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순천에서 태어난 훌륭한 인물
비공개 조회수 2,500 작성일2007.10.19

순천에서 태어난 훌륭한 인물좀 빨리 알려 주세요!!

 

 

급해요! 오늘 밤까지 꼭 부탁함니당..7:40분 정도요.

 

 

순천에서 태어난 훌륭한 인물 꼭 알려 주세요.~~

 

 

안 알려주면 나 울거야!!

 

 

구 가르쳐 주시는 김에 순천 이름의 유래도 오늘 밤 까지 꼭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꼭 부탁함니다.

 

<제가 너무 님들을 부려 먹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제 이뿐 얼굴 보시구 양해 바랍니당^.^(너 안이뽀~ 내가 더 이뽀!!  구쵸~~)

 

어쨋든 꼭 부탁해요.

 

구체적으로!!  꺄!!~~

 

구럼 안녕히....

 

꼭 부탁함니당 요 위에 ↑ 것이요. ^.^

 

안녕히 계세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jung****
고수
사회, 도덕, 과학, 수학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김 총

후백제 견훤에게 발탁되어 출사하였으며, 그의 벼슬이 가별감에 이르렀다. 죽은후에는 이 고을의 성황신이 되어, 수호신으로 모시고 봄, 가을 두차례에 걸쳐 이지방의 진례산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다.

 

박영규

순천출신으로 견훤의 사위이며 후백제와 고려 초때의 장군이다. 936년 9월 일리에서 태조 가 신검을 칠 때 이에 대응하여 신검이 항복 , 후백제를 멸망케 했다 . 그공으로 좌승에 오르고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다.<고려사 , 한국인명대전>

 

김종서

자는 국경, 호는 절재 , 본관 순천. 1405년(태종5)문과에 급제 1451년 우의정에 오르고 , 1452년 세종실록의 총재관을 거쳐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감수하여 간행. 우리고장 출신 이라 하나 충분한 기록은 없고 주암면 겸천서원에 배향됨

 

성동준

호는 유정, 1912년 행동에서 출생, 독립운동가였으며, 1946년 영암군수를 초임으로 나주 군수, 순천군수들을 역임, 1965년 문교부 차관으로 발탁, 삼산, 이수중학교를 설립하는데 큰 공훈을 남겼고 제 3대 전남교육감을 역임한바 있음.

 

박란봉

고려때 대장군으로 벼슬이 정승 대광보국 승록대부에 이르렀고 평양 부원군에 봉해졌다. 인제산서 성을 쌓고 웅거하면서 왜구의 침입을 막았고 죽은후에는 고을을 지키는 인제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가 최초로 순천이라는 고을을 개척하였다는 설이 있다.

 

김 진

낙안읍 태생으로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 성곽경영의 전문가이었으며, 조선 이태조가 도읍을 옮길때 종묘 궁궐을 짓는데 공이 많음.<고려사, 태조실록>

 

김빈길

조선태조때의 무신 , 호는 죽강 ,시호는 양혜, 낙안태생으로 군공을 세워 말단으로부터 출세하여 달관에 이르렀다. 1397(태조 6년) 왜구가 침입하였으나 관민이 아무 대책이 없자 그는 의병을 일으켜 멸악산 아래서 수 천명의 목을 자르고 남해와 사천까지 추격하여 대 승리를 거두었다. 그후 전라도 수군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박중림

호는 한석당.1423년 식년문과에,1427년 문과중시에 급제,세종때 집현전 학자, 공조참판. 이조판서.1456년 아들 팽년과 함께 단종을 복위하려다 사형됨. 주암면 죽림리의 겸천서원 에 배향.

 

조지산

1434년 (세종 16년) 무과에 급제하고 절충장군 , 첨지중추를 역임하였다, 나라를 위하여 진충청절하며 단종을 복위하려다 사육신과 더불어 동시에 순절하였다. 1470년(성종1년)에 자헌대부를 가하고 특명으로 영정을 사사받았다.

 

신윤보

자는 비경 ,호는 오림정,1470년(성종1년)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도사에 오림정을 짓고 포구에 솔, 매화,복숭아,유자,대 등 다섯종류의 나무를 심고 5림이라고 정자의 현판을 내 걸었는데 지금도 이 마을을 오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 위

자는 태허, 호는 매계. 1474년 식년문과에 합격,1493년에 호조참판이 되었으며, 순천에서 유배생활 ,옥천동에 임청대를 지음.

 

장응두

자는 언중, 호는 송탄, 1514년 순천출생, 중종때 생원문과에 합격하였으며,임란공신으로 녹권을 하사받고 김춘남등과 더불어 수문장 원량에 선무원종공신 2등훈으로 대사헌 이조 판서를 제수 하였다. 조정암과 같이 어울리면서 도의계를 만들고 닦은 명현중의 한사람 으로 장수 창계서원에 배향.

 

김응남

1546년 순천 출생, 문과 급제,동부승지,대사헌,이조참판 역임, 정묘호란때 세자를 호행 하고 강화도를 지키다가 사태가 위급하자 분신자살. 좌의정을 거쳤으며 시호를 충의라 내리고 호성공 일등훈에 봉함

 

김여물

자는 사수, 호는 파구자, 순천태생으로 김훈의 아들이다. 1567년에 진사가 되고 10년 뒤 문과에 급제하여 1583년 이고을의 부사를 역임하였다, 1584년 영의정이 됨

 

정사익

자는 포당, 학문에 조예가 깊고 덕행이 뛰어나 이 고장의 승평4은의 한사람으로 꼽혔다. 한훤당 김굉필을 추모하여 경현당을 중수하는데 공로가 많았으며, 그후 스승 구암 이정이 세상을 타계하니 서러움을 달래지 못해 몸소 글을 지어 제사를 모시기도 하였다.

조현범

자는 성회, 호는 장졸, 또는 삼효제, 이 고장의 특기할 만한 사적들을 모아 강남악부를 편찬. 1656년(효종7년) 주암면 오산리에서 출생. 훌륭한 책을 발간해놓고도 자기를 밝히지 않고 향리에서 조용히 살다가 흙속에 묻혀갔다

 

박시영

자는 군수, 도사면 신월리에 살았다. 영조때 주부의 벼슬을 거쳐 선무랑을 역임 하였는데 보허사를 짓고 당시 도백의 신임을 얻었으며 승평 8문장중의 한사람

 

김종익

1886년 월등면 대평리에서 출생, 인재양성에 헌신한 애국지사. 목초 육영회 라는 장학회를 설립하여 불우한 학생들을 보조해 인재를 배양. 사회 복지 사업에 손을 써 당시 적십자사와 불우한 나병협회 등에 거액을 희사. 순천농업학교를 설립,1936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설립

2007.10.19.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