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무해하다지만…“못 미덥다” 우산·우비 ‘중무장’

경태영·김향미·김형규·정희완 기자

전국 방사능 비 내린 날 ‘불안한 하루’

<b>빼곡한 우산 행렬</b> 서울 연세대 정문 앞 사거리에서 7일 학생들이 방사능 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우산을 쓴 채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빼곡한 우산 행렬 서울 연세대 정문 앞 사거리에서 7일 학생들이 방사능 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우산을 쓴 채 보행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전국이 방사능 비에 움츠린 하루였다. 7일 전국적으로 방사성물질이 섞인 비가 내리면서, 인체에 해가 없는 수준이라는 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은 줄고, 각종 행사는 취소됐다. 일부 초·중학교와 유치원은 휴업에 들어갔다.

◇ 등·하굣길 풍경 = 이날 교사와 학부모들은 등·하굣길에 어린 학생들이 비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다. 서울 노원구 계상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 봉사단과 교사들이 오전 8시10분쯤부터 교문 앞에서 학생들의 우비·우산 착용 여부를 살폈다. 서대문구 홍제초등학교 관계자도 “오늘 오후로 예정됐던 5학년 학생들의 물로켓 대회를 취소시키는 등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김승화씨(36)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인데, 휴교령이 내려질지 몰라 평소보다 40분쯤 늦게 학교에 보냈다. 우산을 챙겨 보냈는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자가용으로 아이들의 등·하교를 직접 챙기면서 학교 주변은 심각한 교통혼잡을 빚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날 유치원 84곳, 초등학교 41곳, 중학교 1곳 등 126곳이 교장 또는 원장 재량으로 휴업·휴원하고 유치원 6곳, 초등학교 20곳, 중학교 17곳 등 43곳은 단축수업을 했다고 밝혔다. 휴업이나 단축수업을 한 유치원은 전체의 4.5%, 초등학교는 전체의 5.3%다.

전북지역에서도 5개 초등학교가 임시휴업을 하고 10개 초등학교는 단축수업을 했다. 광주시·전남도교육청도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비가 내리면 학교장 재량으로 휴업을 할 수 있게 했으나 실제 휴업한 학교는 없었다. 울산시교육청은 휴업령을 내리지는 않았으나 체육수업과 현장학습 등 야외활동을 자제해줄 것을 각 학교에 당부했다.

◇ 시민들 외출 삼가 = 이날 시민들은 출퇴근길에 우산뿐만 아니라 우비·마스크 등을 챙겼다. 아예 외출을 삼가는 시민들도 많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열차 안에서는 “방사능 비가 새지 않는다”며 우비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등장했다.

회사원 정환섭씨(33)는 “방사능 비가 내린다고 해서 우산을 챙겨 나왔고 오늘은 회사 외에는 외출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용음악학원 보컬 강사인 이모씨(24)는 공기로도 방사성물질에 오염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도 외부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걱정스럽지만 묵묵히 일터를 지켰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고물수집을 하는 이창근씨(45)는 작업복에 야구모자만 쓴 채 리어카를 끌고 일을 했다. 이씨는 “불안해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아저씨는 ‘불안해서 쉰다. 방사능 비 조심하라’고 하더라”고 했다.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배추노점상을 하는 이명순씨(65)는 “방사능 비는 알지도 못했는데 앞집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모자 쓰고 일하라고 해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농·산촌과 도시 곳곳은 시민들이 들녘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등 외출을 자제해 비교적 한산했다.

◇ 각종 행사 취소 = 군경도 방사능 비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서울경찰청은 ‘비가 오면 전·의경들의 외부활동을 자제시키라’고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다. 경남 창원의 제39보병사단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영내 유격훈련장에서 실시하려던 직할대대 소속 200명의 유격훈련을 보류하고 유격체조·팀워크체조 등 체육관 실내훈련으로 대체했다.

광주 북구는 방사능 비 우려가 확산되자 이날 개막하려던 봄꽃축제 일정을 1주일 뒤로 미뤘다. 충북교육청은 8~9일 열릴 제40회 충북소년체전에 앞서 7일로 예정됐던 초·중학교 축구 5경기와 초등부 야구 예선전 4경기를 8일로 순연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7일 오후 열릴 예정이던 프로야구 LG-SK(잠실구장), 삼성-롯데(대구구장), 한화-KIA(대전구장), 넥센-두산(목동구장) 경기를 모두 취소했다. KBO는 앞서 4개 구장 경기감독위원에게 비가 내릴 경우 선수 보호 등을 이유로 경기 취소를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 수산시장은 한숨 =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횟감을 파는 송승근씨(43)는 오전 9시부터 점심이 지나는 때까지 한 마리도 팔지 못했다. 송씨는 “비 오는 날은 원래 손님이 줄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등어 자반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요새는 장사가 잘될 때인데 한여름보다 안된다”며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일본산인지 물어본다. 방사능 우려가 일반 소비자들에게 널리 퍼졌다”고 전했다.

대형마트에서도 수산물 판매가 급감했다. 점심 무렵 서울 창전동의 하나로마트에선 20여명이 장을 보고 있었지만 수산물 코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트 관계자는 “국산은 안전하다고 해도 바다에서 나온 건 다 오염된 것 아니냐며 못 미더워한다. 매출이 20~30%는 줄었다”고 말했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