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이 시들의 원문(내용) 좀 써주세요. 설명도 써주심 감사하구요^^
kimp**** 조회수 35,672 작성일2004.07.21
1.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2. 주요한 '불놀이'
3. 한용운 '임의 침묵
4.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5. 김소월 '진달래꽃'
6. 정지용 '유리창 1'
7. 윤동주 '서시'
8.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9. 이육사 '청포도'
10. 이상 '오감도 중 1,2,3편'
11. 이병기 '난초'
12. 김광균 '와사등'
13. 김동환 '국경의밤'
14. 박목월 '나그네'
15. 박두진 '해'
16. 조지훈 '승부'
17. 유치환 '보병과 더불어'
18. 박인환 '목마와숙녀'
19. 김수영 '풀'
20. 이육사 '광야'
21.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22. 유치환 '생명의 서'
23.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이렇게 있어요^^ 찾아주시면 감사하겠구여 18개 이상은 베답이요 ㅋ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sasi****
중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예전에 배운거 잊지말자라는 의미에서, 오기로 합니다^^


1.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최남선

1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泰山)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텨……ㄹ썩, 텨……ㄹ썩, 텨ㄱ, 튜르릉, 콱.

2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者)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텨……ㄹ썩, 텨……ㄹ썩, 텨ㄱ , 튜르릉, 콱.

3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者)가,
지금(只今)까지, 없거던, 통지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의 역시(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텨……ㄹ썩, 텨……ㄹ썩, 텨ㄱ, 튜르릉, 콱.

4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조고만 산(山)모를 의지(依支)하거나,
좁쌀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데를,
부르면서 나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者),
이리 좀, 오나라, 나를 보아라.
텨……ㄹ썩, 텨……ㄹ썩, 텨ㄱ, 튜르릉, 콱.

5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너르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적은 시비(是非)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世上)에 조 사람처럼,
텨……ㄹ썩, 텨……ㄹ썩, 텨ㄱ, 튜르릉, 콱.

6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
저 세상(世上)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中)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膽)크고 순정(純情)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才弄)처럼, 귀(貴)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나라 소년배(少年輩) 입 맞춰 주마
텨……ㄹ썩, 텨……ㄹ썩, 텨ㄱ, 튜르릉, 콱.

<소년, 1908. 11>

이 시는 1908년 11월에 창간된 우리 나라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少年)> 창간호에 실린 개화기 신체시의 대표작이다. 세계열강의 이권 각축장이었던 혼란의 개화기 조선에서 문학으로 민중을 교육시킨다는 최남선의 계몽주의적 문학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시이다.
각 연 7행으로 이루어진 6연 시인 이 시는 `바다'와 `소년'이라는 상징적 두 제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텨… ㄹ썩, 텨… ㄹ썩', `텨ㄱ, 튜르릉, 콱' 등의 대담한 의성어와 감각적 심상을 도입하고 있으며,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등의 점층적 표현과 함께 다양한 수사법이 사용되어 기존의 창가나 계몽 가사류와는 다른 `신체시'로 명명되었다.
1연에서 5연까지는 바다의 절대적 힘과 위력을 청각적으로 변주시켜 온갖 권력과 위인과 허위와 `시비(是非)'와 싸움으로 가득찬 세상을 호령하는 바다의 힘찬 기상과 파도소리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바다는 세상 사람들 모두를 미워하나 그 중 하나 `담크고 순정한' `소년'들을 사랑하니, 소년들이 바다로 와서 자신의 장대한 기상을 배우라고 6연에서는 말하고 있다. `바다'는 나 혼자 거룩하다고 하는 자와 `적은 시비'와 `적은 싸움'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세상을 비판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집단 공동체의 앞날을 걱정하며, `우리'의 앞날을 책임질 `소년배(少年輩)'에 애정과 기대를 쏟는 최남선의 소망을 알 수 있으며 그의 교훈적이며 관념적인 공리주의적 세계관도 엿볼 수 있다.
최남선이 백성을 계몽시키기 위해 문학을 한다는 계몽주의적 목적의식적 문학관으로 일관한 것은 근대적 자아의식의 결여와 미의식의 결함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시가 형식과 강건한 남성적 어조로 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시화한 것은 근대시로의 출발점으로서 시사(詩史)적 의의가 있다.


2.불놀이
주요한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西便)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4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싯벌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야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여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아아, 좀 더 강렬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맥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4월달 다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느끼는 사람 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봄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드러벡이고, 물결치는 뱃숡에는 조름 오는 니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 ―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 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정욕(情欲)을 이끄는 불구경도 인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없는 술도 인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間斷)없는 장구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리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제, 뜻있는 듯이 삐걱거리는 배잣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 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는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로라, 사로라! 오늘 밤! 너의 발간 횃불을, 발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발간 눈물을…….

이 시는 사월 초파일날 대동강변의 불놀이를 구경 나온 사람들의 흥청거리고 들뜬 분위기와 임을 잃은 시적 자아의 슬픔을 대비시킨 작품이다. 여기서 '불'은 강렬한 생의 의지와 열망을 암시하고 , '강물'은 '임'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애(생과 사의 거리)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시적 자아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저어라, 배를 '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고, '정열을 불살르라고'고 부르짖고있다.반복과 영탄적인 어조 때문에 상실감과 비애가 과장되고 있는 흠이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비애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실천적 행위)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배' 를 젖고 '횃불'을 불사르는 행위는 사실상 구체적인 방향성이 결여된 절망적인 몸부림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이 작품은 흔히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 자유시'로 일컬어져 왔다. 나중에 발견된 새로운 자료들에 의하여 이러한 평가는 더 이상 고집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위의 작품이 우리 근대시의 형성,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초기작의 하나임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일련의 대립적 요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과 삶의 대립이다. 둘째 연의 중간 부분을 보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작중 화자는 그의 사랑하는 님을 잃고 홀로 살아 있으면서 괴로워한다. 그런데 작품 속의 상황은 사월 초파일, 많은 사람들이 흥겹게 즐기는 중이다. 강물 위에서는 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며 요란한 불놀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처럼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주위 사람들의 흥겨운 놀이로 표현된 삶의 사이에 있다. 한 편에서는 죽은 이로 인한 괴로움이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산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향락의 활기가 그를 자극하고 유혹한다.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사물과 욕구의 사이에서 주인공은 극도의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을 택할까 생각하기도 하고,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고 정반대의 소망을 말하기도 한다. 주위는 어둡고 불놀이가 벌어지는 대동강의 분위기는 소란스러우며, 이 속에서 그는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의 사이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상반되는 욕망이 서로 다투기 때문에 이 작품의 시상은 단순하지 않고, 때로는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 속에서 그는 마침내 삶의 길을 택한다. 그는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이라고 말하면서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라고 외친다. 이와 같은 태도는 극도의 갈등 속에서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난폭한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앞서 말한 비애와 절망적 태도가 아직 숨어 있다. 마지막 구절에서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이라고 부르짖는데, 이 때 무엇을 불사른다는 행위는 격렬한 도취의 행위이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어떤 파괴적 충동을 암시한다. 그것은 아마도 죽음과 삶의 사이에서 괴로워했던 한 젊은이의 가장 절박한 순간의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식민지 지배 하의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불분명한 가운데 방황했던 한 청년 지식인의 고뇌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 이 작품은 전대의 교훈성이나 계몽성을 탈피하고 개인적 서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 일체의 운율적 제약을 벗어나 감정의 자유로운 유출(流出)에 합당한 자유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대담한 상징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한문투를 최대한 배제한 순우리말 표현 - '외로운 강물', '스러져 가는 저녁놀' 등은 당시로 보아 대단히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자아는 죽음과 삶, 즉 임을 잃고 갖게 된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사월 초파일의 흥겨운 불꽃놀이로 나타난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죽음과 삶의 대립은 어둠과 밝음, 물과 불의 대립으로 이어져 전편을 격정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다시 말해,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 밤이 물 속에 …… '라는 구절로 나타나는 죽음과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에 표출되는 삶의 욕구 사이에서 번민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물'과 '불'이라는 두 원형적(原型的) 상징은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슬픔과 기쁨, 삶의 고뇌와 비상(飛翔) 등으로 표상되는 대립적 요소이다. 그러나 외견상 화합할 수 없어 보이는 이러한 대립은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이라는 구절에서 역설적 논리로써 통합됨으로써 극한적 자학 상태에 빠진 시적 자아를 극적으로 소생시켜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부활의 언덕을 향해 배를 저을 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가 겪어 오던 죽음과 삶, 어둠과 밝음, 물과 불이 결국 동일한 것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시적 자아는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며 더욱 강열한 삶의 욕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에서 보이는 파괴적 충동과 격렬한 도취의 행위는 아직도 절망적 태도와 비애의 감정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대립된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격한 감정으로 표출됨으로써, 때로는 시상(詩想)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여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감정의 지나친 유출로 인한 감정의 허세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러한 애상적 정조는 아마도 일제 치하를 살았던 청년 시인 주요한의 고뇌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감상적(感傷的), 영탄적 정조의 세기말적 징후는 서구 상징주의 문학의 유입과 함께 당시 젊은 지식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박종화, 홍사용, 이상화로 대표되는 <백조> 동인의 경우 3·1 운동의 좌절로 인한 암담한 절망감과 결부되어 퇴폐적이고 애상적인 분위기는 더욱 증폭되게 되었다


3.님의 침묵

한 용 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 시는 연 구분이 없이 사설조의 산문체로 되어 있다. 여성 화자의 경어체의 사용, 우리말의 유려한 구사, 고도의 상징적 수법, 불교적 사상의 심화 등은 이 시를 뛰어난 서정시로 만드는데 총체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이 시의 '역설적 구조'는 밝음과 어둠, 슬픔과 희망, 헤어짐과 만남은 하나라는 역설적 진리를 보여줌으로써 상징성을 더한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역설적 의지의 표현으로 시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시는 '이별-이별 후의 슬픔-희망으로의 전이-만남'이라는 극적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묘미를 느끼게 한다.


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호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 시는 시인이 『백조』동인 시절에 쓴 '나의 침실로'류와는 달리 퇴폐적, 감상적 낭만성을 극복하고 망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응하는 저항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1-3연에는 주권을 상실한 동토에도 찾아오는 봄의 정경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고, 4-6연에는 봄을 맞아 나아가는 힘찬 모습이, 7-9연에는 부활 의지가 노동 의지로 드러나 있으며, 마지막 10연에서는 빼앗긴 들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위기 의식과 함께 민족혼만은 쉬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토로하고 있다.
이 시는 주권과 국토를 빼앗긴 비참한 식민지 현실에서도 살아 있음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5. 진달래꽃

김 소 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 꽃에 있어서 시인의 감정 상승은 각 연의 마지막 행을 통하여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임으로부터 버림받은 슬픔을 제1연에서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는 행위로, 제2연에서는 즉, 임으로부터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행위로, 제3연에서는 떠나는 임에게 짓밟히는 행위로, 제4연에서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행위로 각각 형상화시키고 있다.
1.2연은 말없이 보내면서 떠나는 길에 행운을 비는 표면적인 미덕 이외에, 떠나가는 님이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끈질긴 미련, 즉 임은 떠나갔지만 그를 체념할 수는 없다는 강한 집념이 숨어 있다고 보아야 옳다. 그 집념은 표면적인 진술에 대하여 반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작가가 심층적인 감정을 숨기고 표면적으로 극진한 순정의 미덕만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임이지만 내면 의식 속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 즉 임에 대한 집념과 미련의 잠재의식에서 오는 것이다. 시인은 임이 언제인가는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 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시인이 가지는 마지막 희망인 미련을 짓밟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시인은 원망스런 임이지만 고이 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고려가요 '가시리'의 마지막 2연과 같은 발상법이기도 하다.

6.
유 리 창

정 지 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이 시는 시인이 어린 자식을 폐렴으로 잃고 쓴 시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에 나오는 '차고 슬픈 것', '언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 '물 먹은 별', '산새' 등은 모두 죽은 자식의 표상이다. 시인은 유리창에 붙어 서서 입김을 불었다 지웠다 하면서 죽은 아이의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나 마지막 시행에서는 감탄사를 동원하여 감정의 고삐를 풀고 슬픔의 탄식을 터뜨린다. 이 시에서 '유리창'은 이승과 저승의 운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교감의 매개체이기도 하여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유리창에 가까이 서서 죽은 아이를 생각하는 화자는 창 밖 어둠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 어린 생명의 모습을 한 마리의 가련한 '새'로 형상화하여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고 말하고 있다.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어둠'은 화자의 어둡고 허망한 마음과 조응(照應)이 되고, '물먹은 별'이라는 표현은 별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나타낸다.

7. 서 시

윤 동 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작품은 전 2연으로 되어 있으나 시간의 이동에 따라 과거, 미래, 현재의 3단락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제1연의 1-4행(과거), 5-8행(미래), 제2연(현재)으로 나눌 수 있다.
제1연의 1-4행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의 고백이다.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으며, 또 조그마한 시련('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제1연의 5-8행은 미래의 삶에 대한 신념을 표명(表明)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 갈등('부끄럼')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불쌍한 이웃, 동포 더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체를 지고(至高)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겠으며, 맡은 바 사명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영원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높고 순수한 마음을 뜻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이란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2연은 현재의 상황을 묘사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단락이다. 식민지 상황('밤')에서 시의 화자가 드높은 이상('별')을 실현하는데 현실적 어려움('바람')에 부딪혀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식민지 상황에 처해 있는 젊은 지식인의 고뇌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백(表白)한 시다. 그래서 더욱 진솔(眞率)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백적인 시가 감상에 흐르거나 관념에 빠지기 쉬운데, 이 시는 적절한 시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서정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8.모란이 피기까지는

김 영 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는 영랑이 남달리 좋아하던 모란을 소재로 하여 한시적(限時的)인 아름다움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비애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모란'은 실재하는 자연의 꽃인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대유적 기능의 꽃이다.
연 구분이 없는 이 시는 작품 속에 전개되는 시간의 추이로 보아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현재인 첫째 단락은 1∼2행이며, 미래인 둘째 단락은 3∼4행, 과거인 셋째 단락은 5∼10행, 현재의 넷째 단락은 11∼12행으로 첫째 단락의 반복이다. 첫째 단락에서 시적 화자는 모란이 필 그의 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둘째 단락에 이르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모란이 떨어져 다시 슬픔에 잠기게 될 것을 예견하고 있으며, 셋째 단락은 그가 설움에 잠기게 될 미래의 상황을 증명해 줄 뿐 아니라, 그가 갖고 있는 삶의 구도를 명확하게 보여 준다. 오직 모란이 피어 있는 순간에만 삶의 보람을 느끼는 시적 화자에게 있어서 모란은 봄과 등가적(等價的) 가치로 그의 소망을 표상한다. 그가 추구하는 소망 세계가 무엇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것이 모란으로 대유된 어떤 절대적 가치의 미(美)라고 한다면, 시적 화자는 모란이 피어 있을 때는 자신의 소망이 성취된 것으로 생각하여 보람을 느끼다가, 모란이 지고 말았을 때는 봄을 여읜 보람을 상실한 허탈감에 빠져, 마치 한 해가 다 지나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감상적 유미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화자의 한 해는 '모란이 피어 있는 날'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9, 10행에서 볼 수 있듯이 모란이 피어 있는 날을 제외한 그의 나날은 '하냥 섭섭해 우는' 서러움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넷째 단락에 이르러 화자는 모란이 피는 날을 계속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기다리는 봄이 다만 '슬픔의 봄'이 아닌, '찬란한 슬픔의 봄'임을 시인하게 된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 '찬란한 봄'이라는 의미보다 '슬픔의 봄'이 강조된 표현이라면, 표면적으로는 화자가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기대와 희망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란을 잃은 설움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란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비실제적 세계관의 소유자인 화자가 한 해를 온통 설움 속에서 살아갈지라도 그의 봄은 결코 절망뿐인 '슬픔의 봄'이 아니다. 왜냐하면,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봄은 또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모란은 또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슬픔은 다만 모순 형용의 '찬란한 슬픔'으로 언제까지나 그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줄뿐이다.
모란이 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설움에 잠겨 있는 화자의 태도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와 [내 마음을 아실 이]에서 보여 준 바 있는 '내 마음'의 세계를 한층 더 내밀화시키는 것으로, 영랑으로 하여금 외부 사물과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취하지 못한 시 세계만을 펼쳐 보이게 하였으며, 결국 그의 시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9. 청 포 도

이 육 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의 푸른 빛과 모시 수건의 하이얀 색채감 속에서 이 시가 노래하는 것은 '내 고장 7월'의 참다운 평화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소망일 것이다. 시적 화자가 기다리고 있는 '청포'를 입은 '손님'은 지금은 어두운 역사 가운데 고단한 삶을 겪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평화롭고 밝은 날이 되어야만 돌아올 수 있는 손님을 기다리며, 그 때의 평화롭고 밝은 삶을 소망하고 있다.



10. 오 감 도

시 제1호

이 상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詩) 제 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나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시(詩) 제 3호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든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이 작품은 매우 어려운 느낌을 주고, 사실 그만큼 어렵기도 하지만, 작품의 표면적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전체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네 도막으로 요약된다.
⑴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한다.
⑵ 13인의 아이 모두가 무섭다고 한다.
⑶ 그 중의 어느 아이가 무서운 아이이든, 무서워하는 아이이든 상관없다.
⑷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이 작품이 난해한 이유는 이 간단한 내용 뒤에 숨어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차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선 생각하여 볼 것은 `13'이란 숫자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기분 나쁜 숫자이고 불안한 숫자이다. 여기에는 서양 사람들이 13이라는 숫자를 어쩐지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적 관념 이외에, 예수가 로마인들에게 잡혀가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할 때 사람 수가 열 셋이었다는 연상이 관계된다.
둘째 연에서는 13인의 아이가 모두 무섭다고 한다는 똑같은 문장이 반복된다. 그러면 그들은 왜 무서워하는가? 그들 사이에 어떤 무서운 자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밀고자인가를 불안하게 살피는 제자들 같이). 그러나 누가 무서운 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불안은 더욱 심각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처럼 공포스러운 것은 없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다. 질주하는 행위는 그들 사이에 있는 정체 불명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달아나 보려고 하는 필사적인 행동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13인의 아이 중 무서워하는 아이나 무서운 아이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좋다고 체념하는 어조로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무서운 아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한다면 그들은 모두가 무서운 아이들인 동시에 모두가 무서워하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아무도 남을 믿지 않고, 아무도 서로를 진실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불신의 관계 ― 이것이 13인의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시무시한 분위기의 진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에 가득 차서 도로를 질주한다.
그리하여 그는 절망적으로 마지막 말을 덧붙인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라고. 아무리 질주하여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으므로 질주하거나 않거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음미하여 볼 만한 것이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말들이다. 앞의 괄호에는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 하였고, 뒤에서는 `길을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라 하였다. 길을 뚫려 있든 막혀 있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 길이 어찌 되었든 어차피 상황은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에서 말하는 13인의 아이란 이상의 눈에 비친 불안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석된다. 그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고 다만 막연히 서로를 무서워하면서 불안한 삶을 질주하듯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초점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에게는 서로를 이웃으로서 받아들이고 자기의 마음을 열어 따뜻한 체온과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서로 불안하고, 모두가 모두에 대하여 공포스러운 존재이다. 그는 메마른 현대의 세계를 `13인의아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그렇게뿐이모였오'라고 절망적으로 요약하였던 것이다.


11.난초(蘭草)


이병기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4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르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이 작품은 자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청신(淸新)한 감각으로써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가람의 시조 정신이 잘 드러난다.
섬세한 감각과 절제된 언어로'난초'의 고결한 외모와 세속을 초월한 본성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형상화하고 있다. 의인화 수법을 통해 난초와 독자가 동일화되는 경지까지 유도한다. 이 시조는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지은이의 소망을 드러내며 현대 문명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난초의 고결한 삶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1]에서는 난초가 개화하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다. [2]에서는 난초의 새로 나온 잎과 바람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으며 '아침볕'이란 시각적 이미지와 '난초 향기'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3]에서는 난초와 화자의 마음의 교감이 잘 이루어져 있으며, [4]에서는 난초의 외양과 내면 세계가 잘 묘사되어 있다.
※ 난초를 소재로 한 4편 7수의 연시조로, 난초가 지닌 청아한 모습과 맑고 고결한 성품을 예찬하고 있다. 난초를 깊은 애정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추구하는 고결한 삶의 방식을 통해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를 제시해 준다.
※ 난초의 청신(淸新)한 외모와 고결한 내적 품성( 외유내강 )을 예찬한 작품으로 난초를 의인화하여 노래한 작품이다. 고결하게 살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지향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12.와사등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와사등, 남만서고, 1939>

회화적 이미지를 중시한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기수였던 김광균의 이 시는 문명의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과 낭만적인 감상을 시각화하여 보여 주었다.
이 시의 제목인 와사등(瓦斯燈)이란 gas등을 말한다. 현대 도시문명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밤 거리를 거닐면서 바라본 가스등의 차가운 불빛은 시인에게 슬픔을 느끼게 한다. `와사등'의 빛은 따뜻함을 주는 불빛이 아니라 `차단-한' 불빛이며, `비인 하늘'에 걸려 있는 쓸쓸한 불빛이다. 화자는 와사등을 마치 오갈 데 없이 방황하는 자신에게 갈 길을 재촉하는 신호처럼 느끼고 있다. 가스등 외에도 도시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풍경은 화자에게 슬픔과 방황, 그리고 공허함을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해가 지는 것을 `황망히 나래를 접고'로 표현한다거나, 도시의 늘어선 고층건물을 묘지에 세워진 `묘석'으로 보고 있다거나, 찬란한 야경을 헝클어진 잡초로 보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애와 슬픔으로 가득찬 화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슬픔에 차 있을 수밖에 없다. 화자는 군중 속에서도 공허를 느끼며,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나 고층 건물에서 죽음과 슬픔만을 느낀다.
화자가 와사등을 차갑고 쓸쓸한 불빛으로 느끼고 도시를 묘지처럼 죽음과 두려움으로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 `까닭도 없이 눈물'겹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명백하게 보이지 않는 비애와 공허의 이유를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신호이냐고 독백하는 마지막 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갈 곳을 모르고, 자신에 대한 확신과 지향과 목표 없이 방황하기 때문에 그는 까닭도 없이 슬프고 어두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등잔불과는 달리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가스등의 창백한 불빛 아래 갈 곳 없이 도시의 거리를 방황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김광균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였다. 자신의 생활 근거지인 도시를 묘지로 생각하는 이의 비애는 김광균의 시에 방황하는 사람으로 자주 드러난다. 삶의 목표와 그 방향을 잃은 이가 흥성스러운 도시를 거닐다 문득 올려다 본 빈 하늘에 홀로 켜진 차가운 가스등 불빛이 그에게 새삼스런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절망과 비애를 통해 도시문명을 비판하며 개체의 고독을 회화적 수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김광균 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3.국경의 밤



김동환

1장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상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 - 갔다 -

오르명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워놓고

밤새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는 손도 맥이 풀어져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가는데.



2장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나오는 듯

'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라고

촌민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을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림실이 화부(花夫)떼 소리언만.



3장 마지막 가는 병자의 부르짖은 같은

애처로운 바람소리에 싸이어

어디서 '땅'하는 소리 밤하늘을 짼다.

뒤대어 요란한 발자취 소리에

백성들은 또 무슨 변이 났다고 실색하여 숨죽일 때,

이 처녀(妻女)만은 강도 못 건넌 채 얻어맞은 사내 일이라고

문비탈을 쓸어안고 흑흑 느껴가며 운다 -

겨울에도 한 삼동, 별빛에 따라

고기잡이 얼음장 긋는 소리언만,



4장 불이 보인다 새빨간 불빛 이

저리 강 건너

대안(對岸)벌에서는 순경들의 파수막(파수막)에서

옥서(玉黍)장 태우는 빨-간 불빛이 보인다.

까-맣게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호주(胡酒)에 취한 순경들이

월월월 이태백을 부르면서.



5장 아하, 밤이 점점 어두워간다.

국경의 밤이 저 혼자 시름없이 어두워간다.

함박눈조차 다 내뿜은 맑은 하늘엔

별 두어 개 파래져

어미 잃은 소녀의 눈동자같이 감박거리고

눈보라 심한 강 벌에는

외가지 백양이

혼자 서서 바람을 걷어안고 춤을 춘다,

가지 부러지는 소리조차

이 처녀(妻女)의 마음을 핫! 핫! 놀래놓으면서 -

국경의 밤은 너무 긴 관계로 1부 5장까지만.

이 시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전체 3부 72장으로 구성된 장편시로서, 순이와 남편, 청년의 세 인물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무엇인가 일어날 것 같은 발단 부분의 극적인 배경 제시가 탁월하며, 설명과 대화가 중점적으로 되어 있다.


14.나그네

박목월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지훈(芝薰)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이 시는 조지훈이 `목월(木月)에게' 라는 부제로 쓴 시 「완화삼(玩花杉)」에 대한 화답시이다. 화답시답게 「완화삼」 중 한 구절인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를 부제로 달았다. 두 시의 주제는 모두 물길을 따라 가듯이, 구름에 달 가듯이 달빛 아래 길을 가는 나그네이다.
나그네는 어느 곳이든 오래 머물러서 살거나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가는 길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끝이 없다. 나그네는 끝도 없고 정해진 길도 없이 밤 하늘에 달이 구름 속을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강나루'도 지나고 `밀밭길'도 그저 자연스레 지나간다. `구름에 달 가듯이'라는 말은 구름이 달을 지나가는 것인지 달이 구름을 지나가는 것인지 모르게 자연스레 지나는 나그네의 걸음과 운명을 표현한 것이다. 나그네의 길은 다른 길로 가거나 혹은 가지 않거나 하는 선택이 없는 외길이며 그 한 줄기 외로운 길은 우리의 남도 즉, 충청, 경상, 전라로 향하고 있다.
끝없이 길을 가야 하는 나그네의 고독한 운명이 간결한 두 줄 형식으로 잘 드러나 있는 이 시에는 `강나루', `밀밭길', `남도' 등의 토속적인 시어가 `술 익는 마을'이라는 정감 어린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집에서 담가 익히는 술은 나그네의 음식이 아니다. 몇 달 몇 년을 내다보고 담그고 익히는 술은 농경 정착인들의 음식이다. 아마도 나그네의 고향 집에서도 술을 담곤 했을 것이다. 때문에 술 익는 냄새는 나그네의 향수와 회한을 함께 불러일으키고, 술 냄새와 어우러진 `타는 저녁 놀'은 후각과 시각으로 나그네의 향수와 고독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이 시를 굳이 일제치하기의 우리민족의 유랑의식과 연결시키지 않더라도 술이 익는 마을의 풍요와 평화의 정취와 근거지 없이 유랑해야 하는 나그네의 고독과 쓸쓸함은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진다

15.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해, 청만사, 1949>

이 작품은 1946년 5월에 발표되었으나 씌어진 것은 8·15 해방 전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어둠'이란 일제하의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중 인물은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라고 간절하게 외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어둠'이다. 그는 사슴과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노는 세계를 갈망한다. 이를 뒤집어 보면 그가 현재 속해 있는 세계는 사람과 사슴과 칡범이 서로를 두려워하며 해치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것을 인간적인 의미로 풀이한다면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고 억압하고 약탈하며 괴로움을 당하는 현실의 모습이 된다. 이 작품의 의미는 이러한 어둠의 시대,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에 있다. 작품의 급박한 호흡은 그 소망의 절실함 때문이며, 반복되는 말들도 또한 그 때문이다.
제1연에서는 우선 `해야 솟아라'라는 말이 수식어를 덧붙여 가며 반복된다. 그 해는 산 너머서 어둠을 불태워 먹고 이글이글한 빛과 천진난만한(애띤) 모습으로 떠오를 광명의 원천이다. 그것은 자연의 해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를 한꺼번에 밝히는 새로운 세계의 빛을 의미한다. 이러한 빛을 기다리는 그의 괴로운 모습이 제2연에 보인다. 그는 번민과 비애로 가득한 골짜기의 어두운 달밤이 싫다.
제3연부터 끝까지는 드디어 해가 찾아 왔을 때 누리게 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때에는 밝은 빛 아래 티없이 맑은 자연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청산'이며, `사슴, 칡범, 꽃, 새, 짐승'들이다. 청산은 훨훨 깃을 치며 한껏 아름다울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사슴, 칡범 등 온갖 자연물들과 `애띠고 고운 날' 즉, 티없이 밝고 순결한 삶을 누릴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그리는 이상의 세계는 단지 조국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적 상상 속의 낙원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회는 물론 자연의 세계에서까지 일체의 갈등이 해소된 화해로운 경지이다. [해설: 김흥규]

'해'의 시인이요, 자연 교감의 정신을 불러 일으킨 박두진의 첫 시집 {해}의 표제가 된 이 작품은 8·15 해방이라는 벅찬 기쁨 속에서 민족의 웅대한 기대와 민족의 이상을 구가하던 시기에 씌어졌다. 이 시는 '해'라는 구체적 사물을 통해 광복의 기쁨을 제시하는 한편, 어둠이 걷힌 '청산(靑山)'에서 광명한 조국의 미래사, 민족의 낙원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뜨거운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광복이라는 무한한 자유와 기쁨 속에서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 갈등을 빚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이 평화롭게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둠'·'달밤'·'골짜기'·'칡범'·'짐승'은 악(惡)과 추(醜), 강자(强者)의 이미지를, '해'·'사슴'·'청산'·'꽃'·'새'는 선(善)과 미(美), 약자(弱者)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으로, 시인은 이들의 대화합을 추구하며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시인은 생명의 근원이며 창조의 어머니인 '해'가 돋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원시인(原始人)의 원초적 신앙인 태양 숭배와 같은 경이(驚異)와 복받치는 희열(喜悅)로 '에덴 동산'을 연상시키는 조국 광복의 신천지를 예찬하는 동시에, '달밤'으로 표상된 민족의 오랜 슬픔을 배척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희망찬 미래의 조국을 상징하는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라고 외치며, '사슴'과 '칡범', '꽃'·'새'와 '짐승'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사는 영원한 평화와 공존 공영의 '고운 날'을 꿈꾼다. 그 '고운 날'은 결국 '해가 솟은 청산'으로 자연과 인간이 합일되는 이상향이자, 민족의 영화로운 역사가 펼쳐질 해방된 조국 강토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이 시에서는 당시대적(當時代的) 조국 해방의 기쁨이 영시대적(永時代的) 이상향의 추구로까지 연계·발전되고 있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시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조연현은 이 작품을 가리켜 "한국 서정시가 이룰 수 있는 한 절정을 노래했다."고 평하고 나서 "박두진은 이 한 편의 시로써 유언 없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

16.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청록집(靑綠集), 을유문화사, 1946>

승무는 승려의 옷차림을 하고 추는 춤이다. 시인은 이 춤에서 번뇌를 이겨 내고자 하는 종교적 구도(求道)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므로 이 시는 단순히 춤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춤으로 나타나는 마음 속의 움직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품의 서두는 승무의 우아한 모습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승무를 추는 이는 젊은 사람이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곱다는 것을 보건대 그는 여자인 듯하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 여인이 승복을 입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가 어떤 이유로 속세를 버리고 승려가 되었는가는 말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번뇌를 이기기 위하여 가다듬는 손길과 춤의 움직임이다.
춤의 시간은 아무도 없는 밤이다. 뜨락에 쓸쓸히 널린 오동잎 잎새마다 달빛이 비추는데 승무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춤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뇌를 이겨 내기 위한 간절한 소망의 표현으로서 추어지는 것이다. 그 춤의 절정이 제6, 7연에 나타난다. 검은 눈동자를 살포시 들어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을 바라보는 간절한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자. 흰 고깔 아래 보이는 고운 뺨은 어떤 우수를 머금은 듯하고, 맑은 두 눈에는 어쩌면 고뇌의 눈물이 아롱질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세속의 세계를 떠나 모든 것에의 집착을 버리고자 한 터이기에 번뇌는 별빛처럼 아득히 멀리서 반짝인다. 그 다음 연에서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란 바로 이 별빛 같은 번뇌마저 떨쳐버리려는 간절한 심경의 표현이다.
작품의 서두와 마지막에 되풀이되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는 구절은 이러한 내용과 더불어 음미할 때 이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17. 보병과 더불어라는 시는 없습니다. 시집이름입니다.

18.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선집, 산호장, 1955>

6·25 직후의 상실감(喪失感)과 허무주의를 짙게 띤 작품. 모든 것이 부서지고 퇴색하며 떠나가는 데 대한 절망감과 애상(哀傷)이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박인환은 김수영, 김경린, 조향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 의식을 중시하고 전위적 기법을 실험하며 문명 비판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는 지적(知的)인 요소와 서구적 기풍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 박인환은 가장 주정적(主情的)인 기질을 가진 인물로서 비애,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했고, 흔히 감상주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기질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 1882∼1914)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로서 의식의 흐름에 중점을 둔 내면 묘사의 소설을 주로 썼는데 세계 제2차 대전기의 허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한 인물이다. 이러한 비극적 생애의 인물을 비롯하여 목마, 보이지 않는 별, 늙어 버리는 소녀,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등대, 술병, 상심, 작별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는 `퇴색하고 부서지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비탄(悲嘆)의 노래'가 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다는 구절은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 나오는 쓰라린 독백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생이 실제로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황량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딘가에 호소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역설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마침내 작품은 `내 쓰러진 술병'으로 끝을 맺는데, 이 마지막 행은 삶의 의미에 대한 그의 비관적 태도가 집약된 귀착점이라 하겠다.

19.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이 작품은 시인이 타계하기 직전에 마지막 남긴 유고 작품으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작되었다. 이 작품은 '풀'과'바람'의 대립 구조로 짜여 있는데, 시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마치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속해 온 민초(民草)들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시 안에서 '풀'과 '바람'의 대립은 '눕다;일어나다', '먼저;늦게', '울다;웃다'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바람'의 속성보다는 생영력이 강한 '풀'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또한, '더 빨리'나 '먼저'라는 표현은 행위자의 자유로운 의지를 전제로 한다. 그러한 뜻에서, 이 작품은 '풀'이 상징하는 존재(存在)의 자 유를 노래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표면적 문맥은 굳이 해설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단순하다. 땅 위에 숱하게 돋아나 있는 풀이 비를 몰아 오는 바람에 나부껴 눕고 울다가 마침내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웃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물론 이처럼 단순한 내용만으로 요약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과 반복되는 말을 통한 리듬의 흐름이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어떤 은밀한 공감을 일으키는 점은 따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는 분명히 풀과 바람 그 자체만을 노래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풀과 바람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풀은 세상에 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풀은 또한 모든 목숨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자라나고, 없애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속성으로 해서 풀은 `세상에 무수히 많이 있으면서 어떤 시련에도 견디어 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로 쉽게 이해된다. 이 작품에서의 풀 역시 그러하다.
작품의 문맥에 의하면 바람은 이러한 풀의 생명을 억누르는 어떤 힘에 해당한다. 그 억누름은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은 눕고 또 운다(즉, 바람에 흔들리어 소리를 낸다). 그러나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끝내 완전히 억누르거나 없애지 못한다. 풀은 바람이 지나가면 곧 일어나고, 어떻게 보면 바람이 부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자 싸우면서 일어나려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의 근본적 의미는 대략 드러난다. 풀과 바람의 싸움은 곧 이 세상에 무수히 있는 굳센 생명들과 그것을 일시적으로 억누르고 괴롭히는 힘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잘것 없는 듯이 보이는 생명의 끈질긴 힘이야말로 모든 외부적 억압을 이겨내는 것임을 지극히 평범한 말씨와 어조로, 그러나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말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 의미는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한다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 온 민중과 그들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사회 세력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들판의 수많은 풀처럼 이 세상에 언제나 무수히 있어 왔던 서민들, 풀이 끊임없는 시련을 견디며 삶을 지키고 번성하였듯이 그렇게 살아 왔던 민중들 ― 이러한 상징적 연결은 극히 자연스럽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은 민중을 `민초(民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을 거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역사 안에서 끊임없는 시련을 받으며 살아 온 민중이 결국은 그들을 누르는 일시적 강제의 힘을 이겨내는 생명력의 원천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20.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시집(陸史詩集), 서울출판사, 1946>

이 작품은 배경의 웅대함으로 처음부터 독자를 압도한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아득하게 넓은 평야, 시간적 배경은 천지가 처음 열리는 까마득한 태초에서부터 머나먼 미래에로 이어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크게 나누어 보면, 제1∼3연이 과거를, 제4연이 현재를, 제5연이 미래를 각각 노래하고 있다.
제3연까지의 부분에서는 광야의 원시적 순수성에서부터 무수한 세월이 흘러 강물이 길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제2연은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산맥들의 모습을 살아 있는 동물의 움직임처럼 인식하면서, 그것들이 차마 침범하지 못한 광야의 광활함을 노래하였다. 이처럼 웅장한 터전에 마치 꽃이 피고 지듯 무수한 계절이 지나간 뒤 비로소 강물이 흐르고 길이 열렸다.
만물이 눈에 덮여 있는 가운데 이 넓은 광야에 매화의 향기가 그윽하고 은은하게 풍겨 온다. 이 분위기는 앞 부분에서 전개되어 온 광야의 모습을 좀더 숭고하고 신성한 것으로 만들면서 그 안에 선 인물의 외로움을 암시하여 준다. 그는 아무도 없는 광야, 더욱이 눈 덮인 겨울의 광야에 서서 무한한 과거의 시간과 먼 미래의 시간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고독한 것이면서 그의 강인한 의지를 더욱 곧게 세우도록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고독감과 긴장된 의지의 경지가 `매화 향기'라는 사물을 통해 암시된다.
강인한 의지로 외로움과 추위를 이기며 서 있는 이 자리에 `나'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다. 일체의 생명이 용납되지 않는 냉혹한 시련의 상황에서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 혼자서 뿌리는 씨앗이기에, 더욱이 견디기 어려운 추위(가혹한 현실 상황)를 무릅쓰고 뿌리는 것이기에, 그것은 가난한 노래의 씨앗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광막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억센 의지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연한 결의가 담기어 있다.
그러면 그가 뿌린 외로운 노래의 씨앗은 누가 거둘 것인가? 그것은 대체 싹이나 틀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냉혹한 시련만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로 모든 고통을 이기며 싸워야 했던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성패(成敗) 여부가 아니라 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그 필연성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 연에서 노래한다 ― `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라고.

21.쉽게 씌어진 시(詩)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이 작품은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씌어졌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에서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그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식의 생활 공간인 동시에 다다미 여섯 장의 넓이로 그의 세계를 한정하는 구속, 부자유의 은유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 안에 갇혀 있으면서 시를 쓴다. 이 때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인이 현실을 직접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데 대한 괴로움에 연유하는 듯하다.
제3연부터 제6연까지는 바로 이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성찰의 내용이다. 그는 부모님이 보내 주신 학비를 받아 낯선 세계에서 대학을 다니며 생활한다. `늙은 교수'라는 말이 암시적으로 풍기는 것처럼 그가 듣는 강의는 번민하는 한 젊은이의 절실한 문제들과는 거리가 먼 회색빛 메마른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들끓어 오르는 정열도 힘찬 생명의 약동도 없는 듯하다.
이처럼 현실에서 뿐 아니라 그가 동경하던 학문의 세계에서조차 회의적인 생각을 맛보면서 그가 현재의 자신을 우울하게 되새겨 보게 됨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이 답답하고 음울한 세계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그는 자신이 삶의 밑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간다고 느낀다.
여기에서 다시 윤동주 시의 중요 내용의 하나인 `부끄러움'이 등장한다. 그것은 삶의 어려움과 엄숙함에 대해 자신의 시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적으로 묻는 성실성의 소산이다.
이처럼 괴로운 반성과 연민의 시간에도 비는 내린다. 그리고 육첩방은 그 좁음과 낯설음으로 그의 영혼을 압박한다. 세상에는 어둠이 가득 차 있고, 그의 가슴 속에는 번민이 숨쉰다.
그러나 「별 헤는 밤」의 경우와 비슷하게 윤동주는 이 음울한 상황에 체념하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온 세상에 가득한 어둠을 한 번에 없앨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등불을 밝혀 그것을 조금 내몰 수는 있다. 그는 이렇게 어둠과 절망을 견디면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린다. 이 때의 아침이란 좁게는 개인적 번민으로부터의 해방일 터이고, 더 넓게는 정직한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게 하는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때를 의미한다. 마지막 연에 보이듯이 그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결코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는다. 이 때 두 사람의 `나'는 곧 현실 속에서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자아와 그것을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2.생명의 서 일장(一章)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생명의 서, 행문사, 1947>

고민, 좌절, 절망의 끝에서 허무 의식을 떨치고 일어서려는 강인한 의지를 노래한 시. 시인은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대결의 공간으로 사막을 설정하고,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열렬한 고독'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의 세계에 자신을 바치겠노라는 비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여기서의 참된 `나'란 세속에 물든 `현실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넘어서서 성취하고자 하는 `근원적 생명과 순수성으로서의 자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치환의 시는 관념적인 문제를 엄숙하고 웅장한 남성적 독백조로 표현한 것이 많은데, 이 작품 또한 그런 계열의 대표적인 시이다.

23.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2인시집, 1967>

신동엽은 1960년대의 자유민주주의 한계와 외국 자본에 의한 산업화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실천적 의미의 `민중'과 `흙'을 시화한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껍데기',`알맹이', `쇠붙이' 등등의 특정한 시어와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출현하면서 민중을 본위로 하는 그의 시적 주제를 구성한다. 1967년에 쓰여진 이 시 또한 그의 다른 시들과 비슷하게 4·19와 5·16, 외세 침투 등의 당대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의 현실참여적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시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반복되는 어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신동엽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껍데기'란 많은 모순을 드러내는 `자유민주주의'와 `아메리카', `은행' 등으로 상징되는 외세, `총알', `쇠붙이' 등으로 대표되는 폭력과 억압 등을 포괄하는 시어이다. 그에 반해 `알맹이'는 `4·19', `동학혁명' 등 민중혁명과 `아사녀', `아사달', `한라', `백두', `흙가슴' 등으로 표현되는 민족적 전통과 국토의 아름다움을 포괄한다.
1연의 `사월(四月)'이란 4·19를 지칭한 것이다. 민중적 힘과 정신만이 지금 이 땅에 남아 있을 가치가 있는 `알맹이'라는 확신이 강건한 어조로 드러나 있다. 이러한 확신과 의지는 2연의 `동학(東學)'운동에서 이어지는 민족혁명, 민중혁명의 전통을 상기할 때 가능하다. 1, 2연에서 보여준 민중의 힘과 정신을 추앙하고 그 외의 정치적·제도적 허위를 거부하는 강한 기상이, 3연에서는 고대 신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전설 `아사달', `아사녀'를 통해 민족적 전통에 투영된다. 본래 전설의 `아사달'과 `아사녀'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시인은 그들의 혼례를 `중립(中立)'의 초례청에서 성사시키고 있다. `중립(中立)'이란 정치와 윤리, 전설과 역사가 모두 중심을 잡고선 행복한 상태이며 그 행복한 상태에서 완성된 아사녀의 애틋한 사랑은 `동학(東學)'과 `사월(四月)'로 이어지는 혁명 전설의 완성을 상징하고 있다.
허위적 정치 현실과 민족 분단의 민족적 불행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우리민족에게 가장 순수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진 전 국토를 시인은 `한라'에서 `백두'까지로 포괄하여 부른다. 마치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 아사달과 아사녀'처럼 본래의 모습 그대로 향기롭고 아름다운 `흙가슴' 국토만 남고, 외세의 시대와 폭력과 억압의 역사인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시인은 힘있게 외치고 있다.

2004.07.25.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인터넷 검색,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