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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농구 NBA 한국인
wnsd**** 조회수 18,323 작성일2013.11.02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린

 중국인 야오밍 등

다른 아시아권  출신의 NBA 선수가 나왔는데

 왜 우리나라 출신 NBA 선수는 아직까지 나오지 못한걸까요?

야오밍은 사기적으로 키가 크지만 제레미 린은 191cm 로 NBA 평균신장인 201cm에

10cm 나 작은데 뛰고 있네요 도대체 왜 우리나라 에서는 NBA 선수가 나오지 못하는걸까요?

구체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좀해주세요 영어가 않통한다는 말은 빼구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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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생활 73위, 농구 59위, 농구 기술, 규칙 40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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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기사 입니다. 질문자님의 질문에 딱! 적합한 기사거리여서

제 사견보다 더 정확할 것 같기에 퍼옴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월에 불어온 제레미 린 열풍은 한국 농구팬들에게도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검은머리의 농구선수가 NBA 코트를 휘젓는 것은 오로지 만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리만족만 하기엔 뭔가 아쉽다. 한국에서는 제레미 린이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단언컨대 현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2월 말 NBA 올스타전을 취재하러 미국 플로리다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창 제레미 린 열풍이 불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열풍도 동양인들의 호들갑이 한 몫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착각이었다. 아니,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자기 비하라고 보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현지 취재진 뿐 아니라 ‘미국인’들은 진심으로 린을 존중하고, 그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린의 경기를 보려고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온 부부도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옆에 있는데, 기자들은 린에게만 질문하고 싶어했다. 경기를 이긴 건 상대팀인데, “어떻게 이겼냐”보다는 “린은 어땠나?”를 물어보고 있었다.

 

NBA, 동양인에게는 너무 높았던 벽

궁금했다. 왜 당신들은 제레미 린에 열광하는가?

 

대다수가 ‘언더독(Underdog)’으로서 한계와 편견을 이겨냈기 때문이라 답했다. 린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NBA에서 뛰는 동양인들은 210cm가 넘는 장신이거나 열광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는 중국, 일본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야오밍(229cm)을 제외하면 농구다운 농구를 보여준 선수도 없었다. 이란에서 온 하메드 하다디는 218cm의 큰 키에 수비와 리바운드는 물론, 필요할 때는 공격까지 지시하던 영특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 재능은 아시아 무대에서만 빛났다. NBA에서 하다디가 한 일이라고는 코트 왕복뿐이었다.

 

하다디에 앞서 중국에는 왕즈츠가 있었다. 2000년, 아시아의 문호를 개방한 첫 인물이다. 214cm의 장신에 3점슛까지 던질 줄 아는 선수였다. 하지만 5년간 그가 남긴 기록은 평균 4.4점 1.7리바운드였다. 장신자만 도전했던 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국가대표 포인트가드 타부세 유타, 대만에서는 ‘슈퍼 덩커’ 첸신안, 중국에서는 ‘중국의 코비’ 쑨예와 국가대표 주전가드 류웨이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이들 중 몇몇은 시범경기 중에 방출됐고, 그나마 살아남은 쑨예는 0.6점이라는 초라한 점수만 남겼다. 쑨예는 요 근래 몇 년간 우리대표팀을 못살게 굴었던 에이스였다.

 

대만인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제레미 린이 NBA에서 주전 가드로 뛰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191cm의 그리 크지 않은 키에, NBA 팀에서 두 번이나 방출됐던 그가 요즘에는 ‘언더독’의 아이콘이 됐다. 50~60년대 미국농구계에서는 ‘흑인은 머리가 나쁘고 쉽게 흥분해서 가드 같은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다’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오늘날 NBA 30개팀의 포인트가드 자리는 대부분 흑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농구계에는‘아시아인들은 탄력이 떨어지고 힘이 약해’라는 편견이 있었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개척자’들은 그 한계와 편견을 이기지 못했다. 반대로 린은 해냈고, 덕분에 존경받고 있다.


이러한 성공스토리는 국내 농구선수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에게도 한때 하승진이라는 특급 유망주가 있었다. 그러나 221cm라는 큰 키 외에 그가 내세울 장점은 없었다. 2시즌동안 그는 팀의 12번째 선수였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자리였다. 더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여긴 소속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하승진을 내보냈다. 슈터 방성윤과 포워드 최진수도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방성윤은 미국에서도 귀한 3점 슈터였다. 그러나 그냥 ‘슈터’였다. 현대농구에서는 슛만 잘 던진다고 뛸 수가 없다. 수비도 하고, 드리블로 상대도 제칠 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선 통했던 방성윤이지만, 미국 무대에서는 슛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최진수는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간 덕분에 언어도 되고, 명문대학(메릴랜드)에도 스카우트 됐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자신을 홍보하려고 DVD를 제작해 돌렸던 제레미 린보다는 더 좋은 환경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학업과 차별이 발목을 잡았다. 그도 짐을 싸서 돌아왔다. 이처럼 NBA 무대는 한국인에게만 힘든 무대가 아니다. 아시아인들은 문고리조차 잡기가 힘들다. 미국 NCAA의 1부 리그(디비전 I)에 등록된 학교만 330개가 넘는다. NBA에는 그 중 선택받은 30명만 뛰는 무대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유럽과 아프리카 출신 유망주들 때문에 자리가 줄었다. NBA에 간다고 끝이 아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누구든 왕즈츠, 하승진 신세가 된다.

 

한국 선수들의 NBA 진출이 비관적인 이유

그렇다면 한국에서 NBA 선수가 배출될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우리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을 보면서 느꼈던 희열을 농구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렇다. 그 이유는 이미 하승진과 방성윤, 최진수의 예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NBA 진출 가능성을 논할 때 오로지 장신자에게만 한정지어왔다. 그나마 통하는 무기가 큰 키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는 요즘 NBA를 안 보는 어르신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다. 물론 키가 크면 주목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농구에서 센터의 역할은 갈수록 줄고 있다. NCAA에도 210cm가 넘는 장신 선수는 많다. 명문대학 캔자스의 주전 센터 제프 위씨(211cm)는 한 경기에 블록 7개를 거뜬히 해낸 선수다. 하지만 올해 NBA 드래프트에서 과연 신인선수로 선발될 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수비가 좋은 선수이지만 NBA의 경기 페이스에서는 얼마나 활용될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에서 뛰고 있는 센터 중에 위씨를 능가할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승진은 분명 키가 있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간 탓에 기술 발전이 더뎠다. 코치와 에이전트들은 하승진이 중학생일 때 미국에 가거나, 아니면 한국에서 기술을 더 발전시킨 뒤에 미국에 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꼭 센터에서만 재목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은 예로부터 슈팅 능력이 뛰어나고, 판단력과 근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80년대 이충희가 여러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배경이기도 하다.

 

관건은 어느 포지션에서 도전하느냐가 아니라, 몇 살에 도전하느냐에 있다.

지난 2003년, NBA 에이전트가 직접 한국에 와서 서장훈의 기량을 확인하고 갔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나이가 너무 많다’였다. 꼭 센터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NBA 진출을 꿈꾸는 가드, 포워드, 센터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20살에 가면 너무 늦다. 잘못된 습관과 버릇을 고치고, 새로운 플레이를 내 것으로 만들기에도 너무 늦은 나이다.

제레미 린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선수다. 농구도 미국인들과 했다. 그것도 차별을 겪어가면서. 원주 동부의 강동희 감독은 “전형적인 미국 농구를 하는 선수”라고 린을 평가했다. 개인기가 좋을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흑인들과 부딪쳐가며 농구를 했기에 NBA에서도 자연스럽게 자기 플레이가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의 농구는 NBA의 그것과 다르다. 신장과 운동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팀 플레이가 많다. 지도자들도 이를 당연시  한다. 팀 플레이가 잘 돼야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개성’은 자연스럽게 도외시되고 획일화된 플레이만 주입된다.

 

고교, 대학 무대에서 ‘유망주’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선수 중 드리블로 상대를 제치고 레이업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도자들도 기본기를 정확히 모른다. 한 원로농구인은 “슛이 안 들어간다고 뭐라 할 것이 아니라, 그 슛 폼의 어디가 왜 잘못됐는지를 지적해줄 수 있는 지도자들도 줄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 프로농구 선수는 프로에 와서야 슈팅 폼을 교정 받았고, 한 지도자는 “대학교를 거쳐온 선수가 프로에서 스크린 수업을 다시 받는다”며 기막혀 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갖고 온 나쁜 습관과 버릇은 여간해서 잘 고쳐지지 않는다. 유망주의 산실이 되어야 할 아마추어 무대부터가 성적 때문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으니 재목 찾기가 쉽지 않다.


또 한국에서는 190~195cm 되는 중고생이 가드를 보는 경우가 없다. 장신 선수가 부족한 현실상, 그들은 빅맨으로 키워질 수밖에 없다. 스페인이나 리투아니아 등 NBA 선수를 많이 배출해온 국가들은 선수 육성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각자 장점에 맞게 선수를 지도하고, 성적보다는 기량 향상에 포커스를 맞춘다. 성적 앞에서는 풍전등화 신세인 한국 지도자들에게 이는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획일화된 농구에 길들여진 선수에게 NBA의 달콤한 미래는 없다. 차라리 기본기를 다듬어갈 중, 고교시절에 미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언어 문제도 미국 생활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한국프로농구는 외국인선수들을 위해 통역을 제공하고 있지만, NBA는 통역을 따로 두지 않는다. 야오밍도 한 시즌만 통역을 고용한 뒤 홀로서기 했다. 하승진과 방성윤도 미국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혹자는 말한다. ‘농구는 다 똑같은 거 아니야?’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 농구는 구기종목 중 감독의 영향력이 가장 많이 미치는 스포츠다. 대화가 가장 필요한 종목이기도 하다. 팀 작전과 문화에 녹아들어야 하는데 영어가 안 되면 곤란하다. 20대에 미국에 가서 농구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란 시간이 촉박하다.


설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한다고 치자. 이번에는 엄격한 학사시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미국에서 생활한 최진수도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경기에서 뛰지 못했다. 올 해 NCAA 토너먼트에서도 브라질 출신의 슈퍼 유망주 팝 멜로(시라큐스 대학)가 학점 미달로 가장 중요한 경기에 뛰지 못했다. ‘출석’에 의미를 두는 한국 학생들과는 정반대 행보다.

 

NBA 진출, 선수 혼자 힘으론 어렵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재능이 있는 선수라면 어렸을 때 미국에서 도전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걸림돌이 있다. 부모들은 섣부른 도박을 원치 않는다.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면 스카우트 특혜가 따른다. 대학 진학시에는 더 구체적인 딜이 오간다. ‘받은 것’이 있기에 선수들도 1~2년 일찍 프로에 진출하겠다고 쉽게 말을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대학에서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안정적인(?) 프로농구 무대가 찾아올 테니 말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안정을 버리고 무모한 도전을 돕는 것이 꺼려진다.


그렇다면 대한농구협회가 나서야 한다. 중국은 협회가 NBA 진출을 주도했다. 해당 선수가 시장이 작은 연고지에 지명되자 에이전트를 통해 트레이드를 타진하기도 했다. 일본은 기업도 후원에 나섰다.

타부세 유타의 ‘도전 정신’은 팔아먹기 좋은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아무런 지원이 없었다. 오히려 최진수의 경우는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점에 국가대표팀에 불러들여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만들어놨다. 결국 최진수는 한국에 돌아왔고, 지금은 KBL에서 프로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국내외 전문가들과 “한국에서 NBA에 갈 만한 유망주가 있는가, 없다면 과거에는 누가 있었나”라는 주제로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눠왔다. 그때마다 언급된 인물이 바로 KCC 허재 감독이었다. 8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슈터로 명성을 떨친 박인규 씨는 “만약 허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미국에 갔다면 잘 되지 않았을까. 제레미 린의 장점은 흑인 농구를 잘 알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허재의 능력과 근성이라면 도전할 만하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말한다.  강동희 감독도 거든다. “전성기 허재 형이라면 식스맨 가드로는 충분히 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허재 이후에는 한 명도 없었을까? 앞서 언급했듯 서장훈과 김주성은 유력한 NBA 진출 후보였지만, 꿈을 품었을 때는 이미 시기가 지났다. 방성윤과 최진수는 중도에 포기했다. 더 어린 선수 중에는 없을까? 경복고에 재학 중인 3학년생 센터 이종현이 주목을 받았으나 기대만큼 올라오진 못했다. 국내에서는 정상급 선수가 될 자질은 충분하지만 해외를 넘보기엔 무리라는 평가였다.


지금 없다면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보물이 나타났을 때 못보고 지나치거나, 관리 소홀로 골동품이 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비단 ‘NBA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토양이 비옥해야 좋은 새싹이 자라는 법이다. ‘좋은 농구선수’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농구의 패러다임은 새롭게 바뀔 필요가 있다.

201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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