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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자동사 타동사구분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2,638 작성일2015.09.02

우리나라 말로 하면은 목적어가 수반되어  타동사로 보이는데 자동사고 또 자동사같은데 타동사 같은 동사들이 많이 헷갈립니다 이렇게 혼동되는 동사들 경우에는 무슨 요령으로 자동사 타동사를 구분해야합니까아니면 자 타동사를 따로따로 외워서 공부를해야합니까? 많이 헷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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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신
우주신
대학 입시, 진학 31위, 국어, 한문 4위, 국어, 한문 1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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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영어에서는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아래에서 보듯이 타동사가 쓰인 (1)에서는 동사 뒤에 바로 명사구가 올 수 있지만, 자동사가 쓰인 (2)에서는 동사 뒤에 바로 명사구가 올 수 없고, 반드시 전치사가 온 후에 명사구가 쓰일 수 있다.

 

(1) . I like him.

. Children learn reading and writing at school.

(2) . He goes to the station.

. Birds sleep with their eyes open.

 

그렇지만 국어에서는 자동사와 타동사 사이에 이처럼 분명한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3) . 개가 집에서 짖는다.

. 그가 고향을 그리워한다.

(3)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자동사가 쓰인 (3)이나 타동사가 쓰인 (3)을 비교해 볼 때, 영어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두드러진 차이점을 국어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다만 (3)에서는 목적격 조사라고 부르는 이 쓰인 점으로부터 우리는 고향을이 목적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항상 목적격 조사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어서 문제가 된다.

 

(4) . 철수가 학교에 간다.

. 철수가 학교를 간다.

동사 가다 앞에는 (4)처럼 학교에가 쓰일 수도 있고 (4)처럼 학교를이 쓰일 수도 있다. 여기서 부사어 학교에가 쓰인 (4) 가다는 자동사이지만 (4)처럼 학교를이 쓰인 경우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학교를을 목적어로 보면 가다는 타동사로 볼 수 있고, ‘학교에 학교를로 바뀐 것으로 보면 가다는 자동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뒤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었다.

이 연구는 국어의 동사를 자동사와 타동사로 분류하는 작업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 온 (4) 가다와 같은, 이른바 자타 양용 동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조사 /을 모두 목적격 조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일부 /은 목적격 조사가 아니라 보조사로 다루어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도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학교 문법이나 한국어 교육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여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혼란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어 사전을 편찬할 때도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 일관성을 보이지 못한 점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 자동사/타동사 구분의 어려움

 

현행의 학교문법에서는 뛰다, 걷다, 가다, 놀다, 살다처럼 움직임이 그 주어에만 관련되는 동사를 자동사로, ‘잡다, 누르다, 건지다, 태우다처럼 움직임이 다른 대상, 즉 목적어에 미치는 동사를 타동사라고 하였다. 위에서 보듯이 가다, 살다를 자동사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하였다.

그렇지만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이 이처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자동사는 목적어를 취하지 못하는 동사인데, 아래 (5)에서 보듯이 자동사로 다루어 온 가다, 살다 등의 서술어 앞에 목적격 조사로 다루고 있는 /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5) . 아이가 학교를 간다.

. 영자가 시집을 산다.

최현배(1937/1980:255-257)에서는 남움직씨(他動詞)는 다른 것()을 제 움직임 안에 잡아 닥아, 그것을 부리는(支配하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움직씨를 이름이요; 제움직씨(自動詞)는 그러하지 아니하고, 다만 제만이 움직임을 나타내는 움직씨를 이름이니라고 하면서, 우리말에서 학교에 간다 학교를 간다에서처럼 그 말하는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자동사가 되기도 하고 타동사가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가다, 오르다 등의 동사 앞에 /이 붙는 명사구가 올 때, 이를 목적어로 다룬 최현배(1937/1980)의 주장은 현행의 학교 문법에 반영되어, 학교 문법에서는 아래에서 보듯이 /이 결합된 명사구를 모두 목적어로 처리하고 있다.

 

(6) 목적격 조사 /이 붙으면 무조건 목적어로 보는 학교 문법의 입장에 따를 때, ‘학교를, 기연이를은 목적어이고, ‘학교에, 기연이에게는 부사어이다. 그리고 이 때 /은 보조사적 성격을 띠는 목적격 조사라고 말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2002:191-192)

 

그리고 이처럼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이 오로지 조사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면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아래에서 보듯이 동사를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7) 서술어의 특성에 대한 논의는 요즈음에 들어 어떠한 논항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즉 자동사, 타동사라는 분류보다는 어떠한 명사구 내지 성분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동사인지, 또는 의미에 따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에 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명사구에 문법적인 하중을 두어 자동사, 타동사라는 범주로 나누는 것보다는 동사의 통어적 특성을 세밀히 보여 줄 수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희정(1996:14-15)

(8) /타동사는 국어에서의 통사적인 의의가 검증되지 않은 채 기존 사전과 많은 논의에서 의미 있는 범주로 인식되어 왔다. (중략) 이러한 격조사 교체의 의미역적 해석은 용언을 자동사, 타동사, 형용사의 셋으로 구분한 기존의 틀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의 있고 없음에 따라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은 서구문법의 영향으로, 우리 문법 안에서의 통사적인 의의에 대해서는 그 동안 너무나 소홀히 다루어 온 경향이 있다. 자동사 중에도 ‘-이 나타나는 것이 적지 않고 이를 무조건 타동사의 틀 안에서 설명하기도, 무시하기도 힘든 면이 있다. 유현경이선희(1996:130, 170)

(9) 동사나 문장의 유형을 분류하기 위해 동사를 흔히 자동과 타동으로 엄격히 구분하지만, 목적어 유무만으로 그 분류의 기준을 삼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왜냐하면, 동사에 따라서는 이러한 양면성을 다 지니고 있기도 하고, 또한 동사의 의미가 계속 파생적으로 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자(의 판단)에 의한 수의적인 목적어화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타동성 여부는 동사의 분류 기준이라기보다는 동사 의미의 한 특성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성광수(2001:98-99)

 

한편 국어 사전을 편찬할 때 아래 (11)에서 제시하는 한글학회(1992)의 풀이에서 보듯이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0) 멈추다 () 오던 비가 그치다. 소나기가 . 멎다. 하던 일이나 동작이 잠깐 그치게 되다. 차가 . 행렬이 . 멎다. () 하던 일이나 동작을 그치다. 차를 . 일손을 . 한 곳을 보다. 시선을 .

 

그런데 최근에는 자동사와 타동사의 정보를 표시하지 않은 사전이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아래 (11)은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국립국어연구원(1999)의 풀이를 옮긴 것이다.

 

(11) 멈추다[멈추어(멈춰), 멈추니] 사물의 움직임이나 동작이 그치다. =멎다1. ¶시계가 멈추다/차가 멈추다/울음소리가 멈추다. 비나 눈 따위가 그치다. =멎다1. ¶멈추었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 사물의 움직임이나 동작을 그치게 하다. ¶기계를 멈추다/발걸음을 멈추다/시선을 멈추다/그녀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머추다용가>←­+­­

 

국립국어연구원(1999)에서는 문형 정보를 제시하였기 때문에 자동사, 타동사를 따로 표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이는 국어에서 문형 정보만 알고 있으면 자동사, 타동사 구분이 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문형 정보가 자동사, 타동사 구분보다 더 중요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어에서 문형 정보만으로 자동사, 타동사의 구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문형 정보가 자동사, 타동사 구분보다도 더 중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어 사전에서 자동사와 타동사에 대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국어의 어떤 동사를 국어 사전에서 찾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은 정보가 자동사/타동사에 관한 정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국립국어연구원(1999)에서 가다라는 어휘 항목을 찾으면 뒤의 (21)에서 보듯이 /에게’, ‘으로’, ‘ 등의 조사가 함께 쓰일 수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지만, 가다가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이 (7)(9)에서 제시한 몇몇 연구에서 주장한 것처럼 정말 무의미한 일인지, (11)에서 보인 국립국어연구원(1999)과 같이 자동사/타동사 구분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표시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3. 자동사/타동사 구분의 실제

 

국어의 동사를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은 앞에서 제시한 몇몇 논의처럼 무의미한 것이므로 굳이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어의 서술어를 형용사와 동사로 나누고, 다시 동사를 자동사와 타동사로 나누는 것은 통사적인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형용사에는 현재시제의 서술형 어미 ‘-가 결합하지만 동사에는 ‘-/는다가 결합하고, 형용사에는 현재시제의 관형사형 어미 ‘-이 결합하지만 동사에는 ‘-이 결합하는 등의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자동사와 타동사는 이들에 결합하는 어미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목적어를 취하느냐 취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동사 중에서 목적어를 취하지 못하는 동사는 자동사이고, 목적어를 취하는 동사는 타동사인데, 어떤 동사가 목적어를 취하는지 취하지 못하는지 하는 차이가 통사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7)(9)에서 제시한 몇몇 연구에서는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이 오로지 서구문법의 영향이라고 주장하거나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어에서는 기본 문형을 설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영어에서 다섯 가지 문형(SV, SVC, SVO, SVOO, SVOC)을 제시하는 것처럼, 국어 교육이나 한국어 교육에서 국어의 기본 문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국어에서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이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면, ‘SV’ ‘SOV’ 등의 문장 유형을 설정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야기된다.

필자는 몇몇 논의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할 수 없거나 그런 구분이 무의미한 것처럼 주장한 것과는 달리, 국어에서도 동사를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여야 하며, 또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국어 교육에서도 자동사와 타동사에 대한 구분을 분명하게 설명하여야 함은 물론이고, 국어 사전을 편찬할 때도 자동사와 타동사에 대한 구분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문제는 결국 목적어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국어에서 목적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동사를 자동사로 다루기도 하고 타동사로 다루기도 하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목적어를 판별하는 기준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한다.

먼저 홍재성(1989:194)에서는 목적어의 판별 기준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12) . N1-Acc에서 Acc-를이 다른 비대격 조사 Acc-/-/-로 등과 치환을 허용하지 않는다.

. N1Acc는 부분 의문문에서 누구/무엇/어디-Acc에 대응된다.

 

그리고 이홍식(1996:116-130)에서는 목적어의 판별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3) . 형태론적 기준 : 명사 상당 표현에 조사 /이 결합하면 목적어로 성립한다. 그러나 조사 /은 목적어가 아닌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다.

. 통사론적 기준 :

목적어는 피동문의 주어가 될 수 있다.

연속 동사 구성에서 선후행 동사에 의해 목적어를 공유할 수 있다.

전형적인 목적어는 관계절의 표제가 될 수 있다.

사동 구문에서 목적어는 후행절의 주어를 통제한다.

목적어는 인상 구문을 형성한다.

. 의미론적 기준 : 피영향성

 

이처럼 몇몇 연구에서 국어의 목적어를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준에 따라 국어의 목적어를 다른 문장 성분과 선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연재훈(1996:256)에서는 “‘목적어라는 문법관계를 통사론적으로 정립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데, ‘목적어를 판명하는 기준으로 현재 범언어적으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통사적 절차는 피동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피동화 절차가 목적어를 판명하는 데 리트머스 시험이 될 수 있지만, 한국어에서는 모든 목적어가 피동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또 관계화 절차도 주어, 목적어, 간접 목적어 자리에서 모두 가능한 것 같기 때문에 목적어와 사격 보어를 분명히 가려낼 만한 통사적 기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국어에서 목적어를 판별하는 통사적 기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연재훈(1996)에서는 목적어와 사격 보어를 가려낼 수 있는 통사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지금까지는 목적어와 사격 보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국어 교육이나 한국어 교육에서는 물론이고 국어 사전에서도 이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이 논문에서는 목적어와 사격 보어를 가려낼 수 있는 통사적 기준으로 ‘-어 있-’의 결합 여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어 있-’의 결합 여부가 국어의 자동사와 타동사 구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키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중세국어의 ‘-어 잇-’은 형용사, 자동사, 타동사의 어간에 다 붙을 수 있었는데, 이 중세국어의 ‘-어 잇-’이 현대국어에 와서는 형용사, 타동사에는 붙을 수 없고, 오직 일부 자동사(끝이 있는 자동사)에만 붙을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임홍빈(1975)에서 밝혀진 바 있다.

먼저 임홍빈(1975) 등에서 밝힌 것처럼, ‘-어 있-’이 타동사에는 통합될 수 없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14) . 먹다, 깎다, 놓다, 주다,

. 높이다, 낮추다, 먹이다, 죽이다, 살리다, 늘이다,

. 늘어뜨리다, 무너뜨리다, 쓰러뜨리다, 깨뜨리다,

. 공부하다, 출판하다, 제작하다, 연구하다, 사랑하다,

 

(14)은 본래부터 타동사인 예이고 (14)은 형용사, 자동사, 타동사의 어근에 사동접미사가 결합되어서 타동사가 된 예이며, (14) ‘-어뜨리다 형태의 타동사이고, (14) ‘-하다가 붙은 타동사인데, ‘*먹어 있다, *높여 있다, *늘어뜨려 있다, *공부해 있다에서 보듯이 어떤 경우에도 ‘-어 있-’이 결합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15)에 제시한 자동사의 경우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있다.

 

(15) . 앉다, 눕다, 서다, 돌다, 남다, 붓다, 솟다, 기대다, 나다, 되다, 자라다, 닳다, 묻다(물이), 썩다, 녹다,

. 잡히다, 물리다, 들리다(위로), 안기다, 열리다,

. 높아지다, 길어지다, 늘어지다, 무너지다, 쓰러지다, 깨지다, 빠지다,

. 연결되다, 체포되다, 파괴되다, 침몰되다, 분리되다,

. 진출하다, 이동하다, 접근하다, 당도하다, 출연하다,

 

(15)은 본래부터 자동사인 경우이고, (15)은 타동사에 피동접미사가 결합하여 자동사로 바뀐 경우인데, 위에 제시한 예의 경우에는 ‘-어 있-’이 결합하는 데 있어서 제약을 보이지 않는다. (15)은 형용사나 동사 어간에 ‘-어지다가 결합하여 자동사가 된 경우인데, 이처럼 ‘-어지다가 쓰인 경우에는 대체로 ‘-어 있-’이 결합할 수 있으며, (15)처럼 되다가 결합한 경우에도 대체로 ‘-어 있-’이 결합할 수 있다. (15) ‘-하다가 결합한 경우인데, 이들의 경우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다로 끝나더라도 (14)의 타동사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없었는데, ‘-어 있-’의 결합 여부가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래 (16)에 제시한 자동사의 경우에는 ‘-어 있-’이 결합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6) . 걷다(걸음을), 뛰다, 짖다, 졸다, 흐르다,

. 들리다(소리가), 먹히다, 쓰이다, 보이다,

 

임홍빈(1975)에서는 이들 자동사를 행동에 끝이 없는 자동사라고 하면서 한계 제약과 타동사 제약으로 ‘-어 있-’의 결합 제약을 설명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태구(1994)에서는 있다의 정적 상태의 존재 요구에서 비롯된 존재 조건으로 ‘-어 있-’의 제약을 설명하려 하였다 또한 한동완(2000)에서는 ‘-어 있-’ 구성의 의미 기능적 소성에 의해 [-결과상태성]의 상황 유형과 결합하지 못함으로써 제약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왜 ‘-어 있-’ 구성이 이와 같은 결합 제약을 보이는지 혹은 어떤 자동사는 제약을 보이고 또 어떤 자동사는 제약을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대 국어에서 ‘-어 있-’ 이 타동사에는 결합하지 못하고 오로지 일부 자동사에만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이를 국어의 자동사/타동사 구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어의 자동사/ 타동사를 구분할 때, 아래에 제시하는 전형적인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7) . 그가 의자에 앉았다.

. 철수가 학교에 남았다.

. 아이가 방에서 논다.

(18) . 나는 그를 사랑한다.

. 호랑이가 사슴을 잡았다.

. 나는 옷을 다린다.

 

(17)에서 보듯이 앉다, 남다, 놀다의 경우에는 선행 명사구에 /이 절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자동사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18) 사랑하다, 잡다, 다리다에는 이들에 선행하는 명사구에 /이 결합할 수 있으며, 다른 부사격 조사가 교체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동사가 타동사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들이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를 검증하기 위하여 우리는 굳이 ‘-어 있-’의 결합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물론 (17,)의 경우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있는 점에서 이들 동사가 자동사라는 것을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데 (5)에서 제시한 바 있는 가다, 살다를 비롯하여 타다, 향하다, 떠나다, 접하다, 앞서다 등의 경우에는, 이들 동사에 선행하는 명사구에 /이 결합하기도 하고 , 으로 등과 같은 다른 격조사가 결합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들 동사들이 자동사인지 아니면 타동사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행의 학교 문법에서는 이들 동사 앞에 /이 오면 모두 목적어로 다루었고, 김문오(1997)에서는 자타 양용 동사로 다루기도 하였다. 한편 국어 사전에서도 대체로 학교 문법과 비슷한 설명 방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아예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을 표시하지 않기도 하였다.

필자는 (17)과 같은 전형적인 자동사와 (18)과 같은 전형적인 타동사의 경우에는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17)의 자동사에는 목적격 조사 /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18)과 같은 타동사에는 목적겨 조사 /이 항상 나타나기 때문에, 전형적인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지만 가다, 살다를 비롯하여 타다, 향하다, 떠나다, 접하다, 앞서다 등의 경우에는 이들이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동사들의 경우에는 사전에 따라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이 다르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연구자에 따라 자동사로 보기도 하고, 자동사와 타동사로 모두 쓰이는 것처럼 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이와 같은 혼란된 모습을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는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어온 이른바 자타 양용 동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어 있-’의 결합 여부를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어 있-’이 모든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어 있-’ 끝이 있는 자동사에만 붙는다는 점을 적절히 활용하면 그 동안 국어 문법에서 자동사와 타동사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곤란을 겪어 왔던 많은 동사들이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를 가려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지금부터는 목적격 조사로 알려진 /이 결합하기도 하고 , 으로 등의 격조사가 결합하기도 하는 이른바 자타 양용 동사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들 동사들에 ‘-어 있-’이 결합할 수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들이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해 보고자 한다.

먼저, 그 동안 가장 많은 논란이 있었던 가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가다 (19)에서 보듯이 자동사로 보아야 할 것인지 타동사로 보아야 할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19) . 그는 서울에 간다.

. 그는 서울을 간다.

 

학자에 따라서는 (19) 가다를 모두 자동사로 보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가다 (19)과 같이 자동사로 쓰이기도 하고 (19)과 같이 타동사로 쓰이기도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더러는 이 두 문장 사이에 의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가다가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 아니면 자동사와 타동사 두 가지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우리는 국어 사전에서 제시한 가다 항목을 먼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래 (20)은 한글학회(1992)의 뜻풀이를, (21)은 국립국어연구원(1999)의 뜻풀이를 제시한 것이다.

 

(20) 가다 () 이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다. 종사하거나 배우거나 일보기 위해 있던 곳에서 어디로 옮기다. 소식, 연락, 말 따위가 어디, 누구에게 알려지거나 전하여지다. (대상을 기준으로) 어떤 정도에 이르다. 시계 따위의 기계가 움직이다. (한 쪽으로) 물체가 기울어지거나 치우치다. 보는 눈이 어디로 쏠리다. 어떤 시간, , , 철 따위가 지나다. (중략) 손해, 피해 따위를 입게 되다. 목적하는 일의 방향으로 움직이다.

() (떠나는 쪽에서) 어떤 일을 하러 어디로 움직이다. (떠나는 쪽에서) 어떤 길을 통하여 어디로 움직이다.

 

(21) 가다 〚…/에게〛〚…으로〛〚…〛 ①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다. 수레, , 자동차, 비행기 따위가 운행하거나 다니다. 일정한 목적을 가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동하다.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옮기다. 직업이나 학업, 복무 따위로 해서 다른 곳으로 옮기다. 〚…/에게〛〚…으로〛 ①직책이나 자리를 옮기다. 물건이나 권리 따위가 누구에게 옮겨지다. 관심이나 눈길 따위가 쏠리다. 말이나 소식 따위가 알려지거나 전하여지다. (‘손해 따위의 명사와 함께 쓰여) 그러한 상태가 생기거나 일어나다. (중략) … 〚…어떤 경로를 통하여 움직이다. 〚…/에게 〛〚…으로 〛①어떤 일을 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노름이나 내기에서 얼마의 액수를 판돈으로 걸다. 〚…〛(기간을 나타내는 '며칠' 따위와 함께 쓰여 어떤 현상이나 상태가 유지되다.

 

(20)에서 제시한 한글학회(1992)를 보면 가다가 자동사와 타동사 두 가지로 쓰인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자동사일 때의 의미 스물네 가지와 타동사일 때의 의미 두 가지를 구분하여 설명해 놓았다. 그렇지만 (21)에서 제시한 국립국어연구원(1999)에서는 자동사와 타동사에 대한 구분 없이 아홉 가지의 큰 의미로 나누고, 이들 의미를 지닐 때마다 , 에게, 으로, 등의 격조사 가운데 어떤 격조사가 쓰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자동사/타동사에 대한 정보는 의미 항목마다 확인을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어쨌든 두 가지 국어 사전에서는 동사 가다가 자동사로도 쓰이고 타동사로도 쓰이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가다를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가다에는 가 있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 있-’이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다를 자동사로 보는 필자의 주장이 타당한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20)에 제시한 타동사 가다의 첫 번째 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나무를 가다, 구경을 가다, 문병을 가다를 보면, ‘나무를, 구경을, 문병을이 목적어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가다에 선행하는 명사구가 가다의 목적어가 아니라, ‘가는 행위를 수행하는 목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희(1987)의 주장처럼 하러 가다 구성이 가다로 축약되어 쓰인 것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경을 가다, 문병을 가다에는 아래에서 보듯이 ‘-어 있-’이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가다는 타동사로 다루기보다는 자동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22) . 그는 서울에 구경을 가 있다.

. 영희는 병원에 문병을 가 있다.

 

다음으로 (20)에서 제시한 타동사 가다의 두 번째 용법에 대해 살펴보자.

 

(23) . 나그네는 산길을 갔다.

. 아이는 철길을 간다.

필자는 산길을 가다, 철길을 가다 산길을, 철길을이 원래는 산길로’, ‘철길로에서와 같이 부사어인데, 부사격조사 /로 바뀌어서 나타난 데 불과하다고 본다.

 

(24) 그가 {산길로/들길로/논길로/철길로/샛길로/오솔길로/큰길로/지름길로/} 간다.

 

그런데 (24)의 부사격조사 는 움직임의 방향을 나타내기도 하고, 움직임의 경로를 나타내기도 한다. 산길로가 지금 큰길에 있는 사람이 산길을 향하여 갈 때도 쓸 수 있고, 이미 산길에 접어든 사람이 산길을 이용하여 다른 곳으로 갈 때도 쓸 수 있다. (24) 가 지니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로 바꾸게 되면 움직임의 경로를 나타낼 수는 있지만, ‘움직임의 방향을 나타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3) /은 철길과 산길을 이용하여 이동하는 움직임의 경로만을 나타낸다고 본다.

한편 가다 시집을 가다, 장가를 가다와 같이 쓰일 때에는 시집을, 장가를을 목적어로 보아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여기서의 / 으로로 바꾸는 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집으로 가다는 가능한데 장가로 가다가 어색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집(-)’ 시부모가 사는 집이므로 시집을 가다 시집으로 가다로 해석되는 것처럼, ‘장가를 가다 장가 장인이 사는 집 장가(丈家)’로 본다면 원래는 장가로 가다라는 구성이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이 구성에서 자주 격조사가 생략되어 쓰이게 되면서 장가로 가다가 도리어 어색해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어쨌든 시집을 가다 장가를 가다 가다도 자동사라는 필자의 주장은 시집을 가 있다 장가를 가 있다가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이처럼 가다에 선행하는 명사구에 결합된 /이 목적격 조사가 아니라면, /의 기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밝힐 필요가 있다. /을 임홍빈(1979)와 이광호(1988) 등에서는 주제 표지로서의 /로 보았으며, 김귀화(1994)에서는 /을 주제 표지로 보지 않고 초점화로 설명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는 김귀화(1994)와 마찬가지로 초점의 기능을 지니는 보조사로 본다. 요컨대 그가 학교에/학교를 간다라는 문장에서 가다는 자동사이며, ‘학교에 학교를을 둘 다 부사어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타다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타다도 조사 /이 함께 나타나서 그 동안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에 걸림돌이 되어 왔던 것이다.

 

(25) . 그가 차를/비행기를 탔다.

. 그가 차에/비행기에 탔다.

 

타다 앞에 /이 오면 타동사로 다루고, 다른 조사가 쓰이면 자동사로 다루는 것은 표면에 드러난 조사의 형태만을 고려한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25) (25)이 격조사의 형태만 다르고 나머지는 모두 똑같은데, 조사의 형태만 보고 타다를 자동사와 타동사로 가를 수는 없다고 본다.

필자는 타다가 자동사인지 타동사인지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어 있-’의 통합 여부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보는데, ‘타다에도 타 있다처럼 ‘-어 있-’이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타다를 자동사로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25)과 같이 타다 앞에는 라는 표현이 오는 것이 기본적인 용법인데, 화자가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할 때 조사 /을 쓴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전에서 타다에 관한 문법 정보를 제시할 때, 같은 의미를 지니면서 자동사와 타동사의 두 가지를 다 제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다음으로는 살다에 대해 살펴보자. ‘살다의 경우에도 앞에서 살펴본 가다, 타다와 마찬가지로 자동사와 타동사로 가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26) . 그는 백 살까지 살았다.

. 잿더미에 불씨가 아직 살아 있다.

(27) . 그는 3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 그녀는 시집을 산다.

 

필자는 살다의 경우에도 ‘-어 있-’의 결합 여부에 따라 자동사와 타동사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본다. 먼저 (26) 살다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있으므로, 살다는 자동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27) 살다에는 (28)에서 보듯이 ‘-어 있-’이 결합하지 못한다.

 

(28) . *그는 징역을 살아 있다.

. *그녀는 시집을 살아 있다.

 

필자는 징역을 살다, 시집을 살다 살다는 타동사로 본다. 그 이유는 이들 표현이 징역살이를 살다, 시집살이를 살다와 같은 동족 목적어 구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징역살이를 살다, 시집살이를 살다, 머슴살이를 살다와 같은 동족 목적어 구문에서 살이라는 부분을 생략하고 쓰는 까닭에 살다 앞에 다른 목적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살다 앞에는 (29)와 같이 동족 목적어로 이라는 명사가 자주 쓰이는데, ‘살이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본다.

 

(29) 그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였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이와 같은 동족 목적어 구문을 이루는 동사로는 신을 신다, 꿈을 꾸다, 잠을 자다, 숨을 쉬다 등이 있는데, 이들도 ‘-어 있-’이 결합할 수 없는 점이 확인된다. 따라서 살다의 경우에도 동족 목적어 구문을 이루는 경우에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타동사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음으로 몇몇 논의에서 거론된 바 있는 향하다, 떠나다, 접하다, 앞서다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정태구(1994:207)에서는 아래 동사들이 타동사임에도 불구하고 ‘-어 있-’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주장하였는데, (30)에 나타난 /을 목적격 조사로 보았으며, 그 결과 /이 결합된 명사구를 모두 목적어로 간주하였다.

 

(30) . 총구가 나를 향해있다.

. 형은 서울을 떠나있다.

. 경계선이 서울을 접해있다.

. 철수는 영수를 앞서있다.

 

필자는 (30) 향하다, 떠나다, 접하다, 앞서다 ‘-어 있-’이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동사는 타동사가 아니라고 보며, 따라서 (30)에 나타난 /은 목적격 조사가 아니라 보조사라고 본다. 또한 (30) /이 나타나는 자리에는 아래에서 보듯이 여러 가지 조사가 쓰일 수 있다.

 

(31) .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노인에게향했다.

. 그 문은 남쪽으로향해 나 있다.

. 그의 모든 관심과 열정은 예술향해 있다.

(32) 우리는 이 동네에서떠나기로 결정했다.

(33)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접해 있다.

. 그 마을은 바다접해 있다.

(34) . 시험앞서 예비 소집을 하였다.

. 감정이 이성보다앞선다.

. 내가 수학 성적은 너에게앞선다.

 

이들 동사들이 (30)에서와 같이 조사 /과 함께 쓰일 수도 있고 (31)(34)처럼 다른 부사격조사 에게, 으로, , 에서, , 보다 등과 함께 쓰일 수 있다. 필자는 자동사가 쓰인 (31)(34)의 문장에서 격조사를 /로 바꾸더라도 문장 성분이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30) /은 목적격조사가 아니라 초점 위치를 나타내는 보조사로 보는데, 화자가 특별히 이 명사구를 강조하기 위하여 보조사 /을 붙인 것으로 본다.

끝으로 중립동사로 불리기도 하는 이른바 자타 양용동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들은 형태적으로는 변화가 없으면서 자동사로도 쓰이고 타동사로도 쓰이는 동사들인데, 아래와 같이 목적어가 없이 쓰이는 경우도 있고 목적어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35) . 차가 멈추었다.

. 경찰이 차를 멈추었다.

 

이와 같은 부류의 자타 양용동사에는 움직이다, 그치다, 내리다, 휘다 등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역시 자동사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있지만 타동사에는 ‘-어 있-’이 결합할 수 없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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