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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의 차이점☆☆
humu**** 조회수 2,839 작성일2003.08.05
학교 숙제 인데요 ,

자료를 찾아보려고 노력은 많이 했지만,

유학자료나, 특징 정도 밖엔 나오지 않네요 ,

차이점은 찾기가 힘듭니다 ,

그 곳을 잘 아시는 분이나, 유학중이신분,

유학다녀오신 분들은 많이 아실꺼라 생각하고,

의견을 모으고자, 이렇게

묻습니다.

하루빨리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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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k40****
고수
윈도우, 한국사, 포털사이트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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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은 13만 422㎢, 인구는 4913만 8831명(2001)이다. 주도(主都)는 런던이다. 면적은 그레이트브리튼섬의 약 57%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스코틀랜드, 서쪽으로는 웨일스, 남쪽으로는 영국 해협, 동쪽으로는 북해와 접한다.

지리적 구분은 ① 런던을 중심으로 하는 사우스이스트, ② 버밍엄을 중심으로 하는 웨스트미들랜즈, ③ 탄전과 기름진 농지를 안고 있는 이스트미들랜즈, ④ 주로 농업지역인 이스트앵글리아,⑤ 맨체스터와 리버풀을 포함하는 노스웨스트, ⑥ 웨스트요크셔 코너베이션(리즈市와 브래드퍼드市를 포함)이 있는 요크셔·험버사이드, ⑦ 유명한 호수지대(湖水地帶)인 노스, ⑧ 콘월 반도를 차지하는 사우스웨스트의 8개 지역으로 크게 나뉜다.

다만, 이 지역들은 지방행정 단위가 아니다. 최남단도 거의 북위 50°의 고위도에 위치하나,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멕시코만류와 편서풍의 영향으로 기후는 비교적 따뜻하고, 강설(降雪)도 적어 거주와 농경에 적당하여 일찍부터 인류가 정착하였다. 스코틀랜드·웨일스 등지에 비하여 산도 적어 북부의 페나인산맥도 해발고도 400∼600m이며, 그 밖에는 콘월 반도와 기타 지역에 약간의 산지가 있을 뿐이다.

면적의 대부분은 평지이거나 기복이 완만한 구릉지로 가경지(可耕地)가 약 40%, 영구목지(永久牧地)와 조방목지(粗放牧地)가 약 40%를 차지한다. 19세기 초부터 1세기 반 이상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약 3배로 증가한 반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합계인구는 약 5배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도 북부에서 남부로 인구이동을 보이고 있다.


잉글랜드는 지리적 ·인구적으로 그레이트브리튼섬, 즉 영국 전체의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스코틀랜드 ·웨일스에는 켈트계 인종이 거주하였으나 잉글랜드에는 5∼6세기에 앵글로색슨인이 켈트인을 쫓아내고 정주하였다. 그 후 노르만인이 정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웨일스인이 잉글랜드인을 앵글로노르만인으로 적대시하는 전통은 거기서 기인된다.

또한 잉글랜드는 1282년 웨일스의 주요부분을 지배하였고, 1536년에는 전(全)웨일스를 합병하였으며,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와, 1810년에는 아일랜드와 연합왕국을 형성하였으나, 정치적 통합의 주체는 사실상 잉글랜드에 있었다. 아일랜드는 다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얼스터 지방만 남기고 1921년 자유국을 선언하고 연합왕국에서 분리해서 자치령이 되었다. 1937년에는 완전독립을 이루고 1949년에는 공화제를 채택하여 영국연방에서도 이탈하였다.

언어도 앵글로색슨어와 노르만어로 구성된 잉글랜드어(영어)가 켈트어를 몰아내고 전연합왕국의 공용어 ·일상어가 되었으며 잉글랜드의 주도 런던은 동시에 연합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종교적으로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전통적으로 비국교도(非國敎徒)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잉글랜드에서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래 국왕을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하는 국교회의 신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잉글랜드는 연합왕국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도 영국은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에 잇따라 제해권(制海權)을 다투고 18∼19세기에 세계제국(帝國)의 지위를 달성하였을 때에도 중심은 잉글랜드에 있었다. 16~18세기에 걸친 영국의 중상주의정책(重商主義政策)은 해외식민지를 원료공급원 ·제품수요지로서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다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산업혁명은 잉글랜드를 전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고 연합왕국의 다른 부분이나 식민지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에 대한 경제적 선진성에 의해서 전세계로부터 초과이윤(超過利潤)이 유입되어 발전을 이룩하였다.

1770년대에 잉글랜드의 총인구 중 농업인구는 40 %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1830년대에는 26 %가 되고 그 후에는 잉글랜드 특히 중부 ·북부의 공업지대는 아일랜드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를 흡수해서 인구구성을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을 추진한 것은 이들 노동력 외에 에너지원(源)으로서의 중부 ·북부 잉글랜드, 웨일스 남부의 대규모의 탄전개발과 각종 신기계 발명, 런던 ·브리스틀 ·리버풀을 비롯한 양항의 존재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부(미들랜드지방)와 북부(랭커셔 ·요크셔 ·더럼 등)의 공업지대가 경제입지론의 고전적인 예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잉글랜드의 산업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최성기가 지나고 사양길로 들어섰다. 즉, 미국을 비롯하여 후진제국의 발전,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의 국제적 지위의 하락, 사회주의권의 성립, 유럽 공동시장의 형성, 이른바 에너지 혁명 등의 모든 원인은 잉글랜드 공업구조의 재편성을 불가피하게 하였다. 잉글랜드 산업은 과거의 튼튼한 산업기반 위에 섬유 ·철강 ·석탄 ·조선 등의 전통산업과 함께 항공기 ·자동차 ·신화학공업 ·원자력산업 등의 분야에서 급속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농업도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에 비교해서 혜택받은 자연조건 때문에 일찍부터 발전하였으나 특히 18세기의 인클로저 운동에 의해서 종래의 조방경영 대신 집약적 대농경영이 일반화되고 생산력도 증대하였다. 주산물은 밀 ·보리 ·호밀 ·사탕무 ·호프 ·과일 등이며 그 밖에 소 ·말 ·양 ·돼지 등의 목축도 성하여 식육 ·우유 ·양피 등을 산출한다. 그러나 공업화가 농업인구를 감소시켜 현재는 식량의 과반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200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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