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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성어 공부

<백문불여일견> <오리무중> 뜻과 유래 알아보자

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뜻: 백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무엇이든지 전해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몸소 경험해 보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는 말입니다. 전한의 선제때 이름을 떨친 맹장 조국이 쓴 말로서 <한서 , 조충국전>에 실려있습니다. 

 

유래: 전한의 9대 황제인 선제때의 일입니다. 

서북 변방의 유목민인 강족이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왔습니다. 

앞서 강족 가운데 선령이라는 부족이 풀을 찾아서 남안까지 나타나자 한의 장군이 그 무리 천여 명을 죽인적이 있었는데  이에 선명의 공격해 온 것이었습니다. 급해진 선제는 후장군 조층국에게 토벌군의 장군을 선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 조국의 나이는 이미 고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제 때 이광리의 휘하 장수로 흉노 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사투 끝에 

포위망을 뚫고 살아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결국 그는 전군을 건진 영웅이 되었고 

이때부터 오랑캐 토발의 선봉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노신을 능가할 사람은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선제에게 달려왔스니다.

선제는 그에게 강족 토벌을 위한 계책과 필요한 병력 등을 물었습니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병력을 운용하는 일은 실제 상황을 직접 보지않고서는 계획하기 어렵습니다. 청하건데 신이 금성군으로 직접 가서 지형을 살핀 뒤 계책을 아뢰겠습니다. 

선제는 웃으면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현장을 답사해 본 조충국은 기병보다는 둔전병: 변경에 주둔하면서 평상시에는 농사도 직게 하던 군사 곧 장기전을 대비하는 시책을 뜻합니다. 그러한 둔전병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하였고 그것이 채택되었습니다. 그후 흉노는 내부 분열을 일으킨 끝에 결국 기원전 53년 한에 투항해왔습니다. 이로써 무제 이래의 한과 흉노의 싸움은 종지부를 찍게 된 것입니다. 

 

百 일백백 聞 들을문 不 아닐불 如 같을여 一 한일 見  볼견 

 

 


오리무중 

五里霧中

 

뜻:  사방 5리에 안개가 덮어있는 속 곧 먼데까지 낀 안개 속에서 길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이 어떤 일의 추이를 알수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후한서>장해전에 나옵니다. 

 

유래:  후한 순제때 장해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학문이 깊다는 그의 명성을 들은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장해는 병을 핑계대고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환관들이 날뛰던 당시 조정을 혐오해서 벼슬자리를 그만두었던 그의 아버지 장패의 뜻을 이어받은 때문입니다. 

장해가 벼슬엔ㄴ 나아가지 않았지만 장해의 학문은 일찍이 세상에 알려져 그의 문하에는 백여 명이 넘는 제자가 항상 모여 있었고 그가 화음산 밑에 은거하고 있을 때에는 추종자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어 그곳에 그의 차를 딴 공초시라는 장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해는 학문뿐 아니라 도술에도 능하였는데 그는 귀찮은 사람이 찾아올까 봐 방술로쏘 사방 5리에 이르는 안개를 일으켜 자신이 있는 곳을 못 찾게 만드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하니다. 

그당시 관서 출신의 배우라는 자가 있었는데 배우 그 역시 안개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것이 3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우는 장해를 찾아가 5리에 이르는 안개를 일으킬 도술을 배우려고 했지만 장해가 5리 안개를  일으켜 숨는 바람에 못 찾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있습니다. 

오늘날 흔하게 쓰이는 오리무중이라는 말은 바로 장해가 일으키곤 했었다는 이 5리무(안개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五 다섯오 里 리수(거리단위를뜻함) 리 霧 안개무 中 가운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