다는 두꺼운옷,여름에는 모시처럼 부드럽고 바람이 잘통해 시원한 옷,가을에는 여름보다 조금 더 두꺼운옷,겨울에는 솜옷처럼 따뜻한 옷을 입었습니다.  이때 훌륭한점은 우리 조상들은 사계절의 날씨에 따라 옷을 골라서 입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음식도 옷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에 맞는 음식으로 먹었습니다.  봄에는 화전을 주로 먹었습니다. 화전이란 것은 떡에 국화같은 꽃을 붙여서 먹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삼계탕,화채가 대표적이죠..삼계탕은 여름내내 더우니까 몸의 영양분을 채우기위해 먹었고 화채는 수박같은 시원한 것들을 국물을 내어 먹은음식입니다. 가을에는 송편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가을에는 추석이 껴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냉면도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집. 집은 남부지방 ,북부지방 처럼 각지방에 따라 달라. 먼저 바람이 너무 세게 부는 섬지방에는 바람에 지붕이 날라가지 않게 새끼줄로 촘촘히 지붕을만들고 돌같은 부거운 것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돌담도 많이 볼수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마루를 만들었는데 마루는 방과 방사이에 바람이 잘통하도록 만들어 놓은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에 대부분 마루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조상들의 지혜로 만든 온돌을 이용해 겨울내내 따뜻하게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45쪽 1,4,5 지역 주변에 하천이 흘러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평야가 넓어 농사짖기 좋고 산에서 임산물을 얻을 수 있다, 여러 개의 길을 쉽게 만들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다.

46쪽 활동2 여러가지로 넣을께요.

서울




서울 지방은 지역 자체에서 나는 산물은 별로 없으나 전국 각지의 여러 가지 식료품이 서울로 집중되어 다양하고 화려한 음식을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으로 손꼽히는 곳이 서울과 개성, 전주 지방이다.
특히 서울은 조선왕조시대 5백년의 도읍지였으므로 왕족과 양반계급이 많이 살던 곳이라 격식이 복잡하고 맵시를 보는 음식이 극히 많다. 외국사신도 많이 드나들어 화려한 맛과 함께 의례를 존중하는 관습이 음식의 차림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음식은 식품을 복합적으로 쓰고 양념도 많이 써서 복잡한 맛을 내며, 간은 짜지도 맵지도 않고 대체로 중간정도이다. 또한 음식의 가짓수가 많고 한 가지의 양을 조금씩 차리는 특색이 있다.
떡의 모양에도 상당히 기교를 부렸으며 맵시를 많이내는 경향이 있다. 떡의 크기는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작고 앙증맞게 빚었으며 무척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담아 멋을 많이 낸다. 떡중에서 가장 희귀한 떡이 궁중에서 합병 또는 후병, 또는 봉우리떡, 두텁떡이라 불리는 것으로 민간에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설렁탕, 육개장, 신선로, 잣죽, 떡국, 장김치, 갑회, 육포, 족편, 전복초,홍합초, 너비아니, 갈비찜, 약식, 구절판, 두텁떡


경기



경기도는 옛 서울 개성을 포함하고 수도서울울 둘러싸고 있는 지형으로서 산과 바다로 접해 있으며 한강을 끼고 있어 선사시대부터 도민의 생활은 수렵 어업 농경의 풍부한 물자와 다채로운 재료에 의한 식생활로서 우리민족의 우수한 식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산간지방과 연결되어 산촌의 성격을 띄며 한강지류의 각 지방은 담수어요리를 발달시켰다. 또한 북쪽과 남쪽의 극단적인 기후분포가 없이 온화하여 맛에서도 온화함이 주종을 이룬다.
물론 고려서울 개성과 수도 서울이 중심이 되어 사치스럽고 복잡한 음식과 양반, 중인의 중간 계층의 요리가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소박하며 중간정도의 간과 양념을 한 구수함을 즐기며, 량은 많은 편이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문화와 음식의 유입이 있어도 주민의 기호와 생활감정으로 향토적 음식으로 동화되어 성장 발전하였다. 뿐만아니라 서울을 중심으로한 지역적 위치로 이 지방의 음식은 전국각지로 퍼져 나가서 전국적으로 일반적 통용 음식으로 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조랭이 떡국, 개성편수, 공릉장국밥-, 여주산병, 우매기, 석탄병, 종갈비찜, 홍해삼, 수원갈비, 보쌈김치, 용인외지, 이천 게걸무 김치, 쑥굴레, 근대떡, 무릇쑥조림, 낭화, 물쑥나물, 우찌지, 의정부떡갈비

강원



강원도는 영서 내륙·산간지방과 영동 해안지방으로 나눌 수 있으며 지방마다 생산되는 산물이 크게 다르고 음식 또한 각기 특색이 있다.
내륙·산간지방은 옥수수, 감자, 메밀 등이 많이 생산되고 주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발달하였다. 산에 나는 도토리, 칡뿌리, 산채 등을 음식에 이용하였고 육류를 쓰지 않고, 소(素)음식이 많다.
이 식품들은 옛날에는 구황식품에 속하였지만 지금은 향토의 별미로 타지역의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되고 있다.
해안지방은 생태, 오징어, 미역등 다양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 건어류와 젓갈류, 신선한 해산물로 음식맛이 독특하다.
강원도 음식은 다른 지방처럼 사치스럽지 않고 극히 소박하고 먹음직스러우며 특히 감자, 옥수수, 메밀 산채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막국수, 닭갈비, 감자 옹심이, 초당 순두부, 오징어순대, 올챙이국수, 칡국수, 칡송편, 메밀묵, 황기 백숙, 뽕잎 막국수, 감자 시루떡

충북



충청북도는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바다에 접해있지 않은 유일한 내륙지방으로서 북부의 산간지와 중부의 평야지, 남부의 중간지가 고르게 분포되어 계절에 따라 온갖 곡물과 산야채가 생산되고, 각종 토종동물과 민물고기등이 서식하여 이를 바탕으로 한 토속적인 음식이 발달하였다.
음식의 맛은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대체로 맵고 짜지 않으며,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여 토속적인 맛을 내며 음식의 모양과 색깔이 요란하지 않고, 자연상태에 가까운 조리법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옥계백숙, 도리뱅뱅이, 생선국수(남부지방)
꿩요리, 붕어찜, 새뱅이찌개, 올갱이국밥(중부지방)
칡전, 향어비빔회, 산채비빔밥(북부지방)

충남



농업이 성한 충청남도에서는 쌀, 보리, 고구마 같은 곡식과 무, 배추 같은 채소 그리고 목화와 모시가 많이 생산되었다. 또 해안지방은 해산물이 풍부하며 내륙에는 좋은 산채가 많이 난다.
삼국 시대 때에 백제에서는 쌀, 고구려에서는 조, 신라에서는 보리가 주곡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만큼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쌀이 많이 생산되고 그와 함께 보리밥도 즐겨 먹는다. 죽, 국수, 수제비, 범벅같은 음식이 흔하며, 특히 늙은 호박으로는 호박죽이나 꿀단지 범벅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떡에도 많이 쓴다. 굴이나 조갯살로 국물을 내어 날떡국이나 칼국수를 끓이며 겨울에는 청국장을 즐겨 먹는다. 경상도 음식처럼 매운 맛도 없고 전라도 음식처럼 감칠 맛도 없으며 서울 음식처럼 눈으로 보는 재미도 없으며 서울음식처럼 눈으로 보는 재미도 없으나 담백하고 구수하며 소박하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소곡주(서천), 호두과자(천안), 생강한과(서산), 인삼정과(금산), 어리굴젓(서산),
인삼어죽(금산), 위어회(논산), 밀국 낙지탕(태안), 더덕구이 정식(예산), 구기자차(청양),
청국장, 호박범벅, 호박꿀단지

경북



경상북도는 한반도의 남부지방에 위치하여 동쪽의 태백산맥과 북서쪽의 소백산맥 사이에 비교적 넓은 산간평야를 형성하고 큰 분지형을 이루었으며 내륙지방을 굽어 흐르는 낙동강 주변에는 기름진 농토의 평야가 펼쳐져 있다.
기후가 온난하여 일찍부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생활의 기틀 위에 신라의 찬란한 불교문화와 조선시대의 유교적 전통 등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독특한 식생활 문화가 형성발달되어 왔다.
맑고 긴 동해안을 끼고 있어서 어촌 식생활을 엿볼 수 있고, 봉화 등 북부지방에서는 산간 지역적 식생활도 엿볼 수 있는 등 약간의 지역적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산채와 곡식이 다양하고 넉넉하며 해산물 또한 풍부하여 농수산물이 식생활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매우 소박하고 보수성이 강한 지역인지라 전통적인 음식이 토착화되어 향토음식으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기후가 따뜻한 까닭으로 음식의 맛은 대체로 얼얼하도록 맵고 짠 편이며,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을 반영하듯 멋을 내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소담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안동식혜, 석감주(구미), 다슬기국(영천), 닭백숙(청송), 집장(영양),
밥식해(포항,영덕), 횟집나물(청도), 수수풀떼기(봉화), 호박떡(울릉)


경남



남부지방의 젖줄인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농사와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농산물 위주의 식생활을 해왔고 또한 동남쪽이 바다에 접해있어 다양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농수산물이 식생활에 조화를 이루게 되었다.
내륙지방은 계절별로 생산되는 채소, 과일을 건조가공 저장하여 겨울을 대비하였으며, 해안지방은 젓갈류와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을 즐겨 먹었고, 산간지방은 나무열매로 만든 떡, 묵 등 식량대용식과 산채를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또한 이곳은 기후가 따뜻하므로 음식의 간이 대체로 맵고 짠 편이며 소박하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진주비빔밥, 물메기떡국, 어탕국수, 아귀찜, 논고동찜, 들깨토란탕, 콩나물장조림,
해삼통지짐, 기장어묵, 전복김치, 곤달비장아찌, 멸치회, 감단자, 신선주, 동래파전

전북



예로부터 넓고 기름진 평야와 바다를 끼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한 토반들의 부와 풍류의 지대한 관심으로 음식문화가 발달되었다.
넓은 평야로 인한 풍부한 쌀과 부식, 해안에서 얻는 해산물 드의 넉넉한 재료와 맛과 멋을 최고로 여기던 양반네 들의 구미에 맞는 각종 지역음식이 발달하여 꽃을 피웠고, 더불어 예와 전통을 중시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아낙네들의 솜씨가 비교적 잘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전주 지방의 콩나물은 맛있기로 이름나 있다. 전라도 지방의 상차림은 음식의 가짓수를 많게 하여 상 위에 가득 차린 음식으로 외지 사람을 놀라게 한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비빔밥, 콩나물국밥(전주), 백합죽(부안), 추어탕, 고들빼기 김치(남원),
우어회(익산), 감 장아찌(완주), 애저(진안), 풍천장어(고창), 순창고추장

전남



서남해의 기름진 평야와 해안을 끼고 있어 곡식, 해물, 산채가 풍부하고 음식의 가짓수가 많다.
이곳에는 또 특이한 젓갈이 많다. 기후가 따뜻하여 음식의 간은 센편이고 고춧가루도 많이 써서 매우며 갖은 양념을 사용하여 음식의 맛이 진하고 감칠 맛이 난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나주곰탕, 홍어어시욱, 죽순나물, 고들빼기 김치, 갓김치, 엽삭젓, 진도홍주, 부각, 은어회


제주




제주도는 어촌, 농촌, 산촌으로 구분되어 생활 방식이 서로 다르다. 농촌에서는 농업이 중요한 생산 활동이고, 어촌에서는 해안에서 고기를 잡거나 잠수 어업을 주로 하며 산촌에서는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거나 버섯, 산나물을 채취해서 살아간다. 농산물인 쌀은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콩, 보리, 조, 메밀 밭벼 같은 잡곡을 생산한다.
고구마는 조선 영조 때에 조엄이 대마도에서 가지고 와 제주도에서 시험 재배를 한 뒤로 이곳의 중요한 산물이 되었다. 제주도는 무엇보다도 감귤이 유명한데 이미 삼국 시대부터 재배하였고, 전복과 함께 임금께 올렸던 진상품으로 이곳의 특산물이다.
제주도 음식은 채소와 해초가 주된 재료이고, 바닷고기도 가끔 쓴다. 수육을 만들 때에는 주로 돼지고기와 닭을 쓴다. 제주도 사람의 부지런하고 꾸밈없는 소박한 성품은 음식에도 그대로 나타나서 음식을 많이 하거나 양념을 많이 넣거나 또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음식은 별로 없다. 각각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내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간은 대체로 짠 편인데 더운 지방이라 쉽게 상하기 때문인 듯하다. 제주도에서만 나는 자리돔, 옥돔이 있고 전복과 꿩이 흔하며 한라산에서는 표고버섯과 산채가 난다. 겨울에도 기후가 따뜻하므로 김장을 담글 필요가 없고 담가도 종류가 적으며 짧은 기간 동안 먹을 것만 담근다.

♠대표적인 향토음식
전복죽, 꿩메밀칼국수, 표고버섯죽, 문어죽, 메밀빙떡, 옥돔 미역국, 자리물회,
한치물회, 갈치호박국, 성게국, 자리젓, 오분자기젓, 한치젓,갈치젓

활동3 여름: 대청마루, 모시옷, 삼베옷, 등등거리

겨울 : 배자,김장,온돌,솜옷,우데기

그림은 첨부를못해서,, 그냥 그려주세요 등등거리로 할께요~

말주머니: 옷이 달라붙어 짜증나십니까? 그럼 등등거리를 써 보세요. 여름이 확~바뀝니다.

그냥 말: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등뿍 담긴 등등거리! 정말 가볍고 시원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나는 지혜,등등거리 입니다.

활동4

평창군은 강원도에 있는 마을로 태백 산맥에 위치하고 있어 지대가 높다. 이러한 곳은 여름철이 되어도 낮은 평지보다 기온이 서늘하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서늘 한 곳이라는 똣에서 '고랭지'라는 말을 쓴다. 고랭지 농업은 해발 고도가 높은 산간 지역에서 평야보다 서늘한 기온, 많은 강우량, 긴 일조시간등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 방법을 말한다. 채소 중에는 낮은 기온에서 싹이 터서 자라는 것이 많은데 그러한 채소를 다른 곳은 보통 봄에 심어 여름에 거두나, 고랭지 농업지대는 여름철에 심어 가을철에 수확하여 먹는다. 특히, 가을 철 김장 배추는 이러 한 곳에서 재배한 것이 많다.

좋은 답변 되셨길 ^^

직접 쓴 것도 많아요ㅠㅠ 제발 채택부탁

200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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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7****
고수
사회, 도덕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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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은 아무나 막 생기는게 아닙니다.(너무 당연한 얘길 했나?)

 

도시가 생기는 요인에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인공적 요인

 

이 원인은 주로 교통, 환경, 행정 수도의 이전에 의해 도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중2라 중1 사회는 생각나지 않는군요. ㅋㅋ)

충청남도에서 ??(도시 이름)에서 도청을 xx로 옮겼더니 xx시의 인구는 많아지고

 

??의 인구는 낮아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도시의 생성은 행정 수도의 이전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교통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서해안 지역에는 1차 산업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인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인구가 몰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도시가 생겨난 겁니다.

 

환경

 

서울에 폭설이 내려서 밖에도 못 나갈 지경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일이 아예 안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강원도와 같은 산간 지방에

 

내리는 폭설의 빈도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람들은 자연 재해를 피하여 자연 재해가 제일 적은 곳을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그게 서울, 경기도에 인구가 밀집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정부의 정책

 

어느 역사에서나 수도에 인구가 안 몰린 적이 없습니다.

 

신라의 전성기 때 경주의 인구는 약 100만이었으며, 고구려 망하기 직전은 평양의 인구는

 

약 70만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이 고려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옮겼을 때,

 

초기에는 조선에 대한 적개심에 개경을 떠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중후반에 들어서는 조선의 인구가 한성에 많았지요. 그 당시에는

 

온 인구가 농사를 짓고(소수는 장사, 공업)살았기 때문에 지역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숙종 때 화폐 제도를 시행하면서 비교적 상업이 활발한 개경, 한성에서만 활발히

 

쓰였다는군요;;

 

1000만을 넘었던 서울의 인구도 정부의 정책에 의해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2. 환경적 요인

 

이건 인공적 요인보다 영향이 덜한 경우입니다.

 

외딴 산골보다 농사 짓기 편한 평야에 인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 도시를 만들기도 합니다.

 

개성 상인이 생긴 이유가 조선 정부가 개성 출신을 안 뽑음으로써

 

선비들이 출세할 길을 일찍 버리고 '차라리' 돈이나 벌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개성 상인이 생긴 것이지요.

 

 20000~

2008.04.05.

  • 출처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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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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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bi****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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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생기는 요인에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인공적 요인

 

이 원인은 주로 교통, 환경, 행정 수도의 이전에 의해 도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중2라 중1 사회는 생각나지 않는군요. ㅋㅋ)

충청남도에서 ??(도시 이름)에서 도청을 xx로 옮겼더니 xx시의 인구는 많아지고

 

??의 인구는 낮아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도시의 생성은 행정 수도의 이전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교통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기 이전에는 서해안 지역에는 1차 산업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인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인구가 몰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도시가 생겨난 겁니다.

 

환경

 

서울에 폭설이 내려서 밖에도 못 나갈 지경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일이 아예 안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강원도와 같은 산간 지방에

 

내리는 폭설의 빈도에 비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람들은 자연 재해를 피하여 자연 재해가 제일 적은 곳을 터전으로 삼았습니다.

 

그게 서울, 경기도에 인구가 밀집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정부의 정책

 

어느 역사에서나 수도에 인구가 안 몰린 적이 없습니다.

 

신라의 전성기 때 경주의 인구는 약 100만이었으며, 고구려 망하기 직전은 평양의 인구는

 

약 70만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이 고려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옮겼을 때,

 

초기에는 조선에 대한 적개심에 개경을 떠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중후반에 들어서는 조선의 인구가 한성에 많았지요. 그 당시에는

 

온 인구가 농사를 짓고(소수는 장사, 공업)살았기 때문에 지역 격차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숙종 때 화폐 제도를 시행하면서 비교적 상업이 활발한 개경, 한성에서만 활발히

 

쓰였다는군요;;

 

1000만을 넘었던 서울의 인구도 정부의 정책에 의해 조금씩이나마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2. 환경적 요인

 

이건 인공적 요인보다 영향이 덜한 경우입니다.

 

외딴 산골보다 농사 짓기 편한 평야에 인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 도시를 만들기도 합니다.

 

개성 상인이 생긴 이유가 조선 정부가 개성 출신을 안 뽑음으로써

 

선비들이 출세할 길을 일찍 버리고 '차라리' 돈이나 벌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개성 상인이 생긴 것이지요.

200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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